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의 의미,
곧 문명의 디자인이란 관점은
이 그림이 '좋다, 나쁘다' 하는 판단을 떠나서
'이 그림은 이곳에 두고 저 그림은 저곳에 둔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여러 사진들 중에서 이 사진을 맨 위에 배치한 것이다.
거실에 걸 그림과 사랑방에 걸 그림과 로비에 걸 그림은 다르다.
이 그림이 좋다면 그 '좋음'은 따라다니며 나를 귀찮게 할 것이 틀림없다.
튀는 디자인은 금방 주의를 끌지만 곧 식상해진다.
자꾸만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기 때문에 식상해지는 것이다.
그림을 걸어두는 것은 적어도 그림은 내게 잔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그림이 좋다'는 관점은 그림이 내게 잔소리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잔소리하지 말아야 한다.
튀지 말아야 한다.
내 입에 맞는 맛좋은 음식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밥과 반찬과 과일과 술과 커피 사이에서 밸런스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 사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두 인물과 스크린에 비친 영상의 관계가 존재할 뿐
두 인물이 부부싸움을 했다는 것도 아니고 어떤 교훈도 없다.
그림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인물과 스크린에 비친 그림자의 관계 그 자체가 재미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그림 밖으로 확장되어 더 많은 관계의 촉수들과 인연을 맺는다.
칼라들은 서로 호응한다.
그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변두리 도시 빈민의 고단한 삶이 아니라
그저 조명의 명암이 연출하는 다채로운 입체감에 주목할 뿐이다.
그것은 하나의 포즈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포즈다.
왜?
관계맺기 위하여.
이 여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하늘과 푸른색과 나뭇가지와 곡선들의 결합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다.
대칭구조 그 자체를 즐길 뿐이다.
제목이 실패다.
피든 잉크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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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달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