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데일리 서프에 기고한 개인적인 글입니다


최수종과 주영훈보다 나쁜 것

거짓말하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다

어머니의 사진을 들고 화가를 찾아간 효자가 있었다. 초상화를 주문받은 화가는 애꾸눈 어머니의 없는 한쪽 눈동자도 마저 그려 넣었다. 그림을 넘겨받은 효자는 화가 앞에서 초상화를 찢어버렸다. 진짜 내 어머니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효자는 화가 앞에서 충고하여 말했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한쪽 눈이 없는 어머니가 내가 사랑하는 진짜 나의 어머니라고.


어렸을 때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다. 오히려 효자인 아들이 어머니의 외모에 집착한 것은 아닐까? 어머니가 태어날 때부터 애꾸눈으로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에게도 빛나는 한 순간은 있었을 테고 그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억하여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여인은 화장을 하고 남자는 넥타이를 맨다. 장애인은 의족을 단다. 한쪽 눈이 없는 사람은 의안을 쓴다. 정치인은 돈세탁을 하고 연예인은 학적세탁을 한다. 모두가 잘못된 것일까? 잘못은 고쳐야 한다. 정치인의 돈세탁은 잘못이다. 연예인의 학력위조도 잘못이다. 그러나 여인의 화장은 잘못이 아니다. 장애인의 의족도 잘못이 아니고 애꾸눈의 의안도 잘못이 아니다. 가장 잘못된 것은 타인의 학력과 나이와 출신지를 꼬치꼬치 캐묻는 사회다.


왜 여자 연예인의 나이에 관심을 갖지? 알고 보니 여자 연예인의 나이가 사실과 달랐다는 사실에 왜 분개하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아니면 실제보다 젊은 여인으로 착각하고 엉뚱한 상상을 했기 때문에? 왜 취업희망자 이력서의 본적란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왜 본적란이 있어야 하지? 왜 그것이 필요하지? 왜 호주제가 있어야 하지? 이력서에 본적란을 없애듯이 호주제를 철폐하듯이 바뀌어야 한다. 나이를 묻지 말아야 한다. 학력을 묻지 말아야 한다.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목을 믿어야 한다.


거짓말하게 만드는 사회는 아름답지 않다. 우리가 편리를 추구할수록 사회는 불행해져 간다. 불편해야 한다. 종이에 씌어진 기록을 믿지 말고 불편해도 스스로 안목을 길러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꿰뚫어보아야 한다. 심미안이 있어야 한다. 시스템에 평가를 맡기지 말고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판단해야 한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호불호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왜 우리가 미술을 배우고 음악을 듣고 박물관을 찾는가?


20여 년 전의 일이다. 같이 일하던 사람의 한쪽 눈이 의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이 바뀐다면 내가 패배한 거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 사람의 출신지를 알고 그 사람의 실제 나이를 알고 그 사람의 실제 학력을 알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이 바뀐다면 내가 진거다. 나는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일체의 고정관념과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안목만을 믿기로 했다.


사진가가 담아온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현장에 찾아간 일이 있다. 사진과 달리 그다지 아름답지가 않았다. 사진가가 나를 속인 것일까? 아니다. 그 아름다운 장면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다섯 시 30분 양수리에서 볼 수 있다. 사진가는 그 새벽에 거기서 기다린 것이다. 몇날 며칠을. 게으른 내가 나를 속인 것이다. 그 사진가가 그 물 위에 뜬 쓰레기를 피하여 촬영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진짜 아름다운 것은 새벽 다섯 시에 나와서 그 물안개 속에서 그 장관을 기다리는 사람의 열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神)은, 자연은, 태양과 바람과 호수와 안개는 그 새벽에 그 한 사람을 위하여 그 장관을 연출한 것이다.


여인의 화장을 비난해야 할까?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해야 할까? 이 문제에 정답이 있어서는 안 될 터이다. 진짜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 학력위조의 거짓은 물론 비판되어야 하지만 그 이전에 거짓말 하게 만드는 사회가 먼저 비판되어야 한다. 수고스럽더라도 안목을 길러 스스로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미추를 가려보는 눈, 좋은 사람 가려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그것을 타인에게 위임하고 시스템에 의존하며 편리를 구하는 사회는 아름답지 않다. 유명인들의 실제 학력을 알고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판단이 바뀐다면 당신이 패배한 거다. 나이와 출신지와 본적과 학력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 것을 캐묻는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815 내가 유시민을 지지하는 이유 김동렬 2007-09-15 16328
1814 무리한 단일화 압박 옳지 않다. 김동렬 2007-09-14 15886
1813 질문과 답변 김동렬 2007-09-13 13654
1812 철학이란 무엇인가? 김동렬 2007-09-13 11788
1811 노무현 대통령은 왜? 김동렬 2007-09-13 17214
1810 학문의 역사를 내면서 김동렬 2007-09-11 17217
1809 유시민과 멧돼지가 골프를 치면 김동렬 2007-09-05 16013
1808 민노당이 사는 법 김동렬 2007-09-04 14947
1807 알지 못하는 이유는 김동렬 2007-09-04 16849
1806 기독교의 인과응보 김동렬 2007-08-31 16993
1805 마지막 말 김동렬 2007-08-30 17649
1804 전여옥 때문에 김동렬 2007-08-29 16098
1803 김석수, 류가미들의 폭력 김동렬 2007-08-28 17329
1802 그래. 논객자격을 위조했다. 어쩌라고. 김동렬 2007-08-26 17318
1801 강금실이 나와야 이야기가 된다 김동렬 2007-08-23 13743
» 최수종과 주영훈보다 나쁜 것 김동렬 2007-08-22 16756
1799 현대성 - 핵심요약 김동렬 2007-08-12 15656
1798 디워, 충무로를 타격하라 김동렬 2007-08-08 14673
1797 디워 봤다.. 이송희일 때문에 김동렬 2007-08-05 11262
1796 심형래와 스필버그 김동렬 2007-08-02 11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