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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011 vote 0 2008.08.19 (15:25:01)

구조주의 양자론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다발 형태를 이룬다는 양자론의 핵심 개념은 구조론의 관점과 일치한다. 구조론은 자연의 밸런스 원리를 해명하고 있다. 밸런스는 2의 대칭으로 항상 짝수가 된다는 점에서 양자론과 같다.

구조론은 자연의 비반복성≫불연속성≫비가역성≫비분할성≫비순환성을 탐구한다. 구조론이야말로 애초에 양자론이 강조하는 불연속성의 관점에 서 있는 것이다. 반면 양자론의 주요 개념들은 이론적으로 부실하다.

양자론의 다발, 불연속, 에너지라는 표현은 의미가 불명하다. 이는 실험결과로 확인된 귀납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결과측이 아닌 원인측에서 본 연역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왜 불연속이고 다발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양자의 ‘다발’ 개념은 구조론의 대칭원리로 해명될 수 있다. 구조는 짝짓기다. 요소들이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짝을 지어 대칭을 이루었기 때문에 양자론에서 말하는 불연속의 다발이 성립되는 것이다.

물질의 작용은 항상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된 상태로 이행하는 일방향성을 가진다. 그 반대방향으로의 진행은 에너지의 잉여를 성립시키지 않으므로 동력의 조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질은 외부에서 간섭하지 않으면 안정되어 있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반드시 외부에서 힘의 작용이 있어야 그 반작용의 형태로 시공간의 스크린 위에 자기 존재를 연출하여 드러낸다.

외부에서 간섭하는 정도에 따라 물질은 질≫입자≫힘≫운동≫량의 다섯 가지 물리적 형태로 나타난다. 물질은 외부에서 간섭하지 않을 때 질(質)로 성립하고 간섭될 때 양(量)으로 나타난다.

외부간섭을 받아 질에서 양으로 이행할 때 입자≫힘≫운동의 세 포지션을 거치며 위치에너지≫팽창에너지≫운동에너지로 전개한다. 위치에너지는 입자로 관측되고 운동에너지는 파동으로 관측된다.

구조는 자연의 짝짓기다. 물질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짝을 지으며 짝을 지을 때 한하여 물질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짝을 짓지 않을 때는 진공으로 되돌아가서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입자와 파동

양자론의 세계는 빛의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은 구조체 원리로 잘 설명된다. 구조체는 일을 한다. 연필은 글씨를 쓴다. 연필이 입자라면 글씨는 파동이다.

무를 써는 칼과 도마의 충돌이 불연속성을 가진다면 그 칼과 도마 사이를 통과하는 무는 연속성을 가진다. 모든 일은 수직과 수평이 만나 ┳를 이룬다. 이때 수평의 ━+━가 불연속이면 수직의 ┃는 연속이다.

구조체는 입력에서 출력까지 길게 이어져서 하나의 파이프 형태를 이룬다. 피리와도 같다. 피리가 입자라면 그 피리의 리드를 통과하는 소리는 파동이다. 모든 입자에는 항상 파동이 따라다닌다.

건물은 입자다.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길은 파동이다. 건물을 지으면 저절로 길이 생긴다. 건축하려면 자재를 운반하는 통로가 필요하므로 길이 없을 수는 없다. 입자를 구축하면 저절로 파동이 복제된다.

세포가 있으면 이어주는 신경이 있고 장기가 있으면 이어주는 혈관이 있다. 합쳐서 생명의 시스템이 된다. 불연속의 산봉우리들과 연속의 강이 하나의 대지를 이룬다. 입자와 파동이 합쳐서 완전체의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구조론은 존재를 에너지 순환 1 사이클의 일로 설명한다. 일은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의 에너지 순환 5단계를 거친다. 자연에서 디지털 구조체는 입력에서 출력까지 하나의 모듈로 세팅되어 반복적으로 일한다.

해시계로 설명할 수 있다. 에너지 순환 1 사이클은 광원(입력)에서 빛(저장)이 나와서 바늘(제어)에 의해 스크린(연산) 위에 그림자(출력)을 남기는 형태로 전개된다. 여기서 빛이 입자라면 그림자는 파동이다.

● 광원 (태양)

● 빛 (빛 입자).. 빛의 입자성질

● 바늘 (빛의 직진성)

● 스크린 (시간과 공간).. 빛의 파동성질

● 그림자 (관측되는 칼라)

인간은 빛 자체를 볼 수 없다. 칼라로 빛을 판단하지만 칼라는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이 환상통(phantom pain)을 겪는 것과 같다. 그림자가 제공한 정보를 뇌가 임의로 해석한 것이다.

이때 그림자는 왜 항상 파동일 수 밖에 없는가? 그림자는 스크린에 의해 연산되기 때문이다. 잘게 해체되는 것이다. 연산된다는 것은 연속된다는 것이다. 구조의 대칭이 시간과 거리의 비로 해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체의 일은 빛의 입자로 시작해서 그림자의 파동으로 끝난다. 이때 그림자는 빛을 복제하고 있다. 원본이 입자라면 복제본은 파동이다. 복제본은 자체동력이 없으므로 항상 원본에 종속된다.

입자가 입자인 이유는 외부작용에 대해 반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의 1사이클을 내부에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에 자체동력이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 파동은 불완전한 구조체다.

파동은 입자를 복제하므로 일정부분 입자의 성질을 가진다. 다만 내부에 동력이 없으므로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입자 성질을 나타낸다. 파동 역시 입자와 같이 대칭을 성립시키지만 그 힘은 외부에서 조달된다.

호이겐스의 원리에 따라 파동은 모든 방향으로 구면파를 만들어 대칭을 성립시킨다. 입자의 불연속성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다만 진행방향으로만 입자의 성질이 나타나고 역방향은 상쇄되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수학적으로는 분명히 존재한다. 파동이라도 불연속성이 감추어진 형태로 존재한다. 파동이 대칭성을 성립시키려면 동력을 얻기 위하여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대칭성이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칭성을 성립시키려면 작용 →의 반대방향으로 ←를 성립시켜야 하는데 진행하여 뒤로 한 걸음 물러간 상태에서 ←를 성립시키므로 보이지 않는다. 도마 위에 놓인 무를 칼로 내리쳐보면 알 수 있다.

도마와 칼은 입자다. 무는 파동이다. 무는 동력원이 없으므로 스스로 입자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무가 가지는 입자의 성질은 내려치는 칼에서 빌은 것이다. 피리를 통과하는 음의 입자성질은 피리에서 빌은 것이다.

그것은 정보의 형태로 수학적으로 성립할 뿐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파동에는 주파수가 있다. 내부 사이클이 있다. 감추어진 파동의 입자 성질이다. 파동은 복제본이므로 원본의 입자성질이 남아있다.

입력(질)≫저장(입자)≫제어(힘)≫연산(운동)≫출력(량) 중에서 정보의 저장은 두 번째 입자로 가능하다. 파동은 네번째 운동이므로 연산될 뿐 저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입자가 파동에 정보를 실을 수는 있다.

전축의 바늘과 레코드판은 입자다. 레코드판이 내는 소리는 파동이다. 파동은 레코드판 입자가 실어나른 정보를 연산하여 인간의 귀로 전달한다. 자동차는 입자고 길은 파동이다. 자동차가 승객을 태우면 길이 운반한다.

물질은 에너지로 변환되고 에너지는 정보로 변환된다. 그 변환과정에서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의 에너지 사이클을 가진다. 여기서 입력과 저장은 입자의 성질이고 연산과 출력은 파동의 성질이다.

물질은 입자일 때 보존되고 파동일 때 정보를 남기고 사라진다. 입자로 외부의 작용에 대해 반작용하여 보존되고 파동일 때 외부의 작용에 의해 방향성이 상쇄되어 정보를 남기고 사라진다.

빛은 진행에 의해서만 입자 성질을 나타내는 불완전한 입자다. 입자의 성질은 외부의 작용에 맞서 반작용하는 성질이다. 빛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입자의 반작용하는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빛도 일정한 조건에서는 반작용을 한다. 빛은 진행에 의해서만 입자성질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빛의 속도로만 빛에 작용하여 반작용을 끌어낼 수 있다. 빛과 나란히 간다면 빛이 완전히 입자로 보일 것이다.

물질=에너지=정보

아인슈타인에 의해 에너지가 물질로 변환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구조론은 에너지가 정보로 변환될 수 있음을 밝힌다. 에너지는 물질과 무엇이 다른가? 매우 큰 힘을 낸다는 점이 다르다.

원자폭탄에서 보듯이 물질의 내부에는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큰 힘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정보는 무엇이 다른가? 정보는 방향성을 가진다. 이에 정확도 문제가 제기된다. 정확한 에너지는 큰 에너지와 같다.

상대성 이론은 물질이 큰 힘을 가졌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 물질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마찬가지로 구조론은 다시 한 번 물질에 대한 관념의 오류를 수정한다. 에너지는 정확도를 가진다.

무엇인가? 정확도가 힘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힘으로도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리한 칼이 있다면 쇠도 자를 수 있다. 정확도만 충분히 보장이 된다면 어린 아이도 지구를 손으로 들 수 있다.

에너지라고 다 같은 에너지가 아닌 것이다. 엔트로피 보존의 법칙이다. 정확도를 잃어서 모든 방향으로 균일해진 에너지는 사용할 수 없다. 에너지는 방향성을 가지며 그 방향성을 통제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에너지는 클수록 좋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확한 놈이 힘 센 놈을 이긴다.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큰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정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주란 에너지의 방향성이 뒤죽박죽으로 엉켜버린 것이다. 입자의 위치에너지로 갈수록 복잡하에 엉켜서 물질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파동의 운동에너지로 갈수록 해체되어 정확도를 드러낸다.

에너지는 위치에너지≫팽창에너지≫운동에너지 순으로 방향이 정확해진다. 입자일 때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지만 힘에 의해 제어되지 않은 채로 당장 쓸 수는 없고 운동일 때 당장 쓸 수는 있지만 소모되어 사라져 버린다.

입자는 위치에너지고 파동은 운동에너지다. 빛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진다는 것은 빛이 일정한 조건에서 위치에너지를 가지지만 외부에서 작용하면 즉시 운동에너지로 변한다는 의미다.

광속의 절대성

광속이 불변하는 이유는 대칭성 때문이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빛의 진행은 그 반대방향으로의 진행을 수반한다. →로 진행할 때 ←로 온다. 이때 역방향 진행은 호이겐스의 원리에 따라 상쇄되므로 관측되지 않는다.

광속은 정보전달에 있어서의 밸런스다. 빛이 진공을 진행할 때 매 시간단위에 작용 반작용의 밸런스를 성립시킨다. →만큼 전진할 때 마다 동시에 ←만큼 온다. 그러므로 광속은 일정할 수 밖에 없다.

● 광속의 불변성은 정보가 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밸런스를 성립시킨 결과다.

우리가 아는 광속은 상대광속이다. 절대광속이 존재한다. 밸런스는 심과 날을 가지며 우리가 측정하는 부분은 심의 진행 뿐이므로 날의 내부진행을 포함한 절대광속은 상대광속보다 빠르다.

절대광속은 빛 내부에서 실제로 정보가 움직여간 거리다. 모든 진행은 상대방에 대한 응수타진을 거쳐 일어나므로 정보는 빛보다 빠르다. 무엇인가? 사람이 앞으로 갈 때 앞에 길이 있는지 눈으로 보고 간다.

사람의 발걸음 속도는 눈이 보는 속도보다 느리다. 마찬가지로 빛은 매 공간단위에서 작용 반작용의 대칭을 성립시켜야 하므로 빛의 진행속도는 작용 반작용의 대칭구조 성립속도보다 느리다.

여러 사람이 길게 줄을 이루고 늘어서서 손에서 손으로 물건을 전달함과 같다. 물건은 한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그 물건을 옮겨주는 팔은 양방향으로 진행하므로 두 배로 움직여 간다. 날은 심보다 빠르다.

이중슬릿 실험에서 관측되는 파동의 수축은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감을 의미한다. 상태의 공존도 같은 방식으로 해명된다. 입자는 심 1과 날 2로 구성되며 파동은 심 1을 잃은 상태이다.

빛은 내부에 심이 없으므로 멈추게 하면 사라진다. 다만 빛의 진행이 그 심의 역할을 대행한다. 빛을 관측할 때 관측이 개입하여 심을 성립시킨다. 관측에 의해 빛의 입자 성질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전자의 위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듯이 전자가 핵 주위를 돈다는 아이디어는 낡은 관념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전자는 특정한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 단지 외부에서 작용했을 때 순간적으로 위치를 만들어낸다.

10.5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에 10명이 있다. 이때 앞문으로 한 명을 더 집어넣으면 뒷문으로 한 명이 밀려나온다. 앞문으로 들어간 한 명이 뒷문까지 이동한 것은 아니다. 전달된 것은 정보 뿐이다.

방에는 0.5명이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으며 그 빈 공간은 특정위치에 있지 않다. 빈 공간은 수학적으로 균일하게 퍼져있다가 외부작용이 있을 때 밸런스의 평형에 따라 순간적으로 특정위치에 성립된다.

전자는 외부작용에 대응해서 순간적으로 밸런스를 성립시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위치는 불확정적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균일하게 분산되어 있던 자기를 순간적으로 모아내는 것이다.

현장에서 존재를 스크린 위에 연출해내는 것이다. 상태의 공존 개념도 마찬가지다. 빛은 진행하면서 밀도 차를 만나면 그 순간에 자기의 위치를 결정한다. 자기 존재의 절반은 반작용하는 상대측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존재가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믿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일을 구현하는 디지털 구조체 뿐이다. 아날로그 구조체는 그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킨다.

양자론의 확률개념

양자론에서는 확률 개념이 중요하다. 확률의 정체가 무엇일까? 확률은 작용 반작용에서 반작용 측의 고른 개입이다. 반작용 측이 편향되게 개입한다면 그 값을 상수로 구하여 작용측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반작용측이 고르게 개입한다면 그 반작용 측의 개입하는 값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작용 측의 진로를 예측할 수 없다. 양자론에서 관측자의 개입이 반작용 측을 구성하므로 작용 측의 미래를 알 수 없다.

이때 작용 측의 계는 심과 날로 이루어지며 날은 심의 바깥에 있으므로 심보다 크다. 그러나 인간은 심을 관측할 뿐이다. 심과 날 전체로 이루어진 계가 반작용 측의 계와 접촉하여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한다.

작용 측이 반작용 측의 정보를 읽어서 자신의 대응을 결정한다. 반작용 측의 정보를 알 수 없을 때 관측자는 확률로만 작용측의 진로를 구할 수 있다. 이중슬릿 실험으로 보듯이 빛은 사전에 길을 알고 간다.

이때 심은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날의 정보를 주고받는 대칭성에서 상대적으로 결정되므로 이중슬릿의 두 틈새 중에서 어느 쪽을 통해 지나갔는지는 사전에 특정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빛은 날 2의 형태로 이중슬릿의 양쪽을 다 통과한 것이며 그 중에 우리가 찾으려는 심 1은 이중슬릿을 통과한 이후에 결정된다. 정보가 빛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입자는 심 1과 날 2를 가진다. 우리는 심 1을 입자로 믿는다. 빛은 내부에 심 1이 없다. 빛의 직진성 자체가 심 1의 역할을 한다. 빛은 날 2를 가질 뿐이며 그러므로 빛은 생각보다 크기가 크다.

날은 순수한 정보이므로 자기보다 작은 공간을 통과할 수 있다. 우리는 딱딱한 부분을 지구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지구의 자기장이 미치는 범위가 다 날의 형태로 지구의 일부를 구성한다.

중력이란 무엇인가?

구조론에 따르면 모든 힘은 척력이고 인력은 없다. 물론 인력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력은 척력이 구조의 대칭성에 의해 교착되어 위치에너지를 이룬 것이다. 즉 척력의 갇힘이다.

집게 속에 스프링이 숨어 있다. 스프링이 집게의 두 날을 민다. 분명히 미는 힘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당기는 효과가 나타난다. 집게에 잡혀서 가운데로 모이는 것이다. 지구의 중력도 마찬가지다.

만유인력이 아니라 실제로는 만유척력이 존재하며 만유척력이 구조의 대칭원리에 따라 교착되어 위치에너지를 이루면 겉으로 인력처럼 보인다. 지구의 중력도 공간과 지구의 서로 미는 힘이 작용한 결과다.

고무공이 수조바닥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허공의 인력 때문이 아니라 물의 수압 때문이다. 당긴다는 것은 원래 없다. 미는 힘이 방향이 꺾인 것이다. 수압이 공을 밀어내는 것이다.

손으로 물체를 당기려면 손이 물체 뒤로 가야 한다. 앞에서는 당길 수 없다. 바늘이 실을 당기지만 바늘귀에 꿰어져 있으므로 접점에 작용하는 힘의 방향을 분석해 보면 역시 바늘이 실 뒤에서 미는 것이다.

구조론에서 중력은 평형계의 원리로 설명된다. 지구 뿐 아니라 모든 물체는 내부에 평형계를 가진다. 무게 중심, 힘의 중심, 운동의 중심이 반드시 있으며 그 중심을 기준으로 안정되려고 한다.

평형계의 원리에 따라 안정을 얻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한해서 잉여가 성립되며 그 잉여에 의해 만유는 작동하기 때문이다. 불안정을 지향할 경우 잉여를 잃어서 힘이 없으므로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구에서 멀리 있는 물체는 그만큼 불안정한 것이며 물체가 지구 중심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안정된 상태이다. 불안정한 이유는 계에 밀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어딘가에서 밀고 있다.

평형계는 심 1과 날 2다. 잉여의 법칙에 따라 모든 작용은 밀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만유는 척력을 가지며 서로 민다. 이때 지구의 미는 힘이 물체의 심 1보다 날 2에 작용할 확률이 높다.

날 2가 뒤로 밀리므로 그 반작용에 의해 심 1은 지구쪽으로 밀린다. 어떤 사람이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데 그 팔을 뒤쪽으로 밀면 몸통은 앞쪽으로 쏠린다. 그래서 물체는 지구로 떨어진다. 밀면 밀수록 가까워진다.

모든 힘은 미는 힘이다

자연계에서 물질의 다섯가지 형태 곧 질≫입자≫힘≫운동≫량 중에서 세번째 힘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에너지다. 힘은 팽창에너지다. 곧 척력이다. 밀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작용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력은 없다. 인력은 척력의 교착이며 교착되면 위치에너지가 된다. 우리가 일상적인 표현에서 원자력, 수력 등으로 력(力)자를 붙여 표현하지만 이는 과학의 언어가 아니라 사회의 언어이다.

사회에서 힘은 주로 명사로 쓰이기 때문에 혼선이 일어난다. 힘은 운동으로 나타나며 입자로 보존된다. 그러므로 힘은 동사로 쓰일 때 정확하다. 그러나 사회에서 말하는 힘은 보존되는 힘, 잠재적인 힘이다.

이는 현재로서 힘이 아니라 입자이지만 필요한 때 즉각 힘으로 변환시켜 써먹을 수 있음을 말함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명석한 이해가 없으므로 그냥 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든 힘의 작용은 밀도차가 낳는다. 밀도가 놓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향할 때에 한해서 잉여를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심 1은 밀도가 높고 날 2는 밀도가 낮으므로 힘은 항상 심에서 날로 작용한다.

힘이 센 두 사람이 마주치면 두 사람의 힘이 교착된다. 두 사람은 팔을 휘둘러 서로 상대방의 팔을 잡는다. 이때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권투선수의 클린치와 같다.

권투선수는 척력을 발휘하여 서로 밀어내므로 달라붙는다. 일본의 스모는 상대방을 금 밖으로 밀어내는 시합이다. 밀어내려 하기 때문에 달라붙는다. 물론 힘의 차이가 크면 한쪽이 밀려나지만 대등하면 교착되어 붙어버린다.

심 1이 날 2의 촉수를 내밀어 상대방의 날 2를 제압하므로 교착되어 서로 미는 둘은 달라붙는다. 이것이 구조의 교착이며 기존의 과학이 말하는 인력이다. 서로 미는 힘이 강할수록 서로 접근하여 붙는다.

물질이 달라붙어 입자를 성립시키는 것은 서로 밀기 때문이다.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할 때 처음부터 높은 압력이 걸려있었다. 만유척력에 의해 맹렬하게 서로 밀었기 때문에 달라붙어서 입자를 이루니 별이 되었다.

지구와 달이 서로를 조금만 더 세게 밀면 지구와 달은 붙어버린다. 상자 안에 빈 깡통이 가득차 있다. 억지로 하나를 더 밀어넣으면 두 깡통이 찌그러져서 달라붙어버린다. 밀기 때문에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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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가장 높은 단위의 질서에서 계를 이룬다. 모든 변화는 계 내부의 밀도차에 의해 일어난다. 존재는 심 1과 날 2의 평형계로 이루어지며 심은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고 날은 밀도가 낮다.

잉여의 법칙에 의해 모든 변화는 심에서 날의 한 방향으로 이행한다. 심에서 날로 전개하는 힘이 척력이다. 빅뱅 당시의 에너지 인플레에 의해 만유척력이 작용하여 물질은 탄생하고 우주는 팽창했다.

척력의 갇힘이 교착되어 위치에너지 형태로 보존된 것이 입자다. 입자가 외부작용에 의해 제어되어 계를 해체할 때 스크린 위에 그림자를 남기는 것이 파동이다. 입자와 파동은 합쳐서 완전체의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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