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2079 vote 0 2006.01.26 (18:40:38)

안쓰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저를 염려해주는 황까분들도 만나게 되는데.. 나는 말해주곤 한다.

“무슨 소리야! 황빠들은 즐기고 있어.”

먼저 폭력을 행사한 쪽이 진 거다. 먼저 우는 쪽이 졌다. 먼저 찌질거리는 넘이 졌다. 필자가 MBC들을 같잖게 보는 이유는.. 그 인간들의 교묘한 조작 그 자체도 일종의 폭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달리 파시즘이 아니라 그게 파시즘이다. 하여간 폭력은 안된다. 오늘자 뉴스에 이런 것이 있다. 임수경씨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쏟아낸 악플러들이 알고 보니..

“3~4명을 빼고는 모두 불혹을 넘긴 중년이었고, 60대 이상도 5~6명이나 됐다. 대학교수와 금융기관의 중견 간부, 대기업 회사원, 전직 공무원 등도 있었다.(뉴스발췌)”

무엇인가? 이 인간들은 폭력을 행사했다. 왜? 패배감 때문이다. 점잖은 양반들이 노무현정권의 등장으로 패닉상태에 빠진 거다.

또 오늘자 뉴스에서 이르기를.. 회창이 간만에 한 마디 했다는데 ..“DJ정권 이후 이 정권에 이르기까지 친북좌파 세력이 득세하면서 나라안이 분열과 갈등으로 뒤범벅이 됐다”

실제로 뒤범벅이 되었다. 위의 것이 아래로 가고 아래의 것이 위로 갔다. 우리는 그것을 개혁이라 부르고 그들은 혼란이라 부른다. 후폭풍이 컸다. 점잖은 대학교수와 금융기관 간부, 대기업 직원, 전직 공무원을 패닉상태에 빠뜨릴 정도로.

무엇인가? 그것은 질서다. 누가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는가? 기득권들이 한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사회의 질서다. 그 질서가 깨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결과는? 패닉상태에 빠진다. 그게 심해지면? 폭력을 휘두른다.

개혁이란 것은? 기득권이 아닌 사회 각 분야의 테크니션이 주도하여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마씨 문중 식구들은 좌파들의 200년 묵은 강령에 따르는 것이 개혁이라 말한다.

뭐 그딴건 마씨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구라에 불과하고.

핸들은 누가 잡나? 버스 운전기사가 잡는다. 대학교수와 금융기관 간부, 대기업 직원, 전직 공무원이 아닌.. 버스 운전기사가 핸들을 잡는 것이 바로 개혁이다.

각설하고.. 황란이 이렇게 가는 이유도 ‘질서’에 대한 견해차 때문이다. 수구들은 기득권이 핸들을 잡아야 ‘반듯한 나라’가 된다 하고.. 황까들은 지식계급이 핸들을 잡아야 옳다고 하고.. 황빠들은 운전기사가 핸들을 잡는 것이 맞다고 한다.

황까들은 황우석을 박사로 보고 황빠들은 기술자로 본다. 박사 황우석은 실격이지만 기술자 황우석은 사면이어야 한다. 황빠들은 자신의 실제 직업이 기술자이기 때문에 기술자 편을 드는 것이다.

하여간.. 문제는 질서다. 질서에 대한 견해차이다. 무엇이 진짜 질서인가 말이다.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민감한 건데.. 오해하지 말라고 써놔도 어차피 오해할 사람은 오해하겠지만.. 참고로 말하면 이거 어려운 이야기다. 아이큐지수가 대한민국 상위 1/3이 안되는 분은 읽지 말기.. 두 번으로는 부족하고 세 번 생각해주기 바란다.

서영석님이 일전에 쓴 글을 인용하면..

“그 책은 "세명의 사기꾼, 모세 예수 마호멧"이란 이름의 책인데, 18세기 유럽에서 화제를 모았던 책이며, 굉장히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스피노자의 정신"이란 필명으로 출판된 이 책의 요지는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기꾼들에 의해 정교하게 조작된 거짓일 뿐이며,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민중을 폭압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런 뉴스를 듣고 와서 분개하는 초딩님들 많다. 분개할만 하다.

(벌써 오해하셨죠? 여기서 ‘분개한다’는 표현에서 분개의 주체는.. 예수, 모세, 마호멧이 인류의 위대한 성자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진실을 알게되니 예수가 사기꾼이 분명하다. 그런데 인류의 1/3이 사기꾼 예수에게 속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닌가 하고 땅을 치고 분통을 터뜨리는 초딩님들을 말하는 겁니다.)   

언젠가 이 문제에 관하여 목사 친구와 대화한 적이 있다. 그는 몇 천년 전에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는 성경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목사? 서비스업이잖아.”

우리나라 목사의 상당수는.. 과학적 진실과 종교의 교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것이다. 끝까지 생각해 보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종교보다 과학을 더 신뢰하면서 얼굴빛 안바꾸고 태연히 설교하는 목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목사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왜?  

목사를 비난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배후에 목사들의 신용을 담보해 주는 것이 있다. 누구인가? 이천년 전에 온 예수다. 그렇다면 그 예수의 신용은 누가 담보하는가?

예의 ‘스피노자의 정신’이 고발한 바에 따르면.. 예수는 사기꾼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예수의 형제도 여럿 있었고 예수 이전에도 동굴에서 3일만에 부활한 사람들이 많았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유는 인도인들이 불교를 믿지 않는 이유와 같다. 예수 이전에도, 예수 이후에도 사흘만에 부활한 사람이 많은데 유독 예수만 믿는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세상의 많은 기독교도들은 왜 예수를 믿는 것일까? 단지 ‘스피노자의 정신’이 폭로한 "세명의 사기꾼, 모세 예수 마호멧"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예수의 속임수에 바보같이 속아 넘어간 때문일까? 천만에!

진실을 말하자! 예수의 명언.. ‘저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하느님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 말의 의미를 바로 새겨야 한다.

목사들 중에 참 같잖은 인간들도 많지만.. 그 목사 얼굴 보고 교회 가는 것이 아니다. 그 목사의 신뢰를 보증하는 예수님 보고 교회를 찾는다. 스님도 마찬가지다. 땡초들도 많지만 스님 얼굴 보고 절 찾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신용은 누가 보증하는가? 석가의 신용은 누가 보증하는가? 마호멧의 신용은 누가 보증하는가?

‘진리의 완전성의 표상’으로서의 신(神)이 보증한다. 그런데 당신이 무신론자라면 표현을 바꾸어야 한다. 진리의 보편성이 보증하고 또 ‘역사의 의지’가 보증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나와 역사관이 다르고, 나와 가치관이 다르고, 나와 진리관이 다르고, 나와 다르게 무신론자라면 솔직히 나도 할말이 없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 수 밖에.

표면을 보지 말고 이면을 보라. 무엇이 진리인가? 역사의 동인(動因) 그 자체가 진리다. 그 역사는 죽어있지 않다. 역사는 오늘도 지구호의 기관실을 책임맡아 60억 인류와 함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선원들은 선장을 믿고 선장은 나침반을 믿는다. 그렇다면 나침반은 누구를 믿는가? 지축을 믿는다. 이렇게 연역하여 끝까지 전개하면?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그것은 역사라는 방법의 ‘진리와 인간의 부단한 대화’다.

진리가 죽어 있고, 역사가 옛 기록에 불과하며.. 지금 이 순간 진리가 역사라는 방법으로 인간과 부단히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나도 대화하지 않는다.

당신이 기독교도라면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목사를 믿는가? 그 목사가 읽는 성경책을 믿는가? 그 성경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예수를 믿는가? 그 예수를 보증 서 준 하느님을 믿는가?

누가 필자에게 이렇게 질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은 언어를 믿는가?”

본론으로 돌아가서 필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근원의 질서다. 그 질서는 기득권의 질서, 테크노크라트의 질서, 마씨 문중에 가훈으로 내려오는 질서.. 그리고 민중이 지금 이 순간에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질서다.

내가 믿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 그러한 동인이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는 사실, 진리를 눈 뜨고 똑바로 볼 수 있는 그 성질이 신의 완전성으로부터 연역된다는 사실이다.

목사를 믿는 사람은.. 어떤 목사가 사고를 쳤다는 보도에 분통을 터뜨린다. 성경을 믿는 사람은 성경의 해석을 두고 벌이는 교파들의 이전투구를 보고 분통을 터뜨린다. ‘스피노자의 정신’이 썼다는 책을 보고 경악한다.

그들은 가짜다. 그들은 진짜가 아니다. 인간의 언어를 믿는 자는 진짜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자는 진짜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믿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부디 이르노니 선장을 믿지 말고 나침반도 믿지 말라. 진정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내부에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본성이 있다는 사실.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큰 흐름에서는 언제나 오류를 시정하여 바른 항로를 잡아왔다는 사실.

‘역사’라는 방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진리와 부단히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 지금 우리가 서프라이즈라는 사이트에 모여서 하고 있는 일 또한 ‘역사의 창조’라는 방법으로 진리와 대화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사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진정 믿어야 하는 것은 선장도, 나침반도, 지축도 아니다. 그러한 믿음의 연쇄고리 그 자체다. 진짜 질서는 선장의 질서도, 나침반의 질서도, 지축의 질서도 아니다. '진리와의 부단한 대화' 그 자체가 만드는 질서다.

그 어떤 것이든.. 마씨 문중의 가훈을 믿든, 성경을 믿든, 불경을 믿든, 깡패의 주먹을 믿든, 기득권의 돈을 믿든.. 그 어떤 고착된 것을 믿는 자는 반드시 패배한다. 오직 진리와의 부단한 대화를 끊지 않는 이가 승리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update 김동렬 2024-12-25 2070
1549 줄기파동 중간점검 김동렬 2006-02-07 13788
1548 강한 자가 최후의 증언자가 된다. 김동렬 2006-02-06 12161
1547 학문과 예술 김동렬 2006-02-04 16422
1546 학문의 역사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김동렬 2006-02-03 19186
1545 이어지는 학문의 역사 김동렬 2006-02-03 15608
1544 성숙한 시민사회로 가기 위하여 김동렬 2006-02-03 13021
1543 정동영은 행운아인가? 김동렬 2006-02-02 13741
1542 백남준의 유혹 1 김동렬 2006-02-01 13597
1541 두관이 형 거기서 머해? 김동렬 2006-02-01 16320
1540 예술은 유혹이다 김동렬 2006-01-31 14378
1539 스크린 쿼터 문제에 대하여 김동렬 2006-01-27 15180
»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김동렬 2006-01-26 12079
1537 학문의 역사 - 쫓겨다니는 문명, 매혹당하는 문명 김동렬 2006-01-25 20119
1536 왕의 남자 대 글래디에이터 김동렬 2006-01-25 13571
1535 황란 제 2라운드 김동렬 2006-01-25 12463
1534 정동영과 김근태의 양극화 해법 김동렬 2006-01-24 13839
1533 학문의 역사 - 서구의 남성성과 동양의 여성성 김동렬 2006-01-23 17227
1532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김동렬 2006-01-23 14166
1531 조직의 김근태 세력의 정동영 김동렬 2006-01-23 14441
1530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김동렬 2006-01-21 14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