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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168 vote 0 2007.02.20 (23:16:14)

최장집의 호통개그

여말선초의 두 개혁가.. 신돈과 조광조..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조광조는 사후 50년 만에 복권되었다. 선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반면 신돈은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다.

조광조는 죽고도 부활하였는데 신돈은 왜 역사적으로 아웃되었나? 왜 삼국지연의의 유비는 한 것이 없는데도 민중들의 우상으로 추켜세워지고 조조는 업적이 다양한데도 간웅으로 폄훼되었나?

전한시대를 끝막고 최초로 선양혁명을 이룩한 개혁군주 왕망은 왜 역사가들에 의해 팽 되었나? 왜 알렉산더는 그 이전의 페르시아 제왕들보다 더 적은 면적의 땅을 정복하고도 최초의 세계정복자로 떠받들어졌는가?

이런 내용은 오마이뉴스들에 단골로 나온다. 조광조의 제자들은 기록했다. 신돈에게는 기록할 제자가 없었다. 삼국지연의의 조조는 역사기록자들인 유림들에게 밉보였다. 신(新)을 건국한 왕망도 마찬가지.

알렉산더가 영웅인 이유는 단순하다. 르네상스시대에 아랍의 도서관에서 베니스나 피렌체로 옮겨진 많은 기록물들이 알렉산더에 대한 찬양으로 첫페이지를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피루스 두루마리 문서들이 ‘알렉산더 대왕께 영광있을진저’ 하는 식으로 문장의 첫머리를 시작한다. 왜? 알렉산더 시대에 최초로 국제어가 탄생했다. 그 언어는 외국인들에게 보급하기 쉽게 문법이 간소화된 그리이스어다.

오늘날 영어가 세계적으로 먹어주듯이.. 당시는 그리이스어가 국제어로 통용되었으며.. 그 국제어에 의해 헬레니즘 양식이 전파되었으며 이러한 양식화 과정은 알렉산더에 의해 촉발되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나폴레옹법전을 만들어놓고 큰소리 좀 쳤듯이 알렉산더가 한 시대의 문화의 표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바울과 그의 무리들이 복음서를 남겼듯이 알렉산더의 추종자들이 헬레니즘 양식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바이블을 쓴 것..

이런 류의 이야기는 최근에 많이 나왔으니 대략 이쯤 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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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의 호통개그.. 두 번 비판해 줄 가치가 없는 위인이지만 대통령까지 나선 김에 한 마디를 더 보태야겠다.

유시민의 전언에 의하면 대통령은 지식인다운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참여 지식인 노무현과 방관 지식인 최장집-지식인입네 하며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괜찮다고 떠벌이고 다니는 자 있다-의 대결이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역사가 증언한다. 역사의 승부는 누가 기록하는가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론이 난다. 누가 역사를 기록하는가? 그 역사의 현장을 지킨 자다. 현장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샌님이 골방에서 궁시렁거려 봤자다.

기록하는 자가 승리한다. 현장을 목격한 자가 기록한다. 그 현장에 발을 담근 자가 목격한다. 그 더러운 정치의 진흙탕에 뛰어들어 뒹구르며 적들과 피튀기는 싸움을 벌인 자가 기록한다.

언제나 그래왔다. 이는 역사의 보편적인 법칙이다. 나간 사람 몫은 있어도 자는 사람 몫은 없다고 했다. 자다가 깨어난 자들이 뒤에서 얼쩡거리며 어깨너머 훈수나 두어봤자 그따위는 안쳐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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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는 제자를 길러냈다. 알렉산더는 그리이스어를 보급했다. 그들은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문명의 시스템을 바꾸었다. 그 시대의 표준이 될 미학적 양식을 완성했다. 그 미학적 양식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조광조와 그의 제자들은 조선왕조 500년의 선비문화라는 미학적 표준을 보급했고 알렉산더는 헬레니즘 문화라는 미학적 양식을 시대의 표준으로 보급했다. 결국 표준을 지배하고 양식을 창안하는 자가 전부를 지배한다.

선비들이 입는 옷, 쓰는 갓, 예절과 풍류, 노는 꼬라지, 하고 다니는 짓거리, 취미와 기호들.. 조광조와 그의 무리들이 고안하고 전파하고 규정한 거다. 이게 본질. 지금 우리가 인터넷문화라는 표준을 지배하려 하듯이.

이에 비하면 정치게임은 허망한 거다. 결국은 문화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문화는 이겨도 지배하고 져도 지배한다. 성공해도 지배하고 실패해도 지배한다. 살아도 지배하고 죽어도 지배한다. 문화가 최종적인 해결사다.

누가 21세기라는 한 시대의 설계도 최종본을 그려내는가? 누가 시스템을 정비하고 소통의 표준을 도입하며 패러다임을 교체하고 미학적 양식을 완성하는가? 정치는 짧고 문화는 길다.

조광조는 초야에 묻힌 선비가 아니었다. 그는 비록 변방에서 왔지만 중심을 쳤다. 카이사르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한 시도 물러나있지 않았다. 그는 죽었지만 로마는 카이사르의 설계도대로 움직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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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냉전이 해소되자 남에서 IMF가 터졌고 북에서 수백만이 굶주렸다. 남에서 터진 IMF와 북에서 일어난 ‘고난의 행군시기’는 냉전체제의 붕괴라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빌어먹을 용병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을 막아주는 댓가로 중소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챙겨왔다. 북은 러시아와 중국을 위해 용병노릇한 댓가로 6~70년대의 전성기를 구가해온 것이다.

남한도 미국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 중국과 소련의 팽창을 휴전선에서 저지시켜 주는 댓가로. 그러나 클린턴 이후 데탕트무드로 인해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특혜는 철폐되었다. 용병장사 수익이 끊긴 셈이다.

오늘날 아프간에서 그리고 이라크에서 민중들이 죽어가는 이유 또한 냉전해소의 후폭풍이다. 중소를 견제할 이유가 없어진 미국이 남는 군사력으로 만만한 애들을 손봐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한반도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이 이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다. 한반도가 냉전의 최일선이 되었던 것이다.

그 냉전에서 발 빼지 못한 죄로 수백만이 죽어간 것이 625다.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본질은 한국이 이차대전에 무임승차했다는 거다. 한국은 이차대전의 승전국도 패전국도 아니다.

임시정부가 싸웠지만 승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이 나쁜놈들이지만 미국입장에서 보면 유황도에서 6천명의 미군병사를 사살한 일본군 속에는 조선인 병사도 적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을 해방하려 온 것이 아니라 접수하러 온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조선은 일본의 일부고 그 일본의 일부를 일본으로부터 빼앗으러 온 것이다. 러시아는 북을 전리품으로 챙겼고 미국은 남을 챙겼다.

이러한 본질을 냉정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이나 러시아가 우리를 도와주러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되는냥 착각하지 말라.

왜 IMF가 터졌는가?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시장구조가 세계화로 인해 흔들렸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왜 일어났는가? 냉전체제가 붕괴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전개된 것이다.

사실 냉전해소로 한국은 많은 이득을 얻었다. 중국과 브릭스와 러시아와 동구권 시장을 얻었다. 주워먹은 이익이 큰데 어찌 지불해야할 댓가가 없겠는가? 미일의존체제에서 세계시장으로 중간에 말을 갈아타는 데는 필연 위험이 따른다.

운명이다. 피해갈 수 없다. 게가 허물을 벗듯이 한국은 한 단계 도약해야 했다. 그것이 IMF의 본질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 때문에 고난의 행군시기는 필연이다.

일본이 한동안 잘 나가다가 최근 주춤한 이유도 비슷하다. 서유럽이 동유럽이라는 막대한 시장을 얻은 반면에 일본은 얻은 것이 적다. 유럽이 인구 15억 시장과 아프리카, 터키의 저임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데 비한다면 그렇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다. 진보는 이러한 본질을 애써 외면하고 노탓으로 날밤을 세운다. 이러한 전개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밖에서 닥쳐오는 것인데도 노무현이 신(神)이라도 되는양 구세주(?) 노무현에게 매달린다.

오늘도 노탓 내일도 노탓. 그들의 일용할 양식이 노탓이다. 노무현만 탓하면 만사형통이다. 노탓 하나로 오마이뉴스가 먹고살고 프레시안이 먹고살고 진보가 먹고살고 조중동이 먹고살고 딴나라가 먹고산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사이좋게 잘도 나눠먹는다.

이에 비하면 예수가 빵 한조각으로 부린 조화는 내세울 것도 못된다. 모든 진보가 노무현 한 사람에게 적대적 의존관계로 공생하며 겨우 숨을 이어가고 있다. 백낙청 정도가 간간이 약간 말 되는 소리를 한다는 소문도 있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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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때는 김종필과 2인삼각을 했기 때문에 아무도 말 안했다. 노른자위를 차지한 자민련이 경제를 착실히 말아먹으며 카드대란이니 몇월 위기설이니 하는 온갖 악재를 남발해도 아무도 DJ에게 따지지 않았다.

종필과 연합한 태생적 한계를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DJ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종필암 없이 독자적으로 국민에게 신임받지 못한 진보세력 전체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정몽준과 2인삼각을 했다면 지금 아무도 노탓 않는다. 잘못된건 몽탓하면 된다. 노무현은 열심히 하는데 몽이 사사건건 뒤에서 태클걸고 있다고 변명하면 된다. 몽암을 떼내고 노무현이 독박썼다.

김대중 정권은 자민련과의 동거정권이다. 노무현은 몽의 힘을 빌어서 겨우 집권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그 일을 잊었다. 진보세력이 단독으로 정권을 창출하기라도 한양 기세등등 했다. 거짓이다.

조중동이 참여정부를 좌파정권으로 몰아붙이니 진짜배기 좌파들이 그러한 조중동과 싸울 생각은 아니하고 ‘나는 죄없어. 노무현이 다 먹었지 좌파는 먹은게 없다구.’ 하며 알리바이 대기에 분주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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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DJ가 종필과 권력을 분점한 예와 달리.. 노무현은 진보의 인재를 대거 빼갔다. 필연 진보와 일정부분 책임을 공유하게 되었고 10석 원내진출 지갑을 마련해서 민노당에 전달했다.

좌파들의 막역한 친구인 이창동, 김명곤, 유홍준이 장관 혹은 장관급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많은 진보 386들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자 좌파가 도매급으로 조중동에 욕먹었으니 손해봤다는 계산서를 빼든다. 얍삽하게도 말이다.

그렇다. 그들은 손해봤다. 손해봤는데 이제는 손해보기 싫다는 거다. 책임을 공유하기 싫다는 거다. 인정한다. 너희들은 책임없다. 손빼라. 그러나 그만큼 당신들은 역사의 현장에서 밀려난다.

방관자인 당신들은 역사의 기록자가 되지 못한다. 책임을 거부한 만큼 권리도 상실한다. 언젠가 우리가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때 지갑 챙기고 얍삽하게도 중간에 발 뺀 당신들에게 돌아갈 영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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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독박써야지 좌파가 욕먹어서 안된다는 생각. 노무현이 좌파의 나와바리에 침투하여 인재를 빼가면서도 인사가 없었다는 생각. 그 소박하기 짝이 없는 서민적인 뒷골목 근성.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학자도 인간이다. 학자들 만큼 잘 삐치는 인간이 세상에 없다. 최장집들.. 우리와 하나 다를것 없는, 눈꼽만큼도 손해는 안보겠다는..

조중동과 싸우다 죽어서 영웅이 되느니 살아남아서 화석이 되기를 선택한 그들의 소심한 마음을 이해하지만 결코 존경하지 않는다. 독립투사들은 손해보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있다.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라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본질을 보지 못한다. 제 손으로 세금 내본적이 없는 지식인들이 물정을 안들 얼마나 알겠는가?

예컨대.. 부동산이 오르는 현상만 해도 그렇다. 원화의 급격한 강세에 따른 필연적인 수순이다. 오르는게 정상이고 안오르는게 비정상이다. 물론 이런 후방효과를 예상하지 못한 정부도 잘못이지만 집값이 돌연 오른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집값은 원래 너무 오르게 되어 있다. 당연히 거품이 끼게 되어 있다. 거품이 정상이고 거품 없는 것이 이상한 거다. 시장은 원래 얌전하지 않다.

시장원리란 인간들의 희망사항일 뿐 시장은 결코 고분고분 시장원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바닥이 좁아서 소수의 독과점과 교란이 가능한 구조에서는.

복부인이 투기를 한건 성사기키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 100곳 이상을 방문하며 정보를 수집한다고 한다. 이렇듯 업자들이 설치는데 어찌 집값이 오르지 않겠는가.

집값이 오르는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사전에 이를 예견하고 정부가 시장을 장악하고 통제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정부가 끌려다니는 것이 잘못이라는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지식인이 멀리서 봐서는 이러한 본질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주택보급률이 100프로에 가까운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공급대책 필요없다 하며 숫자놀음이나 하고 있다.

복덕방 100곳을 방문하는 복부인을 지식인이 이기려면 골방에서 기어나와 현장에 뛰어들어 발품을 팔아야 한다.

과거 개발시대에는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났다.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지금의 부동산 앙등이나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지금 양극화에 따른 고통이나 그때 그시절 이농에 따른 도시빈민의 고통이나 본질은 같다.

시스템의 변화와 새로운 시스템에의 적응과정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고통이다. 선진국들도 모두 이 과정을 겪었다. 지식인이 이러한 사실을 먼저 알고 민중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지금 세계화에 따른 고통을 대책없이 거부하는 것은 과거 도시화에 따른 이농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스탈린은 농민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스탈린이 좌파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이는 역사의 필연이다.

고통은 필연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분담되어야 한다.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서는 지식인이 먼저 와서 사정을 파악하고 미리 예고를 해야 한다. 냉전해소의 후폭풍이 조만간 한국시장을 강타할 것이라고 예언했어야 한다.

원화가 올랐으니 당연히 집값이 오를거라고 예언했어야 한다. 세계화에 따라 당연히 양극화가 진행될 거라고 예언했어야 한다. 양극화에 따라 큰 정부와 충분한 복지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예언했어야 한다.

그래야 민중들이 미리 마음의 대비를 하고 지식인을 존경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그 어떤 지식인도 그리하지 않았다.

옛날 왕들은 일식이나 월식 따위를 예언하며 민중의 신임을 얻었다. 왕이 일식을 예언하지 못하면 민중들은 변고를 두려워 하여 왕을 추방해 버렸다.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존경받지 못한다.

고통은 필연이다. 필연이므로 분담되어야 한다. 필연임을 모르고 약자에게 일방 떠넘기려는 재벌과 딴나라와 조중동의 무책임도 비판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고통 자체를 대책없이 거부하는건 말이 안 된다.

이는 쓰나미가 덮쳐오는 데도 ‘쓰나미가 오면 안 된다’ 하고 거부하는 것과 같다.

개발시대에 이농은 필연이다. 이농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이농에 대한 무대책을 비판해야 하고, 부동산값 상승에 마구잡이로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이를 사전에 예견하고 미리 대책마련을 주문해야 하고, 양극화에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이를 미리 예견하고 복지대책 마련을 주문해야 한다.

나는 아직 이러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단 한 명의 용기있는 지식인을 이 나라에서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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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가장 확실한 진보는 미군철수와 남북통일이다. 용병장사 하던 냉전시대의 대결구도를 해체하기다. 이차대전의 결과물인 전후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미국의존을 줄이는 것이다.

확실한 무기는 경제성장에 의한 힘의 우위다. 미국보다 힘의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FTA를 해야한다. 미국이 한국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을 끌어내지 않으면 결코 미국의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근 부시가 북핵문제에 약간의 성의를 보이는 이유는 미국도 한국의 눈치를 봐야할 사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누가 이러한 상황을 끌어냈는가? 노무현이다.

미국을 이기는 것이 진정한 반미다. 미국을 넘어뜨리려면 미국에게 한쪽 샅바를 내주고 대신 미국의 샅바를 단단히 움켜잡아야 한다. 미국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숨으려는 태도로는 결코 미국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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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자를 위한 진보는 진짜가 아니다. 진보는 진보주의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원래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의 진보만이 진정한 진보이다.

진정한 진보는 있다. 그것은 동양문명과 서구문명이 대등하게 만나는 것이다. 서구정신에의 종속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서구정신에 길들여져 정신적 노예상태가 된 지식 쓰레기들은 진보를 운위할 자격이 없다.

서구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편협하기 짝이 없는 기독교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진보를 말할 자격은 없다. 기껏 똘레랑스 장사나 하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미군철수와 남북통일이 유일한 진보다. 나머지는 8할이 구라다. 천성산 이런건 함께 고민해야 할 가치관의 문제이고, 양극화 이런건 겪고 넘어가되 연착륙 시켜야 할 필연적인 수순이다.

속도조절의 문제, 밸런스의 문제, 테크닉의 문제, 능력의 문제일 뿐 본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 테크닉, 그 능력은 계속 집권해야 축적이 된다. 이번에 집권 포기하면 테크닉 잃고 능력 잃어서 영원히 재집권 못한다.(이건 강조하기 위한 표현. 물론 재집권 할 수 있다.)

확실히 노무현정부는 아마추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아마추어 과정을 거치지 않은 프로는 없다. 그 아마추어가 5년간 닦아온 실력을 팽개쳐버릴 이유는 전혀 없다. 딴나라 역시 10년간 놀아서 지금은 아마추어 되었다.

양극화가 필연인 만큼 정부 역할을 증대하고 분배에 주력하는 것이 맞지 모든 것은 노탓이요 하며 ‘노무현에게 떠넘기기 초식’ 하나로 해결보려 함은 교만한 자의 게으럼에 불과하다.

국력을 키워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 미군철수는 가능하다. 그만큼 한반도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군사적 요충이다. 한류만 해도 일본의 소재가 한국에서 가공되어 동남아로 수출된다. 우리가 길목을 차지한 것이다.

문명과 문명의 교차로에서 요충지를 차지한 자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만 요충지는 항상 침략의 위험에 시달리는 법. 역사이래 늘 그래왔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길목인 이집트에서 페르시아반도를 거쳐 그리이스반도와 이탈리아반도 이베리아반도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이르기까지 늘 그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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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인간 240만명이 서명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는 선언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론을 내놔야 한다.

문제는 소통이다. 그들과는 원초적으로 말이 안통한다. 그것을 그들의 잘못으로 돌리고 끝낸다면 이는 지식인의 태도가 아니다.

역사는 일방 선언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투쟁과 설득의 연속이다.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과 소통이 안된다는 것이 좌파들의 문제다.

소통의 무기인 미디어의 장악, 소통의 시스템인 패러다임의 교체, 소통의 전파인 시대정신의 표상으로서의 미학적 양식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 명의 지식인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소통의 무기인 미디어의 장악을 두고 우리가 조중동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동안 그들은 대략 방관했다. 싸우지 않은 비겁자에게 돌아갈 영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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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개그의 최장집 “정권 넘어가면 노탓이지 내탓이랴?.”
지식쓰레기 손호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나야 더 좋지.”

노무현 “정권 넘어간 이후를 지금 대비해야지.”
유시민 “정권 넘어가면 야당해서 되찾아와야지.”

이게 배짱 싸움이다. 최장집이 먼저.. 정권재창출 못해도 나야 책임없지 하고 뻗대니 손호철이 정권넘어가면 나야 더 좋지 하고 추임새 넣는다. 노무현과 유시민이 나야 정권재창출에 관심없지 하고 딴전 피운다.

그러면서 이들은 모두 DJ를 바라본다. 언뜻 보면 진보와 참여정부가 싸우는 듯이 보이지만 천만에. 그렇게 보았다면 하수다. 실제로는 이 모든 우스꽝스런 풍경이 DJ에게 엉기기다.

진보도 참여정부도 정권재창출에 관심없다고 일찌감치 손을 뺐으니 이제 아쉬운 사람이 나설 차례다. 아쉬운 사람이 누굴까? 관심있는 사람은 누굴까? 뻔할 뻔자 DJ다. DJ 본인이 침묵해도 이심전심으로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정작 DJ 본인은 나서지 않는데 고건,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가 쪼르르 달려간다. 그러다가 간다. 고건 가고, 정동영 가고, 김근태 가고, 천정배 가고, 정운찬은 데뷔도 못해보고 간다. 어디로? 황천길로.

최장집, 손호철이 저쪽에서 막고 노무현 유시민이 이쪽에서 쫓는다. 누구를? 제 2의 김민새들을. 새가 날아간다. 철새가 날아간다. DJ는 개입할듯 개입할듯 개입하지 않는데 그 와중에 철새들만 차례로 솎아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참을 인(忍)자 하나로 끝까지 신중하게 기다리는 누구인가? 느긋하게 이 상황을 즐기는 자 누구인가? 이해찬, 강금실, 손석희, 박원순이다.

누가 최후에 승리하는가?

●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최후에 승리한다.
●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 목격한 자가 역사를 기록한다.
● 후세를 위하여 하나라도 결과물을 남기는 자가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문화의 표준을 남기는 것이 가장 크게 남기는 것이다.
● 패러다임의 교체하고 미학적 양식을 완성하여 그 문화의 양식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자가 역사를 기록하고 이후 모든 것을 지배한다.

바로 그것이 유시민이 전하고 있는 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식인다운 포지셔닝’이다. 노무현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퇴임 후에도 그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렛대 만들기는 진행 중이다.

 

덧글..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승리한다'.. 여기서 '기록'의 의미를 단순히 ‘책을 쓴다’는 개념으로 알아먹는 초딩 틀림없이 있을 것.. 문화가 곧 기록이고 소통의 양식을 창안함이 곧 기록이라는 사실을 알아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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