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오늘의 한겨레 헛소리 - 가난을 미화하는 발언은 부자의 전략?

손석춘이 어떤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여 가난을 미화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어떤 독자가 '가난을 미화하는 것은 부자의 전략'이라고 대응하고 여기에 또 선생님이 해명을 하고 손석춘이 중계를 했는가보다. 뭐 대부분 뜬구름잡아타보자는 헛소리고.

사실이지 빈/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물질적 빈곤 그 자체보다는 사회적 태도의 문제이다. 요즘 가난한 사람이 원래 부자 이회창 어린시절보다 잘산다. 회창도 한때는 점심밥 없어서 수돗물 먹었다잖는가 말이다.

가난의 진짜 문제는 절대적인 가난의 문제도 아니고, 상대적인 가난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부유한 사람보다 낮은 계급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며, 여기서 부당하게 손해보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문제는, 이 사회가 권위주의적 사회이기 때문이다. 즉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인맥이라든가 학벌이라든가 더 많은 기회에서 부당하게 손해보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물론 선진국은 이런 문제가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일단 주택과, 의료와, 교육은 보장되므로 가난한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위주의의 타파로, 가난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많은 기득권세력들이 손해를 보게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돈들여서 학벌 만들고, 돈 들여서 인맥 만들었는데, 투자한 데 대한 본전을 뽑지 못해서 그만큼 손실인 것이다. 고로 기득권층은 저항한다.

중요한건 공정성이다. 부자들은 이인제 처럼 유리한 위치에서, 불공형하게 이득을 보고 출발했기 때문에 중간정도의 승자가 되는 일은 많아도 최종적인 승자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난뱅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하지만, 그 중 살아남은 소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두배 불리한 위치에서, 두배로 단련되었기 때문에 최종적인 승자가 되기도 한다.

진정한 승자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 자신에게 핸디캡을 부과하고,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부'는 행복이 아니라 계획이다. 즉 부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부를 토대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부자는 언제 어디서든지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소유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추진해가며 그 성과를 매일같이 확인해내는데 있다. 삶에서 아무런 계획이 없다면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부자들은 언제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가장 쉽게 세울 수 있는 계획은 놀이의 계획이다.

가난한 사람은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어떤 계획에도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행하다. 그러나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부자들의 계획은 주로 소비에 관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계획은 반대로 생산에 관한 것이다.

고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의 부자들보다 더 많은 더 적극적인 더 가치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의 계획은 곧잘 실패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 가치있는 계획은 창의력있는 가난뱅이가 세우는 법이다.

문제는 노무현처럼 스스로 자신에게 핸티캡을 부과하고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도전자가 드물 듯이 창의력있는 가난뱅이가 드물다는데 있다.

인생의 법칙 역시 그러하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가난뱅이보다 행복하다. 그러나 진짜 행복한 사람은 가난을 극복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승자들은 유리한 위치에서 프리미엄을 먹고 출발한 기득권계급에 있다. 그러나 진짜 승자는 핸디캡을 짊어지고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한 사람이다. 드물지만 그러하다.

하여간 손석춘의 낭만적인 감상타령은 배부른 시인의 것일수는 있어도 말장난에 불과하다.



■ 선생님의 편지
"행복과 돈은 어떤 함수일까요? 돌이켜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경험이 진짜 스승이니까요.
애틋한 사랑의 기억은 고스란히 가난할 때 몫 같아요.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의 특권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요즈음 신세대 아빠들은 당당히 말하지요. 자녀에게 풍족한 돈을 물려주고 싶다고…. 아이들은 숨기지 않아요. 인생의 목표가 돈 많이 버는 거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맞장구쳐요. 가난의 한을 아느냐고? 누구도 아무 말도 못하죠.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우리들 가슴엔 그러나 공허함이 남지요. 자신이 짓는 집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아니까요.

모두 그런 건 아니지요. 사랑은 가난을 겪은 사람들의 특권이지요. 전… 가난이 부족하여 사랑과 나눔이 부족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손석춘 ■ 제가 보내드린 <부자아빠가 부러운 신세대> 편지에 몇몇 분들이 우려의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의 답장을 읽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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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 저는 아직 젊어서 그런지 고등학교 선생님의 아름다운 편지글이 현재까진 잔잔한 감동으로 와 닿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우선 인사부터 하고 드리고 싶은 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례를 저지르게 됩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조○○라고 합니다. 저 또한 손석춘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는 자칭 '손사모(손석춘을 사랑하는 모임)'의 열렬한 회원입니다. 평소 오프라인의 한겨레 지면에서 뿐만 아니라 온라인의 하니뉴스메일을 통해서도 손석춘 선생님의 글을 읽고 생각하며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하니뉴스메일 2002년 5월 6일 편지 "부자아빠가 부러운 신세대?"를 보고 선생님의 생각에 감히(?) 동의할 수 없어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행복과 돈은 일치한다거나 비례관계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생각으로 어느 누가 그 말을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랑은 가난을 겪은 사람들의 특권"이라거나 "가난이 부족하여 사랑과 나눔이 부족한 게 아닐까"라는 글 앞에서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가난해야만 행복하다거나 가난해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그런 감상적이고 기만적인 마스트베이션(자위행위)을 할 수 있을까요. '가난이 미덕이다'라는 이런 류의 말도 안되는 말도 모두 가난한 이들을 또 한번 억압하는 가진자들, 즉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합니다. 두서도 없이 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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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 저는 젊은 벗이 그 선생님의 글을 다소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선생님께 젊은 벗의 편지를 전자우편으로 보내드렸더니 조금 전 다시 답장이 왔습니다. 그분의 편지를 당신과 더불어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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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생님 ■ "부자들은 가난을 미화합니다. 그들은 부를 존속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가난은 고통스러운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진실을 말합니다.

명백히 가난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잘못된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왜곡된 정치현실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누가 가난을 강요합니까? 저는 가난한 현실을 미화하거나 이를 지속시키려는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칭송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정치현실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은, 그러나 험난하고 가난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고 봅니다.

가난한 노동자를 만나보셨습니까? 그와 눈빛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건네 보셨습니까? 그들의 소박한 상상력을 이해하십니까? 가난한 민중의 사랑으로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가난한 민중의 특권입니다.

가진 자들은 아름다운 집을 짓지 못합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오만함과 편협함, 그리고 억압의 도구들뿐입니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이념과 인류애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사랑할 줄 모르는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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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 어떤가요. 그 선생님의 진의가 조금은 더 드러나지 않았나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편지를 당신께 보낸 것은 결코 가난을 예찬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이지요.

미친 듯이 불어오는 부자아빠 신드롬 앞에서 저는 그것이 부자신문의 노림수임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책 제목이 다소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부자신문 가난한 독자』도 결코 가난한 독자를 예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판하고 있습니다.

민중의 사랑을 토로한 그 선생님의 글에 사족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지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자랄 때 저는 그 사람이 인생의 깊이를 얼마나 알 수 있을 지에 회의적입니다. 외로움의 깊이만큼 사랑도 깊어지는 게 아닐까요.
논설위원 손석춘 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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