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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242 vote 0 2009.04.05 (22:34:50)

자본주의 길들이기

요지는 자본주의시스템의 ‘돈이 돈 버는 구조’를 긍정하고 과학의 관점에서 탐구하자는 거다. 사실이지 ‘돈이 돈 버는 자본주의 속성’이 우리 사회의 윤리적 의지와 맞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원래 인간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자본주의를 탓하랴! 생각하라! 우리의 조상들도 들판에서 제멋대로 자라는, 난폭하기 짝이 없는 소와 돼지와 닭을 길들여서 키운 것이다.

소와 돼지, 닭은 원래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소, 돼지, 닭이 인간에게 봉사할 의도로 자기 몸에 살을 보탠 것은 아니다. 인간이 개입하여 이용하는 것이다. 오랫동안의 종자개량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다.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원리가 인간에게 봉사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전기에게는 원래 인간을 이롭게 할 목적 따위는 없었다. 그러므로 잘못 다루면 감전된다. 물은 원래 인간을 이롭게 할 목적을 가지지 않았다.

홍수가 나면 인간이 다친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물이나 전기를 두고 화낼 것인가? 다만 현명하게 이용할 뿐이다. 자본주의 역시 고분고분하지 않지만 과학적인 이해를 통해 상당히 길들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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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경제라는 생물이 있다. 자본주의란 유목민이 들판에서 소 키우듯 시장에서 경제라는 생물을 키우는 거다. 농부가 열심히 일한다고 그 소가 빨리 자라는 것은 아니다.

들판의 소는 농부의 노동과 상관없이 자란다. 가치를 창출하려면 많은 노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초지, 좋은 기후, 야생동물의 습격이 없는 안정한 환경, 유통과 판매를 돕는 발달한 시장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이 필요하지만 본질에서 소의 성장공식은 소 자신의 논리를 따라간다. 자본주의라는 생물 역시 인간의 논리가 아닌 자본주의 자신의 논리를 따라간다. 노동은 보조할 뿐이다.

소가 새끼를 낳듯이 돈이 돈을 낳는다. 가치창출의 주체는 농부가 아니라 소다. 소가 알아서 크고, 시장이 알아서 큰다. 인간은 단지 도울 뿐이다. 농부가 열심히 일해도 기후가 나쁘면 소는 죽고 전염병이 돌아도 소는 죽는다.

농부가 게을러도 기후가 좋으면 소는 살찌고 환경이 좋으면 소는 번식한다. 투자자가 게을러도 경기가 좋으면 수익이 늘고, 경기가 나쁘면 수익이 준다. 소는 소의 논리를 따르고 돈은 돈의 논리를 따른다.

많은 먹이를 줘도 소는 필요한 이상 먹지 않는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 소는 더 이상 크지 않는다. 경제는 자기 논리와 독립적인 성장사이클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그 점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려면 다 자란 닭은 염소로 바꾸고, 자란 염소는 돼지로 바꾸고 다시 소로 바꾸어야 한다. 한편으로 닭장을 염소우리로, 염소사료를 돼지사료로, 돼지우리를 소목장으로 바꿔줘야 한다.

오늘날 경제위기는 바꿔줘야 할 때 바꿔주지 않아서 생겨난 현상이다. 인간은 그만큼 경제라는 생물의 성장사이클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다. 더 탐구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염소를 닭장에 몰아넣거나, 돼지에게 소사료를 주거나, 소에게 닭사료를 주어서는 안 된다. 정밀하게 코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보라. 오늘날 좌파나 우파의 경제논리에는 이런 점이 없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치지 않고 단지 하층민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며 남탓하는 우파의 태도는 더 이상 크지 않는 닭을 나무라는 것과 같다. 닭이 게을러서 더 이상 안 크는 것이 아니다.

닭장의 닭은 원래 그 이상 크지 않는다. 닭장을 염소우리로 바꿔주지 않고는 염소만큼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노동환경을 바꿔주지 않으면 노동자는 더 이상 부를 축적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좌파 역시 소를 닭장에 가두는 우를 범하곤 한다. 소는 들판에 풀어놓아야 잘 큰다. 하루종일 달라붙어서 먹어라, 앉아라, 서라, 자라, 강요해서 안 된다. 그 소 스트레스 받아서 병 걸린다.

가둘때 가두고, 풀때 풀고, 먹일 때 먹이고, 재울때 재워야 한다. 우리가 경제시스템의 성장사이클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점을 고백해야 한다. 정답은 전문가의 활약과 과학의 탐구에서 찾아야 한다.

과학 외에 대안은 없다. 푸닥거리 주술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시스템을 억지로 인간의 사회와 결부시키면 온갖 모순이 드러나지만 인간을 배제히고 보면 독립적인 합리성을 가진다.

자본주의는 인간사회 안에서 확실히 비합리적이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합리적이다. 닭과 코끼리가 한 집에서 동거하면 온갖 모순이 드러난다. 그러나 코끼리나 닭이 원래 모순된 동물은 아니다.

코끼리는 코끼리대로 합리적이고 닭은 닭대로 합리적이다. 인간은 인간대로 합리적이고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대로 합리적이다. 모순은 둘의 위험한 동거에서 일어난다. 어쨌든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거대생물과 동거를 결정했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회적 모순은 전문가의 정밀한 코디에 의해 해결된다. 정밀하게 코디하면 닭과 코끼리의 동거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자본주의 역시 키우기에 버거운 생물은 아니다. 초보농부가 많은 시행착오 끝에 훌륭하게 목장을 가꾸듯이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생물을 잘 키울 수 있다. 물론 한 두번의 시행착오와 실패는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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