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다는 것은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이며, 상대를 그 자리로 초대하기 위하여  여백을 비워둔다는 것이며,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며, 어떤 둘의 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짜는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로 있다.

시끄럽게 소리질러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에는 질렸다. 난 웅장해 바로크, 난 우아해 로코코, 난 근사해,
난 예뻐, 난 좋아, 난 귀여워, ‘나 아직 안죽었어’ ‘나 여기있어’ ‘날 쳐다봐줘’ 그렇게 소리들을 질러대니 질렸
다.

심플하다는 것은 조심스런 눈인사 같은 것이다. 낯선 둘이 만나는 접촉의 순간에 아무런 방해자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대문명이 점점 이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역사가 그것을 요청하므로 현대성
이다.

작은 도시국가들이 난립하여 도시간의 전투로 영일이 없던, 무질서한 그리스 천하에 뛰어난 영웅 헤라클
레스가 나타나서 혼란스런 그리스 천하를 평정하다. 뛰어난 영웅 알렉산더가 동서세계를 잇는다.

뛰어난 영웅 진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다. 나폴레옹과 징기스칸의 시대..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문무겸전
에다 용기에다, 담력에다, 체력에다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다 갖춘 슈퍼맨의 시대. 지나간 이야기다.

슈퍼맨이 지구를 구하고 지구인 모두는 TV로 슈퍼맨의 활약을 지켜봐야 하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혼자
서 다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80년대만 해도 영국 왕자 장가가는게 뭔 볼거리라고.

전 세계인이 TV 앞에 앉아서 ‘우와 왕자님 장가가네. 볼만하네! 참으로 거시기하네!’ 하고 감탄사를 연발했
다는거 아닌가. 그런 시대는 지나갔는데 봉남이 형은 아직도 왕자님의 옷을 만들고 있는 거다.

경험≫인식≫판단≫행동≫양식의 순으로 전개한다. 지금은 행동과 양식의 시대이기 때문에 단순해야 한다.
인식은 복잡하지만 그 행동은 단순할 수 밖에 없다.  인식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행동에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와 호흡을 맞추려면 약속해야 하고 약속은 단순해야 지켜진다.

인식의 시대에는 컨버전스가 강조된다. 초기에는 TV라도 많은 기능과 많은 버튼들이 달려 있었다. 왜냐하면
'TV는 이런거다' 하는 내용을 소비자에게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능도 있다구. 몰랐지?' 하는 식
이다. 그러나 갈수록 단순화 된다.

점점 자동화 되고 조작하기 편하게 된다. 버튼들은 생략되고 겉으로 돌출되어 있던 부분들은 안으로 감추어
진다. 컨버전스를 피하고 디버전스를 취하게 된다. 기능보다는 성능을, 성능보다는 효능을, 효능보다는 디
자인을 추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