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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해서 한번 배워두면 절대로 잊어먹지 않는다. 나는 한 동안 수영을 하지 않았다가 10여년 만에 다시 수영을 해 본 일이 있는데 아무런 부자연스러움이 없었다.

친구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수영을 제법 잘 하는데도 여전히 물을 두려워 하는 친구가 여럿 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한 50미터 쯤은 헤엄칠 수 있어.’ 이건 잘못된 거다.

자전거로 ‘100미터 쯤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물 위에 뜰수만 있으면 배가 고프고 힘이 빠져서 더 이상 헤엄을 못치게 될 때 까지 몇 시간이고 계속 헤엄칠 수 있는 것이 수영이다.

이유를 알아 보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도시의 수영장에서 전문강사에게 수영강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사들이 수영을 가르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50미터쯤 헤엄칠 수 있다는 말은 물 속에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평영이니 접영이니 하며 자세부터 배우기 때문에 자세에 신경쓰느라 물 그 자체와 친해지지 못해서 그렇다.

꼬맹이시절 나는 마을 앞 개울에서 헤엄을 배웠다. 아무도 내게 헤엄치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물장구를 치며 놀다 보면 그냥 헤엄을 칠 수 있게 된다. 먼저 물 그 자체와 친해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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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물에 뜨는 것이다. 둘째는 물을 헤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헤엄을 치려면 먼저 물에 뜰 수 있어야 한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헤엄을 쳐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저절로 뜨는 것이다. 물에 뜨려고 하는 즉 뜨지 못한다. 수영강사들은 이 점을 놓치고 있다. 헤엄이 먼저인가 뜨기가 먼저인가? 뜨기가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헤엄이 먼저다.

꼬맹이 시절 나는 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숨을 참으며 그냥 헤엄을 쳤다. 물 위로 뜨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헤엄치다 보니 어느 순간 물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수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

자전거 타기도 마찬가지다. ‘자전거가 왼쪽으로 기울면 핸들은 어느쪽으로 꺾어야 하지?’ 이걸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판단해서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저절로 균형을 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이용 자전거는 좌우에 보조바퀴가 있어서 이것이 가능하다.

균형이 먼저인가 진행이 먼저인가?
먼저 균형을 잡고 그 다음 진행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진행해야 균형이 잡힌다.

무엇인가? 일의 진행에는 반드시 단계가 있다.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한다. 1단계를 완성한 다음에 2단계로 나아간다. 그러나 착각이다. 2단계를 시작하지 않으면 1단계는 절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 원리는 보편적인 법칙이다. ‘일머리’를 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어떤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1사이클의 전체과정을 경험해봐야 알 수 있다. 현장경험없는 책상물림 이론가들은 절대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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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자들과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미소니언 협회 회장 랭글러박사의 글라이더가 이륙을 시도했다. 그러나 랭글러박사의 비행체는 곧장 호수로 곤두박질 하고 말았다.

한동안 뜨거웠던 비행기 열풍은 급속하게 식어버렸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성공했지만 그 자리에는 단 한 사람의 기자도 찾아오지 않았다. 신문사에 전보를 쳤지만 대부분의 신문들은 그 역사적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랭글러 박사의 실패에 실망한 기자들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라이트형제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9월에야 라이트 형제는 몇몇 기자들 앞에서 비행시범을 성공시킨다.

비행기를 뜨게 하는 양력의 원리는 진작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원리를 잘 아는 과학자들이 비행기를 발명하지 못하고 자전거포나 운영하던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을까?

비행을 위해서는 2단계가 필요하다. 1) 공중에 뜨기 2) 제어하기. 모든 과학자들이 1단계에 집착하고 있을 때 라이트형제는 2단계를 실험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2단계에 성공하지 않으면 1단계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상식이 항상 상식적인 것은 아니다. 달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지난 수천년 동안 고려사람과 조선사람의 상식이었지만 그 상식은 틀렸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우리 조상들의 상식도 틀렸다. 상식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선순위 판단을 거꾸로 한다. 기둥을 정확히 세운 다음에 대들보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들보가 먼저 올려져서 그 무게로 위에서 눌러줘야 기둥이 제 위치를 잡아가는 것이다.

인천공항의 활주로는 지금도 조금씩 지반이 가라앉고 있다.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자동차라도 그렇다. 부품들이 자리를 잡은 다음에 엔진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엔진이 작동해야 부품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간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는 명백히 갭이 있다. 현장에서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자리를 잡은 다음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을 해야 각자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최장집이나 강준만이나 손호철들이 늘 하는 이야기는 비행기가 공중에 떠야 조종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매우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랭글러박사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한겨레는 창간때 부터 랭글러 박사의 오류에 빠져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헤엄치지 않으면 물에 뜰 수 없고 제어하지 않으면 이륙할 수 없고 페달을 밟지 않으면 균형을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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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는 열쇠는 ‘구조’에 있다. 구조를 아는 것이 그 어떤 것을 아는 것이다. 구조의 원리는 밸런스에 있다. 밸런스는 대칭과 평형이다. 대칭은 맞물림이다. 서로는 맞물려 있다.

자전거가 균형을 잡는 것, 수영선수가 물에 뜨는 것, 비행기가 나는 것은 공중에서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靜)이 아니라 동(動)이다.

밸런스는 천칭저울의 두 접시가 이루고 있는 평형이다. 언뜻 보기에는 정(靜)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로 그것은 동(動)이다. 돌아가는 팽이는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밸런스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 지식인들의 오류는 그 맞물림을 해체해 버리는데 있다. 그들은 천칭저울의 두 날개를 떼서 각각 따로 놓아둔다. 왜? 그들은 밸런스를 정(靜)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팽이의 고요함을 멈추어 있는 팽이로 착각하는 것이다.

큰 파도를 만난 선장은 배를 전속으로 항진시킨다. 파도가 가진 에너지가 100이면 그 배가 파도의 방향과 직각으로 전진하여 맞서는 에너지가 100에 도달할 때 배는 밸런스를 얻는다. 평온하게 파도를 타고 넘는다.

밸런스는 정(靜)처럼 보이지만 동(動)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밸런스를 얻을 수 없다. 공중에서 제어하지 않으면, 물속에서 헤엄치지 않으면, 페달을 밟아 나아가지 않으면 결코 밸런스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의 진보는 반드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피드백과정을 거친다. 변혁은 A 단계의 완성 다음에 B 단계로 가는 이행하이 아니라 A와 B가 맞물려서 동시에 나아가야 비로소 그 전단계인 A가 완성되는 것이다.

역사상의 위대한 변혁은 모두 미완성인 상태로 출발하였다. A 단계가 51프로 진행되었을 때 이미 B 단계에 착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완벽한 이론은 없다.

어떻게 완성하는가? 일단 B 단계를 진행시키면서 거기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A 단계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샘플이 필요하고 모범이 필요하고 본보기가 필요하고 성공모델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전면시행이 아니라 ‘부분시행≫데이터 확보≫시행착오 발견≫오류시정≫전면확대’의 피드백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가역과정이 없는 모든 개혁은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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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무엇이 되느냐 보다 무엇을 할것인가’를 항상 생각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하다보니 대통령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정치권의 신당논의도 마찬가지다. ‘1) 당을 만든다. 2) 개혁을 한다’로 순서를 정해놓으면 당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51프로 진척의 미완성 상태에서 2단계를 시도해야 피드백에 의해 1단계가 완성된다.

당을 만들어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하다보면 당이 만들어진다.

아기가 말을 배울 때는 옹알이부터 시작한다. 옹알이는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 그 문장은 엉터리다.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엉터리 문장을 마구 지껄이다 보면 그 과정에서 단어가 완성되는 것이다.

외국어학습도 마찬가지다. ‘알파벳≫단어≫문장’의 순서는 틀렸다. 수영은 ‘자세≫진행’이 아니라 일단 진행하다 보면 나중에 자세가 잡힌다. 마찬가지로 엉터리라도 문장을 말하다보면 단어가 자리를 잡아간다.

영어사전은 by라는 단어 하나를 19가지 의미로 설명한다. 틀렸다. 단어의 의미를 알고 문장을 구성하려 하는 즉 진짜 의미를 알지 못한다. 단어는 포지션을 나타낼 뿐이고 문장에 의해 역으로 단어에 의미가 부여된다.

피아니스트는 먼저 음 하나하나를 치는 방법을 배우고 그 다음에 전곡의 연주에 도전한다. 이 방법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되든 안되든 일단 전곡을 연주해야 밸런스를 터득하고 밸런스를 터득해야 음 하나하나의 소리값을 알게 된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 주변의 일상생활에서 무수히 발견될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통합은 자세잡기에 불과하다. 자세를 잡으려 하는 즉 절대로 자세가 잡히지 않는다.  

100명의 군중을 나란히 한 줄로 세우려면? 줄을 세우려 하는 즉 줄이 세워지지 않는다. 100미터 앞에 있는 전봇대 기준으로 선착순을 시켜야 줄이 세워진다. 줄서기는 자리찾기다. 자리에서 이탈해야 자리가 찾아진다.

우리당이 망가진 이유는 개혁적 리더십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개혁을 해야 리더십이 만들어지고 리더십이 얻어져야 통합이 된다. 개혁을 해야 전방과 후방이 가려지고 전투부대와 보급부대가 제 위치를 잡아간다.

선통합 후개혁은 자전거 위에서 균형잡는 방법을 배우고 난 다음에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발상이다. 이 방법으로는 영원히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신당을 만든다는데 좋다. 그런데 그 당을 만들어서 무엇을 하지? 먼저 당을 만들고 그 다음에 무언가를 하려하는 즉 당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지금 시작해야 그 과정에서 당이 만들어진다.

신당의 목적은 정권재창출에 있다. 그런데 정권재창출해서 무엇을 하려는 거지? 그 하려는 무엇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정권재창출 못한다. 집권한 다음에 개혁하겠다는 식으로는 절대로 집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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