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은 약하다. 화끈하기로는 최연희가 더하다. 최연희 보다는 묵사마가 더 노골적이고, 묵사마 보다는 노태우가 심하고, 노태우 보다는 전두환이 더 세고, 전두환 보다는 박정희가 더하다.
욕하려면 오야붕 박정희를 욕해야지 꼬붕 박계동을 욕해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현대판 노예 사건도 있다. ‘주인’을 자처하는 자가 할아버지를 50년간 착취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가해자 한 사람만 욕하고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리플은 발견할 수 없다. 참담한 느낌이다.
포탈 기사에는 1만여개의 리플이 달렸다고 한다. 나는 그 1만명이 더 무섭다. 그 할아버지는 결국 요양원 철조망 감옥 속에 갇혀버렸는데도 말이다. 가해자만 욕하면 자기 할 일 다 한 셈인가?
그 글에 리플을 달아 가해자를 비난한 그 1만여명이 박정희를 주인으로 섬겼고 전두환을 주인으로 섬겼고 노태우를 주인으로 섬겼고 묵사마를 국회의원으로 섬겼고 최연희를 찍었고 박계동을 국회로 보낸 그 사람들이다.
박정희를 주인으로 섬긴 노예 주제에.. 전두환 살인마를 대통령으로 모신 살인마의 하수인 주제에 .. 스스로 ‘주인’을 자처하며 할아버지를 노예로 착취한 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있나?
그 1만명은 악을 쓰며 말하고 있다.
“저 사람에게 돌을 던져라. 저 사람이 나쁜 놈이다. 나는 죄 없다.”
묻고 싶다. 한 마을 주민인 당신은 공범이 아니냐고. 까놓고 말하자. 그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해자를 비호한 공범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들은 말할 것이다.
“한 마을이라니? 나는 경기도 화성에 살지 않는다구. 나는 대한민국 마을에 살 뿐이야.”
인정해야 한다. 대한민국 마을에 살면 다 한 마을 한 식구 한 가족이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에 지구촌에 사는 모든 사람이 책임이 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노예인 당신이 박정희를 주인으로 섬겼고, 당신의 오른손이 한 표를 던져서 박계동을 여의도로 보냈다.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 말이다.
그래서 슬프다. 당신의 친구이며 한 편으로 당신의 다른 버전이기도 한 나는.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봉고차로 부녀자를 납치하여 인신매매 하는 일이 빈번했다. 87년 태풍 셀마호가 지나갔을 때 새우잡이 배에 갇혀 있던 노예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일부 못된 사람이 그렇지 전부 그런 것은 결코 아니라고. 선량한 다수에게 손가락질 하면 안 된다고.
일부 공무원이 뇌물을 받는 거고.. 일부 교사가 촌지를 받는 거고.. 일부 기업인이 비리를 저지르는 거고.. 극소수(?) 조중동이 왜곡보도를 하는 거고... 극소수 기득권이 횡포를 부리는 것이고.. 대다수 선량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과연 그럴까? 극소수 나쁜 사람이 미꾸라지처럼 흙탕물을 뿌리는 거지 대다수 선량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흙탕물에 사는 미꾸라지와 깨끗한 물에 사는 붕어는 공존이 불능이다.
미꾸라지가 사는 물에는 붕어가 살지 않는다. 붕어가 사는 물에는 미꾸라지가 살지 않는다. 일부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일으켰다면 그 흙탕물에 사는 물고기는 모두 미꾸라지다.
우리는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부엌에서 한 마리 바퀴벌레를 발견했다면 싱크대 뒤쪽에 30마리 이상의 바퀴벌레가 우글거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일부가 전부다.
한 명의 교사가 촌지를 받았으면 모든 교사가 촌지를 받은 셈이고 한 명의 공무원이 뇌물을 받았으면 모든 공무원이 뇌물을 받은 셈이고 박계동이 뻘짓을 했으면 바로 국회를 폭파해야 한다.
한 사람이 잘못했으면 모두가 잘못한 거다.
교통사고와도 같다.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단지 가해자만 처벌하는 것으로 교통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모두가 가해자 한 사람만 욕한다. 그러나 사고는 계속 일어날 뿐이다. 오징어 김태환을 욕하니 성추행 정두언이 불쑥, 성폭행 최연희를 욕하니, 묵사마 정형근이 불쑥, 술집난동 주성영을 욕하니 맥주행패 박계동이 불쑥, 술잔투척 곽성문을 욕하니, 치매노파 전여옥이 불쑥.. 딴나라의 추태시리즈는 끝이 없다.
이 정도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그 시스템 안에 있는 모두를 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모두가 유죄다. 한나라당이 통째로 유죄다.
가해자만 잘못한 것이 아니다. 경찰은 교통정리를 잘했어야 했다. 신호등은 고장이 나지 않았는지, 도로체계는 잘 만들어졌는지, 자동차의 성능에 이상은 없는지 모든 부분을 점검해야 한다.
선(善)과 악(惡)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가해자가 타고난 악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의 머리에는 도깨비 뿔이 달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알고 내가 알듯이.. 학살을 저지른 나치의 장교들도 가정에서는 모범적인 가장이요 훌륭한 남편이요 자상한 아버지였다.
평범한 사람이 잘못된 시스템 구조 안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탈무드 한 대목을 인용한다. 두 사람이 굴뚝을 청소하고 나왔다. 한 사람은 얼굴에 검댕이가 묻지 않아 얼굴이 희고, 한 사람은 얼굴이 시커멓다. 누가 먼저 세수를 하러 우물가로 달려갈까?
정답은 얼굴이 검은 사람이다. 왜? 얼굴에 검댕이가 묻었으니까.
천만에! 서로는 상대방의 얼굴을 본다. 검은 사람은 상대의 흰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이 흰 줄로 알고, 흰 사람은 검은 줄로 안다. 정답은 얼굴이 흰 사람이다.
천만에! 운명의 그 굴뚝 안에서 검은 얼굴과 흰 얼굴은 없다. 정신차려야 한다. 당신이 지금 발을 디디고 선 그 자리가 바로 굴뚝 속이란 말이다. 그 굴뚝 안에서 검댕이를 묻히지 않고 기어나오는 방법은 없다.
이 대한민국 마을 안에서, 이 지구촌 안에서 당신의 잘못이 면책되는 수는 절대로 없다. 우리는 모두가 공범이다.
세상에는 타고난 선인도 없고 타고난 악당도 없다. 살인마 유영철도 한 때는 누군가의 귀염받는 젖먹이 아기였고, 유영철 찜쪄먹을 살인마 전두환도 한 때는 재롱부리는 천사였다.
선과 악의 문제, 한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는 태도는 결국 비겁하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짓이다. 나는 죄가 없다는 식의 발뺌이다. 그 죄의 굴뚝 안에서 발을 빼봤자 어디로 도망치겠다는 말인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진짜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모두 유죄다.
모두의 죄라면 시스템이 잘못이다.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로망을 개선하고, 자동차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신호등을 수리하고, 교통경찰관을 배치하고, 단속카메라를 달고, 모두가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매우 어렵다. 가해자 한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넓혀져야 한다. 최후의 단계에 혁신해야 하는 대상은 인간이다.
그 사회복지사는 아마도 ‘하필 재수없게 내 담당지역에서 사건이 터져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영삼이 때는 사회복지사도 없었다. 선진국은 공무원 숫자가 우리의 7배다. 그 만큼 세금을 내고 세금 낸 만큼 서비스를 받는다.
한국인은 세금을 적게 내고 서비스를 적게 받는 쪽을 택했다. 작은 정부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도 조중동은 노무현 정권이 큰 정부로 가고 있다고 질타하고 있다. 작은 정부에 큰 서비스는 말이 안 된다.
신호등 세울 예산을 아껴서는 교통사고 줄일 수 없다. 결국은 큰 정부에 충원된 공무원 그리고 충분한 서비스, 복지예산 확충으로 가야 한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한국인도 이제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요양원 철조망 감옥에 갇혀 있다. 우리 인간이라는 모순된 존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의 제 계층간 소통을 늘려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증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악당을 미워하고 범죄자에게 돌을 던지는 식으로는 일회성의 분풀이가 될지언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아니다. 포탈 기사에 달린 1만개의 리플은 1만명의 자기 분풀이다.
모두들 자기 분이나 풀기 바쁜 것이다. 생각을 바꾸고, 시스템을 바꾸고, 패러다임을 바꾸고, 세금을 더 내고, 제 할 몫을 다 하고 난 다음에 더 나은 국가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당신은 비겁자가 아닌가?
용기있게 진실을 똑바로 쳐다볼 배짱은
있는가?
사람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