파시즘과 파시즘적인 것.
파시즘은 계몽주의 - 제국주의 시절, 계급제도의 붕괴와 시민사회의
발전을 배경으로 하고 커뮤니케이션장애를 그 본질로 하고 인종주의를
위주로 하여 나타난다.
파시즘은 일견 좌파이데올로기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유비
추리로서 정확히 말하면 좌파의 이념이 정립된 당 시대를 전후로 한
역사적, 시대적 배경일 뿐 본질에서는 다르다. 이 부분에 특히 주의하
여야 한다.
파시즘의 한 특징을 폭력으로 규정하기 쉬운데 이는 파시즘이 제국주
의 시절에 일어났기 때문이지 파시즘의 본질과는 상관없다. 파시즘은
본질에서 폭력이 아니다. 이는 유교주의 공자파시즘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종교가 있으면 유사종교가 있듯이 이데올로기가 있으면 유사이데올로
기가 있다. 파시즘은 일종의 유사이데올로기이다.
종교와 사이비의 구분은 돈을 누가 관리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법인
이 돈을 관리하면 종교이고 교주가 돈을 관리하면 사이비다. 종교의
목적은 인간구원이요 사이비의 목적은 돈이다.
이념과 유사이념의 구분은 그 유토피아관을 보고 알수 있다. 인류전체
의 영원한 유토피아를 제시하면 이념이요 특정집단, 특정시대, 특정상
황의 한시적인, 조건적인 유토피아를 제시하면 유사이념이다. 이념의
목적은 유토피아요 유사이념의 목적은 지배다.
동티모르 저항운동의 테러와 하마스의 테러, IEA의 테러를 지지한다.
무조건적인 반테러주장은 미국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선거전략의 일환
일 뿐이다. 미국중산층의 편안한 밤잠을 위하여 불의를 옹호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테러는 경우에 따라 유효한 전술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일제하 독립군 전술 중에 테러를 빼면 무엇이 있더란 말인가? 안중근
은 비난받아야할 테러범인가?
폭력이 곧 파시즘일 수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커다란 폭력을 행
사하는 집단이 미국이 아니고 더하여 누구란 말인가?
진보주의나 파시즘이 전술로서 폭력을 내세운 것은 제국주의 시대라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당시 지구촌인류는 폭력을 제외한 다른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 만큼 통합되어 있지 않았다.
파시즘은 계급, 인간차별, 성차별, 장애자, 약자, 소수자차별, 인종주의,
등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 배경으로는 의사소통 방법의 부재, 및 어려
움에 기초하고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장애가 파시즘의 본질인 것이다.
조갑제 등 바보들이 대개 우파를 자처하는 것도 본인들이 명백히 커뮤
니케이션장애를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세대차나 문화충격도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장애에 속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인지가 해방되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으나 인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
통과 이해조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 문제를 우회하기 위하여 인
간을 수직계열화 하려는 것이 정치로서의 파시즘이다.
계급, 관료제도, 도덕적세뇌, 폭력적억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을
수직계열화 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편리를 위하여 인간들을 차별, 구
분, 고립, 조직화하는 것이다.
장유유서, 군신유의, 붕우유신, 효도, 대표적인 파시즘 발상이다.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어떤 일을 착수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서
열을 정해놓고 역할을 분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착상이다.
남자는 남자의 일을, 성인은 성인의 역할을, 어린이는 노인에게 복종을
등 커뮤니케이션장애를 우회할 방법을 사전에 정해놓아야만 효율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한다고 믿는 것이다.
또 방송과 언론 등 매체지배를 통하여 인간을 세뇌하고 통제하여 효과
적으로 조직해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 글자
를 모르던 시대에는 과연 그런 점이 있었다.
이러한 파시즘이 오류로 밝혀지는 것은 과학과 산업의 진보에 의해 인
간이 계몽되고 매체가 증가하고 사회관계가 점점 긴밀해지는 즉 문명
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성역할을 구분해놓지 않아도 가정은 충분히 꾸려지며, 어린이
가 노인에게 복종하지 않더라도 공동체는 유지되며, 학교에서 언론을
통하여 민주적인 방법으로 충분히 계몽되고 학습하며 방송과 언론을
통제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의 이기적인 목적에 의하여 인간은 훌륭하
게 자기 역할을 찾고 목표에 도달하는 등 각종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극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탄생시점인 계몽주의 및 제국주의 시절에는 언론과 문자
가 충분히 보급되지 못했고 교통수단이 미비하여 커뮤니케이션장애가
상당했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파시즘적 성격이 가미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명의 진보에 의해 그러한 부분은 필요없거나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파시즘은 구축되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20년 전의 학교 교실은 반장이 없으면 담임선생님의 의지가 충분히 학
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급당 학생수는 너무 많고 등사해
야할 시험지 프린터는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해서 그러한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상당부분 해소되
었고 또 지속적으로 해소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러한 것은 필
요없게 되었고 또 그렇게 변하여 가고 있다.
진보가 확고한 원칙과 통일된 지도부와 폭넓은 연대와 자발적인 행동
통일을 요청하는 것은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에 해당하
는 것이다.
원칙이 없고 지도부가 없으며 토론이 차단되고 연대가 아니되고 행동
통일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새로이 밝혀진 과학
의 성과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며 기득권세력과의 매체경쟁에서 패배
하게 되는 것이다.
경쟁-이념적 경쟁, 정치적 경쟁, 경제적 경쟁, 문화적 경쟁 등 모든 경
쟁에 있어서 승리하는 최고의 요건은 커뮤니케이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문제는 이 커뮤니케이션이 최고의 형태에 있어서는 인터랙티브한 즉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진보가 분명한 전략과 목표를 가지고 원칙적이고 일관되게 투쟁하는
것이 일상성 속의 파시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쌍방향성의
검증과정에 존재하는가가 문제로 되는 것이다.
곧 충분한 쌍방향성을 가진다면 어느 면에서 파시즘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부분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정도의 문제이고 역량의 문
제이다.
프랑스인들이 전략적, 원칙적, 집단적으로 행동하면 민주적으로 보여지
고 한국인이 그렇게 하면 파시즘적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한국인의 역
량이 부족하고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까닭이지 그 원칙이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에밀 졸라도 잘난척, 튀는 넘, 소영웅주의하며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옳았던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 사건이 재판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흐지
부지 되었으면 결국 그걸로 끝났을 것이다.
용기있는 프랑스법정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명예로운 결과를 얻은 것이
다. 강준만의 싸움이 명예롭지 못하다면 우리가 충분히 강준만을 받쳐
주지 못한 까닭이다.
일체의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의사소통실패, 문화충격, 세대차에는 반
드시 파시즘이 기생한다. 그것을 번역이 엉터리인 서구철학개념으로는
'타자에의 불안', '타자의 철학' 등으로 표현된다.
인터넷의 본질은 쌍방향성 곧 피드백에 의한 오류검증이며 이는 진보
의 원칙들에서 흔히 파시즘적이라 비판되는 일방향성을 보완하기에 충
분하며 고로 더하여 원칙의 강조가 필요한 것이다.
파시즘, 그것은 심리적으로는 타자에의 불안, 사회적으로는 의사소통실
패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수 또한 그러하다.
진보주의는 이성에 의해 타자에의 불안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며 문명에
의해 인터랙티브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이다.
(..)
파시즘은 계몽주의 - 제국주의 시절, 계급제도의 붕괴와 시민사회의
발전을 배경으로 하고 커뮤니케이션장애를 그 본질로 하고 인종주의를
위주로 하여 나타난다.
파시즘은 일견 좌파이데올로기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유비
추리로서 정확히 말하면 좌파의 이념이 정립된 당 시대를 전후로 한
역사적, 시대적 배경일 뿐 본질에서는 다르다. 이 부분에 특히 주의하
여야 한다.
파시즘의 한 특징을 폭력으로 규정하기 쉬운데 이는 파시즘이 제국주
의 시절에 일어났기 때문이지 파시즘의 본질과는 상관없다. 파시즘은
본질에서 폭력이 아니다. 이는 유교주의 공자파시즘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종교가 있으면 유사종교가 있듯이 이데올로기가 있으면 유사이데올로
기가 있다. 파시즘은 일종의 유사이데올로기이다.
종교와 사이비의 구분은 돈을 누가 관리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법인
이 돈을 관리하면 종교이고 교주가 돈을 관리하면 사이비다. 종교의
목적은 인간구원이요 사이비의 목적은 돈이다.
이념과 유사이념의 구분은 그 유토피아관을 보고 알수 있다. 인류전체
의 영원한 유토피아를 제시하면 이념이요 특정집단, 특정시대, 특정상
황의 한시적인, 조건적인 유토피아를 제시하면 유사이념이다. 이념의
목적은 유토피아요 유사이념의 목적은 지배다.
동티모르 저항운동의 테러와 하마스의 테러, IEA의 테러를 지지한다.
무조건적인 반테러주장은 미국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선거전략의 일환
일 뿐이다. 미국중산층의 편안한 밤잠을 위하여 불의를 옹호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테러는 경우에 따라 유효한 전술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일제하 독립군 전술 중에 테러를 빼면 무엇이 있더란 말인가? 안중근
은 비난받아야할 테러범인가?
폭력이 곧 파시즘일 수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커다란 폭력을 행
사하는 집단이 미국이 아니고 더하여 누구란 말인가?
진보주의나 파시즘이 전술로서 폭력을 내세운 것은 제국주의 시대라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당시 지구촌인류는 폭력을 제외한 다른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 만큼 통합되어 있지 않았다.
파시즘은 계급, 인간차별, 성차별, 장애자, 약자, 소수자차별, 인종주의,
등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 배경으로는 의사소통 방법의 부재, 및 어려
움에 기초하고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장애가 파시즘의 본질인 것이다.
조갑제 등 바보들이 대개 우파를 자처하는 것도 본인들이 명백히 커뮤
니케이션장애를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세대차나 문화충격도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장애에 속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인지가 해방되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으나 인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
통과 이해조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 문제를 우회하기 위하여 인
간을 수직계열화 하려는 것이 정치로서의 파시즘이다.
계급, 관료제도, 도덕적세뇌, 폭력적억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을
수직계열화 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편리를 위하여 인간들을 차별, 구
분, 고립, 조직화하는 것이다.
장유유서, 군신유의, 붕우유신, 효도, 대표적인 파시즘 발상이다.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어떤 일을 착수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서
열을 정해놓고 역할을 분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착상이다.
남자는 남자의 일을, 성인은 성인의 역할을, 어린이는 노인에게 복종을
등 커뮤니케이션장애를 우회할 방법을 사전에 정해놓아야만 효율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한다고 믿는 것이다.
또 방송과 언론 등 매체지배를 통하여 인간을 세뇌하고 통제하여 효과
적으로 조직해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 글자
를 모르던 시대에는 과연 그런 점이 있었다.
이러한 파시즘이 오류로 밝혀지는 것은 과학과 산업의 진보에 의해 인
간이 계몽되고 매체가 증가하고 사회관계가 점점 긴밀해지는 즉 문명
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성역할을 구분해놓지 않아도 가정은 충분히 꾸려지며, 어린이
가 노인에게 복종하지 않더라도 공동체는 유지되며, 학교에서 언론을
통하여 민주적인 방법으로 충분히 계몽되고 학습하며 방송과 언론을
통제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의 이기적인 목적에 의하여 인간은 훌륭하
게 자기 역할을 찾고 목표에 도달하는 등 각종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극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탄생시점인 계몽주의 및 제국주의 시절에는 언론과 문자
가 충분히 보급되지 못했고 교통수단이 미비하여 커뮤니케이션장애가
상당했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파시즘적 성격이 가미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명의 진보에 의해 그러한 부분은 필요없거나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파시즘은 구축되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20년 전의 학교 교실은 반장이 없으면 담임선생님의 의지가 충분히 학
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급당 학생수는 너무 많고 등사해
야할 시험지 프린터는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해서 그러한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상당부분 해소되
었고 또 지속적으로 해소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러한 것은 필
요없게 되었고 또 그렇게 변하여 가고 있다.
진보가 확고한 원칙과 통일된 지도부와 폭넓은 연대와 자발적인 행동
통일을 요청하는 것은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에 해당하
는 것이다.
원칙이 없고 지도부가 없으며 토론이 차단되고 연대가 아니되고 행동
통일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새로이 밝혀진 과학
의 성과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며 기득권세력과의 매체경쟁에서 패배
하게 되는 것이다.
경쟁-이념적 경쟁, 정치적 경쟁, 경제적 경쟁, 문화적 경쟁 등 모든 경
쟁에 있어서 승리하는 최고의 요건은 커뮤니케이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문제는 이 커뮤니케이션이 최고의 형태에 있어서는 인터랙티브한 즉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진보가 분명한 전략과 목표를 가지고 원칙적이고 일관되게 투쟁하는
것이 일상성 속의 파시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쌍방향성의
검증과정에 존재하는가가 문제로 되는 것이다.
곧 충분한 쌍방향성을 가진다면 어느 면에서 파시즘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부분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정도의 문제이고 역량의 문
제이다.
프랑스인들이 전략적, 원칙적, 집단적으로 행동하면 민주적으로 보여지
고 한국인이 그렇게 하면 파시즘적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한국인의 역
량이 부족하고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까닭이지 그 원칙이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에밀 졸라도 잘난척, 튀는 넘, 소영웅주의하며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옳았던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 사건이 재판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흐지
부지 되었으면 결국 그걸로 끝났을 것이다.
용기있는 프랑스법정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명예로운 결과를 얻은 것이
다. 강준만의 싸움이 명예롭지 못하다면 우리가 충분히 강준만을 받쳐
주지 못한 까닭이다.
일체의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의사소통실패, 문화충격, 세대차에는 반
드시 파시즘이 기생한다. 그것을 번역이 엉터리인 서구철학개념으로는
'타자에의 불안', '타자의 철학' 등으로 표현된다.
인터넷의 본질은 쌍방향성 곧 피드백에 의한 오류검증이며 이는 진보
의 원칙들에서 흔히 파시즘적이라 비판되는 일방향성을 보완하기에 충
분하며 고로 더하여 원칙의 강조가 필요한 것이다.
파시즘, 그것은 심리적으로는 타자에의 불안, 사회적으로는 의사소통실
패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수 또한 그러하다.
진보주의는 이성에 의해 타자에의 불안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며 문명에
의해 인터랙티브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