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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562 vote 0 2006.06.17 (19:50:58)


구조론과 양자이론

양자역학은 정합성의 문제에 가로막혀 있다. 실험결과는 이론과 일치하나 이론들은 개별적으로 토막나 있어서 하나의 기준으로 전체를 일관되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가운데는 비워둔 채 토막난 부스러기 이론들이 띄엄띄엄 놓여져 있는 모습이다. 이는 명백한 실험결과들을 토대로 귀납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역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내적인 긴밀성과 정합성을 얻어서 이론적으로 완전해진다.

구조론에 의해 양자역학의 풀리지 않은 제 문제들이 정합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단서가 얻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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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에서 양자의 개념은 구조론의 평형개념과 닮아있다. 양자개념의 핵심은 물리량이 불연속적으로 나타난다는데 있다.

구조론의 평형은 작용과 반작용의 평형이다. 작용의 힘과 반작용의 힘이 맞서면 이미 힘이 둘이므로 정수배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양자(量子, quantum) : 물리량이 연속값을 취하지 않고 어떤 단위량의 정수배로 나타나는 비연속값을 취할 경우, 그 단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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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는 ‘에너지의 다발’로 표현된다. ‘다발’의 개념 역시 구조론과 닮았다. 구조론에서 물질은 질, 입자, 힘, 운동, 양으로 나타난다. 양의 다발은 운동, 운동의 다발은 힘, 힘의 다발은 입자, 입자의 다발은 질이다.

양자가 양이 다발을 이루어 입자의 성질을 얻는다는 점에서 귀납적 접근이라면 구조론은 질에서 입자, 입자에서 힘, 힘에서 운동, 운동에서 양으로 전개하여 최종적으로 양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연역적이다.

● 양자역학 : 양 → 입자
● 구조론 : 입자 → 양

요는 어떤 원리로 인하여 양이 다발을 이루는가이다. 구조론에 따르면 평형원리에 의해 다발을 이룬다. 구조론에서 입자는 내부에 구심점을 가진 에너지 계의 평형상태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계의 평형을 이룬 것이 곧 입자다.

양자이론이 실험으로 관측하여 알아낼 뿐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구조론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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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의 핵심적 성질은 불연속성이다. 구조론에 따르면 에너지는 어떤 계에서든 항상 평형을 이루기 때문에 언제나 불연속적일 수 밖에 없다.

구조론에 따르면 물질은 질에 의한 입자의 평형, 입자에 의한 힘의 평형, 힘에 의한 운동의 평형, 운동에 의한 양의 평형을 이룬다. 평형을 위해서는 둘 이상이 집적해야 하므로 언제나 다발의 형태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론의 불연속성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바와도 일치한다.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끝이 나고 아기는 새로 태어난다. 이는 불연속성이다.

숲의 나무들도 들판의 동물들도 일정한 개체의 숫자를 가지고 있다. 즉 낱낱이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 한 그루의 나무와 한 마리의 동물 안에서 세포들도 낱낱이 독립되어 있다. 항상 단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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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에 따르면 존재는 항상 평형을 이루고 있다. 어떤 계가 존재하여 있을 때 외부에서 작용을 가하면 평형이탈이 일어난다.

이때 질에서 입자, 그리고 힘, 운동, 량의 순서로 평형이탈이 일어난다. 입자, 힘, 운동, 량의 세계는 그 평형이탈 과정에서 관측된다.

질의 평형이 붕괴되었을 때 외부에서 입자가 공급되면 평형이 회복된다. 입자가 붕괴되었을 때는 힘이, 힘의 붕괴에는 운동이, 운동의 붕괴는 양의 공급이 다시 평형을 회복시킨다.

그러한 평형이탈과 평형회복의 진행은 새로운 계의 평형을 찾을 때 까지 진행되며 그러한 과정의 진행 자체가 또한 계의 평형을 이룬다.

예컨대 쏜 화살이 날아가는 이유는 날아가야지만 전체적인 계의 평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화살은 하나의 입자이다. 입자보다는 질이 먼저다. 그 질은 화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나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한다.

화살과 화살주변을 합친 전체적인 계의 평형이 존재한다. 활의 격발에 의하여 그 계의 평형이 깨어졌기 때문에 화살은 진행하여 나아간다. 화살이 진행함으로써 계의 평형이 이루어진다.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이 문제는 입자와 파동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졌다. 구조론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가지 갈피를 동시에 가진다. 즉 존재는 질이면서 입자이고 동시에 힘이면서 운동이고 양이다.

내적 평형을 이룬 계가 존재하며 외계에서 질로 개입하면 질로 반응하고, 입자로 개입하면 입자로 반응하고, 힘으로 개입하면 힘으로 반응하고, 운동으로 개입하면 운동으로 반응하고, 양으로 개입하면 양으로 반응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레벨이다. 관측하기 위해서는 개입해야 한다. 외계에서 개입할 때 어느 레벨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두 레벨로 동시에 개입할 수는 없으므로 다섯 중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질은 입자의 모습으로 혹은 운동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둘이 동시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는 어떤 물체를 계량할 때 저울로 무게를 달든지 됫박으로 부피를 계량하든지 자로 길이를 측정하든지 하나를 선택해야 함과 같다.

존재는 측정되며 측정하기 위해서는 측정도구가 있어야 한다. 됫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를 떼야 하고, 저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됫박을 제거해야 한다.

둘 이상의 측정수단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자의 부피가 됫박의 계량에 포함되고 됫박의 무게가 저울의 측정에 포함되어 값이 왜곡되는 것이다.


파동이란 무엇인가?

예컨대 1키로의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천칭저울의 반대편에도 1키로의 질량을 올려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반대편에 올릴 1키로의 물체가 없다면?

100그램 밖에 없다면? 그 경우 저울의 한쪽 날개의 길이를 10배로 늘려야 한다. 즉 중력에 따른 운동량을 증가시켜서 평형을 이루는 것이다.

파동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평형을 이룬 계의 한 쪽이 평형을 잃고 붕괴되었을 때 다시 평형을 회복하기 위하여 증가되어야 하는 일의 양을 나타낸다.

파동(波動)은 입자 단위로 성립한 계의 평형이 무너졌을 때 이를 복원하기 위하여 그만큼 증가되는 일의 진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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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가 있다. 시소의 양쪽에 각 두명씩 앉아 평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오른편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시소에서 내려버렸다. 이때 시소는 계의 평형을 잃고 새로운 계의 평형을 찾아 왼쪽으로 급속히 기울어진다.

이때 시소가 기울어지지 않게 하려면? 아직 남아있는 한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의 팔을 잡아야 한다. 그 경우 지나가는 사람이 시소로 끌려가게 된다.

이때 지나가는 사람이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지나가는 또다른 사람의 팔을 잡는다. 그 사람 역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또다른 사람의 팔을 잡는다. 이런 식으로 연속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파동이다.

시소는 지상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섯사람 정도가 잡아주면 시소의 평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허공에 떠 있다면?

투수가 던진 공이 허공 중을 진행하는 것도 이와 같다. 시소의 계의 평형이 무너져서 연속적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 시소는 허공에 떠 있기 때문에 끌려간다. 투수가 던진 공은 그렇게 허공을 날아간다.

도미노가 연속적으로 쓰러지고 있다. 이때 파동만 전달될 뿐 도미노는 진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지구의 중력이 도미노를 잡아주기 때문이다. 지구의 중력이 잡아주지 않으면? 도미노가 직접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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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이 연속적인 진행을 하는 이유는 에너지가 반복적으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진은 단 한번 일어난다. 쓰나미는 파동이지만 단 한 번 밀려온다.

달의 크레이터는 하나의 자국을 남긴다. 연속적인 파동은 원래 없다. 우리가 연속적인 파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연속적으로 에너지가 공급된 적 무수히 많은 파동의 집합일 뿐이다.

하나의 파동은 불연속적으로 존재한다. 제 1파가 있을 뿐 제 2파는 없다. 바다의 파도는 많은 파동의 집합일 뿐이다.

파동의 확산 역시 착각일 뿐이다. 파동은 사방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1 방향으로 직진한다. 호수에 던져진 돌은 사방으로 파문을 그리지만 이는 많은 호이겐스의 원리에 따른 많은 파동의 집합이다.

우유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호이겐스의 원리에 따라 크라운 현상을 빚는다. 이때 우유는 파심을 따라 동심원을 그리며 20여개의 작은 물방울을 만든다.

즉 20여개의 파동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호이겐스의 원리에 따라 20여개의 파동이 간섭효과로 합쳐져서 제 1파를 만드는 것이다. 제 1파는 안과 밖의 양쪽으로 전개한다.

이때 안쪽으로 전개한 파동이 중심에서 만나 충돌하고 반사되어 제 2파를 만든다. 제 2파의 조각이 다시 파심에서 만나 제 3파를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파도를 만드는 매질이 물이기 때문이다. 유체에 한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든 파동이 이러한 현상을 만드는 것은 전혀 아니다. 고체들은 제 1파로 끝나버린다.

바다의 파도는 중력이라는 매질을 이용하고 있다. 중력이 물을 잡아준다. 그 때문에 물은 중력의 반대방향인 공중으로 솟았다가 다시 그 반작용에 의해 지구 중심쪽으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솟아오르기를 반복한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상하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는 중력 때문이다. 그런데 중력이 없다면? 매질이 없다면? 연속적인 파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빛과 전자가 불연속적인 파동이 되는 것은 파도나 음파와 달리 중력으로 잡아주는 매질이 없기 때문이다. 즉 매질이 있는 경우는 진정한 파동이 아니다.

음파는 공기를 매질로 이용한다. 공기입자는 질량을 가지고 있고 그 질량은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공기는 중력에 잡혀 제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파동은 보이지 않으나 파심을 가지고 있다. 간섭효과에 의해 파심이 상쇄되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 파동의 확산은 간섭효과에 의해 파심이 해체되는 현상이다. 모든 파동이 확산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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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파도는 지구의 중력 때문에 일어난다. 즉 외부에서 매질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한 파동은 매질이 없기 때문에 반복적이고 연속적인 형태를 띠지 않는다.    

파동은 연속적이지 않다. 파동은 불연속적이다. 파동의 연속성은 파심을 관찰하기에 실패한데 따른 오해에 불과하다.

우유가 한 방울 떨어졌을 때 크라운 현상에 의해 튀어오른 우유방울 숫자만큼의 파심이 존재하며 그 각각의 파심은 불연속적으로 존재한다. 그 파심은 곧 우유들에 묻혀서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연속적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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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과 입자의 차이는 구심점이 외부에 있는가 내부에 있는가이다. 구심점을 외부에서 빌리면 파동이고 구심점을 내장하고 있으면 입자다.

음파는 공기를 매질로 빌리기 때문에 파동이고 바다의 파도는 지구의 중력을 빌리기 때문에 파동이다. 즉 매질을 외부에서 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다의 파도를 보고 파동을 연상함은 잘못이다. 가장 정확한 파동의 모양은 시계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계추는 축에 잡혀 있다. 좌우로 왕복하기를 반복한다. 마찰력이 없다면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파동이다.

시계추는 축에 고정되어 있다. 즉 구심력과 원심력이 평형을 이루고 존재하는 것이다. 시계는 내부에서 운동하고 있지만 외부에서는 그 운동이 관찰되지 않는다. 이 상태는 입자다.

● 질 - 시계 내부가 보이지 않는 상태
● 입자 - 축이 추를 붙잡고 있는 상태
● 힘(파동) - 추가 원심력에 따라 축에서 멀어졌다가 구심력에 따라 다시 반대방향으로 진행하기를 반복하는 상태.
● 운동 - 추가 원심력 혹은 구심력을 받아 축에서 멀어지거나 혹은 가까워지는 쪽으로 진행하는 상태.
● 양 - 추의 현재 위치에서 추가 가진 에너지의 값.

구조론에 따르면 파동이냐 입자냐는 추가 축을 얻었느냐 얻지 않았느냐로 판단한다. 축은 곧 구심력이다. 구심력을 잃으면 파동이고 얻으면 입자다.

빛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는 것은 빛이 구심점을 잃었기 때문에 진행하지만 그러한 진행에 의해 구심점이 순간적으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빛을 측정하는 실험자의 행위가 빛의 운동을 방해하게 된다. 그 결과로 빛은 구심점의 획득에 실패하게 되어 입자의 성질은 소멸하고 파동의 성질만 관측된다.

파장이 짧은 빛은 실험자의 간섭이 적기 때문에 입자의 성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파장이 클 경우 그만큼 실험자의 간섭이 커지기 때문에 파동의 성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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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를 시각화 하는 것이다.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시각화하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왜곡이 일어난다. 파도나 음파의 이미지는 시각화된 것이고 시각화 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게 염색해야 한다.

그 염색을 위하여 매질이 동원된다. 음파는 공기의 질량이 매질이 되고 파도는 지구의 중력이 매질이 된다. 붙잡아주는 것이다. 구심점이 없어야 파동이 진행하는데 매질이 구심점 역할을 대신해준다.

이런 식으로 염색된 존재는 가짜다. 우리가 이미지를 그려 시각화 한 파도는 가짜 파동이다. 진짜 파동은 보이지 않는다.

입자와 파동은 시계추와 축의 관계와 같다. 추는 원심력으로 축에서 멀어지려 하고 축은 구심력으로 추를 붙잡는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평형을 이룬다.

이때 축과 추를 합친 전체를 바라보면 입자다. 축의 존재를 무시하고 추만 존재한다고 가정하기로 치면 파동이다.

파도는 중력이 축의 역할을 대신하고 음파는 공기의 질량이 축의 역할을 대신한다. 파동을 연구하는 학자는 지구의 중력이나 공기의 질량은 무시하고 운동부분만 관측하여 파동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파동에는 반드시 축이 존재한다. 매질이 있는 파동은 축을 외부에서 조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파동의 이미지는 염색된 가짜다. 순수한 파동에는 매질이 없다. 이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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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은 순수 추상의 세계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자연의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부분을 받아들이고 보면 파동의 시각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계 전체는 질이다. 질은 시계추와 축을 연계시켜 둘 사이의 긴밀성을 유지한다. 질에 의해 추와 축은 공존하게 된다.

진자의 등시성을 만드는 시계추와 추를 잡아주는 축 상호간에 작용하는 구심력과 원심력의 평형은 입자다.

원심력에 의해 축에서 멀어지기와 구심력에 의해 축에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진자의 반복적 운동은 힘이다. 곧 파동이다.

축과 추의 관계를 온전히 무시하고 축의 순간적인 진행만 관측하면 운동이다. 즉 진자의 반복을 무시하고 일방향으로 진행하는 1초를 잘라내어 그 부분만 관측하면 운동이 되는 것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물질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가지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 문제는 자동으로 해소된다.

구조론에 의하면 물질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가지 모습을 가지지만 이 모습들을 동시에 나타내지는 않는다. 이들은 각각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이다.

질로 관측하면 질로, 입자로 관측하면 입자로, 힘으로 관측하면 힘으로, 운동으로 관측하면 운동으로, 양으로 관측하면 양으로 나타난다.

이 부분은 빛이 때로는 입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파동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두 성질을 동시에 나타내지 않는 현상과 일치한다.


빛 입자의 진행

어떤 물질이 앞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구심점의 위치가 중앙보다 앞에 있어야 한다. 이는 절대적이다.

모든 운동은 평형이탈에 의해 일어난다. 구심점이 중앙에 있다면 평형이다. 이 경우 운동은 성립하지 않는다.

구심점이 뒤에 있다면 뒤로 진행하고 앞에 있다면 앞으로 진행한다. 진행방향을 앞이라고 부르므로 구심점은 항상 앞에 있다.

예컨대 KTX 열차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갈 때는 전진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 때는 후진하지만 이때 앞과 뒤의 이름을 바꾸기 때문에 KTX는 언제나 전진할 뿐 후진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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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심점이 앞에 있다. 이때 반전된다. □□■□로 된다. 다시 반전된다. □■□□로 된다. 이러한 반전의 과정을 되풀이 한다.

반전되는 이유는 빛의 진행에 의하여 주변의 공간 □이 순간적으로 계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긴 파장의 빛은 □■□□□□에서 □□□□■□으로 길게 반전된다. 즉 파장의 꼬리가 되는 □의 숫자가 더 많다. 긴 파장의 빛은 간섭효과를 잘 일으킨다. 그것은 긴 꼬리가 닿기 때문이다. 짧은 파장의 빛은 꼬리가 닿지 않으므로 간섭효과를 잘 일으키지 않는다.

빛이 입자와 파동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성질을 나타내는 것은 진행하면서 순간적으로 평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가 유한한 것도 이와 같은 원리다. 구심점과 원심점이 위치를 바꾸는 작용과 반작용으로 진자의 등시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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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해 있는 고체입자라면 □■□로 구심점이 중앙에 위차한다. 운동하는 고체입자는 ■□□로 항상 구심점이 앞에 있다. 이때 공간 자체가 □가 된다.

운동하는 물체는 ■□에서 □■으로 반전되었다가 다시 □■으로 반전된다. 반전되는 이유는 평형의 원리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모든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는 무한대가 되어야 한다.

물질이 아무리 가속을 해도 일정한 속도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이러한 반전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에서 □■으로 바뀌는 단위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시계추가 길이에 따라 일정한 비례로 등속도운동을 하는 이유와 같다. 시계추에 강한 힘을 가하면 그만큼 축으로부터 추의 운동거리가 길어져서 갔다가 되돌아오는 시간 역시 길어지므로 평형이 이루어지므로 결국 속도는 일정하다.


입자란 무엇인가?

문제는 입자나 파동을 머리 속에서 이미지로 그리려 한다는데 있다. 또는 자연에서 눈으로 본 것과 연결시키려 한다는데 있다.

구조론의 점, 선, 면, 입체, 공간은 우리가 자연에서 보는 것과 반대로 되어 있다. 즉 우리는 사진의 음화처럼 반전된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존재의 실재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구조론의 점은 크기가 없다.

● 우리가 생각하는 점 : 아주 작은 크기
● 구조론의 점 : 두 당구공이 맞닿는 접점.

점이 크기가 없으므로 점의 집합인 선도 크기가 없다. 선의 집합인 각(면)도 크기가 없고 각의 집합인 입체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이건 그림으로 그리기 어렵다. 시각화 할 수 없다. 순수한 추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설명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입자라고 하면 보통은 원자를 떠올릴 것이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알갱이다. 그런데 더 이상 쪼갤수 없다는 말 자체가 모순되어 있다.

쪼갤 수 없는 것은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소립자는 알갱이가 아니다. 두 힘이 맞물려 있는 상태이다. 구심력과 원심력의 평형이다.

입자라는 것은 외계에서 입자단위로 개입할 때 역시 입자단위로 대응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작용에 대해 반작용을 하는가이다.

빛 입자에 마주 대고 빛을 쏘아주어 두 빛 입자를 충돌시키면 서로 통과해 버린다. 반작용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편에서 빛은 파동이라고도 주장하는 것이다.

어떤 조건에서는 빛이 반작용을 나타낼 때도 있다. 이번에는 파동이 아닌 입자라고 한다. 빛은 반작용을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입자이면서 파동이라고 한다.

구조론에 따르면 모든 입자는 파도을 내부에 포섭하고 있다. 파동을 감추고 있지 않은 입자는 없다.

구조론에 따르면 물질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빛의 이중성을 예언하고 있다. 그런데 구조론에 따르면 이중성이 아니라 5중성이다.

입자라는 것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 자연에는 입자가 없다. 단지 구심력과 원심력의 평형이 있을 뿐이다. 입자가 둥근 모양을 갖지도 않는다. 둥근 입자라는 발상은 태양계의 별들을 관찰한 결과로 인한 연상작용의 결과일 뿐이다.

원자가 태양계를 닮았고 전자는 수성이나 금성 지구 화성 따위 행성과 같고 원자의 핵은 태양과 같다는 상상은 순전히 상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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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의 원리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주먹으로 벽을 타격할 때 그 힘의 크기가 100이라면 벽 역시 같은 힘으로 내 주먹을 타격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벽은 깨져버린다.

이때 내 주먹의 때리는 힘과 벽의 맞서는 힘이 평형을 이룬다면 그러한 평형 자체가 입자다. 그것을 우리가 입자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먹을 휘둘러 1회 벽을 타격할 수 있을 뿐 주먹으로 벽을 치는 그 상태로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 상태로 계속 유지하고 있다면 입자다.

예컨대 인간의 건축은 모두 지구 중심에 수직방향으로 맞서 있다. 위에서 내리누르는 힘과 아래의 버티는 힘이 맞서 있다. 이는 입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내부에 구심점이 없으므로 독립적인 단위로 외계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입자는 아니다. 만약 내부에 구심점이 있다면 입자다.

자이로스코프를 내장하여 회전하는 팽이는 줄 위에서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내부에 구심점을 형성한 것이다. 이는 일종의 입자와도 같다.

빛과 같은 소립자들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순간적으로 입자를 성립시킬 뿐이다. 빛이 진행하는 이유는 정지했을 때 입자의 유지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주먹으로 벽을 칠 때 그 주먹과 벽의 충돌순간만 입자이고 그 직후부터는 입자가 아니다. 빛도 마찬가지로 진행하는 동안만 입자이고 진행을 멈추는 즉시 입자가 아니게 된다.


입자와 파동

구조론에 따르면 입자로 충돌시켜 측정할 수 있으면 입자이고 파동으로 충돌시켜 측정할 수 있으면 파동이다. 입자는 입자와 충돌하여 반작용을 낳고 파동은 파동과 충돌하여 간섭효과를 낳는다.

날아가는 공을 다른 공으로 충돌시켜 그 반응을 보고 입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예컨대 그림자가 지나갔다면 그림자에는 충돌시킬 수 없다. 입자가 아니다.

● 시계추 - 파장이 길다. 구심점의 위치가 중앙이 아니다.
● 야구공 - 파장이 짧다. 구심점의 위치가 중앙이다.

당구공을 던져 야구공을 맞춘다면 언제든지 공의 중심에 맞출 수 있다. 그런데 날아가는 벽시계를 맞춘다면 사정이 다르다.

시계추의 중심축과 거기서 멀어진 추의 간격이 떨어져 있다면 그 중 어느 부위에 맞느냐에 따라 입자가 되기도 하고 파동이 되기도 한다.

빛은 파장에 따라 입자의 성질이 더 강한가 또는 파동의 성질이 강한가가 결정된다. 파장이 짧은 빛일수록(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입자처럼 행동한다. 파장이 길수록(적외선,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파동처럼 행동한다. 그 사이에 있는 빛(보파초노주빨)은 이중적으로 행동한다. 빛 중에서도 파장이 짧은 보라나 파랑은 빨강에 비해 입자의 성격이 강하다.


불확정성의 원리와 빛의 불완전성

이중 슬릿 실험에서 전자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안다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자가 매 순간 어느 구멍으로 통과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위쪽 구멍에 '전자 측정 장치'를 설치해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희한하게 간섭 무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입자 특성이 나타났다(그림 4). 이것은 측정방법에 따라 전자가 파동의 특성(스크린만 두었을 때)을 보이기도 하고 입자특성(전자 측정 장치를 두었을 때)을 보이기도 한다는 뜻이다.

입자의 위치를 정하려고 하면 운동량이 확정되지 않고,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 하면 위치가 불확정해진다. 이러한 견해는 1927년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불확정성원리에 의해 정식화되었다. 이 원리의 기본 골격은 입자성을 특징짓는 위치의 확정성과 파동성을 특징짓는 파장의 확정성은 서로 제약을 받고 입자성과 파동성이 서로 공존한다는 것이다.

빛이 진행하는 것은 내부에 구심점이 없어서 입자로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즉 추는 있는데 추를 붙잡을 축이 없다.

빛을 측정하기 위하여 전자측정 장치를 두면 측정장치의 간섭에 의해 순간적으로 입자가 성립된다. 즉 순간적으로 내부에 구심점을 얻는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빛의 불완전성에 기초한다. 불완전성은 파도가 지구 중력의 도움을 받아 연속적으로 진행하듯이 외부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는 외계의 작용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구조론에 따르면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성질을 갖는다. 여기서 외계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기능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은 질이다. 질이 계를 성립시킨다.

빛은 계가 붕괴해 있기 때문에 진행하면서 주변의 공간을 포섭하는 형태로 순간적으로 계를 성립시킨다. 즉 파도가 중력의 도움을 얻어 자신을 유지하듯이 주변공간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은 계속 진행해야지만 자기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멈추는 즉시 빛은 그것을 멈추게 한 대상에 에너지를 넘겨주고 해체된다.


위치와 운동량의 불확정

올챙이를 연상할 수 있다. 머리와 꼬리가 있다. 머리가 위치면 꼬리는 운동량이다. 머리를 잡으면 꼬리가 떨어져 나가고 꼬리를 잡으면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 둘을 동시에 잡을 수 없다.

입자들은 꼬리가 내부에 감추어져 있다. 이는 진자운동을 하는 시계의 추가 외피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사실과 같다. 그러한 보호역할이 구조론의 질이다.

빛은 질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꼬리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 꼬리가 보호되지 않기 때문에 측정을 시도하면 꼬리가 이탈하여 측정할 수 없다.


빛의 회절

빛의 회절은 평형원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의 꼬리가 모서리에 걸리면 그 만큼 꺾어진다. 파장이 길고 짧은 정도에 따라 모서리에 걸려 꺾어지는 각도가 다르다.

왜 빛은 굴절되는가? 꼬리가 잡혔을 때 꼬리는 더 많이 진행해야 한다. 즉 운동거리가 그만틈 길어져야 한다.

평형원리에 의해 이 부분을 보상하기 위해 머리가 지체해야 한다. 머리가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그만큼 각을 꺾어줘야 한다.

이는 4열종대로 가는 병사의 행렬이 우향으로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바깥쪽이 더 많이 움직이고 안쪽이 더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이치와 같다.

빛이 밀도가 다른 물질을 만나면 꼬리가 잡혀서 각이 꺾여진다. 4열종대의 안쪽이 더 천천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진자의 등시성에 의해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꼬리가 잡혔을 때 각이 꺾여야만 전체적인 평형이 맞다. 파장이 긴 빛은 더 많이 꺾인다. 그 이유는 꼬리가 더 길기 때문이다. 더 많은 거리가 보상되어야 한다.


이중슬릿 실험

우리들은 앞서 이 실험을 치루었으므로, 둘째 구멍을 열어 놓았을 경우 이 광자는 어두운 부분에 부딪친다는 점을 눈여겨 보았다. 다시 말하면, 둘째 구멍을 열어놓을 경우 이 부분에는 광자가 전혀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실험을 다시 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구멍을 모두 열어 놓는다. 우리가 생각했던대로 우리들의 첫 번째 실험에서 광자가 부딪친 지점에 지금은 광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두 구멍을 모두 열어놓아 간섭이 있으면 이 부분은 어두운 띠의 중심부에 자리잡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첫째 실험에서 "광자가 둘째 구멍이 열려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해보자, 가령 두 구멍이 모두 열려있다면  언제나  빛의 띠와 어둠의 띠가 번갈아 나오게 된다. 즉 광자들이 가 닿지 않는 부위가 반드시 있다는 의미가 된다.(그렇지 않다면 어두운 부위가 없을 것이다).

만일 구멍하나를 막는다면 간섭이 일어나지 않아 어둠의 띠는 사라진다. 두 구멍이 열렸을 때 어두운 부분을 포함하여 벽 전체가 밝혀지게 된다.

우리들이 광자를 쏘아 첫째 구멍을 통과할 때 다른 구멍이 열렸을 경우에는 어두워야 할 부위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말을 바꾸어 그 광자는 다른 구멍이 닫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양자역학의 핵심적 신비에 관하여 헨리스탭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것은 '어떻게 정보가 그처럼 빨리 전달되느냐?'하는 문제이다. 어떻게 하여 그 입자가 구멍이 2개가 있음을 아느냐?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어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결정하게 되느냐?


이 문제는 간단히 해소될 수 있다. 수도꼭지의 수압을 낮춰주면 물줄기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므로 점점 가늘어진다. 그러다가 교차점에서 충돌한다. 그 다음은 회전한다.

물은 마주치는 끝에서부터 회전하기 시작해서 점점 위쪽으로 올라가며 회전한다. 결국 전체가 다 회전한다.

수도꼭지에서 물의 교차점까지의 거리가 15센티라면 처음 15센티 지점에서 회전하기 시작하다가 점점 상승하여 3초 후에는 수도꼭지부터 회전하기 시작한다. 이는 소용돌이 혹은 토네이도의 회전과 비슷하다.

이때 처음 수압이 높아서 물이 직진하는 상태는 구멍이 하나인 경우와 같다. 수압이 점차 낮아져서 물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는 상태는 구멍이 두개인 경우와 같다. 곧 이중슬릿이 된다.

왜냐하면 수도꼭지의 가장자리를 벗어난 물이 수돗물 기둥의 중심으로 가면서 비스듬하게 사선을 그리며 충돌하여 간섭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돗물은 수압에 따라 회전하거나 혹은 회전하지 않는다. 수도꼭지를 나올 때부터 회전할지 회전하지 않을지를 미리 결정하는 것이다. 즉 수돗물은 1초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착각에 불과하다.

간섭효과는 구멍에서 떨어진 일정 거리에서 촉발되어 일어나지만 그 반향이 역으로 전해져서 구멍을 통과하는 즉시 자신이 나아갈 진로를 결정한다.

빛의 직진은 잃어버린 평형을 회복하려는 행동이다. 직진하는 동안은 그 직진에 의해 평형이 유지된다. 이때 빛은 직진하면서 주변공간을 지속적으로 포섭한다.

포섭된 공간과 빛 사이에 평형이 성립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도미노가 연속적으로 쓰러지듯이 빛은 직진한다. 이때 도미노는 그 앞에 있는 도미노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연속적으로 쓰러지는 도미노의 쓰러지는 방향은 뒤의 도미노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도미노가 결정한다. 즉 도미노는 아직 진행하지 않은 미래의 질서에 의해 현재의 위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 때도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미노는 쓰러지면서 정보를 앞으로 전달한다. 자신의 정보 100에 대해서 앞의 정보 100이 작용과 반작용으로 대응한다. 즉 미래의 정보를 읽는 것이다.

여학교 교실에 쥐 한 마리가 난입하고 있다. 이때 쥐의 진행은 쥐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결정한다. 쥐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할 것읻가?

앞에 있는 여학생들이 쥐를 피하여 길을 열어준다. 쥐는 열려져 있는 길을 향하여 달려간다. 즉 미래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보통 움직이는 것은 미는 힘에 의해 떠밀려 간다. 그러나 사람이 달린다면 전방을 바라보고 전방의 모습을 읽고 거기에 대응하여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전방에 웅덩이가 있다면 그 웅덩이를 피하는 것이다.

빛은 진행하면서 그 앞의 공간을 읽는다. 빛의 위치는 빛의 구심점의 위치다. 빛은 내부에 구심점이 없기 때문에 진행하면서 주변의 공간을 포섭하여 순간적으로 구심점을 성립시킨다.

그러한 연속적인 포섭과정에서 작용과 반작용으로 아직 진행하지 않은 전방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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