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치료과정의 핵심적 요소
1. 수용/ 방어없이 사적 경험에 온전히 접촉하기.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
2. 인지적 탈융합/ 수용을 방해하는 사적 경험에 대한 평가에서 벗어남. 문자적 의미에서 벗어나 생각을 생각으로 해보기.
생각을 생각으로 보지않고, 생각=fact로 보는것이 융합.
생각뿐 아닌, 감정에서도 탈융합 되어야 함.감정=fact이면 이것도 융합.
3. 맥락으로서의 자기/ 사적 경험의 수용을 방해하는 '개념적 자기' 대신에 '지금-여기'에서의 경험을 '관찰하는 자기'를 경험하기.
4. 현재에 존재하기/ 효율적이고 개방적이며 비방어적으로 현실에 접촉하기.
5. 가치/ 삶의 목적을 선택하기-->수용을 촉진함. 수용하는 것 자체도 적극적인 행동임. ex. 공황에서의 수용은 공황이 일어나는 마트에 가는 것..
6. 전념적 행동/ 가치 추구의 구체적 목표를 따라 행동하되, 그에 따르는 심리적 장애물들을 수용하면서 전념을 유지하기.
이 6가지 요소들은 서로를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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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얘기하는 수용은 마음의 구조로 보면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에서 감정이 발하는 신호를 일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신호에 대해 심리적인 방어기제를 작동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오. 예를 들면 우울한 기분이 들면 그냥 아, 지금 기분이 우울하구나 하는 거요. 그걸 무시하거나 우울하지 않은 척하거나 하는 등으로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말이오. 뭐, 다른 심리치료법들의 근간에도 감정 차원을 일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중요시하오. 그래야 상부구조가 보이기 때문이오. 하부구조의 감정이 보내는 신호에 매달리는 한 정신, 의식, 의도라는 상부구조를 볼 수가 없으며, 상부구조에 개입하지 못하면 치료는 불가능하오,
인지적 탈융합은 의도-생각-감정 보다 한 단계 위로 올라가 적어도 의식의 차원에서 나머지 마음의 구성요소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기제라 할 수 있소, 의도가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감정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오. 이렇게 상부구조인 의식을 장악하면, 즉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의식화하면 마음을 괴롭게 하는 갈등(주로 A와 B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에서 날이 아닌 심의 포지션에서 갈등을 처리할 수 있소. 저울의 양 날개인 우울과 조증 사이에서 심의 포지션을 취하면 우울이 오거나 들뜸이 와도 그에 매몰되지 않고 우울이 지나치면 약을 복용하는 등의 방법을 써서 조절하는 등의 방법을 쓸 수 있게 되오.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에 우울한 기분을 어느정도는 즐길 수도 있게 되오. 마치 날씨가 맑은 날이 있으면 궃은 날도 있는 것처럼 말이오.
맥락으로서의 자기 역시 마찬가지 이야기오. 핵심은 마음의 상부구조 차원에서 접근하라는 것이오. 개념적 자기는 마음의 구조에서 의도 차원에서 이미 세팅된 자기라고 할 수 있소. 난 소심한 사람이야. 난 외향적인 사람이지, 난 성실한 사람이야, 난 게으른 사람이야. 이런 것들은 공동체 내에서 자기 포지션을 미리 세팅해둠으로써 일정한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며,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소. 문제는 이렇게 세팅된 역할을 인간이 죽을 때까지 우려먹으려 한다는게 문제. 어렸을 때 발표하다 놀림받은 사람이 그 때의 충격으로 그다음부터 아, 난 소심한 사람이야라고 성격을 세팅한 뒤 나이들어서도 여전히 난 소심한 사람이야 이러고 있다는 거. 그리고 이것이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며, 처음에 세팅할 땐 이를 의식하지만, 나중에 까먹어서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인가보구나 하면서 산다는거.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이렇게 마음의 하부구조에서 세팅된 고정된 자기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를 규정할 수 있는 위치에 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임. 구조론에서 말하는 의식에 해당함.
현재에 존재하라는 이야기는 과거에 세팅해 놓은 의식-의도-생각-감정 우려먹지 말고 정신차려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상호작용하라는 말. 결론은 정신차리라는 이야기.
가치 삶의 목적 선택하기는 삶의 방향성을 찾으라는 이야기임. 삶의 미학적인 완결성을 추구하라는 이야기임. 그래야 삶의 동기가 조달되고 삶의 열매가 내 것이 되기 때문임. 가치나 삶의 목적이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사는 사람은 뭘 해도 남 좋은 일만 하다가 죽음.
전념적 행동은 일단 삶의 방향성이 세팅되면 그 길로 쭈욱 가라는 이야기임. 기승전결 다 겪을 때까지 가라는 이야기임. 끝까지 가보라는 이야기임. 뭐든 한 번 기에 서면 그 다음부턴 그 에너지 따라 쭈욱 가게 되어있음. 고로 이미 내 안에 진정한 삶의 가치와 목적이 세팅되어 있으면 전념적 행동은 그냥 따라오는 이야기임. 따라서 별거 아닌 이야기임.
구조론 식구들 어떻소?
이게 가장 최신 심리치료 이론의 핵심이라오. 6가지나 들먹이고 있소. 진부하지 않소?
결정적으로, 호연지기가 부족하오.
구조론에선 한 마디로 끝냈소.
"반응하라"
자신의 몸이 들려주는 감정이라는 신호에 반응하고,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온갖 이벤트들에 반응하여 공동체로 깊숙히 들어가 자신의 역할을 얻고,
결국엔 인류라는 집단지성을 구축하는 일에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는
그 정도 호연지기를 불어넣을 수 있어야 참된 심리치료라 할 수 있지 않겠소?
진짜배기 심리치료는 그냥 수용하고 전념하라 정도에서 이야기의 끝을 내선 안되오. 그건 소승의 길이고
대승의 길은 수용하고 전념하고 건설해라까지 나아가야 하오. 서양애들이 개인의 행동에서 멈춘것은 수신에서 멈춘 것과 다름없소. 남은 것은? 제가치국평천하요.
무엇을 건설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답하였소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심리치료하였소.
그래서 위대한 정치인은 위대한 치유자이기도 하오. 링컨이 그랬듯이 말이오.
[출처] 우울증에 대한 수용전념치료 ACT|작성자 오징어
맞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오.
그러기 위해서 반응성을 높여야 하오.
그것은 질감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오.
이것에 잘 반응하기 위해서 저것에는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것에도 저것에도 반응할 수 있어야 하오.
사소한 문제에만 잘 반응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중요한 문제에 잘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오.
그러려면 용기가 있어야 하오.
그러나 대개 반응하지 않거나
이것에 반응하기 위해 저것과 담을 쌓거나
다른 사람이 세팅해 놓은 판에 끼어들어 뒷북만 전문적으로 치거나 하오.
후수를 잡으면 반드시 패배.
선수를 쳐야 하오.
먼저 반응해야 이기는 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