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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085 vote 0 2007.07.30 (17:49:25)

[개인적인 글입니다]

옛날에는 숫자 0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0을 발견하고 이를 주장한다. 새로운 수학적 발견이 학계에 받아들여지는가는 논쟁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논쟁을 통해서는 누구도 숫자 0의 의미를 바르게 설명할 수 없다.

효용에 의해 결정된다. 허수가 대표적인 예다. 허수가 과연 숫자인가를 논쟁으로 결론내리기는 어렵다. 문제는 현장에서 실제로 허수가 널리 쓰이고 있으며 많은 공학적 문제들이 허수에 의해 해결된다는 점이다.

직관을 주장함도 이와 같다. 주관과 객관만으로 충분하다면 새로 직관을 추가할 이유는 없다. 현장에서는 실제로 직관에 의해 판단되고 있으며 직관의 판단이 객관이나 주관의 판단보다 옳은 경우가 많다.

평가의 주체가 누구인가다. 예술의 진보는 평가의 주체를 새롭게 바꿔나가는 것이다. 객관은 누구나 평가할 수 있다. 사지선다형 문제는 정답을 일러주기만 하면 어린이도 시험지를 채점할 수 있다.

주관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덜 아는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 이미 경험한 사람이 미처 경험하지 않은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 전체를 아는 사람이 부분을 아는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

직관은 모르는 사람도 평가할 수 있다. 조금 아는 사람이 더 많이 아는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 관객이 평가하고 독자가 평가하고 유권자가 평가하고 네티즌이 평가한다. 민주주의는 직관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네이버 영화정보 네티즌 평점을 참고할 수 있다. 네티즌의 평가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즉자적으로 나타난다. 진지하게 점수를 주는 네티즌은 없다시피 하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10점 아니면 0점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네티즌 40자평은 일방적 비난이거나 아니면 맹목적 찬사로 흐른다. 네티즌 평점란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네티즌 평점의 신뢰지수를 낮게 볼 것이다. 너무나 무질서해 보이기 때문이다.

군중심리에 의한 쏠림이 발생하여 영화의 질과 상관없이 엉뚱한 평점이 나올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가? 평론가들의 무의미한 별점 셋 보다는 네티즌 평점이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네티즌 개개인은 아무 생각없이 10점 아니면 0점을 주지만 전체평균을 내면 비교적 정확한 점수가 나온다. 여기서 유의미한 대목은 네티즌들의 점수주기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확하다는 역설이다.

장고 끝에 악수 두는 법이다. 직관은 생각하지 않고 1초만에 평가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확하다. 요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본능의 명령이 아니라 잡념이 끼어들어 바른 평가를 방해한다는데 있다.

작품성과 흥행성, 예술성 등 영화를 평가하는 여러 기준들에서 어느 한 부분이 특출나지만 다른 부분이 부족할 경우 가중치를 어떻게 줄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의 실패는 대부분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네티즌의 평점이 극단적인 이유는 영화의 가치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들 중 하나에만 반응하는 경향 때문이다. 어떤 네티즌은 작품성만 판단하고 어떤 네티즌은 주제의식만 판단하고 어떤 네티즌은 대중성만 판단한다.

네티즌은 자신의 관심분야만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관적 평가방법이 도리어 더 정확할 수 있다. 예술작품은 장르의 특성상 도드라진 어느 하나가 전체를 대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평가한다면 맛, 양, 가격, 위생, 분위기 등의 평가기준이 있을 수 있다. 그 식당에 데이트를 하러 온 젊은 연인커플도 있고 점심을 먹으러 온 셀러리맨도 있고 맛을 추구하는 미식가도 있다.

미식가는 맛만 따지고 셀러리맨은 가격만 따지고 연인커플은 분위기만 따지는게 맞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왜인가? 젊은 연인 커플을 위한 식당은 교외에 있고 셀러리맨을 위한 식당은 빌딩가에 있기 때문이다.

먹자골목은 맛만 좋으면 되고 터미널 앞 식당은 양만 많이 주면 된다. 코미디 영화는 웃기기만 하면 되고 멜로 영화는 울리기만 하면 된다. 관객들은 사전에 장르의 특성을 알고 극장을 찾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를 뒤섞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능이 물리적으로 반응하는 단 한가지 분야만 평가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이다. 본능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본능보다 정확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 이것이 동양정신의 본령이며 추사가 말하는 서권기 문자향이이고 인상주의 회화의 본질이다. 네티즌의 직관적 판단이 그 전체를 대표하기 위해 발췌된 부분과 즉자적으로 반응한다.

네티즌이 옳다. 다수의 직관이 옳다. 눈팅의 본능적 판단이 논객의 이성적 판단을 이긴다. 물론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다. 관객의 직관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분야가 아직 태동기에 있다는 증거다.

서구의 인상주의도 처음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현대 음악이나 회화는 갈수록 난해해지고 있다. 새롭게 태동하려는 몸부림이다. 관객이 김기덕의 영화를 오해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그 장르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프라이즈 노짱방의 점수제도 관객의 직관에 의한 평가다. 직관적 평가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각자가 자신의 본능이 반응하는 부분만 극단화시킬 때 오히려 더 정확해진다는 직관의 원리는 역설적으로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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