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로 쓰기엔 글이 너무 길어졌고
게시판 성격에 따라 글을 이쪽으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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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입니다.
‘나는 이게 좋아’ 하는 ‘나’를 버리고
그 이상의 단계로 올라서야 진짜 승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인상파 화가들도 그 ‘나’를 버리고 그룹을 형성하여 독립적인 전시회를 열고
에밀 졸라를 비롯하여 -근육이 제법 굵은- 철학자들의 지지를 얻어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변방에서 류를 형성하고 그 류를 키워 세력의 힘으로 주류를 친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 꽃피운 선비문화도 추사가 제법 중국 등지를 가보고
청나라 지식계의 우두머리 옹방강과 대화하고 얻은 지식으로 변화의 흐름을 읽어서
적절히 평론하고 격려해주어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류의 존재를 긍정하고 류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클래식이 지겹다면 백년 전에도 역시 지겨웠을 것입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도 10년 간 감옥같은 곳에서 인생을 빼앗겼다고 하던데
베토벤이나 모짜르트라 해서 그것이 지겹지 않았을 리는 없지요.
모짜르트도 욕심많은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고사리손으로 울며 피아노를 쳤다는 말이 있더군요.
그들은 그곳이 좋아서 ‘나는 이게 좋아’하고 제 발로 걸어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좋다/싫다’를 떠나서 보아야 하는 그 이상의 레벨이 있다고 봅니다.
‘나는 이게 좋아’로 시작할 수는 있어도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좋아서 하는게 아니라 이미 첫 단추를 꿰었기 때문에 필연의 힘에 따라 계속 가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역사의 본질은 변방에서 중심을 치는 것입니다.
변방에 안주해도 안 되고 중심의 존재와 그 역할을 부정해도 안 됩니다.
주류가 비판되는 것은 주류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의 해석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주류-중심-맥락-흐름-진보라는 본질이 거짓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예술 역시 과학의 일부라는 본질은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의 동대문패션이 젊은 20대 IT기업 종사자의 자부심과 닿아있다고 봅니다.
70년대 80년대라면 재벌회사에 근무하는 30대 비서나 사무원의 자존심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90년대는 성공한 캐리어우먼이나 중산층 여피족의 과시욕구가 반영되어 있었을테고.
패션이 그냥 대책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명 피아니스트의 의상이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표현된 것처럼 유력한 소수 여성이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명백히 사회의 갈등-대립-세력교체 이런 것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고급브랜드로 유명한 이탈리아 유명 디자이너 아무개는
이차대전을 거치면서 역사의 전면에 부각된 대중들의 공세에 대한
상류층의 심리적 대반격이라는 설이 있는 식이지요.
‘니들 평민들이 갑자기 돈 벌어서 행세한다고 하나
수백년간 귀족핏줄을 이으며 다져온 우리의 안목을 당할 수는 없지.' 이런거
이런 맥락과 흐름을 읽지 않고 그냥 ‘나는 이게 좋아. 왜? 그냥 좋으니까’로는 중심을 치지 못합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유행이 등장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고가명품브랜드로 무장한 상류층과 저가청바지로 무장한 대중의 대결
자유로운 옷차림의 20대 IT기업 종사자와 엄격한 정장을 갖춘 30대 이상 사무원의 대결
TV를 주름잡는 성공한 극소수 캐리어우먼과 공무원, 교사 등 30대 여성전문직 종사자의 대결
등 무수한 대결선상에서 밀고 당기어 호흡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취리히에 있다는 구글 사무실입니다.
분위기가 귀족티가 없고 대중적이며 상당히 유아틱한 측면이 있습니다.
명백히 90년대를 주름잡던 캐리어우먼의 자기과시 문화에 대한 반격심리가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소수의 성공한 여성들이 주도했고 그들은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묘사된 그대로
슈퍼우먼이라는 상징표식을 온몸 곳곳에 부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대 IT문화는 슈퍼우먼 부담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이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은 고급두뇌겠지만 자신의 창의와 재능을 드러내면 그 뿐
아랫사람을 지휘하며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슈퍼우먼은 아니지요.
이런 트렌드를 창안하고 발견하고 이끌어가지 못하는 예술은
20세기 고리타분한 영국미술계가 자유분방한 미국미술계를 비웃고
또 비웃고 계속 비웃고 손가락질 하며 웃다가 끝나버린 비극을 당합니다.
예술은 과학이며 과학은 세상을 바꿉니다.
빗살무늬로 시작해도 빗살무늬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생산력이라는 본질에서 멀어지면 안 됩니다.
최근에 부각된 B급문화-민화에 대한 관심은 명백히
이차대전후 대중의 정서에 반격을 가한 고가브랜드 중심의 고급문화풍조에 대한
저항적 의미에서의 전선을 이루고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유아취향이 아니고
인터넷 문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10대 소년으로 뒤바뀐 바
문명단위의 거대한 세력교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질을 읽고 십대의 뇌 속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밀리고 맙니다.
마치 내게 들려주는 글 같습니다.
새겨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