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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728 vote 0 2006.01.16 (18:28:30)

우리가 이겼다. 황빠가 이겼다는 말은 아니다. 서프라이즈의 본질가치가 승리했다는 말이다.

왜 서프라이즈가 만들어졌을까? 필요가 발명을 낳는 법. 2002년 11월에 왜 네티즌들은 서프라이즈를 필요로 했을까? 서프라이즈만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가치가 승리한 거다.

누가 졌는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들이 졌다. 그 사람들은 통찰력과 분별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었다. 대중이 그들을 믿고 따를 수는 없다.  

오마이뉴스들은 파시즘적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이건 유사 파시즘이 아니라 제대로 파시즘이라 하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언론은 한사코 하나의 방향으로만 몰아가려고 한다.

언론들의 의견이 일치할 때 비극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모든 언론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파시즘이 아니면 무엇이 파시즘이란 말인가?

황빠의 승리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아무래도 배우는 학생들이라면 황까가 많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황빠나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그들 입장에서의 추구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믿었을 때 인류는 불행해진다. 황까들의 가치도 존중되어야 할 하나의 가치일 수 있다. 나는 그들의 가치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황빠들의 가치 역시 별개로 존재한다.

세상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다양한 가치를 존중할 것인가이다. 언론들은 자신과 가치가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인을 박해한 것이다.
 

그들은 늘 오판했다.

지난 2002년 대선 직전 신문사 기자들의 75프로가 이회창의 당선을 확신했다. 그들이 틀리고 서프가 옳았다.

대선 직전 노무현 후보 공식사이트였던 노하우 칼럼니스트들의 다수가 노무현 후보의 패배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무현이 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노무현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틀렸고 서프가 옳았다.(필자가 대선종료 시점에 노하우를 그만둔 것은 그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질 것을 알기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진 불쌍한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그 논객들 다수는 지금 황까 하고 있다.

노무현이 십자가에 매달리면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길래 그들은 승리자 노무현이 아닌 패배자 노무현에게 올인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필자는 그들의 패배주의에 화가 나서 ‘100만원 걸고 내기하자’고 오프모임에서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예수가 죽어줘야지만 바울과 베드로의 시대는 활짝 열리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그룹에서 유일한 지식인이었던 가롯 유다는 예수를 은전 30냥에 거래한 것이다.

임꺽정 무리들에서 유일한 먹물이었던 ‘서림’이 포상금 몇 푼에 임꺽정을 팔아먹었듯이 말이다.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배경에는.. 단순한 판단력의 문제 이전에 본질의 차이가 있다는 거다.

이것이 우발적인 사건은 아니다. 몇몇 논객들의 오판이 아니다.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 근본적인 괴리가 있다. 패배해야지만 승리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늘 패배를 예약해놓고 있는 민노당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황까가 된다. 황우석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으로 연결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황우석이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그 자체에 거부감과 이질감을 느낀다.  

그들은 ‘진리’나 ‘사랑’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지적 용기’가 결여된 비겁자들이다.(여기에는 미묘한 심리적인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자신들을 링 위의 선수가 아니라 링 바깥에서 지켜보고 관전평이나 쓰는.. 제 3자로 포지셔닝하려는 비겁한 의도.)
 

파시즘은 언론의 문제

재신임정국 때 서프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한 번 이상 태도를 바꾸었다. 오직 서프라이즈만이 일관된 길을 갔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향하는 가치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이 단순한 판단력의 차이는 아니다. 서프라이즈 필진들이 명석해서가 아니다. 서프야말로 역사가 우리 시대에 요구하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쁜 호흡이 요동치는 역사의 맥박과 일치한 때문에 역사와의 공명(共鳴)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아는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 안에서 호흡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논리나 판단 이전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황란 초기부터 사태가 장기화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실제로 장기화 되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이면에 계급간 이해대립 문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쪽도 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건 팩트의 사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지향하는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이다. 당신은 진정 무엇을 바라는가?

‘개혁? 개혁 좋지! 그래서? 그 다음에는? 개혁해서 어쩌자는 거야? 당신의 진짜 욕망을 말해보란 말이다.’

공동묘지 같이 정숙한 지식인의 지배 모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시장거리 같이 떠들썩한 대중들의 신바람 모델로 갈 것인가에 관한 비전의 차이다.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파시즘이다

반전이 거듭되어 황까도 황빠도 한 번씩 좋은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바.. 황우석은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을 지적함이 틀린건 아니지만.. 황우석에 대한 비판은 비판대로 의미있지만.

황우석이 잘못했다 해서 국민을 두들겨 패고, 황우석이 잘못했다 해서 국민을 가르치려 들고, 건수 잡았다는 식으로 기어올라서 기어이 대중 위에 군림하려 들고.. 유사 파시즘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지네들이 파시즘적 작태를 보여준 언론들은 분명 틀렸다.

히틀러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태인의 세계정복계획을 주장했다. 공산주의의 위협을 과장하기도 했다.

“늑대가 온다.”

이 한방으로 히틀러는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귀축미영(鬼畜米英)이 아세아를 삼키려 한다.’ 이 한 방으로 일제는 하룻밤 사이에 많은 독립지사를 친일파로 바꿔놓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박정희도 마찬가지.. ‘김일성이 남침한다.’ 김일성도 마찬가지.. ‘미제가 북침한다.’

무엇인가? 정보를 차단하고 대중의 공포심을 조성하여 대중을 통제하려는 것이 파시즘이다. 파시즘의 밑바닥에는 정보의 차단과 조작 및 대중의 통제라는 본질이 숨어 있는 것이다.

누가 파시스트인가? 정보를 차단하려는 자가 파시스트다. 정보를 조작하려 드는 자가 파시스트다. 정보권력을 장악하고 정보를 통제하려 드는 자가 파시스트다. 누가 그런 짓을 자행하는가? 지금 언론이 자행하고 있다.

대중은 정보를 차단할 힘이 없다. 대중은 정보를 조작하고 통제할 힘이 없다. 그러므로 대중은 파시즘을 자행할 능력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배후에서 속삭이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언론이 나팔수 역할을 하지 않은 파시즘이 역사 이래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파시즘은 세상에 없다. 생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이 파시즘이다. 지금 누가 파시즘적 작태를 보이고 있는가? 언제나 파시즘은 대중의 공포심을 이용했다.

‘재앙이 온다’고 떠드는 인간들이 누구인가? 생명과학이 인류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그들이 유사 파시스트다.
 

본질가치를 지키고 핵심역량을 키워야 한다

서프라이즈가 승리했다. 서프라이즈는 서프라이즈의 본질가치를 지켰고 핵심역량을 키워왔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은 지금 진정한 대안언론이 아니라 조중동 옆에서 구색을 맞추는 틈새언론을 지향하고 있다.

그들은 시민기자제를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본질가치를 훼손했다. 네티즌과의 쌍방향 의사소통을 포기함으로써 핵심역량을 상실했다. 이제 그들은 전적으로 직업 기자들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본질에서 조중동과 다를 바 없이 되었다.

네티즌들의 게시판 제보에 기대지 않아도.. 독자적인 취재망으로 언제든지 고급정보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한 마디로 ‘많이 컸다’ 이거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되기를 꿈 꾸는 것이 아니라, 좌파와 지식계급의 동아리 안에서 아류 조중동이 되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언론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공동체에 동기를 부여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시대정신과 대화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시대정신과 대화하여 그 시대의 성공모델을 제안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혁명도 말하자면 하나의 ‘그 시대의 성공모델’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레닌모델, 모택동 모델, 체 게바라 모델이 있을 뿐이며 그 모델들은 20세기라는 그 시대의 성공모델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촛불은 가고 소금만 남은 오마이뉴스

언론의 촛불이면서 소금이어야 했다. 공동체에 동기를 부여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시대의 성공모델을 밝히는 것이 언론에 주어진 촛불의 역할이다. 권력을 감시함은 소금의 역할이라 하겠다.  

오마이들은 스스로 촛불을 꺼버렸다. 그 작은 하나의 촛불이 민중의 욕망에 불을 질러 요원의 들불을 일으킬까 두려워 한 때문이다. 그 결과로 소금만 남았다. 소금 뿌리기가 그들의 사명으로 되었다.

알아야 한다. 인터넷의 쌍방향성 덕분에 많은 것이 이제는 환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언론은 과거의 언론이 아니어야 한다. 시대의 목탁과 소금으로 언론의 역할을 한정하는 것은 조중동이 발호하던 권위주의 시대의 모델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정부의 역할이 커지듯이 변화된 환경에 걸맞게 언론의 역할 또한 커져야 한다. 스스로 역할을 포기하고 소금 역할에나 안주하겠다면 퇴행이다. 그런 식으로는 도태되고 만다.

세상이 바뀐 만큼 언론의 개념부터 바꾸어야 한다.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공동체에 동기를 부여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시대의 성공모델을 밝히는 방법으로 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대중 위에 군림해서 안 되고 오직 대중일반과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방법으로만이 가능하다. 오마이뉴스여! 조중동을 비판하면서도 조중동이 부러웠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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