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환멸을 느꼈다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다. 대중이 아니라.
대중은.. 가공되지 않은 보석의 원석과도 같다. 아주 뛰어난 장인만이 깎을 수 있다는. 그래서 나는 다만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다.
누가 과연 저 다이아몬드를 깎아낼 수 있는가? 누가 과연 저 사납고 힘센 말을 길들일 수 있겠는가?
대중은 거친 황야와도 같다. 모험가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황야의 거칠음을 탓하는 바보는 없다. 황야는 매력적인 곳이다.
오르고 싶은 봉우리, 건너고 싶은 바다... 대중을 두려워 하는 자는 바보다. 그들이 대중을 두려워 하는 것은 대중을 통제할 수단으로 교양을 택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원래 교양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 신무기라는 물적 토대에 의해서만 통제된다. 그것도 일시적으로만.
대중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이야기 하고.
내가 환멸을 느낀 것은 인간이라는 무력한 존재.. 레바논 사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을 내놓을 수 없는.. 별 수 없는 인간.. 그 인간의 한계.
저쪽에서는 어린이가 죽어 가는데.. 우리는 오늘도 코미디나 보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시시덕거려야 하는.. 그건 너무나 우스꽝스럽지 않나?
그 비애감이라니.. 처참하지 않나? 인간이라는 무력한 존재의 실존적인 어떤 참담함.. 모든 것을 다 알지만 머리로만 알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시 원숭이의 지배를 받는 불쌍한 지구인들.. 그 부시에게 딸랑거려야 하는 고이즈미 원숭이의 가련함.
때로는 .. 그나마 이스라엘이 있었기에 아랍이 그 정도 각성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한다. 이건 역설이다.
아랍은 지금 2천년 전의 예수처럼 지구의 불행의 무게를 혼자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잔인한.
레바논은 그래도 형편이 좋은 편이다. 남아공 등지에서 수년 내에 에이즈로 5천만명이 죽어갈 것을 생각하면..
인간은 무력한 존재다. 인도에서는 앞으로 20년 내에 2000만명 이상이 에이즈로 죽겠지만 인도정부는 아무 대책이 없다.
인도라는 곳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와도 같기 때문에 그 나라의 총리라는 자는.. UN사무총장처럼 무력한 자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코피 아난이 노상 부시에게 밀리며.. 그 수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듯이.. 맘모한 싱도 아무 생각없이 그냥 하루를 허무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인도인들은 인도 바깥에서 일어난 일에 관심을 끊고.. 우리가 레바논 사태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듯이 인도의 내전과 재앙을 허무하게 바라보고 있다.
나라가 너무 크고 인종구성이 다양하다 보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립각을 세울 적절한 위치를 찾지 못해서 그리 된 것이다.
지금이 2차대전 때라면.. 지식인의 지옥이다. 전쟁의 참화..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시를 쓰겠나? 사랑을 노래하겠나? 미인의 아름다움을 반겨하겠나?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재앙이다. 시(詩)도.. 소설도.. 사랑도.. 행복도.. 음악도 예술도 .. 그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드는 전쟁..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모욕이다.
무엇인가? 그 대상은 신(神)이다. 나는 대중이라는 보물의 원석을 끌어안고 신의 시선의 그 무심함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나의 진짜 관심사이다.
그것은 종교를 믿지 않는 나의 종교와도 같다.
지식인은.. 그리고 엘리트는 대중을 경멸하는 방법으로 집단 내부에 봉건적 위계질서를 만들려고 한다. 부단히 그러하다.
16세기에 왕과 귀족 그리고 기사와 농민.. 그것이 변해서 지금은 재벌과 강남, 엘리트와 대중으로 재질서화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질서를 파괴하여 보다 무질서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그 모두를 통일하여 신의 전횡에 맞서 대적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포지션에 불과하다. 거기에 지나친 의미부여는 곤란하다. 그것은 내 존재의 미학일 뿐이다.
남들이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대중이 어떻고.. 그건 웃기는 소리이고.. 내겐 단지 미학이라는 나침반이 있을 뿐이다.
이쁜건 이쁘다 하고 재수없는건 밉다하고 그게 나의 전부다.
하이쿠의 미학.. 옛 우물에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여기에는 정(靜)과 동(動)의 대결이 있다. 옛 우물이 정이면 개구리는 동이다.. 그리고 평형. 거기서 긴장감.
산수화라면 산이 정이고 물이 동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에 그러한 평형과 긴장감이 있다. 그 첨예한 긴장의 위치를 어디에 두는가?
사람들은 내가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 반대다. 대중이라는 비빌언덕에 등을 기대고 누워서 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예수는 기독교 신도가 아니다. 예수가 지금 태어난다면 기독교를 믿겠는가? 오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