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 마 여적지 살아오면서.. 별꼴을 다 봤다. 박정희 거꾸러지는 꼴도,
전두환 노태우 감옥 가는 꼴도, 영삼이 계란맞는 꼴도, 회창이 개쪽되는 꼴도 다 봤다. 한 번 웃어줄만 한 일은 되더라.
‘선생님! 손가락에 피났어요.’.. 하며 교무실로 쪼르르 뛰어오는 우리 어리광쟁이 공주님, 도련님들.. 별꼴을 못보아서 유순해진.. 80년 광주 이후에 출생한 우리 귀염둥이 찌질이님들..
광주의 5월이 까마득한 전설처럼 느껴지는 그대들을 위하여.. 볼꼴에 못볼 꼴, 별꼴을 다 본 인간이 이런 한 마디를 던져두는 거다.
아쉬움 있다면.. 본받을 한 명의 스승을 갖지 못한 것이다. 꼭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결정적인 하나가 빠져 있는 듯한.. 그 공백의 허전함이 나로 하여금 ‘까부는 글쓰기’에 대한 미련을 던져주는디.
삶의 역할모델이 되는 모범이라고는.. 공자 선생에 노자 선생, 예수 선생에 석가선생, 원효선생에 백범선생이라 전부 죽은 선생들이다.
뉘 있으랴? 나라 망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국지사들 많다. 동길선생, 장집선생, 수환선생, 두율선생, 준만선생에 용옥선생이 내겐 다 코미디언으로 보인다. 암만해도 봉숭아학당이나 개콘이나.
시골에서 공동체다 뭐다 하며.. 땅이나 두어뼘 파 놓고.. 콩이나 팥이나 두어알 심어놓고 무공해나 유기농이나 소꿉놀이 즐겁다는 좁쌀아범들이 내 인생의 사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호연지기가 없다.
예로부터 급시우 송강이나 화화상 노지심이나 표자두 임충이나 글을 읽어도 똑 이런 글로만 읽은 내게 전원생활의 아기자기함.. 이런건 솔직히 별루다.
외수선생, 정생선생, 성은선생, 노해선생, 용택선생.. 고은이나 김지하나 신영복이나 다 스케일이 작다. 생명운동이나 대안운동이나 이런 것들이 소박하다. 김지하의 오적이 말하는 그 기개가 김지하에게 없다.
열사들은 가고.. 살아남은 자는 슬프고.. 그 사연도 많고 탈도 많고 눈물도 많은 와중에.. 독재가 약화시킨 것이 아닐까.. 음지에 숨어서 칼을 갈다가 칼날이 다 닳아서 은월도는 못되고 은장도가 되었니라.
송곳같은 비수는 솔찮이 있다는데..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이순신장군의 그 2미터 짜리 그 장검이 없다. 그래서는 목을 쳐도 댕겅 못치니 기차시간이 남아도 구경거리가 안된다.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떳떳함이 있어야 한다.
호방함이 있어야 한다.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쿵~! 하고 내지르는 맛이 있어야 한다.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같은 싸아함이 있어야 한다.
술에 취해서는 덜 취하는 것, 향기에 취해서는 덜 취하는 것.. 의기에 취하고 패기에 취해야 꽁무니에 기별이 온다. 서슬퍼런 기상이 살아있어야 한다.
먹촌에 유행하는 단어.. 성찰.. 비위에 안맞다. 정치인들이 잘 한다는 뼈를 깎는 반성.. 어이구.. 부디 이르노니 얼라들은 집에 가라. 디비 자라. 잘못을 저질렀으면 반성할 것이 아니라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애꿎은 뼈는 깍지 말고.. 정권 내주고 집에 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반성, 성찰, 겸손, 사과.. 여야에서 굴러나온 사과가 도합 백트럭이 넘는다. 홍옥이고 국광이고 부사고 물렸다 물렸어.
강단이라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상아탑이라는 것과 안 친하다. 인간들이 나이 열여섯이 넘으면 독립해야 한다. 돼지우리 같은 곳에 모아놓고 바글바글.. 무엇 하겠다는 건지?
왜 장인은 안 쳐주는가? 연장이란 것을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진짜라면 연장을 버려야 한다. 명인은 연장을 차지 않는다. 망치와 대패에 의존하는 목수는 초짜에 개목수다. 애지중지 하는 그 망치와 대패를 버려야 한다.
자격증에 의존하고, 세력에 의존하고, 조합에 의존하고, 파당에 의존하고, 논리에 의존하고, 평가에 의존하고, 여론에 호소하고.. 그 의존을 버려야 한다. 그게 어리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애들 어리광은 귀엽기나 하지 어른들 어리광은 징그러울 뿐. 완장을 버리고, 쯩을 버리고, 라이선스를 버리고, 연장을 버리고, 툴을 버리고, 도구를 버리고.. 빤쓰도 벗고, 체면도 벗고, 염치도 벗고.. 온전히 혼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강단의 지식인들이.. 애지중지 하는.. 그 이념이라는, 혹은 원칙이라는, 혹은 원리주의라는, 혹은 시장주의라는, 혹은 자본주의라는, 혹은 근본주의라는.. 아무데나 주의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는 주의라는 그 연장을 혐오한다.
알아야 한다. 그게 연장질이다.
강고한.. 이런 표현이 유행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고집이 천하명인 최북이 금강산 구룡연에 몸을 던질 때의 그러한 의기의 굳셈은 아니다. 그것은 겁많은 초보운전자가 신호등만 보고 함부로 들이대는 짓이다.
교통흐름은 무시한 채 ‘난 죄없어. 난 죄없어. 난 죄없어’.. 눈 질끈감고 들이대는 것이다. 전방주시 의무라는 것이 있다. 운전은 법대로 원칙대로 신호등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해야한다는 말이렷다.
개인의 판단력을 존중해야 한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졌다 해도 횡단보도에 사람이 있으면 즉각 멈추어야 한다. 그 판단은 온전히 혼자인 당신의 몫이다.
포수의 연장은 총이요. 무사의 연장은 칼이요. 천문학자의 연장은 망원경이요. 화가의 연장은 붓이요. 탐정의 연장은 돗보기요. 수위의 연장은 금단추 달린 제복이라.. 그 연장을 버려야 본래의 인간을 회복할 터.
외피를 둘러싼 강함은 강함이 아니다. 뼈가 겉으로 드러나 보여서는 진짜가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버텨야 한다. 겁먹고 쫄아서 눈치나 보는 비루한 자들은 단칼에 날려버려야 한다.
좌파는 왼쪽, 우파는 오른쪽, 좌파는 자존심만, 우파는 경제만.. 각자 포지션별로 정해진 그 역할이라는 유니폼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이가 진짜 스승이다. 나는 고수라 북만 칠거야. 나는 기수라 깃발만 들거야.. 그게 숨는 거.
스승의 날은 어제 지났다. 선생의 날인데 폼 나라고 스승의 날이라 하고 좋게 불러주는 것이다. 스승이 그립다. 그 역할이라는 연장, 포지션이라는 연장을 버린 사람. 그래서 하늘아래 도무지 쓰임새라곤 없는 사람.
구실아치가 구실을 버려야 벼슬아치가 된다. 모두가 역할이라는 안전판 뒤에 숨어 눈치나 보고 있을 때 “네 이놈!”하고 호령하여 정신이 번쩍 들게 꾸짖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넌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