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6121 vote 0 2008.02.10 (18:17:37)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본의는 소통에 있다. 아기는 말을 배움으로써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어린이는 글자를 배움으로써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식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은 깨달음에 의해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다.

진리와 소통하고, 문명과 소통하고, 역사와 소통하고, 신과 소통하고 자기 자신의 본래와 소통하기다. 표피로 말고 본질과 소통하기다. 부분과 말고 전부와 소통하기다. 더 크고, 더 깊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다.  

소통하려면 잠긴 문을 열어야 한다. 너와 나 사이를 잇는 루트를 개척해야 한다. 서로 통하게 하는 열쇠가 있다. 가치라는 이름의 열쇠다. 철학의 핵심은 소통의 열쇠인 가치관을 얻는 것이다.

세계관이 있고 인생관이 있고 가치관이 있다. 가치관이 열쇠다. 세계와 나 사이를 통하게 하는 열쇠다. 세계관의 바다 위를 항해하는 인생관이라는 배가 가는 항로이자 등대이고 나침반이다.

자연과 진리와 역사와 문명과 우주를 이해함이 세계관이면 나의 정체성과 나의 실존과 나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인생관이다. 세상을 알고, 나를 알고, 세상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가치를 알아야 한다.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가격이 있기 때문이다. 만유가 소통하는 이유는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열쇠가 잠금을 푸는 이유는 요철(凹凸)이 맞기 때문이다. 가치는 밸런스 맞추기다. 천칭저울의 수평을 맞추는 것이다.

문제는 서로 다른 가치들이 충돌한다는 데 있다. 그럴 때 소통은 막힌다. 어떤 가치들이 충돌하는가? 진위, 선악, 미추, 주종, 성속이 충돌한다. 진(眞)과 선(善)이 충돌할 때, 선(善)과 미(美)가 충돌할 때 어느 것을 택하느냐다.

미인은 선하지 않고 선인은 미하지 않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가치는 저울의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으로 모순되는 둘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경중을 가리고 선후를 알려준다.

진,선,미,주,성의 가치들이 있다. 진은 낮고 성은 높은 것이다. 진은 우선되고 성은 나중되는 것이다. 진에 붙잡혀 있으면 유치해지고, 진을 통과하지 않은 채 우회하여 성으로 나아가면 거짓되다. 오류가 일어난다.

가치관의 정립은 이들 경중과 선후 사이에서 모순이 없게 하는 것이다. 경중을 가리지 못하면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선후를 가리지 못하면 허무라는 이름의 함정에 걸려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경중을 아는 고상함과, 선후를 아는 진실함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치라는 이름의 열쇠가 필요하다. 진을 거친, 선, 선을 거친 미, 미를 통과한 주, 주를 통과한 성으로 나아가기다. 유치함과 거짓됨을 동시에 극복하기다.

그것은 깨달음이라는 저울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며, 깨달음은 귀납이 아닌 연역적 사고를 얻는 것이다. 개인의 경험에서 우주를 바라봄이 아니라 거꾸로 우주의 완전성에서 개인이 가진 욕망의 적나라함을 바라봄이다.

배 위에서 항구를 바라봄이 아니라, 하늘에서 배와 항구를 동시에 내려다보는 높은 시선을 얻음이다. 보여지는 것을 보는 것도 아니고 바라보는 것을 보는 것도 아니고 보여지는 대상과, 바라보는 시선을 동시에 꿰뚫어 바라보기다.

그럴 때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몸이 바라보는 욕망과, 마음이 바라보는 꿈과, 머리가 바라보는 진리 사이에서 저울의 밸런스가 맞을 때 가치라는 이름의 열쇠는 작동하고 깨달음의 문은 열린다. 소통은 이루어진다.

인식과 판단과 행동이 충돌하지 않게 된다. 부조리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자신에 도달하게 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지금 이 순간을 완성시키는 방법(실존)으로 우주의 완성에 대한 비전(본질)을 얻는 것이다.

철학은 무엇이 다른가?

농부에 의해 사육되는 돼지는 왜 자신이 먹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만약 돼지가 자신이 왜 사육되고 있는지를 안다면, 자신이 누구를 위하여 먹고 있는지를 안다면 더는 살찌지 못할 것이다.

철학은 과학에 대해서 철학이다. 왜 과학을 해야하는지 과학이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철학이 필요하다. 과학은 농부에 의해 사육되는 돼지와 같아서 과학 스스로는 과학의 목적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세분화된 지식이다.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과(科)가 있다. 철학은 그 과학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그 과학과 인간을 연결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과가 없다. 통이다. 과(科)는 통(通)에 대해 과다. 과가 집이면 통은 집과 집을 잇는 도로망이다. 그러므로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막혀있기 때문에 통해야 한다. 철학해야 한다.

www.drkimz.com.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2514
1961 Re..돌이킬 수 없는 강을 가볍게 건나가는 회창 아다리 2002-09-30 13453
1960 구조론을 공부하자 image 김동렬 2017-05-20 13459
1959 노무현이 미워서 유시민을 때린다 김동렬 2006-01-09 13464
1958 강금실이 나올 때 까지 김동렬 2005-05-01 13469
1957 늘 하는 이야기지만.. 김동렬 2005-12-12 13470
1956 나를 사랑하겠다는 비겁한 결심 image 김동렬 2017-05-15 13471
1955 사물이 먼저냐 사건이 먼저냐? image 4 김동렬 2017-05-29 13472
1954 박근혜, 아웃인가? image 김동렬 2004-07-27 13473
1953 추상적인 사고 image 3 김동렬 2012-01-04 13475
1952 호르몬의 전략과 선택 image 1 김동렬 2017-02-04 13476
1951 가출하세요. image 1 김동렬 2017-05-16 13476
1950 총선의석 예상 image 김동렬 2004-03-21 13477
1949 황우석의 전략적 선택 김동렬 2005-11-25 13477
1948 고이즈미의 성공을 어떻게 볼까? 2005-09-15 13482
1947 권력이란 무엇인가? image 4 김동렬 2017-02-16 13482
1946 빨갱이들은 에미 애비도 없다 image 김동렬 2004-02-03 13485
1945 어떤 왜넘의 콤플렉스 타령 김동렬 2006-08-31 13485
1944 진중권동네 아이들! 김동렬 2002-12-13 13491
1943 손석희와 조영남, 이순신과 원균 김동렬 2005-04-28 13492
1942 권영길은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 김동렬 2002-12-17 13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