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화선 4등 - 거봐! 김용옥이 낑기면 망한댔잖니?
헛발맨 김용옥이 가는데마다 곡소리 진동한다. 문제는 이 답답한 중생이 알지도 못하면서, 깨달은 척 한다는 거다. 가만 앉아서 선생질이나 하면 누가 뭐래나?
이번주 박스오피스 - 취화선 서울 56200 전국 139700, 순위는 4위다. 투자대비로 본다면 대쪽박이다. 1위는 스파이더맨, 2위는 집으로..! 3위는 일단뛰어!
예술이 뭐냐? 이걸 아느냐다. 영화가 뭐냐? 이걸 아느냐다.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영화판에 훈수를 두더라도 두라는 말이다. 하여간 김용옥이 초치고 나서면 되는 일이 없다.
각설하고 대박의 법칙을 보자.
서편제 - 앞 못보는 장님이 등장한다.
집으로 - 말 못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사랑과 영혼 - 모습을 나타내이지 못하는 유령이 등장한다.
겨울연가 - 배용준이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고래사냥 - 여주인공이 말을 못한다.
나쁜남자 - 주인공이 목을 다쳐 말을 못한다.
파이란 - 여주인공과 끝내 대화하지 못한다.(중국인이라 의사소통 안됨)
춘향전 - 이몽룡이 암행어사인 자기 신분을 공개하지 못한다.
슈퍼맨 - 여자친구가 슈퍼맨의 정체를 모른다.
와이프 미스트리스 - 자신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어 아내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여기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대박영화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주인공이 뭔가 비밀을 가지거나,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말을 못하거나, 신분을 숨기거나,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앞을 못보거나 뭔가 안타까움과 단절이 있다.
막말로 주인공을 으쓱한데 데리고 가서 어디 한군데 분질러 놓으면 대박이 된다. 간단한거다. 본질에서는 소통의 단절이다. 우리의 문제는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뚫린 것을 의도적으로 막아놓고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막혔을 때 우리는 그 본질을 잘 관찰할 수 있다.
말을 못하게 막아놓았을 때, 말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소통의 문제가 실은 모든 문학, 소설, 예술, 시, 영화, 그림에 공통된 본질에서의 문제라는 점이다. 연극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표현수단을 달리할 뿐 본질에서 그것은 '소통의 단절과 복원'에 관한 것이다.
소통의 복원 - '집으로...'의 상우가 비닐봉지에 초코파이를 감추어놓듯이 마침내 이심전심의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이건 이미 2500년 전에 가섭과 석가가 다 가르쳐준거다.
예를 들면 김수근화백은 희미하게 그려놓는다. 단절이 집중을 낳는 효과를 획득하는 것이다. 또 예를 들면 피카소는 일부러 대상을 왜곡시켜 놓는다. 역시 막말로 하면 그림을 휘저어 병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박영화에서 주인공을 병신(장애우들에게는 미안)으로 만들어놓듯이, 피카소는 모델의 눈을 한쪽에 붙여놓는 식으로 병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김수근은 안개를 뿌려놓는 것이다. 김수근의 그림은 최소한 10초이상 뚫어지게 봐야지만 뭐가 보인다. 그래서 김수근화백의 그림값이 국내에서 최고로 비싼 것이다.
왜? 차단이 집중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은 소통에 관한 문제이다. 흐르는 물을 막아놓아야지만, 그 물이 둑을 터뜨리며 거센 물결을 만든다. 막아놓지 않으면? 그게 흐르는지 고여있는지 표시도 안난다.
이중섭도 그러하고 고흐도 그러하다. 그것을 소설에 대면 문체의 파격에 해당한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곳을 막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호흡을 주어 둑을 터뜨리는 것이다. 마침내 감동을 터뜨리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문제는 이런 간단한 기본상식의 부재에 있다. 너무나 당연한, 너무나 중요한, 너무나 기본인 이 부분에 소홀한 것이다. 피카소가 과감하게 모델의 눈알을 떼어 오른쪽 뺨에 붙어놓았다면 김용옥은 장승업의 어디를 분질러 놓았는가?
이거시 문제인 것이다. 바보같은. 에라이 나가죽어라 머저리야.
슈퍼맨이고 스파이더맨이고를 막론하고 모든 맨들의 공통점은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의 정체를 바로 옆에서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여자친구는 전부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헐리우드의 너무나 간단한 공식이 임권택에 이르면 머나먼 고지가 된다. 우낀 일이 아닐 수 엄따.
헛발맨 김용옥이 가는데마다 곡소리 진동한다. 문제는 이 답답한 중생이 알지도 못하면서, 깨달은 척 한다는 거다. 가만 앉아서 선생질이나 하면 누가 뭐래나?
이번주 박스오피스 - 취화선 서울 56200 전국 139700, 순위는 4위다. 투자대비로 본다면 대쪽박이다. 1위는 스파이더맨, 2위는 집으로..! 3위는 일단뛰어!
예술이 뭐냐? 이걸 아느냐다. 영화가 뭐냐? 이걸 아느냐다.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영화판에 훈수를 두더라도 두라는 말이다. 하여간 김용옥이 초치고 나서면 되는 일이 없다.
각설하고 대박의 법칙을 보자.
서편제 - 앞 못보는 장님이 등장한다.
집으로 - 말 못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사랑과 영혼 - 모습을 나타내이지 못하는 유령이 등장한다.
겨울연가 - 배용준이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고래사냥 - 여주인공이 말을 못한다.
나쁜남자 - 주인공이 목을 다쳐 말을 못한다.
파이란 - 여주인공과 끝내 대화하지 못한다.(중국인이라 의사소통 안됨)
춘향전 - 이몽룡이 암행어사인 자기 신분을 공개하지 못한다.
슈퍼맨 - 여자친구가 슈퍼맨의 정체를 모른다.
와이프 미스트리스 - 자신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어 아내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여기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대박영화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주인공이 뭔가 비밀을 가지거나,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말을 못하거나, 신분을 숨기거나,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앞을 못보거나 뭔가 안타까움과 단절이 있다.
막말로 주인공을 으쓱한데 데리고 가서 어디 한군데 분질러 놓으면 대박이 된다. 간단한거다. 본질에서는 소통의 단절이다. 우리의 문제는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뚫린 것을 의도적으로 막아놓고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막혔을 때 우리는 그 본질을 잘 관찰할 수 있다.
말을 못하게 막아놓았을 때, 말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소통의 문제가 실은 모든 문학, 소설, 예술, 시, 영화, 그림에 공통된 본질에서의 문제라는 점이다. 연극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표현수단을 달리할 뿐 본질에서 그것은 '소통의 단절과 복원'에 관한 것이다.
소통의 복원 - '집으로...'의 상우가 비닐봉지에 초코파이를 감추어놓듯이 마침내 이심전심의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이건 이미 2500년 전에 가섭과 석가가 다 가르쳐준거다.
예를 들면 김수근화백은 희미하게 그려놓는다. 단절이 집중을 낳는 효과를 획득하는 것이다. 또 예를 들면 피카소는 일부러 대상을 왜곡시켜 놓는다. 역시 막말로 하면 그림을 휘저어 병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박영화에서 주인공을 병신(장애우들에게는 미안)으로 만들어놓듯이, 피카소는 모델의 눈을 한쪽에 붙여놓는 식으로 병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김수근은 안개를 뿌려놓는 것이다. 김수근의 그림은 최소한 10초이상 뚫어지게 봐야지만 뭐가 보인다. 그래서 김수근화백의 그림값이 국내에서 최고로 비싼 것이다.
왜? 차단이 집중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은 소통에 관한 문제이다. 흐르는 물을 막아놓아야지만, 그 물이 둑을 터뜨리며 거센 물결을 만든다. 막아놓지 않으면? 그게 흐르는지 고여있는지 표시도 안난다.
이중섭도 그러하고 고흐도 그러하다. 그것을 소설에 대면 문체의 파격에 해당한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곳을 막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호흡을 주어 둑을 터뜨리는 것이다. 마침내 감동을 터뜨리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문제는 이런 간단한 기본상식의 부재에 있다. 너무나 당연한, 너무나 중요한, 너무나 기본인 이 부분에 소홀한 것이다. 피카소가 과감하게 모델의 눈알을 떼어 오른쪽 뺨에 붙어놓았다면 김용옥은 장승업의 어디를 분질러 놓았는가?
이거시 문제인 것이다. 바보같은. 에라이 나가죽어라 머저리야.
슈퍼맨이고 스파이더맨이고를 막론하고 모든 맨들의 공통점은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의 정체를 바로 옆에서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여자친구는 전부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헐리우드의 너무나 간단한 공식이 임권택에 이르면 머나먼 고지가 된다. 우낀 일이 아닐 수 엄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