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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654 vote 0 2007.09.13 (20:13:33)


[정치칼럼 아님, 개인적인 글]

나는 좋은 선생이 못 된다. 남을 가르치는 데는 특히 재주가 없다. 꽉 막혀서 말귀를 못 알아먹는 데는 정말이지 화딱지가 난다. 답답하다. 특히 깨달음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드물지만 통하는 사람도 있다. 낮은 수준이지만 대화가 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체험에 의존한다. 체험이 있으니까 통한다. 체험은 관찰이다. 자기관찰을 하는 사람의 체험이 체험이다.

관찰하지 않는 자의 체험은 아무 것도 아니다. 삭제된 기록이다.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 지구촌 인간들 세계를 쭈욱 지켜본 바로는 대부분 동문서답을 하고 있더라. 질문도 엉터리고 대답도 엉터리인데 묘하게 대화가 되는 거다.

신문, 방송의 인터뷰 따위를 보면 기자들의 질문이 너무 막연하다. 그런데도 질문의 요지를 잘 파악해서 조리있게 대답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통하다 싶다. 나라면 자신없다.

문제는 그 안에 있는 묘한 게임의 규칙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그냥 포괄적인 질문을 던진다. 막연하게 엉터리로 질문한다.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 답변이나 하나 툭 던져주면 질문자는 만족해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그걸 참을 수 없다. 막연하게 ‘신정아사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식의 질문을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긴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지. 뭘 어쩌라구?’ 참 내가 저런 질문을 받는다면 잘 대답할 자신이 없다.

나는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간단한 질문이라 해도 단행본 한권짜리 답변을 하려 든다. 그래서 답답한 것이다. 전부 다 설명하기도 그렇고.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까지 다 설명하려고 하니 답답한 것이다.

대부분의 질문자는 표피의 질문을 던진다. 답변자는 인상비평을 던진다. 그건 제대로 된 질문도 아니고 답변도 아니다. 어떤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의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이 있다.

하나의 질문에는 5 단계의 답변이 있는 것이다. 그 중 하나만 답하면 답이 덜된 거다.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

왜 감기에 걸렸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때문에? 손을 안씻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저항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추운데 젖은 옷을 입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홍콩독감의 유행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보통 이 중에 하나만 답이라고 말하면 만족해 하다. 그러나 그게 과연 답인가?

사과가 왜 떨어지지? 무거우니까 떨어지는 거다. 아 그렇구나. 무겁기 때문이구나. 정답 나왔네. 끝. 이런 식의 문답이 말이 되는가? 왜 무거운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좋은 선생이 못 된다. 막연한 질문, 대충 둘러대는 답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질문을 잘 해야 한다. 정확하게 질문하고 정확하게 대답해야 해. 그런데 질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질문하려 하면 이미 답이 나와버려서 굳이 질문할 필요도 없어진다.

내가 얻은 지식들은 모두 내가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한 결과다. 혼자서 바둑을 둔다면 어떨까? 백은 흑의 작전을 모두 알고 있으니 진행이 안 된다. 질문은 그와 같다. 잘 질문하면 이미 답이 나온 거다.

문제와 답 사이에는 이퀄이 성립하니까. 사실이 그렇다. 문제가 답이다. 1+1은 문제고 2는 답인데 1+1=2다. 문제=답 맞다.

대부분의 질문들은 육하원칙에 맞지 않다. 질문이 덜 만들어져 있다. 나의 경험이 그렇다. 질문을 정확하게 잘 하려고 하다가 보니까 저절로 답이 나왔다. 질문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무언가를 질문하는 것은 결국

구조(내막)를 질문하는 것이고,

의미를 질문하는 것이고,

가치를 질문하는 것이고,

테마(정체성)를 질문하는 것이고,

외부의 상대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걸 알면 다 아는 거지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의 의미가 뭐냐’고 질문하기 전에 ‘의미라는 단어의 의미는 뭐지’를 알아와야 하는 것이다. 의미가 뭔지 알기 전에 이게 무슨 의미지? 하고 질문하는 사람을 나는 용납할 수가 없다.

의미도 모르면서 의미를 질문하다. 이건 아닌 거다. 가치라는 단어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가치를 질문하고 정체성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정체성을 질문하고 이건 아닌 거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짝을 가진다. 상대가 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질문하는 것은 결국 짝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질문은 짝을 묻지 않는다. 그냥 ‘어떻게 생각해요?’ 이건 말이 안 된다. 짝이 뭐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어떤 짝들이 있는가?

모든 존재하는 것은 내부에 구조를 가지고 있고 외부에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 내부구조와 외부환경이 짝이다. 내부에 다섯 가지 단계가 있으면 외부에도 그에 상응하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 이들은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시계 속에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있는 것은 시계의 세계 외부에 시와 분과 초가 있기 때문이다. 시가 없으면 시침도 없는 거다. 항상 이렇듯 대칭된다. 묻고 답하는 과정은 그렇게 하나씩 짝을 지어 가는 거다.

어떤 사물이 있다면

그에 맞서는 짝은?

그 사물 내부의 구조는?

그 사물 외부의 둘러싼 환경은?

그 내외부를 연결함에 있어서의 의미는?

더 심층적으로 맞물려 들어감의 본질에 있어서의 가치는?

그 요소들을 통일하는 전체를 규정함에 따른 정체성에 있어서의 테마는?

그 이전 단계와 그 다음 단계의 진행은?

그 사건의 진행에 따른 시간적 우선순위는?

그 사건의 포착에 따른 공간적 접근경로는?

이걸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이걸 바르게 질문하려면 먼저 존재가 곧 상대방과의 맞섬임을 알아야 하고, 존재가 내부에 구조를 가짐을 알아야 하고, 존재의 내부구조와 외부환경이 정확히 정대칭을 이룸을 알아야 하고, 그 안과 밖을 연결하는 의미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표피와 심층을 쌓아가는 층위의 각 단계들에서 항상 부분이 전체를 결정하는 성질로 나타나는 가치라는 것의 존재를 알아야 하고, 이 모든 것을 통일하는 계라는 것의 존재를 알아야 하고 계 안에서 모든 요소들을 한 줄에 꿰어내는 정체성이라는 혹은 테마라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걸 다 알면 답은 이미 나와버렸기 때문에 더 궁금할 것도 없다. 도대체 무엇을 질문하는가? 당신은 그 상대와, 내부구조와, 외부환경과, 의미와, 가치와, 테마와, 결과와, 우선순위와, 접근경로 중 하나를 질문하는 거다. 그러나 질문자들 중에서 자신이 이 중에서 무엇을 질문하고 있는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또 위 구조 환경 가치 의미 정체성 우선순위 접근경로 이런 개념들의 정확한 의미와 포지션을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질문이 엉터리고 질문이 막연하니 답도 막연한데 대부분 이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잡아 하나만 적당히 말해주면 만족하는 거다.

왜 사과가 떨어지지? 무거우니까 떨어지잖어. 아 그렇구나 하고 만족해서 만유인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집에 가는 거다.

당신이라면 위 상대와, 내부구조와, 외부환경과, 의미와, 가치와, 테마와, 결과와, 우선순위와, 접근경로 중에서 무엇이 궁금한가? 제발 이것을 콕 찍어서 말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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