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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아프다. 개인의 이익 보다는 전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다. ‘몸을 위해서 발가락 하나쯤 희생한들 어떠리’ 하고.. 유교주의적인 충성심을 발휘하여 아픈 내색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죽는다.

아프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야 한다. 농민이 아픈데도 국가를 위해서 참으면? 대한민국이 죽는다. 영화인이 아픈데도 국가를 위해서 참으면? 대한민국이 죽는다. 그러므로 노동자도, 농민도, 영화인도 아프면 비명을 질러야 한다.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전체에 기여하는 길이다. 한 편으로 타인의 비명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시민사회의 도덕적 책무다.

농민도, 노동자도, 영화인, 지율도, 부안도, 화물연대도, 황빠도 비명을 지르고 있거나 지른 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신용사회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농민이 경찰을 패면 괜찮고, 경찰이 농민을 패면 안 된다는 이상한 룰이 적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안된다는 것이다.

영화인들의 항의도 그렇다. 스크린쿼터는 보안법과 비슷하다. 보안법 폐지한다 해서 대한민국 안 망하고 스크린쿼터 폐지한다고 한국영화 안 망한다.

해적판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국산영화가 득을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구조적으로 한국영화가 이기게 되어 있다. 한류붐과 한국영화의 득세에 대해서는 필자가 10년 전부터 말했었고.

문제는 다른데 있다.

전쟁이라 치자. 서울을 지키려면 어디에 마지노선을 쳐야 할까? 서울에서 싸워서는 서울을 지킬 수 없다. 서울을 지키려면 임진강에서 방어선을 쳐야 한다. 영화인들이 본질이 아닌 스크린쿼터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스크린쿼터 문제가 잘못가면 영화계가 분열된다. 문제는 권력이다. 영화인들 자체 내의 리더십이 증발하는 것이다. 이건 더 골치아픈 문제다.

스탭들의 처우개선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딴 이야기다. 스탭들의 처우가 문제되는 것은 충무로가 학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돈 벌 목적이 아니라 기술배울 목적으로 저임금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임금 문제는 노조를 결성한다든가 고급인력을 위한 라이선스를 만든다든가 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얼마든지 해결책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역시 권력의 문제다.

프로야구도 안 되니까 정치인 출신 총재를 뽑고 있다. 자기들 힘으로는 해결을 못하는 거다. 스탭들의 처우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정치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력을 발휘하려면? 영화계가 단결해야 한다. 단결하기 위해서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이슈화 하여 ‘으샤으샤’ 밀어야 한다. 이건 악순환이다.

지율스님의 경우도 비슷하다. 터널을 뚫어서 천성산 도롱뇽에 위해가 간다고 믿는 바보는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싸울 것이 아니라 임진강에서 싸운다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율은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관심을 돌려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지상주의에서 환경지상주의로 한국인의 생각을 바꿔놓으려 한다.

이렇듯 A를 주장하기 위해서 A가 아닌 B를 말하는 고도의 전략적 행위를 하는 데서 한국의 문제는 극도로 꼬여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답 안나온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용사회로 넘어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신용사회가 아니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농어민의 피해는 구제되지 않는다. 과거 농어촌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40조를 들이부었지만 그 돈은 고스란히 은행으로 되돌아갔다.

농민들이 그 돈으로 투자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농민들은 대출받은 돈의 1/3을 시설에 투자하고 2/3를 부동산에 투자했다. 부동산 가격 올라간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엉터리 짓을 할 것인가?

피해를 보상할 합리적인 수단과 절차와 노하우를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그러므로 신용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 누구도 정부를 믿지 않는다는 것, 정부를 믿으면 오히려 당하는 현실.

지지하는 정당을 미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지 않는 정당을 떨어뜨리는 역선택에 몰입하는 것,  A를 주장하기 위해서 A가 아닌 B를 말하는 전략적 속임수가 당연시 되고 있는 현실.

우리사회가 총체적으로 신용사회로 넘어가지 않으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돈을 풀어도 농민에게 혜택이 가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신용사회로 가는 길이 시민사회의 완성이다

20세기 들어 한국에서 일어난 주요한 일들은 모두 시민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한 번은 거쳐가야할 정거장들이었다.

시민사회의 중심에는 정부가 있다. 즉 시민사회는 ‘시민의 권력’에 기초하며 시민의 공동체가 자신의 권력을 정부에 위임하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아닌 것은? 봉건 귀족의 지배, 군부세력의 지배, 종교집단의 지배, 재벌세력의 지배를 들 수 있다.

일본만 해도 여전히 귀족문화의 잔재가 남아있고.. 이슬람 문화권은 종교집단에 지배되고 있다. 서구를 제외하고 성숙한 시민사회에 도달한 국가는 세계적으로 없다시피 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시민사회로 가는 험난한 여정에서 군부세력의 침탈을 물리쳤고.. 이 과정에 권력공백이 발생하자 재벌과 조중동, 강남, 종교집단이 그 빈틈을 노리고 목청을 높이는 중이다.

이들의 권력침탈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 범개혁진영이다. 이것이 2006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2006년 이 시점에서 우리의 임무는?

군부의 지배에서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과정... 과도기에 발생한 권력공백.. 빈 틈을 노린 재벌, 조중동, 강남, 종교집단의 공세.. 이에 맞선 개혁진영의 저항. 이 전선에서 우리에게 각자의 임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황란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충분한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동체적 가치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근본적인 결함이 크다.

● 사회화의 미비.
● 공동체적 가치의 부재.
● 신용사회로 가는 공동체적 룰의 부재.
● 각 이해집단의 고도의 전략적인 속임수 행동.
● 전략적인 속임수를 당연시 하는 반신용사회적인 문화.

그 결과는?

● 지지하는 정당 밀어주기가 아니라 지지하지 않는 정당 떨어뜨리기의 역선택에 몰입 - 시민사회의 미성숙 - 권력공백 발생 - 빈틈을 노린 재벌, 강남, 종교집단, 조중동의 발호.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데 따른 후유증으로 농민들의 과격시위, 노동자들의 극한투쟁,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야 한다. 발가락이 몸을 위하여 아픔을 참으면 사람이 죽는다. 문제는 해결책이 없다는 거다. 정부가 나서면 되려 꼬인다는 거다. 그래서 더욱 극단행동으로 간다는 거다.   

신용사회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신용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가치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재벌, 조중동, 종교집단, 강남’을 제압할 ‘시민의 권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시민의 권력 만들기다.

무엇인가? 각 이해집단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미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지 않는 정당을 탈락시키기에 몰입하기 때문에.. 계속 약체정부가 들어서는 현상을 극복하는 것이다.

약체정부를 불신하는 각 이해집단은 고도의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 서울에서 싸울 것을 임진강에서 싸우는 속임수로 대응하고 있다.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져서 다들 당연시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현상은 앞으로 30년 간 지속될 것이다.

이 현상이 지속되는 한.. 한국은 좌파나 우파의 계급적 가치를 앞세운 이념형 정당이 아니라 사회의 제 이해집단을 중재하는 과제중심형 정당이 집권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정당보다 청와대의 파워가 커진다.

약한 정당에 강한 대통령 체제로 간다. 이 경우 유권자는 이념 중심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투표하게 된다. 이건 잘못된 거다.

신용사회로 가는 것이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공동체적 가치가 제시되어야 한다. 무엇인가? 이상주의가 필요하다. 2006년 현재 대한민국의 이상은 무엇인가? 이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의 견해로 말하면 대한민국의 이상은 한국식 ‘성공모델’을 완성하는 거다. 후발 개도국이 일본모델과 한국모델 중에서 한국모델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일은 예의 이상주의와 연계된 ‘가치의 싸움’이다. 황란도 마찬가지고. 근본 ‘힘을 추구할 것인가 미를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힘과 미의 조화를 추구할 것이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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