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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522 vote 0 2006.06.03 (20:01:44)

정치가 옳고 그름의 판단에 지배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가 정답을 줄 것이라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시야를 넓혀서 지구촌 인류 문명권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생태계는 언제라도 균형을 쫓아간다. 문명이 발달한 결과 평형에서 이탈한다. 반동의 힘이 작용하면 문명은 새로운 지점에서 평형을 회복한다. 또 문명의 성취가 쌓여 평형을 잃게 되고 새로운 평형이 얻어지기를 반복한다.

인류문명은 부단히 진보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사선형이 아니라 계단형이다. 게가 허물을 벗듯이 비약적으로 진보하지만 다시 보수의 힘이 작용하여 한 동안 진보를 멈추고 내실을 다지는 기간을 갖는다.

그러므로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다. 진보는 문명을 업그레이드 하지만 그 대신 계의 평형을 깨뜨려 한편으로 문명을 위태롭게도 한다.

문명이 진보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혜의 힘과 산업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지혜가 칼이고 산업이 칼이다. 인간의 지혜의 칼을 휘두를수록 또 산업이 발전할수록 지구촌은 점점 더 위험해진다.

환경은 파괴되고 국가간 격차가 커져서 전쟁의 위험이 높아진다. 이때 보수의 힘이 작용하여 속도조절을 한다. 그 보수의 힘이 존재하는 현실을 일단 인정해야 한다. 그 반동의 힘 조차도 슬기롭게 역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건 타이밍이다. 문명이 사선으로 진보하지 않고 계단식으로 진보하므로 그 일제히 비약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패러다임의 핵심은 의사소통이다. 문명이 사선으로 진보하지 않는 이유는 의사소통의 문제 때문이다. 문명은 새로운 의사소통의 수단이 획득되었을 때 일제히 비약한다.

현명한 철학자가 나타나서 진리를 말해도 문명은 진보하지 않는다. 문명은 언제 비약하는가? 그 진리를 전파할 수단이 얻어졌을 때 비로소 진보한다. 문자가 보급될 때 진보하고 활자가 발명될 때 진보한다.

TV와 라디오가 대중문화의 시대를 열었듯이 인터넷이 정보화의 시대를 열었듯이 문명은 핵심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 얻어졌을 때 비로소 비약적인 진보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이 전략인가? 이성의 힘으로 얻은 신지식과 그것을 전파하는 수단이 되는 새로운 매체를 연계하는 것이 전략이다. 새로인 지식이 출현했을 때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매체와 연계시켰을 때 진보하는 것이다.

우리가 옳기 때문에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옳음을 전파할 수단을 얻었을 때 응집된 힘을 모아 일제히 일제히 진지에서 뛰쳐나와서 재빨리 큰 밑그림을 그리고 높게 뼈대를 세워놓어야 한다.  

그렇게 한 번 그려진 진보의 설계도와 한 번 세워놓은 개혁의 뼈대는 다시 반동의 힘이 몰아닥친다 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설사 적들이 집권한다 해도 백지화 시킬 수 없는 거대한 설계도를 그려놓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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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허상에 속아서 안 된다. 미국이 민주적으로 원숭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민주적으로(?) 원숭이의 명령을 좇아 이라크를 침략했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 된다.

민주주의는 최악을 피하는 하나의 방편일 뿐 민주주의가 최선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왜 잘못이 일어나는가? 왜 민주주의가 옳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가? 이 또한 지구라는 생태계의 미묘한 균형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가 옳고 그름의 판단에 지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 상위의 논리가 있다. 옳음고 그름은 역사의 승부에 의해 결정된 내용을 가지고 승복하지 않는 소수를 설득하는데 소용되는 수단에 불과한 때가 많다.

우리가 옳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겼기 때문에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짜 승부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토대를 이루고 있는 본질에서 얻어진다.

그 본질은 무엇인가? 새로운 의사소통의 패러다임이다. 신 지식과 그 지식을 전파할 수 있는 매체를 연계시키는 사회적인 시스템이다.

지혜로운 자가 한 발 앞서 그 본질을 파악하고 이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옳은 것이며 지혜로운 자가 승리하기 때문에 결국 선(善)의 승리로 귀결되는 확률이 높을 뿐, 선(善)이 항상 승리하라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전략이 필요하다. 부시의 망동에서 보듯이 때로는 악이 승리한다. 악이 민주적으로 승리한다. 민주주의는 허점 투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발휘하여 악의 승리마저도 역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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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룰을 바꾼다. 당사자의 동의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바뀌어진 룰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동의를 구하면 명분이 없는 쪽에서는 일단 겉으로 동의해주고 은밀히 뒤로 딴지를 거는 전술을 채택한다.

겉으로 동의하는 이유는 우리가 옳기 때문이고, 뒤로 딴지를 거는 이유는 바뀌어진 룰에 적응하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혁을 하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했고 유권자들은 동의했다. 그러나 일부 유권자들은 우리당에 표를 준 그 자체로 자기 몫의 개혁은 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즉각 딴지걸기에 착수한다.

이제부터의 일은 우리당이 재주껏 알아서 할 일이며 자기네는 협조하지 않고 기득권은 지키겠다는 식으로 나온다. 이런 유권자의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다.

그들의 판단은 옳지 않지만 그들의 보수적인 태도가 지구라는 생태계를 안전하게 지켜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유권자의 이기주의가 원래부터 주어진 게임의 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유권자가 이기주의를 버린다면? 사공이 많아져서 배가 산으로 간다. 그 경우 설익은 개혁아이디어가 중구난방으로 시행되어 문명은 큰 위험에 빠진다. 열 개의 개혁 아이디어가 있다면 실제로 쓰이는 것은 두엇 뿐이다.

유권자가 이기주의로 삐딱하게 나오기 때문에 무수한 개혁 아이디어 중에서 옥석이 가려진다. 그렇게 검증되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된다.

조중동의 갈구기가 우리를 단련시켜서 송영길, 김두관, 문희상류 원초적으로 아닌 아저씨들을 가려준다. 그러므로 적들의 갈구기 조차도 우리의 내실을 다지는 수단으로 역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선의를 가지고 희생하겠다는 태도로 나오면 오히려 전체주의로 갈 위험이 높다. 의사소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권자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힘을 기른다.
2)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일단 신중하게 판단하고 보수적으로 결정한다.

유권자가 현명해 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현명하지 못할 경우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현명하지도 못하고 신중하지도 못한 진보는 북한처럼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이다.  

생태계의 균형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인 평균의 지적 수준에 맞게 가고 있다. 성인의 1/3이 대학 졸업하고 있다는 한국 유권자의 평균학력은 고 1 쯤 된다. 고 1수준에 맞게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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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식 태도는 옳지 않다. 정동영과 당권파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멍청한 정동영이 어차피 밑져봐야 본전이라서 막 가기로 작정한 개혁세력에게 이용 당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은 씨앗을 뿌리고 실용은 수확한다. 개혁은 일단 씨앗을 뿌려놓고 열매가 열릴 때를 기다리면 되지만 실용은 제철에 수확하지 못하면 낭패다

먼 훗날 그 언젠가 대한민국은 결국 진보할 것이다. 개혁은 그때 생색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실용파는 지금 당장 실용적으로 집권하지 못하면 실패다.

두 개의 룰이 있다. 하나는 짬밥의 룰이고 하나는 실력의 룰이다. 짬밥의 룰을 실력의 룰로 바꾸는 것이 개혁이다. 이 개혁을 안하겠다는 입장이 가진 것이라곤 짬밥 밖에 없는 난닝구들이다.

이때 우리당을 창당하는 방법으로 룰을 바꾼 것이 천신정과 재야파 그리고 유시민의 개혁당이다. 3자간 합의에 의해서 우리당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당 창당 직후부터 전투가 시작되었다.

왜인가? 정동영이 우리당의 창당으로 개혁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짬밥의 룰로 되돌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누구에게 책임이 있나? 당연히 오판한 정동영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입장일 뿐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다르다. 천신정+재야파+개혁당의 합의에 의해서 당이 탄생했으므로 이 셋은 운명공동체다.

우리가 옳고 저쪽은 틀렸다는 식의 주장은 공허하다. 이것이 옳고 그름의 논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더 상위의 룰이 있다.

그것은? 피아구분이다. 정치에서 가장 우선되는 원리는 아군이냐 적군이냐 하는 피아구분이다. 이건 옳고 그름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다. 예컨대 고이즈미가 옳다해도 고이즈미는 한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왜? 한국인이 아니니까.

옳고 그름을 떠나 원초적으로 피아구분에서 비토가 되면 자격이 없다. 피는 발언권이 없고 공무담임권이 없다. 출마할 권한도 없다. 남아공에서는 아무리 똑똑해도 백인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비토다.

피아(彼我)에서 피를 벗어나 아가 되는 데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것이 신고식이다. 신고식을 거쳐야 동료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준다. 결론적으로 개혁의 덫이 있었고 그 덫에 걸린 것이다. 그 덫은 피아구분의 덫이다.

개혁은 그 자체로 덫이다.
개혁의 총대를 매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총대를 맨다는 것이 그 자체로 반드시 죽을 길로 가는 것이다.
정동영과 유시민과 재야파가 대한민국을 위하여 총대를 매고 죽으러 간 것이다.
그렇다면 얌전하게 죽어야지 왜 말이 많은가?

죽으러 갔으면 죽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당은 죽어야 사는 당이다. 그렇다면 기쁘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영광스럽게 죽으려 가놓고 안죽으려 비명을 질러대는 추태는 보이지 말아야 한다.

공동체의 본질은 의사소통이다. 개혁은 최적화된 구조의 의사소통의 시스템을 찾아가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피아구분을 한다. 가족은 의사소통이 되므로 우리편이고 도둑은 의사소통이 안되므로 적이다.

개혁의 덫은 개혁을 할수록 의사소통이 더 어려워 진다는데 있다. 개혁은 의사소통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1) 개혁은 기존의 의사소통 구조를 파괴한다.
2) 새로운 의사소통 구조에 적응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걸린다.
3) 우리당은 현재 새로운 의사소통 구조에 걸맞는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4) 우리당의 중구난방식 리더십에 국민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5) 그러므로 우리당은 국민의 응징을 받아야 한다.

우리당의 왕따 분위기는 소대장 길들이기와 비슷하다. 병영생활을 모르는 신임 소대장과는 의사소통이 안 된다. 서로 익숙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신고식의 방법을 쓴다.

서로를 길들이기 하는 것이다. 소대장은 병을 길들이고 병은 소대장을 길들인다. 고통이 따른다.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우리당의 문제는 리더가 없고 리더십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의사소통이 안 된다. 의사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개혁을 하는 것인데 개혁을 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더 안 되고 있다.

1) 권위주의 리더십으로는 사회적인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다.
2) 권위주의 리더십으로는 계층간, 성별간, 지역간 의사소통이 안 되어 국민이 가진 잠재능력의 최대한을 끌어내지 못한다.
3) 그러나 국민들은 일단 권위주의 리더십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당장은 편하게 여긴다.
4) 우리당은 새로운 탈권위주의 리더십을 선 보이고 있다.
5) 그러나 우리당조차 이 리더십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개혁의 덫은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다. 거기에 덫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리로 간 것이다. 그러므로 덫에 걸렸다 해서 질질 짜고 우는 자는 자격이 없다.

결론은 정동영 욕할 거 없고 우리당은 원래부터 꼭 죽게 되어 있는 길로 온 것이며 우리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부터 자신이 있어서였고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혁세력이 정동영 하나를 요리하지 못해서 내부 잡음이 담장을 넘는다는 것은 새로운 리더십에 개혁세력 자신들부터 적응이 안 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우리당은 리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고작 유시민, 강금실 정도인데 이들은 아직 당을 장악할 기반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140여명의 의원들은 자기네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개혁세력은 우리나라에 30프로 쯤 된다. 30의 소수로 70의 다수를 이겨왔다. 이건 확실히 오버였다. 두 번의 대선승리는 이인제와 정몽준 덕분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이 사실을 잊어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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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이겨놓아야 한다. 설사 나중에 역풍을 맞고 반격을 당하더라도 초반에 판을 크게 흔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인제와 정몽준의 도움을 받은 두 번의 승리는 오버였다.

탄핵의 도움을 받은 지난 총선도 오버였다. 그리고 계속된 개혁 드라이브 역시 오버였다. 우리당의 창당은 확실히 오버한 것이다. 그리고 역풍을 맞았다. 그러나 고수는 오버해야 할 때 의도적으로 오버하는 전술을 쓴다.

이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이겨놓은 유방이 먹었다. 정들여 놓았기 때문이다. 관계맺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유방이 서촉에서 나와 바로 항우의 팽성을 공격한 것은 분명 오버였다.

바로 항우의 반격을 당하여 수십 만 병사를 잃었다. 그러나 유방은 그러한 과정에서 천하의 민중들과 관계맺기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마찰이 일어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큰 도움이 된다.

우리당은 20프로의 지지로 빌빌거리다가 이인제와 정몽준의 도움으로 근근히 연명한 주제에 오버하고 있다. 진도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집을 짓는다면 벽돌도 없고 서까래도 없고 대들보도 없는 주제에 설계도만 건평 1만평으로 크게 그려놓은 것이다. 그렇게 오버를 해줘야 한다. 역사의 진보는 점진적인 진보가 아니라 계단식 진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규격으로 표준을 만들어 버려야 뒤에 오는 사람들이 표준의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큰 집을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벽돌도 없고 서까래도 없다는 이유로 작은 집을 설계 해 놓으면?

나중 집을 짓다가 집이 너무 작아서 짓던 집을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지어야 하는 딜렘마에 빠진다. 그러므로 우리당은 오버한 것이 맞지만 필요한 오버였다. 당연히 역풍을 맞는 것이고 그 역풍을 즐겨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들은 오버다. 그러나 필요한 오버다.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신고식이라면 두들겨 맞더라도 오지게 맞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 개혁의 본질은 의사소통이고 의사소통에 실패하기 때문에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의사소통에 성공하려면? 미운정과 고운정을 들여야 한다. 때리고 맞고 갈구고 티격태격 하는 과정에서 관계맺기에 성공해야 한다. 우리당의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리더십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 새로운 리더십은 부단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힘든 과정을 즐겨야 한다. 개혁은 어차피 밑져봐야 본전인데 망설일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1) 진보는 사선형이 아니라 계단형이다.
2) 보수의 반격은 생태계의 평형원리가 작용한 결과이므로 인정해야 한다.
3) 보수의 반격을 우리 내부의 내실을 다지는 계기로 역이용해야 한다.
4) 나중 역풍을 맞더라도 이기는 리듬에서는 최대한 이겨놓아야 한다.
5) 진보의 오버는 단기적으로 반동의 원인이 되지만 긴 흐름으로 보면 그 결과로 더 많은 개혁의 씨앗이 뿌려져서 궁극적으로는 성공의 확률을 높인다.
6) 그러므로 흐름을 타면서 치고 빠지고 타이밍을 재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7)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정들여서 의사소통의 채널을 열어야 한다.
8) 치고 빠지는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 내부에 먼저 의사소통의 구심점을 형성해야 한다.
9) 그렇게 형성된 새로운 리더십으로 민중과의 의사소통에 성공해야지만 개혁은 진정으로 완성된다.
10) 결국 국민의 지적 수준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11) 대한민국은 고1 정도인 성인 유권자의 평균수준에 맞게 가고 있으며 진보의 오버행위는 국민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자극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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