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엇인가에 열중할 때...
그리고 시대가 흘러가는 길목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모두 같이 그곳에 서 있어도 같은 크기의 열매를 얻거나 같은 기쁨이나 같은 크기의 성취를 맛보지는 못한다.
시대가 흘러가는 마디마다 그 길목을 지키는 주인들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월드컵이나 노무현 정권의 탄생이나....
그 한 시대의 마디 어디쯤 되는 길목에 모두가 같이 있었지만, 같은 느낌을 공유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공감하는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갈등이 필연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한 시대는 공감하는 그 사람들이 주인공이 된다. 역사에 그렇게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의 마디마다 시대를 견인하는 대중들이 있게 된다.
물론 그 시대를 견인한 대중들이 무조건 맞고 나머지는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특징에서 그것을 빼 놓고는 말할 수 없는 그러한 것들이 통념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타고 흘러간다.
커다란 흐름에서는 같은 방향일지라도 이번 서울시장보궐선거에서 야권후보가 된 박원순에 있어서 만큼은 이 시기의 역사의 주인공들은 그를 지지한 대중들이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나는 어느 정도는 구경꾼에 가깝다.
그를 지지한 대중들과는 어느정도 생각의 차이가 있었고, 적극적인 지지의사도 없었다.
그래서 현재의 시점에서 나는 그 대중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한 대중들에도 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의견은 불분명하였으므로 이 시기의 역사의 주된 정서는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장대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한 대목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바꾸고자 하는 열망과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한 시대의 대중으로서 그 한시대를 공감하는 대중의 흐름속에서 대중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 시대 시대마다 역사의 주인공들이 있는데, 그들을 대중이라 부른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정서를 생산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그 대중이 생산하는 정서를 담아내려는 시도와 그 시대를 진단하는 객관적 시각이 있다.
나는 객관적 시각을 갖고자 한다. 때로는 감정몰입이 되어 주관과 객관이 혼동이 오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가슴을 진정하고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려 한다.
이 시대를 치열하게 냉철하게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