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의 의미 인간-실존-자아-일상-인생 부조리 개념은 위의 ‘실존’ 개념과 아래의 ‘일상’ 개념의 사이에 있다. 실존은 나의 인생전체를 통찰하는 시야를 획득하는, 내 인생전체를 관통하는 내 존재의 포지션을 찾는 것이며, 일상은 지금 이 순간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포지션이다. 두 개의 포지션이 있는 것이다. 어쩔 것인가? 그리고 실존과 일상 사이에는 자아가 있다. 자아는 실존과 일상 사이에서 교통정리다. 부조리는 ‘자아의 상실’을 다룬다. 자아는 세계 앞에서 나의 포지셔닝이며 그것을 총체적으로 통제하고 평가하는 것은 결국 세계.. 그 세계의 합리성이다. 세계와 나의 관계맺기다. 그러나 실패한다. 내가 살든 죽든, 잘살든 잘죽든 세계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오늘 죽어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그대가 당장 빌딩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려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듯이 잘도 돌아간다. 그러므로 ‘일상’이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완성시켜낼 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내재한 조형적 질서가 찾아지는 것이며, 그것은 ‘나다움’이며, 내가 그것을 얻을 때 세계 앞에서 나의 포지션이 찾아지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다. 결론적으로 부조리 개념은 ‘자아’에 대한 질문이 된다. 자아란 세상의 법칙과 나의 의도가 과연 상관있는가를 다룬다. 그리고 고전적 합리주의 세계관은 그 일치를 전제로 논리를 전개한다. 그 전제가 막연하다는 것이 문제다. 옛사람들이 궁리하기를.. 나란 미미한 존재이고 세상은 대단한 것이므로 저 대단한 세상에는 미미한 존재인 나의 추구하는 바를 담보할 본질적인 어떤 명확한 근거와 토대가 있을 것으로 막연하게 짐작하고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하고 끝까지 추궁해 들어가면.. ‘너 그러다 지옥간다’, ‘천벌을 받는다’, ‘이놈이 한대 맞을래?’ 하고 둘러대면서. 그런데 사실은 그 근원의 근거가 원래 없었다면 어쩔 것인가? 나의 잘못은 가족이 바로잡고, 가족의 잘못은 국가가 바로잡고, 국가의 잘못은 세계가, 세계의 잘못은 자연의 법칙이 바로잡고.. 이런 식으로 끝까지 전개했을 때 최후의 보루는? 누가 근원에서 바로잡고 평가하는가? 고전적 합리주의 세계관은 그것을 바로잡는 그 무언가가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있다는 막연한 전제로 출발한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 기여하는 존재이며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움직일 수 없는 대전제가 제시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할까? 세상이 내게 무슨 비난을 가하더라도 내가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 아닐까? 나 뒤에는 가족이, 가족 뒤에는 국가가, 국가 뒤에는.. 양파껍질 계속 까면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닐까? 일본의 지식인들은 세계시민을 자처한다. 과거사의 굴레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일본인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됨에 있으며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는 이미 세계인(?)이 되어버린 그들과 무관한 것이다. 그러니 사과할 필요도 없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면, ‘촌스럽게 왜이래’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남의 일이 아니다. 명박이 당선되자 한국의 지식인들도 점차 코스모폴리탄이 되어간다. 냉소적으로 변한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창피해진다. 잘못된 것은 명박 탓이지 나의 탓이 아니다. 한국이 잘못했다고? 난 한국과 상관없어. 난 한국인이 아니라 세계인이라구. 에헴! 한국인? 걔네들 원래그래. 남얘기 하듯 한다. 부시가 세계적으로 사고를 친다. 아냐. 난 세계인도 아니야. 난 세계를 초월한 더 높은 차원의 인간이라구. 점점 공허해져 가는 것이다. 합리주의의 궁극적 근거를 발견할 토대를 상실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세계와 상관없는 존재다. 개인의 정체성은 가족에서 찾고 가족의 정체성은 국가에서, 국가의 정체성은 세계에서, 세계의 정체성은 신에게서 찾는다. 점차 범위를 확장하면서 다음 단계로 도피한다. 그러면서 공허해진다. 고전적 합리주의 세계관은 그 비빌언덕이 하여간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가족 위에, 국가 위에, 세계 위에, 자연 위에, 신 위에? 하여간 인간들이 몰라서 그렇지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실패다. 그것은 도피의 방법일 뿐이다. 가족도, 국가도, 세계도, 신도, 진리도, 당신의 오늘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는데 동원되는 그 어떤 것도, 당신이 눈을 감아버리면 끝이다. 그것은 꿈속의 꿈이다. 부디 환상에서 깨어나시라. 무엇인가? 신은, 우주는, 세계는, 한국은, 가족은, 그 어떤 것이든, 합리주의의 근거가 될 진리의 결은 원래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일상성의 의미다. 오늘 이 순간을 완성시켜낼 때 가족도 한국도 세계도 신도 유의미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내 위치에서 포지션을 완성시킬 때, 가족은 가족 그 자체를 완성시키고, 국가는 국가 그 자체를 완성시키고, 세계는 세계 그 자체를 완성시키고, 신은 신 그 자체를 완성시킬 뿐이다. 가족이 그대를 담보하지 않고, 국가가 가족을 담보하지 않고, 세계가 국가를 담보하지 않고, 자연이 세계를 담보하지 않고, 신이 자연을 담보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저 자신을 완성시킨다. 가족은 가족을, 국가는 국가를, 세계는 세계를, 자연은 자연을, 신은 신을 완성시킬 뿐이다. 그 사이에서 보증서주고 담보잡혀주고 확인도장 찍어주고 하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라도. 가족은, 국가는, 세계는, 자연은, 신은 원래 당신에게 관심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가족에, 국가에, 세계에, 자연에, 신에, 그 무언가에 기대려들지 말고 이 순간 바로 거기서 당신의 현재를 완성시켜야 한다. [게시판에서 나그네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 분명 이 길을 가면 나에게도, 너에게도, 그들에게도 유리한데 나는 엉뚱한 곳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 환상입니다. 이 길 따위는 없습니다. 유리하다는 것도 없고 엉뚱한 곳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꿈 속의 꿈이지요. ● 절대 후회하지 않는 길, 엉뚱하지 않은 길을 틀림없이 갈까요?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요? 신에게나 요구할 일인가요? ◎ 후회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엉뚱한 길이니 바른 길이니 하는 따위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꿈 속의 꿈이지요. 님의 상상이 꾸며낸 이야기. ● 내일을 예측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반드시 가야할 길을 갈 수 있습니까? ◎ 반드시 가야할 길 따위는 없습니다. 그 또한 고전적 합리주의 세계관이 꾸며낸 헛소리지요. 내가 눈 감아버리면 세상은 존재하지도 않는데.. 웃기셔.(이런 표현을 받아들이시길) 그런게 어딨어? ●오늘 열심히 걸으니까 내일 정확하게 그곳에 도착하는 것... 그렇습니까? ◎ 왜 열심히 걷죠? 열심히 걷는다고 삶의 시계바늘이 천천히 가주는 것도 아닌데. 내일 정확하게 그곳에 도착해서 무엇하시려고요? 어차피 종착역은 죽음 뿐인데. 그곳이라뇨? 그곳 따위는 없습니다. ● 오늘의 완성된 삶이 내일의 정확한 목적지 도착을 담보합니까? ◎ 정확한 목적지 따위는 원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그네님이 저의 답글 의도를 짐작하실지 자신이 없습니다. 오해하기 딱 좋은 글이지요. 철학적 사유의 기반이 없는.. 그래서 오해할 수준이라면.. 어떻게 잘 설명해도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것이므로 이렇게 씁니다. 불친절하게. 부조리 개념의 의미는 이 세상에 옳은 것도 없고 정의도 없고 옳다 그르다 시비할 것도 원래 없더라는 대전제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전적 합리주의 개념의 완벽한 부정이지요. 그것이 없으면 이야기가 안 됩니다. 말이 안 통하지요. 솔직히.. 말이 통합니까? 옳다/그르다 세상에 그딴게 어딨습니까? 있다고요? ㅎㅎ 웃을 수 밖에요. 님의 질문 자체가 그러한 의심이 없이.. 그 천진만난하고 순진무구한.. 고전적 합리주의 세계관의 긍정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옳고 그르고 그런게 어딨어? 모든건 지구에 산다는 말하는 원숭이들이 꾸며낸 웃기는 수작일 뿐. 그러므로 자기 내부에서 팽팽한 근육의 긴장을 발견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의 내부에서 갈구하는 목소리를 들어내지 못하면 애초에 실패입니다. 나는 단지 나다움에 도달할 뿐입니다. 활이 화살을 날려보낸 이유는 어느 순간 자기 내부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의 완성된 삶이 내일의 정확한 목적지 도착을 담보하는 것이 전혀 아니고 오늘의 완성된 삶에서 내일은 또 내일대로의 완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 가족은 가족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세계는 세계대로, 신은 신대로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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