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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정동영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김근태 해법은 위험하다. 이는 두 사람이 대선주자라는 관점에서 본 것이고.. 당권경쟁을 떠나서.. 일단은 김근태 해법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김근태 해법은 사회 제 세력이 평화협정을 맺자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이 나라의 숨은 은밀한 귀족집단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는 민중이 싫어하는 일이다.

노동자와 정부와 사용자가 협정을 맺는 과정에서 노조가 일종의 기득권 집단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듯이.. 평화협정의 진행 중에 많은 새로운 귀족집단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예컨대.. 환경귀족도 있다. 민노당을 지지해서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골에 있는 자기 별장 주변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는 꼴을 보지 못해서 민노당을 지지하는 척 하는 식의.

사회에서 겉으로 표방하는 이념, 노선과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정치라는 이름의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어 둔 것이고.. 이 방법으로 밑바닥에서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김근태는 그 복마전을 들추겠다는 거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겠다는 거다. 민중들은 이러한 귀족놀음을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몰아주어 지난한 협정과정을 생략하고 단칼에 해결하라는 임무를 부여한다.

그런데 김근태가 민중이 자신의 손에 쥐어준 권한과 임무를 거부하고 귀족들의 세치 혀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겠다고 선언하면? 혁명이 일어난다. 그 경우 킹이 먼저 죽고 귀족이 나중 죽는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내각제라면 김근태의 제안은 설득력이 있다. 내각제는 그러한 몰아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근태의 제안은 일단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그런데 역사의 많은 지혜 있는 리더들은 실제로는 평화협정으로 문제를 풀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이러한 평화협정을 제안하곤 했다.

이런 문제가 원래 잘 해결이 안된다는 사실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필자가 지율을 옹호하고 부안을 옹호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원래 이런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

왕이 삼부회를 소집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할 의도가 아니라 실은 승려와 귀족과 제 3 신분 사이에 싸움을 붙여서.. 이것이 절대로 합의가 안된다는 사실을 노출시킨 후.. ‘거 봐라. 민주적으로 하니 뭐가 잘 안되잖냐. 그러니 독재자인 내게 맡겨.’ 하고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서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의 의원 숫자를 늘리는 이유는 원로원 귀족들끼리 합의가 안 된다는 사실을 로마시민들에게 노출시키기 위한 교묘한 수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려는 이유도 ‘국회는 다 썩었다. 믿을 사람은 대통령 밖에’ 하는 생각을 유도하기 위한..(음 너무 까발기나..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

김근태가 영리한 인간이라면.. 의도적으로 사회대타협을 하자고 선언해 놓고 ‘거 봐 민주적으로 하면 잘 안된다구. 그러니 내게 절대권을 넘겨’ 하면서 민중의 지지를 받아.. 단칼에 문제를 해결해서 영웅이 될 수 있다. 이건 독재자의 스킬.

그런데 필자가 아는 김근태는 그런 영악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 바보같은 제안을 왜 했을까?


● 평범한 리더 - 그런 합의는 원래 잘 안된다. 그러니 내가 결단할 밖에. (나중 뒷탈난다.)

● 영리한 리더 - 일단 민주적으로 합의를 시도한다. 합의가 잘 안되는 이유를 노출시켜 국민들에게 전달한다. 합의의 방해자 1인에게 국민의 분노가 집중되도록 유도한 후 자신이 결단을 내린다. (이 경우 뒷탈이 없다.)


핵폐기장 문제는 지난 18년간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였다. 그런데 왜 노무현 대통령은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이런건 원래 합의가 잘 안되는 문제라는 사실을 충분히 부각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합의가 잘 안되는 문제라는 사실을 국민이 공감해야지만 핵 폐기장을 가져가는 지역에 파격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평화협정의 시도는 그것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합의가 잘 안되는 이유를 국민앞에 노출시켜서.. 리더가 결단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수단일 때가 많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선을 의식한다면 정동영해법이 낫고 대선을 의식하지 않고 말한다면 둘을 병행하는 것이 낫다.

리더가 결단을 내리더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결단하기 전에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충분히 납득시키는 절차가 중요하며, 그 방법은 사회 제 세력간 평화협정의 시도다.

합의에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누가 평화의 방해자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지도자의 결단에 도움을 주는 즉 필요한 절차인 것이다. 하여간 정치는 절차가 중요하다.

정동영의 절차를 무시하고 아이디어로 돌파하는 방법은 나중에 후유증을 남기는 위험한 방법이며.. 김근태가 협정으로 신사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또한 순진한 거다.

맞는 해법은.. 일단 협정을 시도해 본다. 합의가 되면 좋고, 만약 합의에 실패하면 누가 평화의 방해자인지를 드러낸다. 평화의 방해자 하나에 국민의 분노가 집중되었을 때.. 타이밍을 잡아서 리더가 결단을 내린다.

이러한 절차가 중요한 이유는.. 그 경우 결단의 주체가 리더가 아니라 국민으로 되기 때문이다. 리더의 결단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국민의 결단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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