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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180 vote 0 2007.03.14 (17:31:05)

존재란 무엇인가?
'산은 정말 그곳에 있었을까?'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한 ‘조지 말로리’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실종된다. 그의 시신은 1999년 정상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한 그의 말은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잘못된 어법이다. 그 불완전한 말은 선문답이 되었고 전설이 되었고 신화가 되었고 무수히 인용되었고 널리 회자되었다.

사실 그는.. 단지 기자들의 수 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질문에 넌더리가 났을 뿐이다.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짜증을 부린다고 한 말이 ‘Because It is there’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이 말은 곧 명언이 되었다. 그러나 그 명언은 조지 말로리가 혼자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다투어 보도한 기자들과.. 그 말이 멋잇다고 써먹은 글쟁이들과.. 그 말을 인용한 선생님들과.. 그 말에 감명을 받은 독자들 모두의 합작품이다.

사람들은 왜 이 말-그러나 사실은 말이 안되는 말-을 좋아하는 것일까? 어쨌든 말로리는 이 한마디로 귀찮게 따라붙는 기자들을 침묵시키기에 성공했다.

선문답과 같다.. 선문답은 불완전한 말이다. 사실은 도무지 말이 안되는 말이다. 그것은 동양화 그림의 여백과도 같다.

스님이 소스를 제공하면 그 나머지 빈 공간은 독자들이 채워보라는 식. 귀찮게 하는 꼬마에게 퍼즐문제를 내주는 방법으로 잠시 떼어놓기.

선문답은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성이 뇌간지럼증을 유발한다. 그 불완전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므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완전하게 만들고 싶어진다.

확실히 말로리의 이 한 마디 말은 인간으로 하여금 결핍을 자각하게 하고 완전을 욕망하게 한다. 결핍은 무엇이고 완전은 또한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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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대답했지만 과연 산은 그곳에 있었을까? 아니 그 이전에 말로리라는 존재는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산이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혹은 등반가 말로리라는 존재는 산이 있기만 하면 ‘당연히’ 오르는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 기자들은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그 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었다. 산이 나를 초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산을 필요로 했다.

내가 먼저 산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단지 산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내가 산을 오르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조지 말로리다. 그런데 과연 그 조지 말로리는 있는가? 존재가 있는가? 무시못할 만큼 있는가?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는가?

북쪽으로 계속 가면 북극점이 있을까? 얼음 위에 커다란 점이 콱 찍혀 있나? 천만에. 북극에 점(點) 따위는 찍혀있지 않다.  

단지 얼음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북극해가 있을 뿐이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점의 위치는 계속 변한다. 북극의 얼음은 바다 위를 떠돌고 있다.

여기가 북극점이다 하고 확정할 수 있는 지점은 없다. 단지 지금 이 순간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바로 그곳이 북극점일 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을 기억할 일이다. 말로리가 에베레스트를 밟았기 때문에 에베레스트는 거기 있었다. 말로리가 없으면 에베레스트도 존재가 없다.

존재란 곧 소통이다. 소통의 밀도가 높아지는 만큼 존재의 밀도 역시 상승한다. 모두가 소통을 거부한다면, 모두가 무시한다면 그 존재는 퇴색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 소통해야 한다. 소통한다는 것은 곧 완전해 진다는 것이다. 그 어떤 존재이든 소통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무엇인가?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오르므로 해서 산이 그곳에 온전하게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산이 완전해지는 것이다.

말로리가 구태여 그 산에 올랐기 때문에 에베레스트는 완전해졌다. 희미했던 존재가 뚜렷한 존재로 거듭났다. 최고의 산이 되었다. 위대한 산이 되었다.

19세기 중만 에베레스트가 최고의 봉우리로 재발견되기 이전 까지 그 존재는 희미한 것이었다. 불완전했다. 존재했으나 그 존재는 미약했다.

아무도 그 산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 산에 오르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산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 산의 존재는 그만 불완전해지고 만다.

바래어지고 만다. 존재의 밀도는 형편없이 낮아지고 만다. 존재한다고 해서 곧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밀도는 소통의 밀도에 비례한다.

꽉 채워진 존재, 충일한 존재, 충만한 존재여야 한다. 비로소 완전해져야 한다. 존재감이 그득하게 느껴져야 한다.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미완성이다. 초모랑마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사람이 그 산과 온전히 소통할 때 그 산은 완성된다. 충만해진다. 여백이 채워진다.

그러므로 나는 미완성이다. 그러므로 너는 미완성이다. 서로의 존재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너와 내가 온전히 소통할 때 서로의 존재는 밀도높게 완성된다.

‘왜 산에 오르는가?’ ‘그 산과 소통하여 그 산을 완성시키기 위하여서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끌림이 있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며 미완성이기 때문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꿈을 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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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리는 짜증을 부렸다. 늘 반복되는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들. 기자들이 원하는 모범답안은 이런 것이었다.

‘인류의 위대한 진보를 위해 저는 저 산의 정상에 오르려는 것입니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오겠습니다.’
‘세계 최고의 등반가로 인정받기 위해 저 산을 정복하겠습니다.’

그러나 바보다. 이 말은 진짜가 아니다. 이 말은 말로리 자신의 대답이 아니다. 기자들이 원하는 데로 립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말로리가 어떤 답변을 해도 기자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독자들이 원하는 답변이지 기자들 자신이 원하는 답변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기자들은 또다른 욕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말로리의 말을 그대로 지면에 옮기는 것은 단순한 노가다 작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리는 기자들이 원하는대로 대답해 주었지만 그 대답은 진정 기자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서로의 욕망이 엇갈린다. 그러므로 소통은 실패다.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답변을 해 줄 때 그 답변은 진정 당신의 영혼이 원하는 답변이 아니다. 이 이치를 알아야 한다.

‘그곳에 있으니까’.. 미완성된 답변이다. 말로리는 기자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그 숙제 마치느라 바빠진 기자들은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으니까’.. 기자들은 이 말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다양하게 해석했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기자는 ‘작가’로 승격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인생에서 가치있는 일은 정답을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숙제를 내주는 것이다. 우리가 꿈 꾸는 개혁의 장정도 이와 같다.

가장 좋은 베풀음은 이상을, 비전을, 꿈을, 더 높은 가치를 일러주는 것이다. 우리의 개혁이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려주면 사람들은 신이 나서 일제히 그리로 달려간다.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그 빈 여백을 채우기 위하여. 공동의 작업에 기여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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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랑할 때 완성된다. 사랑하고 난 다음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과정 그 자체로서 완성된다. 그 완성은 오직 추억으로만 증명된다.

만약 당신이 그 사실을 잊었다면 미완성이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추억하고 있다면 완성된 것이다. 왜냐하면 추억은 또다른 추억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렬한 추억이.. 그 추억을 닮아있는 또다른 추억들을 무수히 낳는다. 그렇게 낳아내는 것이 완성이다. 모든 완성된 것은 낳음이 있다.

낳지 않으면, 생산하지 못하면 미완성이다. 그대 낳기에 성공하고 있는가? 창조적인 그 무언가를.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추억과 닮아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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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큰 정치가 필요한가? 그것은 설계도를 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설계도 위에 집을 짓는 일은 대중의 몫이고 유권자의 몫이고 국민의 몫이다.

그 방법으로 소통한다. 100프로 채워주지 않고 커다란 여백을 남겨두기. 심중에 파문을 일으키는 커다란 의혹 하나 던져주기. 뇌간지럼증 유발하기.

왜 민생쇼는 헛짓거리인가? 그것은 말로리가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에베레스트에 오릅니다.’하고 기자들이 원하는 답변을 해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민생쇼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것을 국민들은 원하지 않는다. 기자가 원하는 답변을 기자들이 진정 원하지 않았듯이.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늘어놓는다. 유권자들은 그 요구를 착실히 들어주는 마음씨 좋은 정치인의 빰을 때린다.

국민들은 우리당에 이런저런 요구를 늘어놓는다. 유권자들은 국민들의 요구대로 행동하는 탈당파와 김근태, 정동영의 귀싸대기를 때린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런 저런 요구를 늘어놓는다. 그 요구를 다 들어주는 착한 아버지는 결코 자식들에게 존경받지 못한다.

아들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 미지의 무언가를 찾아주기 원하는 것이다. 민생 좋아하네. 국민이 진짜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인간은 얄궂은 존재다. 어떤 답변을 원하지만 정작 그 인간들이 원하는 답변을 해주면 모두 싫어한다. 집요하게 달라붙어 귀찮은 질문을 던져댄다.

그러므로 차라리 반대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들이 진정 원하는게 뭐야? 고작 그 정도를 원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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