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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황석영들의 슬픈 허우적

이 나라에서 토론이 사라졌다. 강준만, 진중권들이 맛이 간 이후 토론다운 토론을 구경하지 못했다. 지금 대통령이 혼자 벽 보고 토론하고 있다.

논객들이 입을 닫았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정치 엘리트들이 짜놓은 침묵의 카르텔을 국민에게 직접 고발하겠다’고 까지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토론의 실종사태.. 네티즌들의 득세 때문이다. 인터넷의 쌍방향의사소통 공세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논객들의 주장이 실시간으로 검증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미디어의 발전 그리고 시스템의 변화로 인해 공론의 장에 적용되는 토론의 룰이 바뀌자 점잖은 사람들이 창피당할 것을 염려하여 발언을 기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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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단비랄까.. 지난 주 황석영의 오마이뉴스 기고문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와 이에 대한 반론으로 나온 이승철 시인의 ‘작가 황석영은 진실의 거리로 나와라!’가 눈에 뜨인다.

참으로 오랜만에 토론 비슷한 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 전에 최장집, 조희연, 손호철의 옥신각신 얼라리요 어쩔시구리 논쟁도 있었다고 듣는다.

그러나 허탈하다. 황석영에 최장집이면 이 나라의 최고지성일진대 그들의 토론수준이 서프라이즈 눈팅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

제목 하나는 그래도 걸죽하다.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 이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대문장가의 대갈일성! 그러나 이게 전부다. 제목 하나만 개똥폼이었던 것이다.

● 황석영.. “에헴! 나 대인(大人)이야. 거시기 머다냐. 따꺼형님 알쥐? 내가 그런 사람이라구. 그때 그시절 내집에 몰려와서 맥주 160짝 먹은 아가들이 지금 여당과 야당에서 알아주는 실세들이지. 이 바닥에서 내한테 신세 한번 안진 사람있나. 내가 한 마디만 하면 다들 꺼벅 죽는다구. (귀엣말로) 손학규 어때?”

황석영을 까는 이승철 시인의 글은 더 얄궂다.

● 이승철..“얼씨구 황석영 당신만 맥주 160짝 샀나. 당신의 라이벌 조정래 작가도 설렁탕 샀고 국밥도 샀거든. 내가 봤거든. 내가 봤거든.”

이건 뭐 겨울방학에 초딩 리플인가. 읽는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최장집, 조희연, 손호철트리오의 동문서답도 뻘쭘하기는 마찬가지. 문장이 불쌍해서 내용을 인용해주기가 민망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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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들.. 몰락 직전의 콘스탄티노플을 연상시킨다. 이슬람의 바다 한 가운데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주제에.. 노상 동서교회의 통합논의를 주도하시면서.. 거룩한 신학논쟁으로 날밤을 세우던 그들..

문득 구세주가 나타나 무슬림을 쫓아내고 동로마제국의 전성시대를 되돌려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착각과 몽상에 빠져 있던 그들.. 뒷방 늙은이처럼 조용하게 세월을 좀 먹던 그들..

우르반이 쏘아댄 600키로짜리 대포알에 저항 한번 못해보고 얌전하게 포로로 묶여 노예로 팔려갔던 것이다. 그 무기력한 꼬락서니. (대략 시오노 나나미 버전) 또 루쉰의 아Q정전 마지막 문단을 연상시킨다.

“가장 크게 충격받은 사람은 최장집 영감이었을 것이다. 물건도 되찾지 못하고 온 집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다음이 조희연씨 댁이었다. 손호철이 관가로 고소하러 갔다가 혁명당에게 걸려 변발을 잘렸고 현상금 스무냥도 낭비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집안도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들은 차차 지나간 시대의 늙은이들로 전락해갔다.’ (아Q정전)”

"그들은 차차 지나간 시대의 늙은이들로 전락해 갔다."

21세기의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세상이 바뀐 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장인 우르반의 청동거포가 21키로에 뻗어 있는 콘스탄티노플의  3중성벽을 깨뜨려 버리는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 새롭게 떠오르는 베네치아가 시장을 잠식해 버리는 데는 도리가 없다.

오스만 투르크의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몰아온 16만 대군을 콘스탄티노플의 용병 7천으로는 막아낼 도리가 없다.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이건 신학의 영역이 아니고 물리학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변화는 물리적으로 진행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동로마가 어떻고 서로마가 어떻고 백날 논의해본들 우르반의 청동대포를 막아내는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종이신문이 가고 인터넷이 뜨는 시대의 변화는 골방 지식인의 토론과 무관하다.  

지나간 시대의 늙은이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면 새로운 시대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계몽의 시대는 가고 소통의 시대가 왔다. 과학의 시대는 가고 미학의 시대가 왔다.

패러다임의 변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상이 바뀐다. 눈 똑바로 뜨고 이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흐름을.. 그 거대한 파도를 슬기롭게 타고 넘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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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지 경상도 하고도 남쪽 바닷가 진주 촌양반들은 도무지 세상이 바뀐 줄도 모르고..

백정이 길을 가다가 양반을 만나면 논둑 밑으로 내려서서 “쇤네 문안드리오”하고 절을 해야 하는데 왜 절을 않느냐고 쇠고기 안먹기 동맹파업을 벌이던 1920년대 그 한심바가지 수구작태.

“동네방네 사람들아! 이내말좀 들어보소. 아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네. 백정놈이 글쎄 벌건 대낮에 양반이 길을 납시는데도 눈 치켜뜨고 쳐다보고도 길도 안비켜 준다네. 말세여 말세!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여!”

1920년대 형평사 운동때 이야기다.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이것이 정보지체현상, 사회지체현상, 적응지체현상, 문화지체현상, 의식지체현상이다. 돈 키호테 현상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썼겠는가? 우리는 돈 키호테를 동화책 정도로 알고 있지만 원작은 풍자 형식을 빌린 정치비판서다. 그 시대에도 철 모르는 돈 키호테 최장집, 황석영들이 다수 있었던 것이다.

보다보다 못해 참다참다 못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황당하고 분이 치밀어 올라서 마침내 작심하고 쓴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가 지나간 시대의 ‘삭은이’들을 비웃고 있다면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새로운 시대의 모랄을 보여주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전 근대의 낙오자를 비웃었다면 세익스피어는 근대를 인사시킨 것이다.

돈 키호테와 산초판사.. 주인과 하인.. 앞에 사람을 내세워서 ‘이로너라.’ 하고 연극을 하는 허세의 시대.. 이것이 세르반테스가 고발하고자 했던 전근대라면.. 개인 대 개인, 인간 대 인간으로 정직하게 대면해야 하는 시대가 근대다.

중종이 조광조 로봇을 부리고, 공민왕이 신돈로봇을 운용하며 DJ가 노무현 가케무샤를 운용하는(이 말을 액면 그대로 듣지 말기).. 혹은 그렇게 오해된 역할극의 시대(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의 ‘로봇군주 이용한 고도의 정치기술자들’ 참고.. 이것이 단순한 통치술이 아니라 봉건시대의 어떤 본질과 닿아있다)를 이제는 끝막고 지금 시대는 또다른 세르반테스와 세익스피어를 요청하고 있다.

황석영의 ‘다들 일루 모이바바’나 최장집의 ‘이로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가 다 군주 돈 키호테가 로봇 산초 판사 부르는 소리라는 말이다.

정보지체 의식지체 사회지체

얼마전 휴대폰 종료버튼 누르면 월 6천원 절약한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바로 다음날 ‘뻥이야’ 하는 기사가 뜨더라. 하기야 아직도 엘리베이터 닫힘버튼 안 누르면 전기 절약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니.

한국은행이 발행한 1만원권, 5천원권, 1천원권 신권이 모두 문제를 일으킨 예도 그렇다. 이 나라에 뭔가 정보소통의 동맥경화가 일어나고 있다. 무엇인가? 이것이 정보지체 현상이다.

인터넷의 등장이후 정보의 생산자와 중개자 그리고 소비자 사이에 끝없는 에러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정보생산자와 소비자의 절대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한문(漢文)을 읽는 극소수- 문제가 있어도 은폐되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정보지체의 지식인병, 의식지체의 중도신당병, 사회지체의 수구꼴통병이라는 대한민국 3대난제를 해결하려면 쌍방향 의사소통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신속하게 적응해야 한다.

세상은 변화하는데 변화를 선도해야 할 지식인들이 먼저 낙오하고 있다. 수구꼴통의 낙오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황석영, 최장집이 낙오한대서야 우습지 않은가.

그들의 논쟁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메흐메드 2세의 16만 대군에 포위된 채 교리논쟁 신학논쟁으로 날밤을 새는 그 모습이.. 그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가 드러나버린 것이다. 바닥을 친 것이다.

이 나라의 최고지성들에게 더 기대할 것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열어가야 한다.

세상은 변한다.

능률지향에서 가치지향으로
집단과 조직 중심에서 개인의 역량 중심으로
경쟁중심사회에서 소통중심사회로 변하여 간다.
경쟁이 아니라 소통이다.

밑바닥에서부터 변한다.
표준우선에서 품질우선으로 변한다.
감독은 표준을 정하고 선수는 품질을 일군다.
유능한 감독이 먹어주는 시대에서 기량을 갖춘 선수가 먹어주는 시대로 간다.
더 이상 히딩크 구세주의 강림을 기다려서 안 된다.

낡은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는 온다.
당신의 일편단심 충성심은 알아줄만 하지만
검으로 어깨를 두드려 기사작위를 내려줄 군주는 없다.  

산초 판사는 오래 전에 떠났고 둘시네아 공주는 오지 않는다.
사회는 유능한 리더가 아니라 강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계몽에의 집착을 끈고 소통을 훈련해야 한다.

'이로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하고 로봇 대리인을 부르던 시대는 갔다.
이제는 일대일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몽인가 소통인가?
같음의 강조가 계몽이면 다름의 부각이 소통이다.
획일성의 강조인가 다양성의 강조인가다.
같음의 강조는 표준을 정하려는 집단의 본능이다.
집단을 개인에 앞세우려 하기 때문에 표준이 중요한 것이다.
20세기는 그런 시대였다.

여자와 남자는 같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다. 흑인과 백인은 같다. 너나 나나 다를 거 하나없이 똑 같다. 같음을 강조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왜? 표준을 통일하여 능률을 달성하기 위하여.

21세기는 다르다. 다름이 강조되어야 한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다르다. 흑인과 백인도 다르다. 물론 그 다름이 봉건시대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다름의 강조는 가치를 발굴하려는 노력이다.

그때 그시절.. 너와 내가 같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언어, 같은 달력, 같은 서력기원, 같은 교과서에 같은 룰로 높은 능률을 달성하였다. 박정희가 우려먹던 과거의 패러다임이다.

21세기는 다르다.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의 역할분담으로 팀플레이를 극대화 시킨다. 7인의 사무라이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손 발이 척척 맞는 좋은 팀이 된다.

감독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선수 개개인이 뛰어나야 한다. 감독의 역할이 중요할 때는 명령의 전달이 우선이므로 같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수의 기량이 중요할 때는 포지션의 차이가 강조되어야 한다.

하수를 중수로 끌어올리는데는 감독의 역량이 중요하지만 중수가 상수로 나아가는 데는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중요하다. 이제는 다름에 주목하고 다름을 드러내고 다름에 열광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와 다르다. 필리핀 아기엄마도 우리와 다르다. 다르면서 공존할 수 있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튀는 사람 격려하고 모난 돌 발굴하고 개성있는 사람 추켜세워야 한다.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다름을 이제는 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은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21세기가 요구하는 가치지향 사회다. 능률지향이 아니라.

● 변혁의 1단계는 땅을 벌어주는 계급투쟁 시대다.
● 변혁의 2단계는 리더가 종자와 농기구를 구해주는 계몽시대다.
● 변혁의 3단계는 거래할 시장을 제공하는 소통시대다.

봉건시대의 농노는 토지소유권이 없었다. 왜? 토지는 전쟁에 의해 획득되는데 농노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몫을 나눠주지 않는 것이다.

근대주의의 기반은 토지개혁이다. 근대주의는 토지를 나눠준 다음 표준을 보급하는 능률지향이다. 토지가 나눠졌기 때문에 이제는 표준에 맞추어 경지정리를 해야하는 것이다.

표준은 박정희가 정하고 독재자가 정하고 현대자동차가 정하고 포드시스템이 정하고 빌 게이츠가 정한다. 먼저 온 자가 표준을 한 번 정하면 그 표준을 얼마나 빨리 보급하는가에 그 사회의 발전속도가 결정된다.

표준을 보급한 나라는 흥했고 표준을 보급하지 못한 나라는 망했다. 표준의 보급이 진보 그 자체였다. 이것이 20세기의 패러다임이다. 21세기는 다르다. 표준에 몰두하던 포드도 품질에 주목한 GM에 추월당했다.

표준은 전체의 능률을 위해 부분의 가치를 희생시킬 때 달성된다. MS의 표준에 의해서 컴퓨터들은 호환성을 얻었지만 그 대신으로 희생한 가치가 너무나 많다. 지금은 MS가 제거되어야 할 빅브라더가 되었다.

MS 때문에 정보화의 동맥경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업계에서 날로 일어나고 있는 혁신들이 MS와 충돌을 일으키는 문제로 보급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변혁의 제 3단계에 돌입하고 있다. 이제는 표준의 강요가 아니라 소통할 시장을 제공해야 한다. 백화점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그곳에 백화(百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백화를 한 곳에 모아야 한다. 백화는 백 가지가 서로 다르다. 다르기에 거래한다. 다르면서 공존한다. 이것이 소통이다. 이런 때는 뛰어난 기획가가 아니라 유능한 영업맨이 있어야 한다.

DJ가 맨주먹으로 터를 다진 신념의 창업자라면 노무현은 판짜기 전문의 뛰어난 기획가였다. 차기 대통령은 유능한 영업맨이어야 한다. 매너있고 교양있고 세련되고 포용력있는 문화대통령이어야 한다.  

시대가 그런 사람을 요구한다.

이미 현장에서의 전술은 칼에서 총으로 변하였는데 ‘한 칼 한다’는 무사가 자신이 대장노릇 해야한다며 앞에서 가로막고 있다. 이런 때 거침없는 하이킥이 필요하다. 똥차들은 날려버려야 한다.

덧글..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 제목 한번 쥑인다. 그러나 허탈하다. 이 나라 최고 지성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동년배니 동문이니 선배님이니 후배님이니 맥주니 설렁탕이니.. 국밥에 곰탕에 감자탕 타령이니.. 잘 하는 짓이다. 빌어먹을. 당신들 뇌 속에 든 게 그거냐?

영업맨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현장을 뛰어야 할 판에 골방에 파묻혀 기획서나 쓰고 있는 최장집 황석영류 지식인의 정보지체 현상, 얼빠진 중도신당파의 의식지체 현상, 수구꼴통의 사회지체 현상.. 대한민국의 3대질환이다. 거침없는 하이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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