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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단상 - “낭만파 조폭은 가라”
‘조선일보의 쓸쓸한 퇴장을 지켜보며’

조폭의 역사가 그렇다. 의리를 강조하는 낭만파 주먹시대가 있었고 그 다음에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싸우는 사시미칼의 시대가 온 거다. 삼국지연의에 비한다면 원술이나 공손찬이 영웅으로 불리던 시대가 낭만파 주먹시대라 하겠다.

공손찬은 기마민족의 침략을 막아낸 북방의 효웅이었다. 이름은 높았는데 그 이름에 안주한 결과로 그는 끝까지 가지 못했다.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기병부대를 편성하기도 했는데 백마(白馬)로만 이루어진 부대였다고 한다.

말이 귀하던 시대였다. 북방 유목민을 상대하는 동안에 말이 많이 노획하여 백마로만 부대를 편성할 정도가 되었다는 위력과시가 되겠다. 이런 식의 상징과 위세품에 집착하는 보스는 오래 가지 못한다.

공손찬이 원소에게 깨진 이유는 전투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락같이 높은 요새를 쌓아 수십만석의 양곡을 저장해 놓고 그 안에 숨어 있다가 원소의 토굴작전에 말려서 자결했다.

전투회피다. 전투에는 여러 측면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특정한 한 가지 방법에 안주하는 즉 죽음이다. 한나라당이 경상도만 먹겠다거나 좌파들이 경제는 포기하고 윤리만 먹겠다는 식의 외통수로 가면 절대로 망한다.

낭만파 주먹시대에는 그런게 통했다. 시라소니가 겁도 없이 동대문파 아지트에 혼자 걸어들어간 것이 그렇다. 이름이 높은데 제깟녀석들이 감히 하늘같은 선배를 건들겠냐고 방심하다가 린치를 당했다.

중요한건 이것이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필부의 용맹에 불과한 즉 실제로는 약한 모습이라는 거다. 상징에 집착하고 위세품으로 과시하고 이름에 집착하는 건 사실이지 약한 모습이다.

부하들은 이런걸 싫어한다. 전투를 회피하면 부하들이 실전에서 명성을 닦을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보스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부하들은 보스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하나씩 둘씩 보따리 싸고 떠난다.

원술도 비슷하다. 손견이 우물에서 건져다 준 옥새에 집착하다가 망했다. 자칭 황제하고 거드름을 피운 것이 겁쟁이의 전투회피다. 상징과 위세로 이름을 높여서 어떻게 실전을 회피해 보려다가 망한 것이다.

손견도 비슷하다. 유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긴 했으나 무모하게 단기로 출진하다가 뒷통수를 맞은 것은 시라소니가 맨손으로 동대문파 소굴을 찾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마지막 낭만파 주먹이었던 것이다.

원소도 전투를 회피하다가 조조를 기습할 찬스를 잃었다. 뒤늦게 대군을 일으켰지만 실전보다는 백만대군의 위력과시를 통해 겁을 주는 방법으로 조조군이 저절로 무너지기를 기대하다가 망했다.

요행수를 바라거나 상대편의 자멸을 기대하는 짓, 공격을 회피하고 상징과 위세에 집착하기.. 이걸 망조라고 한다. 이런 보스는 반드시 망한다. 실력있는 부하들이 조용히 떠나가고 껍데기만 남아서 망한다.

최악은 전투에 지더라도 전설적인 무용담만 하나 남기면 된다는 식의 태도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제법 먹히던 시대도 있었는데 조폭의 역사에 댄다면 낭만파 주먹시대가 그랬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한 것. 7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시장환경의 변화가 그들의 시대를 끝내고 말았다. 동대문파도 가고 명동파도 갔다. 사시미칼로 무장한 3대 패밀리의 무지막지한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저항하며 말한다.  

“선배를 몰라보다니. 위계질서도 모르냐? 니들은 에미애비도 없냐?”

그들은 본질을 보지 못했다. 본질은 산업화에 따른 농촌의 붕괴, 서울의 팽창, 인구의 이동, 강남의 개발, 이에 따른 유흥업의 폭발적 성장이다. 한 마디로 세상이 근본부터 변한 것이다.

서울이 커져서 시장의 파이가 커졌고 그 때문에 조폭의 숫자가 늘어났다. 혼란이 조성되는 법이며 이 혼란은 오직 힘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이런 배경에서 3대 패밀리가 성장한 것이다.

변화를 읽지 못하고 “니들은 선배도 모르냐?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니까.” 이런 깝깝한 소리 하면 죽는다. 위신을 세우고, 가오를 잡고, 눈에 힘을 주고, 용맹을 과시하고, 명성에 집착하면 죽는다.  

공손찬, 원솔, 원소, 손견의 공통점은 냉정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 전쟁이 일시적인 싸움인지 아니면 천하대란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거다. 일시적인 싸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정을 논하게 된다.

천하대란이라는 사실을 진작 눈치 챘어야 했다.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가 의리나 배신, 체면 따위 감정다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 산업화에 따른 인구이동에 있는 즉 식구들의 생계가 걸린 현실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좌파들의 명분 집착이나 수구들의 대통령 갈구기는 명성과 가오에 집착하는 낭만파 주먹들의 위세행동을 연상시킨다. 겁 주고, 호통 치고, 눈알 부라리고 ‘네 이놈들. 니들은 위아래도 없냐?’고 꾸짖는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이해찬 총리에 대한 같잖은 시비다. 우리당 대통령 후보만 한 사람 늘려주고 말았다. 이해찬 입장에선 적당한 시점에 대권을 노리게 되었으니 울고싶을 때 뺨때려준 격.

● 좌파의 명성집착.. 이름을 얻을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다는 식. 손견의 단기 출진이 멋있기는 하나 그는 죽고 말았으니 끝까지 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필부의 용맹에 불과하다. 그에게는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큰 꿈이 없었다.

● 수구의 모욕전술.. 원술이 옥새를 얻어 황제를 칭함이나 공손찬이 백마의종을 편성하여 뽐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 위세와 상징에 집착하는 행위는 결국 전투회피다. 약한 모습 노출시켜서 부하들이 등 돌리게 된다.

본질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본질은 물적 토대의 변화에 따른 시장환경의 변화로 하여 게임의 룰이 변한다는데 있다. 날로 도시는 팽창하고 농촌은 붕괴하며 인구는 이동하고 유흥업은 급성장한다.

옛날에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둘이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기겠느냐는 식의 호기심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천문학적인 돈이 걸린 신흥시장을 누가 먹느냐는 즉 현실의 문제다. 룰이 바뀐다.

누가 최후에 승리하는가? 끝없이 싸우는 자가 경험치를 축적해서 이긴다. 싸우지 않고 입으로만 떠드는 자는 진다. 명분과 실리를 교환하지 말고 두 마리 토끼를 둘 다 포기하지 않는 쪽이 이긴다.

상황을 크게 보고 끝까지 가겠다는 결의를 해야 한다. 명성이나 위신, 체면, 가오, 위계서열 따위는 일찌감치 포기해 버려야 한다.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자가 끝까지 갈 수 있다.

위세행동을 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입에서 욕설이 나오는 거다. 그 경우 손견처럼 무대뽀로 돌격하다 맞아 죽거나 공손찬 처럼 역경루에 숨어 전투를 회피하다가 말라죽는다.


바뀐 노무현 룰에 주목하라

우리는 삼국지를 읽었지만 역사 속의 인물들은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았다. 심지어 제갈량도 읽어보지 못한 것이 삼국지다. 그들이 삼국지를 읽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초기에는 장수들 간의 단판승부가 유행이었다. 여포와 관우가 일 대 일로 겨뤄보자는 거다. 이때가 낭만파 주먹시대였다. 그러나 사마의와 제갈량의 대결에는 그런거 없다. 총력전으로 가는 거다.

막판에는 시스템 대결로 간다. 사마의가 승리한 것은 보급이나 외교 등을 망라하여 총체적인 관점에서 위나라의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견고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의 변화, 룰의 변화를 읽어내는 쪽이 승리한다.

좌파도 모르고 수구도 모르고 정동영도 모르고 김근태도 모르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룰을 바꿔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의 형태를 변화시킨다. 개인기 대결에서 시스템 대결로 간다.

예전의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의원들에게 돌아갈 몫이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총리에게 힘이 쏠리고 정치인 출신 장관도 늘어났다. 대통령 못되어도 도전해볼만한 자리가 많은 것이다.

예전에 후보들 간 합종연횡이 잘 안된 이유는 대통령 1인이 다 먹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파이를 키워버린 것이다.

이해찬의 문제는 욕심이 없었다는 데 있다. 그가 대권에 욕심을 냈다면 3.1절에 골프를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인가? 지금은 이해찬도 대권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으니까.

대통령의 권력은 줄이고 총리의 권력은 늘렸다. 정치인 장관도 늘렸다. 이렇게 되면? 예전에는 잘 안되던 후보단일화와 후보간의 합종연횡이 더 잘되게 된다. 이 경우 여포와 관우의 단판승부가 아니라 제갈량과 사마의의 총력전이 된다.


변방에서 온 새로운 강자들을 주목하라

노무현 세력의 득세는 물적 토대의 변화에 따른 환경변화 때문이다. 갈수록 정치의 이해관계가 첨예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판에 개입하고 있다.

예컨대 아직도 지역주의가 남아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까지는 이해관계가 약했다는 반증이다. 지역주의는 원래 없는 나라가 없다. 선진국에서 지역주의가 사라져가는 이유는 산업화로 인해 이해관계가 첨예해졌기 때문이다.

낭만파 시대의 호걸들은 개인의 명성을 탐할 뿐 천하를 다투지 않는다. 손견이나 공손찬은 개인의 명성에 집착하고 있었다. 작은 이해관계가 걸린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천하의 다툼으로 되어갔고 더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버렸다.

영웅은 죽고 세력이 나타난다. 단기출진은 옛 전설이 되고 100만 대군이 들판을 새까맣게 뒤덮는다. 용맹의 뽐내는 항우식 전투는 가고 지략을 펼치는 장량의 전쟁으로 변질된다.

요즘 시대에 지역연고로 실익을 볼 수 있는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상징, 위세, 이런 거다. 실익을 얻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으스대기를 원하는 것이다.

물론 80년대까지는 지역개발이 실익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격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제 개발시대는 끝났다고 봐야한다.

한국과 일본의 야구시합은 실익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명예를 다투는 것이다. 지역주의도 그런 성격이 있다. 일종의 아마추어 대결인 것이다. 그러나 점점 프로화 된다. 점점 더 많은 이해관계가 걸리게 된다.

실제로 득을 보는 세력이 있고 손해보는 집단이 있다. 참여정부에서 인터넷 세력은 득을 보고 조중동 세력은 손해를 본다. 주식투자자는 득을 보고 부동산 투기자들은 손해를 본다.

참여정부는 개혁정권이 장기집권 할수록 이득을 보는 세력을 의도적으로 양성한다. 정동영 대 이명박의 명성의 대결, 진보와 보수 간의 위세대결이 아니라 주식투자자와 부동산투기자의 실익을 건 총력전이 된다.

● 좌파 - 명예를 쫓다 죽는 정의의 사나이. 오 낭만이 넘치는구랴!
● 조중동 - 위세를 부리는 전설의 악당 구마적과 신마적. 한 낭만 하시는구랴.

그들의 시대는 간 것이다. 싸움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그렇게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명성에 집착하는 좌파와 위세에 집착하는 조선일보의 스토리는 점차 낭만시대의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PS.. 요즘 조선일보가 많이 약해졌다는 걸 느낍니다. 엄살부리는 악당의 모습은 추태 그 자체입니다. 강하지 못한 악당 조선일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늙은 퇴물 조폭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넘은 패줄 맛도 없어요. 조선일보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써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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