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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6335 vote 0 2006.08.21 (14:40:47)




우울하다.
김기덕 감독의 사죄문은 유서처럼 느껴진다.
그가 물리적 자살을 결심했는지
아니면 정신적 부활을 결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가 이렇게 기운을 잃고 죽어간다면
이 나라는 또 한 명의 천재를 살해하는데 성공한 거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는 늘 이런 식이다.
땅덩이가 큰 나라는 그렇지 않다.
넓은 나라 어느 구석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자유다.
불행하게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작다.
국토의 허리가 잘리고 대륙으로부터의 기운이 끊어졌다.
땅이 좁아진 만큼 그 나라 사람들의 가슴도 좁아졌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5분도 되기 전에 메아리가 들려온다.
개인의 작은 발언도 반드시 심판대에 올려져 인민재판을 한다.
프루크루테스의 침대는 도처에 널려 있다.
살아남으려면 완벽해야 한다.
인격을 닦아야 하고 학벌을 갖추어야 하고
원로님들에게 인사부터 드려야 하고
선배님들부터 찾아 뵙고 격려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지난번에는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뜬금없이 선배감독 임권택 감독을 찬양하기도 해야 했다.
이번에는 후배감독 봉준호에게 사죄문을 써야 했다.
성골도 진골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수모를 겪는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그것을 끝내 버리지 않고
부둥켜 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꼴을 다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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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얇고 섬세한 촉각이다.
예술가에게는 신(神)과 감응하는 촉수가 있다.
예술가가 그 촉수를 잃는다는 것은 죽음과도 통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정치가의 두꺼운 낯을 뚫고 나오는 수염이라 했다.
한국에서 예술가는 선배를 찾고 후배를 찾아야 한다.
이른바 정치라는 것을 해야 한다.
페이스오프라고도 했다.
살아남으려면 두꺼운 낯을 이식해야 한다.
그 두꺼운 낯을 뚫고 나오는 정치가의 수염을 길러야 한다.
섬세하고 가녀린 촉수를 버려야 한다.
신(神)과 소통하는 안테나를 잘라내야 한다.
예술이 죽어야 정치할 수 있다.
정치해서 촉수를 잃고 죽으나
예술을 고집하다 돌맞아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신의 선물이라 할
예술가가 특별한 촉수를 잃어버리고
정치가의 두꺼운 낯을 얻었을 때 이미 죽었다.
부끄러움을 잃고 수줍음을 잃고
분노를 잃고 한을 잃고 패기를 잃고 독기를 잃고
이상주의를 잃었을 때 천재는 이미 죽은 것이다.
해방구가 없고 소도(蘇塗)가 없고
출구가 없고 비상구가 없는 한국에서는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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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예술가는 죽는다.
페이스오프를 하기 전에는
두꺼운 낯을 뚫고 나오는 정치가의 수염이 없다는 이유로 죽고
페이스오프를 하고 난 뒤에는
신과 감응하는 예술가의 촉수를 잃었다는 이유로 죽는다.
돌맞아 죽고 욕먹어 죽고 따돌려 죽고
아홉가지 죽음의 코스를 고루 맛보고
페이스오프를 하고 최후에 죽는다.

    


마음으로 그려봐요

천국이 없는걸 상상해봐요
하려고 한다면 그건 쉬운일이죠
발아래 지옥도 없고
우리 위엔 하늘만이 있는
마음으로 그려봐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나라란게 없다고 상상해봐요
하려하면 힘들지 않아요
죽이거나 죽음도 없고
종교도 없는
마음으로 그려봐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삶을 살아가는 것을

당신은 내가 공상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만 이렇게 꿈꾸는게 아니죠
언젠간 당신도 우리와 합류해서
세상이 하나가 될거죠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당신이 할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탐욕과 굶주림에 대한 필요도 없고
인류애로 뭉치는
마음으로 그려봐요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가진걸 나누는 것을

당신은 내가 공상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만 이렇게 꿈꾸는게 아니죠
언젠간 당신도 우리와 합류해서
세상이 하나되어 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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