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4972 vote 0 2008.02.06 (18:54:36)

소통의 어려움

아기는 언어를 배움으로써 소통이 되고, 소년은 글자를 배움으로써 소통이 되고, 인간은 깨달음에 의해서 진정으로 소통이 된다. 인간은 소통에 의해 한 차원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더 크고 더 넓은 세계와 만나게 된다.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면 소통이 아니다. 하루종일 씨부려도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에너지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소통이 아니다. 변화가 없고 새로움이 없기 때문에 소통이 아니다.

이심전심에 의해 역할분담과 행동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지평 열어젖히기에 성공한다면, 신의 미소를 본다면, 침묵하고 있어도 이미 소통이다. 벙어리는 소통하는데 수다장이는 소통하지 못한다.

소통은 관계맺기다. 아기는 언어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년은 글자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인간은 깨달음에 의해 진리와, 신과, 본래의 자기자신과 관계를 맺는다. 관계의 연(緣)에 인도되어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간다.

깨달음의 본의는 소통에 있다. 십수년간 소통을 말해왔는데 여전히 소통이 안 된다. 꽉 막혀 있다. 관계맺지 못한다. 친구가 되지 못한다. 어우러지지 못한다. 하나가 되지 못한다. 본연에 도달하지 못한다. 갇혀 있다.

###

사흘 굶은 실직자가 실존적 고민을 담아 한 편을 꽁트를 올린다. 거기에 달린 리플이 가관이다. 그들은 글쓴이를 동정하거나 혹은 훈계한다. 그 방법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왜 개입하려고만 들까? 개입하는 즉 낚인 것이다.

가객은 노래하고, 화가는 그려내고, 춤꾼은 춤을 추고, 시인은 한 수 짓고, 스님은 설법하고, 행인은 담화하고, 주모는 한 잔 내오고 이것이 소동파가 선보인 소통의 전범이다. 실로 깨달음의 경지가 이와 다르지 않다.   

어디서든 지금 이 순간의 완성된 경지를 찾아낼 수 있어야 깨달음이다. 저 바위가 자리를 내고, 저 물이 춤을 추고, 저 새가 노래하고, 저 솔이 한수짓고 그 가운데 지극한 완성의 경지를 연출해보이기다.

내가 ‘산은 높다’하고 운을 띄웠으면 마땅히 ‘물은 깊다’하고 댓구를 쳐주어야 한다. 내가 이미 ‘산은 깊다’하고 운을 불렀는데 ‘무슨 산이 높냐? 높이를 재봤냐?’ 이러는 3류 평론가들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

왜 개입하려고만 할까? 왜 끼어들려고 할까? 자기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 정상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인이 아니라서 한수 짓지 못하고, 춤꾼이 아니라서 춤 추지 못하고, 가객이 아니라서 노래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과 맞서는 자기 자신의 포지션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묻어가려 한다. 그러므로 끼어들려고 한다. 개입하려고 한다. 짓지도 못하고, 부르지도 못하고, 추지도 못하면서 쉽게 평론가 되려고 한다. 심사위원 되려고 한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어야 한다. 그리고 낳음이 있어야 한다. 톱포지션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지만 어우러질 수 있다. 비로소 제 몫소리를 낼 수 있다.

사흘 굶은 실직자의 꽁트에는 사흘 굶은 가수의 노래와, 사흘 굶은 화가의 그림과, 사흘 굶은 시인의 한 수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왜 사흘을 굶었을까? 그에게는 자기세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기 세계를 얻을 수 있다면 열흘을 더 굶을 수도 있다. 그는 그 방법으로 자신의 칼날을 벼른 것이다. 시퍼렇게 날이 서도록. 그렇다면 말해야 한다. 당신의 칼날은 무엇인가? 당신의 칼은 날이 무뎌지지 않았는가?

###

인간은 배고파서 죽지 않는다. 외로워서 죽고 허무해서 죽는다. 끈이 떨어져서 죽는다. 세상과의 관계맺기에 실패해서 죽는다. 세상과 맺은 관계가 진정한 관계가 아니어서 죽는다. 존재의 중심부로 쳐들어가지 못해서 죽는다.

이슬은 햇볕에 죽는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해서 죽는다. 풀은 겨울에 죽는다. 뿌리가 얕아서 죽는다. 강은 죽지 않는다. 바다로 돌아가므로 죽지 않는다. 나무는 겨울에 죽지 않는다. 뿌리가 깊어서 죽지 않는다.

인간을 죽이는 것은 얕음이다. 당신은 가족과 이웃과 국가에 소속이 되었으므로 세상과의 관계맺기에 성공했다고 믿지만 환상이다. 당신이 지금 죽어도 세상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그 관계는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은 소리내지 못할 때 죽고, 자동차는 달리지 못할 때 죽고, 길은 끊어질 때 죽고, 불은 타지 못할 때 죽고, 바람은 불지 못할 때 죽고, 물은 흐르지 못할 때 죽고, 인간은 통하지 않을 때 죽는다. 숨 막혀서 죽는다. 기 막혀서 죽는다.

www.drkimz.com.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8711
2004 아줌마옷 수수께끼 image 8 김동렬 2009-06-11 25924
2003 아줌마패션의 문제 image 12 김동렬 2009-06-10 42093
2002 6월 7일 구조론 강의 5 김동렬 2009-06-05 12158
2001 월요일 동영상 해설 김동렬 2009-06-02 16118
2000 동영상 강의 2 김동렬 2009-06-01 15905
1999 인간의 본성 6 김동렬 2009-05-27 15541
1998 인간 노무현의 운명 10 김동렬 2009-05-25 16789
1997 아래 글에 부연하여.. 김동렬 2009-05-20 15879
1996 퇴계와 구조론 11 김동렬 2009-05-18 13673
1995 예술이란 무엇인가? 김동렬 2009-05-16 16748
1994 구조론에서 현대성으로 김동렬 2009-05-13 14119
1993 구조체의 판정 그림 image 김동렬 2009-05-08 15794
1992 구조체의 판정 1 김동렬 2009-05-08 13007
1991 5월 2일 강의주제 김동렬 2009-05-01 15400
1990 28일 강의 요지 image 김동렬 2009-04-28 12855
1989 당신은 좀 깨져야 한다 4 김동렬 2009-04-23 13103
1988 일본식 담장쌓기 image 4 김동렬 2009-04-15 17418
1987 구조론적 사고방식 3 김동렬 2009-04-14 12180
1986 예술의 발전단계 김동렬 2009-04-06 15353
1985 자본주의 길들이기 김동렬 2009-04-05 17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