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묘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옛날 할배들이 구전으로 하는 엉터리 이야기를 어떻게 믿느냐는 거다. 근데 알고보면 거의 대부분이 구전이다. 박혁거세의 탄강지인 나정이 대표적이다.
그곳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람이 알에서 태어날 리가 없잖은가 말이다. 박혁거세는 외부에서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침략해온 도래인 집단으로 보는게 상식과 맞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건국시점에 중국에서 왕망의 신이 건국되었다가 곧바로 망해서 그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로 이주했고, 전쟁이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뀌었으며, 등자를 이용한 기마술이 보급되어 전차전에서 기병전으로 전쟁형태가 변했기 때문이다.
매우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다. 특히 기병전쟁이 등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럽에서도 말이 등장하면서 봉건제가 시작된다. 말은 다루기 어려우므로 고급기술을 필요로 하고, 한 번 기술을 익히면 강력한 세력이 되기 때문에 국가를 건국하기에 좋은 기초가 되는 것이다.
박혁거세 신화에 말과 알이 등장하는데 이는 기병전술의 도래를 의미한다. 알은 흉노말로 금이고 금은 왕의 상징이다. 박혁거세 신화가 전하는 팩트는 말에서 왕이 나왔다는 거다.
근래에 나정을 발굴했는데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가 나왔다. 박혁거세를 제사지내던 나을신궁으로 추정된다. 무엇인가? 할배들의 구전이 백퍼센트 맞는 말도 아니지만 백퍼센트 틀린 말도 아니라는 거다.
세월은 흐르고 우물은 메워지고 돌만 몇 남아있었다. 할배들의 구전이 아니고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포석정도 비슷하다. 유상곡수의 연을 베풀었던 돌로 된 홈통이 포석(鮑石)이라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포(鮑)라고 하면 북어포나 오징어포나 노가리 안주 따위가 아닌가?
1999년 인근에서 포석(砲石)이라 씌어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 포는 같은 포인데 한자가 다르다. 명문기와가 의미하는 것은 포석(鮑石)이라는 명칭이 그 유상곡수 터에서 왔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거다.
그곳에서 임금이 놀이를 했다는 해석은 통일신라 전성기, 곧 신라가 한참 잘나갈 때 포석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인데 명문기와가 출토됨으로써 보다 이른 시기인 7세기 경, 신라가 고구려, 백제와 전쟁을 하던 삼국시대부터 이미 포석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돌홈이 전복 모양이므로 포(鮑)라는 것은 건물이 쓰러지고 잔해만 남았을 때 후대 사람들이 그 잔해를 보고 하는 이야기고, 당시로는 그렇게 명명할 수 없다. 논리와 맞지 않다. 전혀다. 절대다.
지금은 그 돌홈과 우물터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당시엔 건물이 빼꼭하게 들어차 있어서 그 돌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천마총을 천마총이라 하는 것은 천마도가 나왔기 때문인데, 신라사람이 그곳을 천마총이라 불렀을 리는 없다는 말이다.
포석 근처에 유상곡수지가 있는데, 신라가 망하고 건물들이 모두 쓰러졌기 때문에 뒷날에 누군가가 그 잔해를 보고 해석을 한 것이다. 분명 포석은 그 돌유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포석이었다.
화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은 불타서 없어지고 그 절의 화장실만 남아있었다. 훗날 사람들이 화장실이 남은 것을 보고 ‘음 이 절은 화장실이 있어서 화장사였구만’ 하고 추측하는 격이다. 주객전도다.
돌홈에서 수십여미터 떨어진 근처에 옥돌을 파낸 구덩이가 있다. 경주남석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안경알은 거의 남산에서 난 투명한 옥돌로 만들었다. 남산으로 더 올라가면 옛날 채석장도 있다.
포석이라는 명칭이 유상곡수의 연을 베풀던 돌홈에서 나왔다는 해석은 그저 후대사람들의 추측일 뿐이고, 최근에는 조상을 제사지내는 신궁터로 보는 학설이 많다. 그게 더 유력하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박혁거세의 박이 빛에서 온 명칭이라면(바가지라니 초딩인가? 전혀다.) 파사왕의 ‘파사’와 마찬가지로 남산의 수정과 관련된 명칭이 아닐까 한다. 수정이 빛을 내니 왕의 상징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는 신권정치를 했기 때문에 왕은 동시에 제사장이다. 2대 남해 차차웅의 차차웅은 무당이라고 한다. 무당이 되려면 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도화상이 불교를 전할 때 ‘모례(毛禮)’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모(毛)+레인데 ‘모’는 ‘털’이니 ‘절’의 옛발음이고 ‘레’는 여성형 어미에 해당하므로 절+여자가 된다.
모례는 여성이고 절에 있는 사람이다. 어원을 연구해 보면 '절'은 불교와 관련이 없으며 옛날부터 있던 단어다. 절은 원래 하늘의 서광을 보고 점 치던 방법에서 나온 개념이다.
점(占)은 구개음화 되었으니 원래 ‘뗌’이고 서광이 갈래가 ‘떨어진’ 것을 보고 점을 치듯이 무당이 나무조각을 던져서 그 패의 간격이 떨어진 것을 보고 점을 쳤기 때문에 점이며 절 역시 같은 어원이다.
백제석공 아비지(阿非知)는 아비+지(존칭)이다. 그냥 아비다. 이름이 아니라 따르는 일꾼들이 우두머리를 ‘아비’라 부른 것이다. 아빠나 오빠의 어원은 그냥 남자라는 뜻이다. 혈통의 의미는 없다.
아마존의 눈물에서 한 여자가 여러 남자와 사는 것을 보고 중혼제가 있다고 MBC가 말하는데 멍청한 소리다. 정글의 부족민이 말하는 아빠는 그냥 남자라는 뜻인 경우가 많다. 남편이 아니라 대개 오빠거나 사촌형제다.
우리나라 성씨 중에서 김씨가 제일 많은데, 김이라는 성은 후대의 창작이고 원래는 성이 없었다. 문제는 경주김씨와 가야김씨로 김씨문중이 둘이나 되고 옆동네에 있다는 거다. 왜?
백제도 김을 쓴다. 공주는 금성이었다. 전국적으로 금성이라는 지명이 많다.
김씨가 김으로 성을 한 것은 왕성을 금성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신라의 서울은 서울이고, 백제의 서울은 사비인데, 사비는 한자표현이고 우리말은 서울이다.
신라나 백제나 공통적으로 서울을 서울이라 부르고 금성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서울의 ‘서’는 우두머리를 뜻하고 ‘울’은 ‘벌’인데 ‘부여’와 같은 뜻이며 도시를 의미한다. 즉 우두머리도시가 서울이다.
여진족 역시 김씨인데 이름을 금나라로 했다. 왜 다들 금인가? 금이 인기였기 때문이다. 칭기즈칸 역시 황금씨족을 자처하는데 김씨다. 흉노어로 ‘금’은 ‘알’인데 경주김씨 시조인 김알지는 김+금+지(존칭)이다. 즉 ‘김김씨’인 것이며 한자어+흉노어로 이중명명을 한 것이니 역전앞이다.
티무르는 몽골족도 아닌데 몽골족을 자처했으며, 무굴왕조는 몽골왕조도 아닌데 이름이 몽골왕조이며, 케말 파샤는 딱봐도 마케도니아계 그리스인이고 그리스 출신인데 종교가 이슬람교니 투르크인을 자처하여 터키의 국부가 되었다. 전혀 투르크인같이 생기지 않았다. 갖다붙이기다.
가야김씨나 신라김씨는 김이 왕과 통하므로 김으로 성을 삼은 것이며, 고려 왕건은 왕이 되어서 왕씨로 한 것이다. 의미로 보면 왕씨=김씨다.
금과 왕은 같은 뜻이며 고구려는 신라왕을 ‘매금’이라 기록했는데 ‘매’는 ‘마리’와 같고 ‘금’은 왕이니 우두머리왕이다. 신라는 화백을 모두 왕이라 불러서 냉수리비에 차칠왕등으로 표현했는데(6부촌장+왕<갈문왕?>=7왕) 족장도 ‘금’이었으므로 ‘금중의 금’이 ‘매금’인 것이다.
고구려의 막리지는 ‘머리+지(존칭)’이니 ‘막리지=마립간’과 같은 논리에서 명명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를 매금으로 표현한 것이고 매금의 매는 마한의 마와 같은 우두머리 의미다. 마한=마립간.
구전이 다 맞는건 아니지만 다 틀린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 어떤 씨앗이 있으면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희미하지만 중요한 소스를 제공한다. 언어가 진화하는 경로를 추적하면 많은 진실이 밝혀진다.
신라의 왕호
거서간(간은 3한의 韓과 같으며 칭기츠칸<바다의 왕>과 마찬가지로 북방유목민 사이에 널리 쓰이던 족장호칭)
차차웅(무당이라는 뜻?) 웅은 곰이고 곰은 금이므로 차차곰=이사금과 원리가 같음.
이사금=임금(임+금)
마립간
매금=임금(이사금) 중의 우두머리, 매금은 고구려측 기록이므로 마립간과 매금이 동일하다고 보여짐.
매금왕(역시고구려측 기록)
왕(차칠왕등의 표기로 보아 마립간, 이사금 시대에 이미 자체적으로는 왕이라는 표현을 썼음)
황(황이나 제라는 호칭도 자체적으로 사용함)
칭기츠칸은 바다의 왕이라는 뜻인데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몽골족이 바다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다.
다른 나라(흉노)의 언어를 빌은 것이다.
케레이트족의 옹칸은 중국에서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왕+왕이니 임금임금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는 동물 곰이 아니다.
웅은 곰이고 금은 금이며 금은 신이니 신녀다.
흉노인들은 금인(金人)을 숭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금은 신의 의미이며 동시에 왕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당시는 제정일치사회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