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성공의 길만 골라 밟으며 한 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내 아이만은 실패의 쓴 맛을 보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삶이라는 치열한 전장에 서 있는 자신의 아이가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하게 해주고 싶을 것이다. ‘더 올라가, 일찍일찍 더더 올라가란 말이야.’
창의력 운운하는 온갖 처방들도 결국 그런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것. 그렇지 않은가? 남들보다 더 유능하도록 최신의 도구를 갖춰주고 싶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독이 잔뜩 든 오만함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한계 안에서 유용한 것,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창의력은 단지 꾀를 잘 내어 똑똑하게 대처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창의력은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그런 것도 아니다. 진정한 창의력이란 삶 자체를 창의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삶이라고 하는 거대한 문제 자체를 대면하기다.
사람의 삶은 그가 걸어간 길, 그가 걸어가면서 바라본 새롭게 드러난 풍경들을 엮어서 만들어낸 그림책과 같다. 삶이라는 그림책에 온통 판에 박힌 풍경들만 담겼다면 그 책은 뒤에 오는 사람들이 새로운 풍경을 탐사하도록 영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창의적인 삶이란 이렇게 커다란 그림을 보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 속에는 더러 가장 어두운 장면이 담길 수도 있고, 다시 돌아보기 싫은 씁쓸한 모습이 담길 수도 있다. 그런 장면들이 삶의 밀도를 높이고, 그 절박함이 창의적인 소리, 창의적인 움직임, 창의적인 일을 만들어낸다.
아이에게 자존감은 삶이라는 먼 항해를 헤쳐나갈 자신의 동력을 갖추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성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규정해놓은 평범이라는 선을 넘을 수 있는 용기, 즉 자존감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이에게 든든한 자기 존중감의 기반을 갖춰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교육목표는 없다.
자존감을 갖는다는 것이 단지 용감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감각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뜻이다. 언제나 선택은 모호한 두 언덕을 뛰어넘는 일이다. 최초의 경험은 심연을 가로지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무도 내딛지 않은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자신감이 바로 창의적 삶의 기반이 된다.
청소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선을 넘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뒤를 따르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이래서는 창의적인 삶을 개척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 탄탄하게 다져진 자존감을 기반 삼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도록 등을 떠밀어주어야 한다.
되도록 일찍 자기 혼자 자신의 삶과 직접 맞서보아야 한다. 언제까지 부모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게 할 수 있겠는가? 언제까지 남들이 낸 길을 따라다니게만 할 텐가? 실패라는 막다른 길에서 더 커다랗게 펄떡이는 삶을 음미하도록 두어야 한다.
삶의 가장 막다른 길에서 비로소 삶의 전모가 눈에 들어온다. 더 이상
실패가 없는 막장에서 삶이라는 거대한 상상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니 부모와 교사들이여,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그 소중한 경험을 빼앗지 말기를 바란다. 그의 삶은 오로지 그의 것이니까.
아무님의 글에서 좀 벗어나는 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까전 있었던 일을 적어 봅니다.
지금 이곳은 계속 굵은 빗줄기가 내립니다. 아들 놈이 초등 2학년인데 깜빡하고 아침에 우산을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어오자 좀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가지고 학교 앞으로 갈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오게 할 것인가로 갈등, 그러다 알아서 오게하자로 마음을 바꾸고 제 일을 하면서 집에서 느긋하게(?)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쿵쾅~쿵쾅~' 어느때나 다름없이 뛰어오는 아들 놈, 좀 미안한 마음에 얼른 문을 열고 아이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분명 비 맞은 생쥐 모습이겠지하며 아들 놈을 살피는데 이게 어인 일, "어, 비 안맞았네, 어떻게 왔어?" 물었더니
신발 주머니로 우산 대신 쓰고 왔답니다.
그 생각이 기특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면서 앞으로 비가 와도 걱정 안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오는 연습도 필요한 거라구요. 우산이 없으니 어떻게 집에 갈 것인가
생각을 할 것이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을 것이고...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에 아이들의 생각이 점점... 커지지 않을까.... ^^
교육현장은 지금 썩을대로 썩어버렸소.
더 이상 썩은 냄새에 코를 들 수가 없는 지경이오.
돈과 권모술수와 요령 가르치는 데 혈안이 되어버렷소.
현장에서 이런 현실을 바꾸어내지 못하는 무력감에 절망하오.
학교 비슷한 곳에, 학생 비슷한 애들을 모아놓고, 선생 비슷한 자들이, 교육 비슷한 짓들을 하고 있오.
참 슬픈 나날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