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 완전계는 외부적으로 닫혀있고 내부적으로 열려 있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역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즉, 외부적으로 열려있고 내부적으로 닫혀있는 경우 말입니다? - 칼은 외부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손잡이가 있지요. 항아리는 외부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물을 담을 수 있지요. 사과는 외부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먹어버릴 수 있지요. 이런 식으로 외계의 침투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지요. 신은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신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요. 이부분은 흔히 착각될 수 있습니다. 계의 기준을 무엇으로 하느냐인데 물론 인간도 완전합니다. 생명을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은 완전하지요. 인간은 외계의 침투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니까요.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말은 생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정신을 말합니다. 정신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거지요.

한 알의 사과는 완전합니다. 가만 놔두어도 싹트고 뿌리내리고 자랍니다. 그러나 그 사과가 사과나무에 달려있을 때는 불완전하지요. 이런 식으로 모든 완전한 것은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며 모든 불완전한 것도 그 내부에서는 완전한 것입니다. 고로 이 부분을 판단할 때는 판단기준을 어디에 두었는가를 명민하게 살필 필요가 있으며 이때 판단기준은 일입니다.

자동차의 일은 운송이죠. 즉 자동차가 운송할 수 있으면 완전한 것입니다. 물론 자동차도 사람이 운전을 안해주면 불완전하죠. 제힘으로 못 달리니까. 그러나 일을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그 일이 운송이므로 운송을 기준으로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준을 잘 살펴야 완전여부를 알수 있습니다.

열린계는 일을 하기 위해 외부의 간섭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닫힌계는 내부에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구성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호미나 곡괭이는 제 스스로는 일을 못하죠. 일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돌멩이가 돌멩이로는 완전한데 조각상으로는 불완전합니다. 왜? 미처 다듬어지지 않았으니까. 그 돌은 석수장이의 손길을 받아들일 것이며 고로 열려있는 것입니다. 조각이 완성되었다면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죠. 여기서 판단기준은 조각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기준점에 따라 완전일수도 불완전일수도 있습니다. 고로 열려있는 것이 실은 닫혀있을 수도 있으며 닫혀있는 것이 실은 열려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일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오류는 없습니다.

님의 말씀하신 그 역은 없느냐는 질문은 그 완전의 기준, 곧 일의 기준을 바꿀 수는 없느냐는 말입니다. 외부적으로 닫혀있고 내부적으로 열려 있는 완전계를 뒤집어서 외부적으로 열려있는데도 완전한 경우를 상정한다면 이는 두가지 일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즉 외부적으로 더 큰 일이 주어져 있는 경우이지요. 이는 이중기준의 오류가 되므로 논리학의 규칙에 안맞습니다. 그러나 일의 기준은 임무를 부여하기 나름이므로 이런 경우는 실제로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지 그 경우 그 바깥에 더욱 큰 단위의 닫혀있음이 또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오류이지요. 고로 논리적으로는 항상 밖으로 닫혀있고 안으로 열려있으며 그 사이로 에너지가 순환하는 것이 완전계입니다.

■ 인식의 기원에서 혐기성 바이러스가 호기성 바이러스 내부로 침투하면서 호기성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읽었다고 하셨는데, 이 사건은 필연적인지 우연적인지? - 필연적이죠. 인식은 상호관계입니다. 여기서의 규칙은 내게 있는 것이 네게도 있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즉 제가 한글을 알고 님도 한글을 쓰므로 대화가 되듯이 사전에 둘이 무언가를 공유해야만 한다는 조건입니다. 호기성바이러스와 혐기성바이러스는 내부적으로 동일한 하나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로 결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는 항상 짝을 가집니다. 만약 짝이 없는 것은 존재가 아닙니다.

짝이 있는 것의 예 -
칼날과 손잡이 : 손잡이나 칼날 중 하나가 없다면 그 칼은 일을 할수 없으며 일을 하지 못할 때 칼이 아니라 쇠붙이에 불과합니다.

컵의 물을 담는 부분과 손으로 쥐는 부분 : 땅바닥에 고여있는 물도 일종의 컵이죠. 그러나 우리는 그 컵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손으로 쥘수 없기 때문이죠. 컵은 물을 담는 기능과 사람이 손으로 쥐는 두가지 기능을 합니다.

지우개의 지우는 부분과 손잡이 부분 : 지우개는 지우기만 하면 되므로 손잡이가 없게 만들면? 그 지우개는 너무 닳아서 사용할수 없게된 지우개처럼 일을 못합니다. 고로 그것은 지우개가 아니라 쓰레기죠.

지구상의 모든 컵의 주둥이는 사람의 입모양을 닮아 있습니다. 입술의 각도와 컵의 곡선은 완전히 일치합니다. 만약 입술의 각도와 컵의 곡선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컵은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컵이 아니라 사금파리겠죠.

여기서 규칙 - 사람의 입에 있는 것이 이미 컵에도 있다. 즉 최초의 혐기성바이러스에 있었던 것이 호기성바이러스에도 있었듯이, 또 내 컴에 깔린 익스플로러가 님의 컴에도 깔려있듯이 어떤 하나를 둘이 공유할 때에만 정보의 전달>일의 수행이 가능합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침투와 독립은 항상 이런 상대적인 공유와 호환기능을 가지며 그 내부에 침투와 독립이 하나의 세트를 갖춘 것이 완전성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입과 컵이 분리되어 있는데 이를 의미적으로 결합한다면 완전성이겠죠.

모든 완전한 것은 반드시 내부구조를 가집니다. 그리고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가 있습니다. 그 사이로 에너지가 순환하고 있습니다. 에너지가 순환하면 일을 해냅니다. 이상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가의 여부는 과연 일을 해내었는가의 결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스스로 일을 하지 못하면 불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함은 주로 생물에서 관찰됩니다. 먹고 싸고 일합니다. 일은 주로 증식이지요. 무생물일 경우 의미의 배달을 두고 일을 판단합니다. 즉 의미를 배달하는 것은 일종의 일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거지요.

예를 들면
태극기 : 사람이 태극기를 사용한다. 태극기는 국가를 상징하는 일을 한다. 태극기가 일을 한 것으로 간주하고 완전하다고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무생물에는 완전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의미의 전달을 일종의 일로 간주하여 완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거지요.

넓은 의미에서 남의 힘을 빌지 않고 자기가 맡은바 소임을 해내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학적 완전이라면 더 이상 손을 댈 곳이 없는, 붓을 더 사용해서 안되는, 즉 외부적으로 닫혀있는 것이 완전이지요. 물론 일을 하지 않으면 닫혀 있어도 완전한게 아닙니다. 그림은 의미를 전달하고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일을 하지요.

생물에서 완전한 것 -> 증식하는 것
무생물에서 완전한 것 ->일을 하는 것 또는 일에 간주되는 의미를 배달하는 것.

하여간 자기 소임을 다하면 곧 완전한 겁니다. 그러나 모든 완전한 것도 더 큰 임무 앞에서는 불완전합니다.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로서는 완전하지만 사회와 역사라는 더 큰 일 앞에서는 불완전하지요. 고로 인간은 불완전에서 완전을 지향하며 끝없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많은 가치들을 달성하여도 더 큰 임무를 부여하고 보면 여전히 불완전한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351 죄와 벌 2002-09-06 6605
350 밥집에서 주운 글 1 2002-09-06 6024
349 밥집에서 주운 글 2 2002-09-06 5609
348 인생과 언어 2002-09-10 6016
347 "대박을 터뜨립시다" 2002-09-10 6004
346 깨달음이란... 2002-09-10 6002
345 시스템-패러다임-생물학적 세계관 2002-09-10 6184
344 고등학생을 위한 철학이야기 2002-09-10 6717
343 미래의 교육 2002-09-10 5588
342 캔디와 바비인형의 비밀 2002-09-10 5957
341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2002-09-10 6213
340 철학은 완전학이다 2002-09-10 4748
339 존재와 인식 2002-09-10 5790
» 완전과 불완전 그리고 일과 의미 2002-09-10 4048
337 생활의 발견을 발견하라 2002-09-10 4359
336 공각기동대 2002-09-10 5138
335 한겨레 헛소리-가난을 미화하는 발언은 부자의 전략? 2002-09-10 4854
334 대박의 법칙 수정판 2002-09-10 4295
333 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는가? 2002-09-10 4085
332 정보화의 5대 원칙 2002-09-10 3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