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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289 vote 0 2008.04.18 (21:40:49)

2. 구조론의 역사

구조의 사색

구조주의는 세상의 모든 개별현상을 하나의 통합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일원론적 태도로 부터 출발하고 있다. 세상은 다양하다. 그러나 추적해 보면 한 지점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등산을 하는 사람은 산의 정상에서 모두 만난다.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다가 보면 강의 하구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족보를 따라 거슬러올라가 보면 아담과 이브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결국 하나다.

세상은 크게 통합되어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다. 세상 모든 현상을 하나의 논리체계로 엮어 설명하려는 시도는 예로부터 있어왔다. 세상은 크고 현상은 다양하므로 하나의 주머니에 우겨 담으려면 그 주머니는 매우 커야 한다.

가장 큰 주머니는 무엇일까? 더 큰 거짓말하기 시합과 같다. 먼저 말하면 진다. 상대가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거기에 1을 보태어 더 큰 숫자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숫자는 없다. 가장 큰 거짓말은 없다.

세상 모두를 담을 수 있는 가장 큰 주머니는 점점 커지는 주머니다. 고무풍선처럼 계속 커져야 한다. 계속 커지면서도 본래의 하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큰 나무와도 같고 큰 도시와도 같다.

유전인자와도 같다. 씨앗이 되는 어떤 기초적인 소스가 주어진다. 그 소스로 부터 복제하여 점점 많아진다. 나무처럼 커지고 도시처럼 커진다. 그러면서도 최초의 출발점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연결이 끊어지면 풍선은 터진다. 둘로 쪼개진다. 그 경우 하나여야 한다는 애초의 전제에 어긋난다. 연결되어야 한다. 무엇이 연결하는가? 그것은 도로다. 길이다. 그래서 진리는 예로부터 도(道)로 표현되어 왔다.

또 그것은 나무의 가지다. 추상화 하면 관계다. 그것은 또 링크다. 그것은 링크로 연결된 네트워크다. 도로는 붕괴되지 않고 네트워크는 붕괴되지 않는다. 연결되기 때문에 하나에 의해 전체가 통제되고 그러므로 붕괴되지 않는다.

세상은 붕괴되지 않는다. 세상이 보존되듯이 보존되어야 한다. 그것은 질서다. 질서가 있기 때문에 점점 자라고 점점 커지고 점점 복잡해져도 하나의 단일체를 유지하면서 보존되는 것이다.  

점은 분리된다. 하나가 아니다. 선은 점점 길어질 뿐 커질 수 없다. 면은 넓어질 뿐 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입체라야 한다. 그러나 입체는 딱딱해서 더 커지기 어렵다. 입체처럼 크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것은 밀도다.

본래 하나이고 점점 커지며 네트워크이고 입체면서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질서를 유지하고 스스로 보존되면서 어떤 기초적인 소스로부터 복제되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은 그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구조다.

그 구조는 망이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한 지선을 차지하고 사이트를 개설하여 점포를 열고 독자적인 상행위를 할 수 있는 열린 구조라야 한다. 그것은 시스템이다. 그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것은 패러다임이다.

일찌기 이러한 착상이 있었다. 탈레스의 물 1원론이 그 시작이다. 구조를 사유한 것이다. 물은 무르다. 딱딱하지 않다. 물은 생명을 자라게 한다. 물은 하천으로 강으로 연결된다. 물은 위에 열거한 구조의 모든 성질을 가진다.

탈레스가 물 1원론을 주장했을 때 물의 속성을 말한 것이지 물 자체를 말한 것은 아니다. 물도 있고 돌도 있고 쇠도 있고 불도 있는데 그 중에서 유독 물만 선택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물의 속성을 뽑아서 독립적인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서 나온 착상이 원자론이다. 그러나 원자론은 위에 열거한 많은 속성을 가지지 않는다. 원자는 돌처럼 딱딱하므로 스스로 커질 수 없다. 틀렸다.

구조는 성장한다. 딱딱한 것은 성장할 수 없으므로 무른 개념이 제시되어야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 개념이 구조와 가깝다. 그리이스 철학 특유의 카오스와 코스모스 개념도 그러하다.

도교의 도(道) 개념, 장자의 혼돈개념에도 이러한 구조가 얼마간 사색되어 있다. 중국철학 특유의 음양론과 오행론 역시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음양론의 조화개념은 구조의 성장하는 성질을 반영한다.

오행론의 상생상극개념은 구조의 관계망 개념과 유사하다. 석가의 인연-연기론, ‘제법무아 제행무상’ 개념 그리고 금강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개념도 구조체의 일부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인연의 인(因)은 최초의 소스 곧 구조체가 되고 연(緣)은 그 씨앗의 성장을 의미할 수 있다. 구조의 커지는 성질을 반영한다. 제법무아는 특히 원자론적 관점을 비판하고 있고 색즉시공은 관계망의 관점과 닿아있다.  

근대에 와서는 헤겔의 변증법이 구조론을 닮아있다. 정과 반의 대칭개념은 구조체이론의 평형계 개념을 닮아있다. 다만 헤겔의 접근은 이를 과학적-수학적 관점에서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데카르트의 연역법과 그의 방법적 접근이 거둔 일부 성취는 특히 중요하다. 연역의 제 1원인은 구조체이론이 말하는 그 하나의 통일적 체계에 대한 사색이다. 그는 수학자이지만 드물게 그 수학의 사용에 중독되지 않았다.

인간에게 칼을 쥐어주면 곧 휘두르려 한다. 자(尺)를 주면 곧 그 자를 들고 사물을 재려고 한다. 그 자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수학자는 그 수학이라는 자로 물건을 재려든다. 산술에 빠져버린다.  

데카르트는 수학공식을 이용한 연산에 몰입하지 않고 시선을 그 반대편에 두어 수학의 근원을 더듬었다. 수학의 최초 탄생지점 곧 수학의 자궁을 탐색한 것이다. 구조가 수학의 자궁이다.

구조체에 대한 탐색은 여기서 정지되었다. 데카르트 이후 사색이라는 입장에 선 사람은 인류 중에 없다. 그들은 근대주의가 발명한 눈에 보이는 온갖 신기한 물건들에 홀려서 호기심많은 아이들처럼 줄지어 뒤따라갔다.

근래 서구의 구조주의도 있으나 이름만 구조를 내세우고 있을 뿐 구조의 어떤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카오스이론의 일부 개념이 오히려 구조체의 본질에 가깝다. 카오스이론이 주목한 난류는 곧 밀도의 장(場)이다.

밀도의 장이야 말로 구조체의 자궁이다. 모든 것은 거기서 탄생하고 있다. 장자의 혼돈 개념도 마찬가지다. 장자의 무질서는 질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질서의 자궁에 대한 탐색이다.   

세상에는 질서가 있다. 모두들 질서를 좋아했다. 아이들처럼 그리로 졸졸 따라갔다. 그들이 근대의 모든 성취를 일구었다. 대단하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다. 아름답지가 않다. 고결하지 않다. 존엄하지 않다.

사색했어야 했다. 그 질서의 자궁을 탐색했어야 했다. 질서는 딱딱하다. 생명은 낳음이다. 세상은 낳음의 축적이다. 세상 모든 것은 낳음에 의해 이루어졌다. 무른 것이 낳을 수 있다. 무질서야말로 질서의 자궁이다.

장자는 혼돈에 일곱개의 구멍을 내었더니 혼돈이 죽었다고 했다. 혼돈처럼 커다란 하나의 주머니가 있다. 그것은 세상의 자궁이다. 모든 것을 낳았다. 그 주머니는 점점 커진다. 그러면서도 애초의 하나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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