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094 vote 0 2002.09.10 (11:10:22)

나는 진리를 보았다.
이 세상 있을수 있는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알게 되었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정답이 존재한다.
그 정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어떤 문제에도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단코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이건 모순된다.
분명히 정답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이라니.
그렇다.
이 말은 모순된다.

왜?
그것은 인간이 가진 언어의 본질적 한계이다.
본래 언어로는 진리를 바르게 나타낼 수 없다.
그렇다면.

헤아려 듣는 귀, 그리고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설명하고자 한다.
더 들어보라.

그렇다.
정답은 명백히 존재한다.

그런데 왜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가?

여기에 시간의 함수가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정답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공간적인 필요충분조건을 의미하기 쉽다.
그러나 사태는 시간 상에서 현재진행한다.

1 + 1 = 2 할 때의 산수문제는 공간의 규칙일 뿐이다
1이나 혹은 2들은 그저 공간 상에 분포한다.

시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관심은 변화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는 정답은 그 문제를 해결해는 구체적인 행동이며
그 행동은 시간 상에서 실천되기 때문이다.

즉 1+1이 얼마인지 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샘해진 2를 이리로 가지고 와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에 수수료 얼마를 더해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그것은 변화다.

무릇 보편적인 진리는 존재한다.
그 진리는 공간과 시간의 규칙이다.
우리는 그 일면, 주로 공간의 측면만을 살피는 실패를 답습한다.

변화는 항상 시간 상에서 일어난다.

정답은 무엇인가?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이거 아니면 저거
O와 X로 환원될 수 있다.

여기서 정답은 O가 아니면 X다.
O인가 X인가?

정답은 O가 아니고 또한 X가 아니다.
중도 혹은 중간도 아니다.

정답은 변화다.
이를테면 미개한 야만인들이 정글에서 살고있다고 치자.
문명인들이 그들 미개인들을 계몽한다면 옳다.

그러나 곧 그들 미개인들의 반대에 부닥친다.
그들의 반대에 직면하여 물러섬이 옳은가?

O 강제로라도 문명개화 해야한다.
X 야만인의 생각도 존중해야 한다.
△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쪽이 옳을까?
어느 쪽도 옳지 않다.

시간의 논리란 무엇인가?

처음에는 먼저 문명인이 미개인의 마을에 침략하여 그들을 교화해야 한다.
그들이 자기정체성을 찾아 반대하고 나서면 물러나야 한다.
그들이 머무르면 다시 침투해야 한다.
그들이 또 저항하면 또다시 공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반복되어야 한다.

이 법칙은 역사에도 문화에도 적용된다.

여기 한 개의 구부러진 철사가 있다.
구부러진 철사를 곧게 펴면
철사는 고유한 탄성에 의해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고로 철사를 곧게 펴서는 곧게 펴지지 않는다.
고로 철사를 펴려면 180도를 넘어서 반대편으로 더 굽혀주어야 한다.

즉 굽은 것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름을 지나쳐서 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철사는 바로 펴지는가?
천만에 이번에는 반대편쪽으로 굽어버린다.

그렇다면 다시 반대쪽으로 지나쳐와야 한다.
이건 반동이다.
퇴보다.
원위치다.

이러한 실패로 끝나는가?
천만에 철사는 다시 반대쪽으로 굽히고 또 펴기를 반복해야 한다.

자 나는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 정답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정답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단 한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절대로 없다.

반드시 시간이 걸려야 하며
그 시간동안
지나치게 하기와 도리어 원위치하기를 반복하여
탄성을 줄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무릇 진보하기 위해서는 무모한 모험, 과격한 진보가
있어야 철사를 180도를 지나쳐 더 많이 펴게 되는 것이며

그 무모한 진보에 의한 반동으로 다시 원위치 해야 하며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또다른 진보가 모색되어야 한다.

역사의 발전은 굽은 철사를 펴기와 같다.
항상 지나치는 것이 옳다.
또 상황이 바뀌었을 때는 재빨리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좋다.
중도는 정도가 아니다.

과격함, 지나침, 모험이 정답이며
또한 거기서 머물러서 안되고 재빨리 원위치해야 한다.

정답은 있다.
그러나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은 절대로 없다.
반드시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지금 벤처가 붐이다.
지나친 투자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적절한 투자를 하면 반드시 2등이나 3등을 하게 되고
이때는 주도권을 놓치게 되며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반드시 모험을 해야 하며
무리한 투자를 해야 한다.
대신 이게 아니다 싶을 때는 재빨리 원위치 해야 한다.
이러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은 반복되어야 하며
이러한 시행착오과정을 부질없는 낭비가 아니라
노하우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실패없이 딱 맞게 성공하려면
항상 남들에게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너무 많은 벤처가 창업되어야 한다.
그 중에 많은 기업들이 망해야 한다.
망해도 기술은 축적되며 인력은 양성된다.

적절한 숫자의 벤처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여 조정하면
결정적인 승부의 순간에 인력과 기술의 담보가 없어서
외부와의 경쟁이 지게 된다.

1이 적합하다면 5를 대비해야 한다.
1명의 군사로 막을 수 있다면 5명의 병사가 대기해야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다.

나머지 4명의 낭비가 있어야 한다.
골드뱅크의 선발주자는 시행착오였지만
그 시행착오의 큰 교훈이 없었다면 나중에 더 큰 착오를 하게 된다.

바른 길을 찾으려고 말고
아무 길이나 마구 가보고 저 길이 바른 길이 아님을
뒤에 오는 사람에게 확실히 알려야 한다.

저 길이 바른 길이 아니므로 가지 않으면
나중오는 사람이 혹 바른 길일지도 몰라 하며 엇길로 가고
결정적인 순간에 손발이 맞지 않게 된다.

정답을 찾아내는 것보다
정답이 아닌 것을 먼저 배제하므로서
힘을 집중할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바른 길만 걸어온 모범생은 반드시 바른 길에서 이탈하게 되며
젊어서 그릇된 길을 체험한 모험가는
인생의 승부가 될 30대 때에 한눈 팔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간다.

이것이 역설이다.
인생은 역설이다.
진리는 역설이다.
모든 존재는 시간 상에서 변화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의 길을 찾았다면 그 길을 지나치게 무리하여 가라.
길이 아님을 알았다면 주저없이 본래의 위치로 돌아오라.

콤파스는 반드시 세 개의 꼭지점을 필요로 하고
세 개의 관측점이 아니고는 별자리의 위치를 확정할 수 없다.

하나의 위치는 내가 서는 자리고
하나의 위치는 내가 재는 자리며
하나의 위치는 내가 갈 자리다.

그 버리는 카드 한 개를 반드시 준비하라.
항상 뒤집어 생각하고
자기의 반대쪽을 먼저 체험하라.

오른 쪽으로 갈 양이면 먼저 왼쪽을 경험하라.
앞으로 갈 양이면 먼저 뒤를 든든히 하라.

자기가 믿는 바 외길을 걷지 마라.
정도를 벗어나 반대편으로 가지 마라.
둘 사이에 중간에 서지 마라.

하나의 결정적인 찬스를 위하여 적절히 변신하여야 한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정답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에 있다.

그 단 한번의 때를 위하여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대는 공간 상에 놓인 길을 간다.
그대는 오른쪽이나 왼쪽을 간다.
오른 쪽이 답이 아니고 왼쪽도 답이 아니며 중간에 서 있어도 안된다.

그대가 찾는 것은 오른쪽이나 왼쪽에 있지 않다.
그대가 찾는 것은 참된 찬스이며 찬스는 공간에 있지 않고 시간에 있다.

오른쪽과 왼쪽을 다 가본 사람만이 그 찬스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무리해야 한다.
지나쳐야 한다.
알맞아서 안된다.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선두에 서야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 먼저 기반을 닦고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을 때에
진정한 한번의 승부가 걸렸을 때 비로소
그대의 침착함과 정확함을 보여야 한다.

그 한번의 찬스가 오기 전까지 그대는 덤벙대어도 좋다.
그대 무리해도 좋다.
그대 실수해도 좋다.
그대 인내해도 좋다.

역사의 진리는 정에 있지 아니하고
반에 있지 아니하며
합 혹은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며
그 모든 것을 공간 상에서 통일하고
시간 상에서 열매맺는다

스스로 자기자신을 능히 변화시키지 못하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먼저 자기를 살해할 수 있다면
신의 편에 설 수 있다.
진리의 편,
정의의 편.
역사의 편,
진보의 편에 설 수 있다.

그대 자신의 본래로 돌아갈 수 있다.
자기 다움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며
자기 다움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변화를 받아들기기.
변덕도 받아들이기
혼란도 받아들이기
고통도 받아들이기
그 모든 것을 안고 허위허위 걸어가기

김동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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