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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571 vote 0 2006.01.25 (19:59:55)

왜 인간은 오판하는가? 대부분 오판한다. 내부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많은 정보를 획득하는 사람이 더 많이 오판한다.

필자에게 이런저런 정가의 뒷이야기들을 알려주는 사람들 많은데.. 그거 듣다가 낭패 본 적이 많았다. 그런 이야기 듣다 보면.. 아하 정치인들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오판하는구나.. 하고 알게 된다.

정치가 필자의 전공은 아니고.. 정치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외도’거나 ‘부업’이 되겠다. 필자가 정치를 객관적으로 본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 발을 담그지 않고 빠져들지 않기 때문이다.

주특기로 말하면.. 나는 모든 성공사례를 분석하고 성공모델을 만드는 사람이다. ‘모든 성공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이것이 필자의 모토다. 물론 그 성공이 돈벌이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성공은? 그것은 재현 가능한 것이다. 독립적으로 계의 1사이클을 완성하는 것이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것이다. 근데 이건 테크닉으로 가능하다. 먹물들이 강조하는 주제의식이 아니라.

이런 측면을 쉽게 입증할 수 있는 분야가 영화다. 영화는 관객의 심판이라는 즉 명백히 입증할 수 있는 팩트가 있다.

영화를 논하지만.. 실제로는 성공을 논하고 있다. 정치칼럼도 ‘성공의 법칙’을 정치에 반영하여 테스트함에 지나지 않는다. 확실히 성공에는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은 먹물들의 자랑인 주제의식이나 작품성이 아니라, 민중의 특기인 테크닉 위주로 작동한다.

필자는 테크니션을 존중한다. 박사로서의 황우석은 실격이지만 기술자로서의 황우석은 자격이 있다. 동네수첩도 테크닉이고 음성을 변조한 PD수첩의 속임수를 밝혀낸 쾌거도 테크닉이다.

나는 테크닉으로 무장한 민중이 위선적인 윤리를 강조하는 자칭 도덕선생들을 엿먹이는 상황을 볼 때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서프에 중독된다.

글래디에이터의 성공과 실패

평론가들 말 믿으면 안 된다. 예전에 글래디에이터를 보고 실망한 적이 있는데.. 의외로 관객들은 찬사를 던지고 있었다. 관객들은 내가 주목한.. 글래디에이터의 허술한 부분(특히 엉터리 고증)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무뇌버전’으로 다시 보았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재미가 느껴졌다. 그냥 만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글래디에이터도 꽤나 재미가 있다. 글래디에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필자가 일전에 말한 ‘해외로케 괴담’을 깨뜨릴 수 있는 열쇠가 이 영화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이 영화를 잘 분석하면.. 한국에서도 먹히는 블록버스터 흥행공식을 찾아낼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는 드물게 블록버스터 전략으로 재미 본 케이스지만.. 한국은 바닥이 좁은 나라여서 해외로케를 안 하고는 진짜 대작을 만들 수 없다.

기획사의 관점에서 볼 때.. 아직 충무로에 해외로케 블록버스터 흥행공식은 찾아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땅덩이가 너무 좁아서 찍을 영화가 없다. 결국 해외로케를 해야 하고.. 그 경우 해외로케괴담이 적용되어 영화가 망한다.

해외로케괴담 뿐 아니라 판타지괴담, 사극괴담도 있는데.. 왕의 남자는 사극괴담을 훌륭하게 극복한 케이스다. ‘왕의 남자’를 잘 연구하면 해외로케 괴담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

해외로케가 낯선 외국으로 촬영을 떠난다면.. 사극 역시 과거라는 낯선 동네로 로케를 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2003년에 쓴 글을 인용하면 ..

“사극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원인을 180도로 뒤집으면 엄청난 대박이 된다. 춘향전이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는 이유는 춘향전은 누구나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즉 춘향전의 공간은 배우에게도, 감독에게도, 작가에게도 익숙한 공간인 것이다. 연기가 살아날 수 밖에 없다.”

무엇인가? 왕의 남자는 사극이 흥행에 실패하는 원인을 180도로 뒤집는데 성공한 예다. 왕의 남자는 춘향전의 광한루처럼.. 그리고 영화 ‘친구’의 범일동 골목길처럼.. 관객에게 익숙한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필자가 강조하려는 점은.. 모든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이유를 알면 재현할 수 있고.. 재현에 성공하면 블록버스터 공식이 찾아질 수 있다는 거다.

2001년에 나온 김성수감독의 영화 ‘무사’는 2000년에 나온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성공공식을 충분히 카피하고 있다.(특히 사실주의적인 촬영기술) 그런데 왜 관객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 뻔하다. 글래디에이터의 성공이유를 분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글래디에이터의 핵심적인 성공이유는 점입가경법의 채택에 있다. 점입가경법이란 주인공이 미천한 신분에서 점차 상승하여 황제의 원형경기장으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며 접근할 때의 흥분감을 말한다.
 

글래디에이터.. 시골검투사> 중앙검투사> 황제검투사로 단계적인 신분상승을 이룬다. 마침내 황제를 제압한다.

왕의 남자.. 시골광대> 서울광대> 궁중광대로 단계적인 신분상승을 이룬다. 마침내 왕을 제압한다.

무사 .. 노예> 자유민.. 신분상승의 측면이 부각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상승한 것이 아니라 공주가 추락한 사건이다.
 

김성수 감독은 글래디에이터를 보고도 배운 것이 없다는 말인가? 이게 문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단한 걸작을 보고도.. 거기서 성공의 진짜 요인을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예컨대 스필버그 영화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 영화 ‘죠스’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클로즈업.. 상어의 아가리가 관객을 향해 확 달려드는 장면.. 그 수법이 쥬라기 공원에서는 공룡의 아가리가 확 달려드는 장면으로 변주된다.

스필버그는 이 한가지 수법을 지루할 정도로 반복한다. 반복되기 때문에 관객은 다음 장면을 어느 정도 짐작한다. 이때 관객의 흥분감이 극도로 고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스필버그 영화를 베끼는 감독들은 이 수법을 두어번 써먹을 뿐 반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필버그 영화의 중요하지 않은 잡다한 테크닉을 골고루 베껴먹으려 하지만 이래서는 산만할 뿐이다. 베끼려면 본질이 되는 핵심적인 테크닉 하나를 집요하게 베껴야 한다. 한 놈만 패라는 말이다.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는 이 수법을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다. 특히 인디아나 존스는 같은 수법을 너무 써먹어서 눈감고도 다음 장면을 예측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관객은 재미있다. 평론가는 얼척이 없어 벙찌게 되지만.

여기서 결론은.. 남의 작품 베껴먹는 일도 수월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베껴도 알고 베껴야 한다.
 

왕의 남자 그리고 글래디에이터

‘왕의 남자’는 거의 모든 대박코드를 골고루 담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의외로 흥행한 영화 ‘집으로’와 ‘말아톤’에서 잘 보여지는 ‘의사소통법’이다. 이건 그냥 관객 눈물 쥐어 짜는 거다.

‘이래도 안 울거냐. 울어! 울어! 울어!’ <- 이런 거다. 관객이 울지 않으면 두들겨 팰 기세다. 아주 빨래짜듯이 눈물을 강제로 짜낸다.

예컨대 이런 거다. 아이가 들판에서 놀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큰 일이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집에 와서 엄마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왜? 자신이 손가락을 다쳤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위험이 닥쳤다는 중요한 정보를.. 엄마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설움..

어떤 상황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가? 인형극이다. 왕과 공길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인형으로 대신 의사소통을 한다. 공길은 장생과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왕은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말로는 못해서 인형으로 대리하는 것이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는데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는 감동영화들은 대부분 이러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집으로’에서 할머니와 꼬마가 말로 아니하고 마음으로 의사소통을 하듯이.

그 외에도 많은 테크닉들이 구사되고 있다.
 

점입가경법.. 주인공이 단계적인 신분상승을 이루며 점차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 관객들의 흥분감은 극도로 고조된다.

전문지식법..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사라는 전문직업, 허준이 의사라는 전문직종, 대장금이 궁중요리사라는 전문직업, 왕의 남자가 궁중광대라는 전문직업을 보여준다. 전문지식을 살짝 전수하게 되는데 너무 어려운 지식은 안되고 관객에게 익숙한 나이롱 지식을 찔러주는 센스.

복합구성법.. 선과 악의 진부한 대결에서 고수와 하수의 신선한 대결로 방향을 트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수인 육칠팔 패거리와의 비교, 연산군을 전형적인 악당으로 묘사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사하는 존재로 그린 예가 그러하다.

예컨대.. 영화 무사에서 주인공 주진모와 정우성, 장쯔이는 철딱서니 하수로 묘사되고 람불화와 안성기가 인생의 심오한 측면을 제법 아는 멋쟁이 고수로 묘사된 것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설정이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가 진짜 고수인 것에 비하면. 그리고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이 왕을 향해 ‘네 이놈아’ 하고 꾸짖을 수 있는 멋쟁이 고수인데 비하면. 주인공을 철 없는 하수로 만든다는 건 영화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거다.

이중멜로법.. 한국 드라마가 강한 이유는 청춘남녀의 러브스토리에 생뚱맞게 시어머니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주변인물을 자연스럽게 개입시키는 테크닉이다.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의 러브스토리에 연산과 녹수가 끼어들어 심층적인 구성을 가져간 예도 이러한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다다익선법.. 영화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관객의 입장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다. 예컨대 춘향전에서 어사출도를 놓을 때.. 일제히 달려가는 역졸들은 그 영화를 보는 관객인 것이다. 관객과의 감정이입을 위한 주요한 장치다.

왕의 남자에서 리더인 왕이 민중계급의 상징적 대표자인 장생일행과 전략적으로 제휴하여 귀족계급(조정의 중신)을 협살한다는 설정은 의미가 있다. 예컨대 서프 네티즌이 리더인 노무현과 전략적으로 제휴하여 중간에 낀 금뺏지를 협살하려는 심리와 같은 거다. 역사에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감정이입법.. 연산이 어린애처럼 손으로 문살을 뚜르륵 긁으며 지나가는 장면은 관객들과 체험의 공유를 노린 것이다. 유년의 외톨이 체험이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소년 막시무스가 보리밭길을 가는 장면에도 비슷한 점이 있다.

결론하자. 충무로에서 블록버스터 전략이 실패하는 이유는.. 이러한 흥행공식을 모르고.. 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공식이 더 있다. 예컨대 수미일관법이 있다.

왕의 남자도 줄타기로 시작해서 줄타기로 끝나는데.. 의도적으로 시작과 끝을 일치시키는 테크닉은 많은 함의가 있다. 이거 공식이 넘 많군.. 다 설명하려면 길어지고.. 하여간 기획사는 이런 측면을 챙겨야 한다.

성공에는 공식이 있다. 스필버그가 칸에서 그랑프리를 받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일정 수준이 되는 영화를 다작하고 있는 점은 평가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테크닉이 있고 이 수법은 재현이 가능한 것이다.

어쩌다 한번 걸작을 만들지만 재현을 못하는 명감독들이 많다. 그런건 안쳐주는 거다. 자신이 왜 성공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진짜 실력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좋은 시나리오에 좋은 배우에 좋은 기획사를 만나 우연히 성공한 것이다.

재현할 수 있는가다. 실질적인 테크닉이 있어야 재현이 가능하다. 김기덕은 재현을 할 수 있는 감독이다. 그래서 다작을 한다. 흥행은 못해도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자기만의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들은 인간적인 결함이 있어도 존경해줘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잘난 평론가들은 민중들의 살아있는 지식, 진짜 지식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네 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임의로 정해 놓은 게임의 룰이다. 그 빌어먹을 룰을 깨부수자는 것이다. 용기있는 반칙이 필요하다.

정치분야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필자가 오늘도 정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정치는 곧 전쟁이고, 전쟁은 냉정하게 실력으로 평가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잘난척 하는 명분과 도덕으로 전쟁에 못이긴다. 오직 실력으로 검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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