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시리즈 세번째]

비유할 수 있다. 남성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서구의 아폴론적 가치에 가깝다면 여성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동양의 디오니소스적 가치에 가깝다.(비유에 불과하므로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폴론의 가치는 대립하여 충돌하는 양자 중에서 하나를 배제함으로써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데 기여한다. 디오니소스적 가치는 그렇게 결정된 의사를 집단의 성원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욕망을 달성하는데 이바지한다.

동양이 여성에 비유된다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투적 페미니즘’을 ‘전략적 페미니즘’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적 가치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여성적 가치를 보존한 채로 남성적 가치를 이용하는 거다.

의견이 충돌하다면 아폴론의 방법이 소용된다. 그것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먼저 힘의 크기가 비교된다. 우월한 쪽은 선택되고 열등한 쪽은 버려진다. 버려진 쪽이 결과에 승복하면 갈등은 일시적으로 봉합된다.

그러나 소수의 불만은 잠재해 있다. 이 방법은 잠정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최종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디오니소스의 해법이 사용된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가치이며 가치는 공유될 때 의미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다 함께 광장에 모여 축제를 여는 것이다.

보다 남성적인 아폴론의 가치와 보다 여성적인 디오니소스의 가치가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리려 든다면 어리석다. 둘 중 어느쪽이 우월한가를 논하는 것도 어리석다. 다만 우선순위가 있을 뿐이다.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되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것이 맞다. 그것은 여성이 자신의 장점인 여성적 가치를 극대화 하면서 단점인 남성적 가치를 빌리는 것이다.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적 가치만으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뿐 최종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지만 친구를 잃어버린다면 그 승리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아폴론은 침략해 오는 적을 퇴치하자는 것이고 디오니소스는 한 송이 꽃향기에 끌리어 광장으로 모이는 것이다. 적을 퇴치함은 물론 좋지만 꽃향기에 끌리지 않는다면 공허하다.

적을 퇴치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적이 침략해 오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아폴론의 가치는 결함투성이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고 잠정적인 것이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의 아폴론을 흉내낸다면 이는 자신의 약점으로 상대방의 강점과 싸우는 경우일 때가 많다. 자신에게 불리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디오니소스적인 장점을 버려서 안 된다.  

서구가 직선적인 남성적 가치라면 동양은 곡선이 강조되는 여성적 가치다. 그동안 동양은 자신의 여성적 가치를 버리고 스스로 부끄러워 하며 서구의 남성적 가치를 추종해 왔다. 이 방법으로는 잘해야 2등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앞서가는 서구를 근접하게 따라잡을 수는 있어도 추월할 수는 없다. 왜인가? 서구의 홈그라운드에서 서구의 룰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의 홈그라운드에서 남성의 룰로 싸워서는 겨우 2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남성은 공격에 능하고 여성은 유인에 능하다. 분명 차이가 있다. 이를 편견으로 보고 남성과 여성이 모든 면에서 같다고 우긴다면 그것은 남성이 정해놓은 룰로 남성의 홈그라운드에서 남성 심판관의 채점에 운명을 맞기고 싸우는 거다.

여성이 남성의 공격성을 배울 필요는 있다. 그러나 전투적 페미니즘의 방법으로 남성을 근접하게 따라잡을 수는 있어도 그걸로 남성을 추월할 수는 없다. 남성을 추월하려면 동시에 여성적 가치의 장점을 사용해야 한다.

적을 이기는 방법은 적보다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적의 룰을 자기의 룰로 대체하는 것이다. 전투적 페미니즘은 어느 면에서 남성이 만들어놓은 남성의 룰을 인정하는 것이기 쉽다. 전투는 남성의 장기가 아닌가 말이다.

남성을 이기려면 남성의 룰을 배척하고 여성 자신의 룰을 들이대야 한다. 여성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여성심판관의 판정아래 여성의 무기로 남성을 이겨보일 수 있어야 한다.  

동양이 서구를 이기려면 서구의 룰을 배척하고 동양의 룰을 들이대야 한다. 동양의 홈그라운드에서 동양심판관의 판정아래 동양정신의 무기로 서구를 이겨보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서구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서구의 논리와 수학을 배움은 서구를 동양의 홈그라운드로 유인해 오는 선 까지다. 전투적 페미니즘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효용성은 남성을 여성의 홈그라운드로 유인하는 선 까지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543 정동영은 행운아인가? 김동렬 2006-02-02 13591
1542 백남준의 유혹 1 김동렬 2006-02-01 13435
1541 두관이 형 거기서 머해? 김동렬 2006-02-01 16148
1540 예술은 유혹이다 김동렬 2006-01-31 14226
1539 스크린 쿼터 문제에 대하여 김동렬 2006-01-27 15049
1538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김동렬 2006-01-26 11933
1537 학문의 역사 - 쫓겨다니는 문명, 매혹당하는 문명 김동렬 2006-01-25 19953
1536 왕의 남자 대 글래디에이터 김동렬 2006-01-25 13420
1535 황란 제 2라운드 김동렬 2006-01-25 12315
1534 정동영과 김근태의 양극화 해법 김동렬 2006-01-24 13717
» 학문의 역사 - 서구의 남성성과 동양의 여성성 김동렬 2006-01-23 17066
1532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김동렬 2006-01-23 14035
1531 조직의 김근태 세력의 정동영 김동렬 2006-01-23 14291
1530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김동렬 2006-01-21 14588
1529 고쳐쓴 학문의 역사 2 김동렬 2006-01-21 11226
1528 황까와 황빠의 수수께끼 김동렬 2006-01-20 13636
1527 고쳐 쓴 학문의 역사 1 김동렬 2006-01-19 13524
1526 적(赤)과 흑(黑) 김동렬 2006-01-18 16580
1525 돈 키호테의 윤리 김동렬 2006-01-18 13312
1524 33살 케빈 카터의 죽음 image 김동렬 2006-01-17 18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