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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386 vote 0 2006.07.31 (18:11:23)

(달마실 게시판 질문에 대한 답글임)

황박 이야기 그만합시다. 양날을 가진 사건인데.. 사람들은 한쪽 날만 보려고 하지요. 아무도 본질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본질은 복잡한 문제이고.. 솔직히 부담스럽거든요.

본질은 ‘계급문제’입니다. 황까나 황빠가 되는 것은 자신의 출신성분에 따라 사전에 정해져 있어요. 황까들 하고는 이야기 안하는데.. 계급이 다르면 적이므로 상종 안하는 겁니다.

황빠들 중에도 또라이들이 문제입니다. 황우석을 고리로 서울대를 패고, 기득권을 패고, 주류질서에 반기를 드는 것이 목적인 만큼.. 그 정도 했으면.. 체면을 세운 걸로 하고 물러설줄을 알아야지.. 황우석이라는 사람 개인에 집착한다면 도무지 생각이 없는 겁니다.

자신이 주류에 속한다고 믿는 사람은.. 황우석이라는 주류질서에 대한 교란요소를 퇴치한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고.. 자신이 비주류에 속한다고 믿는 사람은 황우석을 이용해서 주류 질서를 교란하려고 하는 거지요.

주류질서와 아웃사이더의 부단한 싸움.. 바로 그것이 역사입니다. 역사는 사회의 질서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역사의 흐름에 맞는 최적화된 형태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 그 자체입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과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지요.

나는 반골이므로.. 황우석이 죽든 말든 그건 내 알바 아닌 거고.. 노자의 가르침에 따라 무위로 작위를 깨고, 카오스의 힘으로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데 목적이 있는 만큼.. 그 정도 때려줬으면 목적 달성한 겁니다.

결론은 휴머니즘입니다. 이건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사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인데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요즘 괴물이 뜨니까 괴물 이야기로 돌려보지요. 황박이 마땅히 죽어야 할 괴물이라면 왜 관객들은 괴물이 죽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까요? 이것이 나의 사회에 대한 시비걸기입니다.

괴물은 아직 안봤지만.. 평론가들의 개소리를 들으니 짜증이 나는군요. 가족주의 영화라고 떠벌이는 자들도 있고.. 반미영화라고 떠벌이는 자들도 있는데 멍청한 소리입니다.

차라리 왕의 남자가 동성애 영화라고 주장하세요. 왕의 남자가 전혀 동성애 영화가 아니듯이.. 괴물은 가족주의도 아니고 반미도 아닙니다.

괴물이 가족주의라고 믿고 이를 모방한 아류 가족주의 영화를 만들거나.. 괴물이 반미영화라고 믿고 이를 모방한 아류 반미영화를 만들면 흥행할까요? 천만에!

반미영화? 아무도 안봅니다. 가족주의? 헐리우드 영화의 그 지긋지긋한 가족주의 말입니까? 재수없지요. 전혀 아닙니다.

예컨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북한의 병사들은 의사가족을 이룹니다. 이들은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 이상으로 가족같죠. 그들이 작은 지하벙커 안에서 형님동생 하는건 가족과 같은 거에요.

실미도의 주인공들도 오래 섬에 갇혀 있다보니 가족 비슷하게 서로간에 정이 들지요. 태극기 휘날리며도 그렇고.. 동막골의 남북한 병사와 미군 병사도 가족 비슷한데 이 역시 가족주의 영화입니까? 아닙니다.

가족이 소재로 등장했을 뿐 가족주의가 본질은 아니고.. 동성애가 소재로 등장했을 뿐 동성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아닙니다. 그건 곁다리로 껴들은 거에요. 본질은?

결국 국가 대 개인의 대결입니다. 더 나아가서 시스템 대 개인입니다.

실미도에서 주인공들은 국가로부터 버려졌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도 국가를 배반하고 북한 편에 붙었는데.. 국가 대 가족으로 설정은 했지만 이는 감독이 바보감독이라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고.. 본질은 시스템 대 개인의 싸움입니다.

동막골도 그렇고 JSA도 그렇고 사회 시스템 대 개인입니다. 물론 개인이 아니라 가족일 수도 있고.. 소수의 어떤 집단일 수도 있고, 동아리일 수도 있고, 하여간 국가 혹은 시스템에 대항하는 일군의 사람들입니다.

국가, 시스템이 질서라면 이 가족 혹은 시스템에 반기를 든 일단의 반역한 무리들은 무질서죠. 즉 질서와 무질서의 대결입니다. 질서를 숭상하는 유교와 무질서를 숭상하는 도교의 대결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예술은 질서를 숭상하는 유교주의 대 무질서를 숭상하는 도교주의의 대결에서 도교가 승리하는 공식입니다.

태극기, JSA, 동막골, 실미도, 괴물, 왕남의 공통점은? 첫째 대박이 났다는 점, 둘째 국가 혹은 사회, 혹은 조직, 혹은 시스템, 혹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기를 들었다는 겁니다.

왕남.. 장생과 공길은 연산군의 명령을 거부했다.
실미도.. 주인공들은 국가, 사회, 조직의 명령을 거부했다.
태극기.. 장동건은 국가의 명령을 거부했다.
동막골..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놀았다.
JSA..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놀았다.
괴물.. 사회의 시스템이야 말로 진짜 괴물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이들 대박난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시스템 질서가 내리는 명령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놀아난 사회의 이단아 들입니다.

이는 카우치가 공연 중에 옷을 벗어버린 것과 유사하고.. 지단이 시합 중에 박치기를 한 사건과 유사합니다. 질서를 교란한 거죠.

그래서 저는 카우치를 옹호하고 지단을 옹호하는 것입니다.(지단을 비난하고 카우치를 비난하는 쓰레기들과는 함께 인생을 논하거나 예술을 논할 수 없지요.)

시스템의 압박에 대한 유쾌한 도발은 쾌감을 안겨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영화로 대박을 보려면.. 무조건 개인 혹은 가족.. 혹은 작은 무리가 국가 혹은 조직 혹은 주류질서 혹은 시스템에 반기를 들게 해야합니다.

왜? 그것이 휴머니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라는 수상한 존재를 탐구하는 영화.. 인간에 대한 재발견의 성취을 달성하는 영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영화.. 인간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영화.. 약하디 약한 존재인 인간이 알고보니 강한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영화.. 이런 영화가 히트합니다. 그것이 휴머니즘입니다.

그렇다면 반휴머니즘은?
시스템의 완력으로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는 부시짓입니다.

시스템과 인간의 대결.. 지난 수천년간 지속된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공통적으로 휴머니즘에 기대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소설(로망스)이 사랑을 주제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본질에 가까운 것이지요.

왜 스필버그는 욕을 먹는가?
왜 나는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에 ‘조까’를 먹이는가?

이 자는 세계를 선과 악으로 나누고.. 카오스를 악으로 규정한다음 카오스를 퇴치하는 것을 선으로 삼는 즉.. 악한 질서 대 선한 질서의 대결에서 나쁜 질서의 패배, 선한 질서의 승리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런 관점 그 자체가 바로 괴물입니다. 세계를 선과 악으로 2분 하는 시각 자체가 진짜 괴물이에요.

예컨대 남산에 호랑이가 나타난다면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설레발이 치는 자칭 질서의 수호자들이 바로 괴물입니다.

한강에 악어가 산다면? 그 악어를 죽여야 하는가?

김기덕이 이런 질문을 던졌지요. 봉준호 괴물의 역시 김기덕의 악어와 같습니다. 괴물은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교란요인입니다. 그 괴물을 죽이면 안됩니다.

괴물이 죽으면 인간도 죽기 때문에 괴물을 죽이면 안됩니다. 헤즈볼라를 죽이면 안되고 탈레반도 죽이면 안됩니다. 헤즈볼라를 죽이고 탈레반을 죽이는 부시가 더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왕의 남자가 동성애 영화라 믿고 왕남 아류 동성애 영화를 찍으면 망합니다. 왜? 왕의 남자는 본질에서 동성애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JSA가 남북문제를 다루고 가족주의를 강조한 영화라고 해서.. 그런 영화 찍으면 태풍 망하고 한반도 주저앉습니다. 왜? 그건 착각이기 때문입니다.

왜 태풍이 망했을까? 왜 한반도가 생각만큼 흥행이 안될까? 동막골, JSA, 태극기의 흥행요인을 잘못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남북문제를 다루고 애국주의를 강조하면 먹힌다? 천만에!

주류질서를 숭상하고 질서에 반하는 반골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공공의 적에 보여지는 강우석의 사고방식 그 자체가 바로 괴물입니다.(공공의 적은 최악의 영화이다... 보고 재밌다고 박수치면 자동으로 머저리로 낙인이 찍히는..)

주제와 소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제는 본질이지요. 괴물이 가족주의 혹은 반미영화라는 평론이 나오는데.. 그 말이 맞다면 같은 내용의 아류작이 흥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괴물 아류의 가족주의 혹은 반미영화 만들면 백프로 망합니다. 흥행하려면? 홀로 혹은 소규모로 시스템과 싸우는 개인 혹은 소수의 무리들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왜? 그것이 휴머니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재발견이어야 합니다. 시스템의 폭력에 맞서는 강한 개인이어야 합니다. 아직 괴물을 안봤지만 아마 맞을 것입니다.


덧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합니다. 퍼즐이 점차 맞아들어가는 것이 질서라면 그 퍼즐조각 낱낱은 무질서죠.

퍼즐을 맞추려고 하는데 마침 조각 하나가 안맞고 있다면.. 그 하나의 조각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보고 있다면.. 그 안맞고 말썽 피우는 조각 하나를 부숴버리면 되나요?

휴머니즘은 한쪽 다리가 아파서 잘 걸을수 없다 할지라도.. 그 아픈 다리를 잘라내는 것이 정답이 아니며.. 그 아픈다리를 끌고.. 부둥켜 안고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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