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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002 vote 0 2006.03.20 (21:21:38)

‘미친다’는건 무슨 뜻일까?

스포츠는 힘과 기(技) 그리고 형(形)과 세(勢)를 겨룬다. 힘과 기가 체력과 개인기라면 형과 세는 조직력과 정신력이다. 힘과 기는 몸을 쓰는 것이고 형과 세는 머리를 쓰는 것이다.

스포츠라면 기본적으로 힘이 받쳐주어야 하지만, 단지 힘만 겨루고자 한다면 육상경기로 충분할 것이다. 스포츠는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재미가 있다.

강한 힘은 물론 좋은 것이나 통제되지 않은 힘은 난폭할 뿐이다. 그 힘이 정신력에 의해서 잘 통제될 때 더욱 아름답다. 스포츠는 힘을 기르고 통제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그래서 스포츠는 필요하다.

머리가 나쁜데도 성공한 운동선수는 없다시피 하다. 선동렬, 박찬호, 차범근, 허재, 서장훈, 홍명보, 박주영 다들 머리 하나는 좋은 선수들이다. 머리 나쁜 타이슨도 있기는 하지만 그는 실패한 경우고.

힘과 기, 그리고 형과 세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둘 중 한쪽을 택하라면 힘과 기가 우선이다. 힘과 기에서 원초적인 차이가 날 경우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단기전은 약팀에도 기회를 준다.

형과 세의 정신이 힘과 기의 육체를 이기는 것이 단기전의 특징이다. 상대적으로 머리를 쓰는 쪽에 비중을 두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다.

네덜란드는 원래 약팀이었다. 힘과 기로 하면 도무지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탈사커로 두 번이나 결승까지 간 것은 형과 세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이건 머리로 되는 거다.

야구월드컵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축구에 월드컵이 없었다면 토탈사커니 압박축구니 하는 것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42니 433이니 하는 포메이션 개념도 발전하지 않았을 수 있다.

단기전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월드컵이기 때문에 포메이션 전술의 중요성이 ‘아하 그렇구나’하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어쩌면 야구는 국제경기의 부재로 해서 가치의 절반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메이션이야 말로 형(形)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포메이션이 있기 때문에 축구가 격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축구도 몸으로 때우는게 아니라 머리를 써야만 하는 우수한 스포츠로 인식된 것이다.

야구는 확실히 머리를 쓰는 스포츠다. 그러나 축구가 다양하게 포지션의 변경을 주는 것과 달리 야구는 아홉명의 포지션이 고정되어 있다. 야구에는 리베로도 없고 스토퍼도 없다.

그러나 야구월드컵이 계속 간다면 메이저리그도 달라질 수 있다. 김인식 감독이 선보인 계투시스템이 하나의 형(形)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야구를 통해 과거 네덜란드가 축구로 했던 것을 우리가 해낼 수도 있다.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추구하지 못한 미국야구

한, 미, 일 대표팀 간에 수준차는 없음이 확인 되었다. 힘과 기에서 밀리지 않았다. 형과 세에서는 우리가 앞서있음이 확인되었다. 형이 코칭스태프의 능력이라면 세는 그것을 소화해내는 선수들의 정신력이다.

페넌트레이스가 상대적으로 힘과 기에 치중한다면 코리안시리즈는 형과 세에 치중한다. 단기전에서 정신력과 코칭스태프의 능력이 두루 평가된다. 단기전이 더 머리를 쓰는 비중이 높다. 단기전이 더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건 단기전에서 운이 따른 결과일 뿐이야’ 하고 성과를 깎아내리려 해서 안 된다. 단기전이 더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단기전이 진짜 스포츠라고 말할 수도 있다.

미국의 우격다짐으로 일본과 3번이나 경기해야 했던 점은 단기전의 원칙에 맞지 않는 잘못된 룰의 적용이다. 힘과 기로만 경쟁한다면 언제나 미국이 이길 수 밖에 없다. 그런 식이라면 국제전을 할 이유가 없다.

형과 세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신력과 코칭스태프의 능력이 강조되는 단기전의 특징을 인정해야 한다. 축구 월드컵이 토탈사커 이후 스포츠의 격을 한 단계 높였듯이 야구도 체격과 기술, 조직력과 정신력의 조화를 경쟁했어야 했다.   

 

세계의 스승이 된 한국 야구

우리는 일본을 라이벌로 여기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을 라이벌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아시아에 관심이 없다. 한국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그들의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일본인들은 아직도 이치로가 타석에 서기만 하면 한국응원단이 야유하는 이유를 모른다. 이치로의 망언은 그들의 기억에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은 서재응이 마운드에 깃발을 꽂은 일로 일본인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모른다.

고이즈미까지 나서서 일본 선수단을 분발하게 만든 것은 확실히 서재응 효과다. 한국인이 일본을 자극하여 그들을 분발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희귀한 사례이다. 일본이 한국에 크게 한 수를 배운 것이다.

무엇인가? 한국은 항상 다른 나라로부터 배운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식의 성공모델을 자랑할 때가 된 것이다. 네덜란드는 축구 하나로 세계의 스승이 되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쩌면 일본은 우리에게 좋은 라이벌일 수도 있다. 그들은 노상 망언을 일삼고 있지만 우리에게 자극제가 되고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도리어 이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역이용할 수도 있다.

한일간에 스포츠 민족주의의 대결이 있었다. 그것이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되느냐 부정적 에너지로 타락하느냐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달려 있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낮다면 부작용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좋은 거다.

민족주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우리 국민의 수준을 낮게 보는 것이다. 확실히 한국인 중에는 수준 낮은 한국인도 있고 일본인 중에는 수준낮은 일본인도 있다. 그들이 민족의 이름으로 사고를 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식인이 그 점을 경계하던 시절은 텔레비전이 보급되지 않았던 60년대 이야기다. 다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그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국민의 수준이 높아졌다.  

민족은 공동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공동체를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공동체가 민족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도, 노조도, 동아리도, 계급도, 국가도, 민족도, 세계도 공동체다.

그 중 어느 쪽을 중요시 하는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정하는 거다. 세계주의가 주목되는 시점이 있는가 하면 민족주의가 조명되는 흐름도 있다. 어느 쪽을 버리고 선택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는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는 1 단위다.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민족은 의사소통의 1단위다. 의사소통은 언어로 가능하지만 체험의 공유로 더 많이 가능하다.

민족은 정서적 체험과 역사적 체험의 공유에 따른 집단의 의사결정 1 단위다. 유럽이나 미국은 지정학적 구도가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달라서 상대적으로 민족의 의미가 감소될 수 있다.

프랑스인과 벨기에인 사이에 언어가 다르고 역사적 체험이 다른 데 따른 의사소통의 장벽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한국인과 일본인은 다르다. 역사적 체험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감성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다.

 

우리는 무엇을 꿈 꾸는가?

토탈사커는 무엇인가? 최적의 형(形)을 결성한 팀이 승리하고 있다. 정치는 무엇을 경쟁하는가? 최적의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낸 당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우리당은 무엇이 자랑이고 한나라당은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당은 국민과 소통하여 작은 잘못을 저지른 총리를 과감하게 잘랐고 한나라당은 대형사고를 친 최연희와 이명박을 자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당이 더 당 내부에서 긴밀한 의사소통구조를 가지고 더 긴밀하게 국민과 소통하고 있는데 비해 한나라당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당내에서 자기네들끼리 소통하지 않고 당 밖의 국민과도 소통하지 않는다.

김인식 감독은 야구에서 우리가 최적의 형(形)과 세(勢)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선수간에 소통하고 응원하는 관중과도 소통하였다. 그것으로 경쟁하고 승리하여 보였다.

선원이 100명이라도 어차피 선장은 한 명 뿐이다. 정치는 의사결정구조를 경쟁하는 것이다. 최적의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낸 그룹이, 정당이, 계급이, 민족이 선장의 역할을 맡는다.

변방의 한국이 강한 소수의 응집력을 발휘하여 지구촌 인류호의 브리지를 책임진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세계가 한국을 배우고 세계가 한국의 리더십을 존중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 방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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