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464 vote 0 2002.09.10 (11:34:08)

625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625는 건국전쟁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승만이 5.10선거로 하여 정통성을 획득한 바 되었으나 제주도 4.3항쟁과 여순항쟁은 이승만의 건국을 부인한 과정이었고 그만큼 이승만의 대한민국은 정통성을 상실하였으며 625는 그 연장선 상에서 일어났다.

물론 625는 좀 복잡한 이유에서 일어났다. 가장 큰 변수로는 일본과 미국, 중국, 러시아의 개입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건국은 최종적으로 그 내부의 역량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볼 때 1945년의 한반도인들은 그 3000만의 백성을 아울러서 일개국가를 건설할만한 내적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음이 명백하다.

가장 주요한 점은 민족국가의 구심점이 될 왕실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은 걸핏하면 민족국가를 강조한다) 일본이나 태국이나 호주나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족국가의 형식으로 근대국가건설에 성공하는 것은 구심점이 되는 왕실(혹은 영국왕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왕실이 없다면 왕실을 대신할 만한 이념적 혹은 종교적 혹은 정치적 구심점이 존재해야 한다. 한반도인은 특정 구심점이 될만한 특정종교를 가지지도 못하였고 명백한 이데올로기도 없었고 혁명도 없었고 국부(중국의 손문)도 없었다. 심지어는 견인할만한 강력한 민족자본도 없었다.

도무지 무엇을 근거로 하나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말인가? 유일한 단서라고는 지정학적 특징(반도의 형태)와 단일한 언어와 문자(한글이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가?) 뿐이었다.

그리고 천년래의 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단일국가 역사가 있다. 그러나 약하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하나의 국가를 생산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그래서 전쟁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625는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민족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못난 너희가 정신적 구심점이 될 왕실도 없고 견인할 든든한 자본도 없고 영광스런 군대도 없고 확실한 단일종교도 없고 조또엄는 주제에 도무지 무얼 근거로 국가 하나를 탄생시키려고 했단 말인가? 아서라.

이승만은 제주, 여순 등지에서 수만명의 동족을 학살했다. 그의 건국은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하였으며 그 반란이 배역이라고 주장할만한 어떠한 확실한 근거도 가지지 못하였다. 우격다짐 외에.

5.10선거? 인정 안하면 그만이지. 이승만의 정통성을 단서를 찾는다면 유일한 근거는 미군의 주둔이었다. 그러나 약하다. 단지 그것만으로 하나의 국가와 영도자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선거라는 절차가 있었지만 그거야 부정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피가 필요했다. 적어도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민족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는지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왜 한반도인은 하나의 국가를 건설할 수 밖에 없는가? 모두들 그 하나의 국가를 위해 흘릴 피를 충분히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100만명의 피보다 하나의 국가건설이 더 중요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전쟁은 일어났다. 수백만명이 죽었다. 그제 인간의 목숨이 단일국가의 명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쟁을 중단했다. 물론 이승만 등은 국가건설의 명분이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우겨댔지만.

내가 그 당시의 김일성이라면, 한반도 저쪽에서 굳이 정통성을 인정해줄 필요가 없는 어떤 무장집단이 동족 수만인을 살해하고 있는데 방관해야 하는가? 개입한다면 국가건설의 명예를 얻고 백성의 목숨을 구하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수 있는 데도?

내가 이승만이었다면 북에서 김일성이 동족 수만여를 학살하는데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야 했는가? 아직 국가건설이 완수되지 않은 과도기인데도? 국가건설의 위업을 위해 10여만의 희생 정도는 거뜬히 감수해야 하지 않는가?

역사시대에 걸쳐 인류는 국가건설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왕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쟁을 벌였으며 국가건설의 이념적 뒷받침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종교를 방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교도들을 살해하여 왔던가?

이교도를 백만쯤 죽여야 하나의 국가가 일어서고 이민족을 천만명쯤 죽여야 하나의 독립국이 유지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동족을 100만명쯤 죽임은 하나의 국가건설을 위해 희생할만 한가?

지금은 이데올로기가 국가건설의 받침이지만 과거엔 종교가 그 받침이었다. 불교의 왕건이 그랬고 유교의 이성계가 그랬다. 그 이데올로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졌던가?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정학적, 언어적, 역사적, 민족적, 경제적 공통분모가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약했다. 그만한 내적역량이 없었다. 일본이 조선왕실을 제거해버렸기 때문에 더욱 약해졌다. 유교주의가 근대화과정에서 이념적인 뒷받침을 못하여 용도폐기 되면서 대안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구비하지 못하였다.

그런때 필요한 것이 손문과 같은 대사상가나 혁명이거나다. 그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국가의 뼈대를 세울 만한 건더기가 될 돈도 종교도 이념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혹자는 공산주의가 용도폐기된 유교주의를 대신하여 반도인의 정신적 결집을 이루어낼만한 근거가 된다고 믿었고 혹자는 미국식 자유주의가 그만한 선전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약했다. 공산주의는 교회도 군대도 가지지 않았다. 미국식 자유주의는 소개도 되지 않았다.

625는 건국전쟁이다. 우리는 단일국가 건설에 실패했다. 왕실과 종교가 없었고 군대(김일성의 수백명, 김구의 수십명?)도 자본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국가를 만들어가야 했다. 피가 모자랐던 것이다.

625는 건국전쟁이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어느쪽도 명백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고 남에서 혹은 북에서 죽어간 625의 모든 희생자들은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반란군이나 할것없이 모두 건국의 유공자들이다.

그렇다면 또한 이 6월에 아쉬울 것이 무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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