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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6901 vote 0 2005.12.28 (14:43:49)

제목 없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농민의 죽음은 무리한 진압을 한 정부와 과격한 시위를 한 농민단체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나? 둘째 이 상황에서 허준영은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도록 책임지고 사퇴하는게 맞나?

결론부터 말하면.. 첫째 농민의 죽음은 정부에 책임이 있다. 여당과 야당이 둘 다 잘못하면 여당 책임이고, 부모와 자식이 둘 다 잘못하면 부모 책임이다. 정권은 책임지라고 준 것이므로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

둘째 대통령을 위해서는 허준영이 버티는게 맞다. 허준영이 사퇴한다면 이는 상관인 대통령에 대한 부하의 책임을 행사한 것이지, 국민에 대한 경찰총수의 책임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정치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야당과 농민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허준영은 결국 사퇴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필자가 버티는게 맞다고 말하는건 ‘버틸 수 있다’는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여론이 일변하여 결국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면 물러나는게 맞다. 어쨌든 지금 단계에서는 허준영이 뚝심을 발휘하여 버텨주는 것이 맞다. 그것이 대통령을 돕는 결정으로 된다.

왜 이렇게 되는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정책 때문이다. 과거라면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고, 따라서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있으며.. 폭설이 내려도 대통령 책임, 태풍이 불어도 대통령 책임, 가뭄이 들어도 대통령 책임으로 되었다.

그 경우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방법은 장관을 문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탈권위주의는 이러한 관행을 깨자는 거다. 대통령이 스스로 권위를 벗어던진 만큼 가뭄도, 태풍도, 홍수도, 폭설도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우는 낡은 관행을 이제는 청산하자는 거다.

그렇다면? 탈권위는 이런 순으로 진행된다. 첫째 대통령은 권한과 책임을 일정부분 내각과 경찰, 검찰, 지자체에 나눠준다. 둘째 책임을 넘겨받은 내각과 경찰, 검찰, 지자체는 다시 일정부분 책임과 권한을 국민에게 넘겨준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피라밋처럼 권한과 책임이 내려가야 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은 권한과 책임을 경찰청장이 독식할 것이 아니라 다시 국민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농민은 왜 과격시위를 했을까? 그 시위를 막아선 경찰에게 책임이 있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의경이나 전경, 순경 아저씨들 각자에게 책임이 있다면? 절대로 과격시위 못한다.

그 경우 농민과 순경의 개인적이고 쌍무적인 관계로 된다. 농민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순경을 때릴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무엇인가? 농민들이 과격시위를 하는 이유는 순경, 전경, 의경은 책임이 없고 오로지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농민은 경찰을 때리면서도 실로 경찰을 때린 것이 아니라.. 실은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하여 때렸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때려도 된다’고 판단한 거다.

‘농민이 경찰을 때리면 되나?’ ‘안 된다.’ ‘그런데 왜 농민은 경찰을 때리나?’ ‘경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경찰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을 때리는 거다.’ 이런 논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막아선 경찰이 아니라 배후의 대통령을 향해 무지막지하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대는 것이다. 그러다 경찰이 맞아죽으면?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때리는데 중간에 끼어들어서 맞은 경찰 네가 잘못이다.’ 이런 논리를 들이댄다.

농민 대 경찰의 싸움이 아니라, 농민 대 노무현 대통령의 싸움이고 제 3자인 경찰은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거다. 이런 논리는 옳은가? 옳지 않다. 대통령은 이런 식의 잘못된 논리를 깨부수려는 거다.

그렇다면? 먼저 제왕적 대통령제를 버려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책임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비가 와도 대통령 책임, 눈이 와도 대통령 책임, 바람이 불어도 대통령 책임이라는 식은 곤란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권한과 책임을 나눠줘야 한다.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해임하지 않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미 권한과 책임을 넘겨줘 버렸기 때문에 대통령은 경찰청장을 해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공은 경찰청장에게 넘어온 것이다. 경찰청장은 어떻게 처신해야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정책에 맞는 결정이 될까?

야당이 경찰청장을 문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제왕적 대통령은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전제로 한다.

제왕은 원래 물러날 수 없다. 왕조시대에 왕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 봤는가? 왕이 잘못하면 신하가 물러나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다. 그러므로 야당의 논리는 이렇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 국가다. 제왕에게 책임이 있지만 제왕은 물러날 수 없으므로 제왕의 오른팔인 각료가 대신 물러나야 한다. 고로 허준영 경찰청장이 물러나야 한다. 이런 거다.

그런데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고 권한과 책임은 허준영 경찰청장에게 있다. 즉 지금은 허준영이 제왕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허준영은 물러날 수 없는 것이다.  
 

● 최고 책임자는 물러날 수 없다. 최고 책임자의 퇴장은 책임지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사건이 확대되어 헌법이 최고 책임자로 되면 대통령도 물러나야 하지만 그 경우라도 헌법은 물러나지 않는다. 사건이 더 커지면 헌법도 물러나야 하지만 그 경우라도 궁극의 최고 책임자인 국민은 물러나지 않는다.)

●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정책으로 지금은 권한과 책임을 넘겨받은 허준영이 이 문제의 최고책임자가 되었다.

● 최고 책임자인 허준영은 물러날 수 없다. 최고 책임자의 퇴장은 책임지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이 단계에서는 경찰청장이 헌법이고 제왕이고 최고 책임자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 대통령은 권한과 책임을 경찰청장에게 넘겼다. 경찰청장은 다시 그 책임과 권한을 농민단체에 넘겨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국민 모두가 같이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정책이다.

그러나 이건 정치사건이기 때문에 야당과 농민단체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정상적인 공권력 행사가 안 되는 상황으로 몰려버리면 허준영은 결국 물러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는 일단 버티는 것이 맞다.

허준영이 물러나면? 이는 통치권의 약화를 불러 일으킨다. 레임덕에 정권말기 권력누수 현상으로 바로 간다. 경찰청장을 자른 것이 야당의 큰 승리가 된다. 야당이 대통령 때리기로 재미를 봤으므로 저들의 대통령 때리기는 두 배로 심해진다.

허준영이 버티면? 이미 대통령이 사과했으므로 비난은 허준영에게 집중된다. 허준영이 그 욕을 다 받아먹으면서 버티는 방법으로 자신에게 화살이 쏟아지게 하여 대통령을 돕는 것이 맞다.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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