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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황박은 황박이고 서프는 서프다. 1라운드는 그렇다 치고 2라운드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게임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본질은 따로 있다. 어쩌면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처음 탄생할 때부터 사건은 잠복되어 있었다. 인터넷이 무엇인가? 정보를 다루는 도구다. 정보에 대한 취급권과 접근권이 문제로 된다.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무엇인가? 지식인 집단의 지배욕과 대중의 권력욕이 충돌한 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일대사건’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하여 대중의 참여를 선동할 때부터 대중의 권력욕은 극도로 자극받아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거동길 닦아 놓으니 깍정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전여옥 대중, 이계진 대중이 으스대며 국회에 입성할 때, 명계남 대중, 미키루크 대중이 이들을 질투할 때부터 예비된 사건이었다.(그렇다. 전여옥과 이계진, 명계남과 이상호들은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지만 실로 같은 역사의 흐름을 타고 있다.)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이다. ‘지식의 지배’편에 설 것인가 ‘대중의 권력욕’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선택해야 한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누가 잠 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았는가? 누가 대중의 잠복한 권력욕을 자극했는가? 인터넷이다. 그리고 노무현이다. 기어코 일은 터져버린 것이다. 기득권들이 두려워 하던 일이 마침내 현실화 되어 버렸다.

원래부터 이 코스로 가게 되어 있었다. 대중의 발언권을 허용할 것인가이다. 아니면 대중의 우매함을 내세워서 지식의 지배를 강화할 것인가이다. 인터넷은 양날의 칼이다. 지식의 지배를 정당화 시켜 줌과 동시에 대중의 난폭한 질주를 가능하게도 한다.

그렇다면? 양쪽을 동시에 제어할 수단은 없는 것인가? 방법이 없지는 않다. 둑을 쌓는 방법이 아닌 운하를 파는 방법, 물길을 트는 방법으로만이 가능하다. 일정부분 대중의 권력욕을 달성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의 권력욕을 달성시켜 주는 방법으로 그 에너지의 수압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역사는 그 방향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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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수레(戰車)를 타고 전쟁을 했다. 만승천자라 했다. 황제는 만 승의 수레를, 제후는 천 승의 수레를, 경대부는 백 승의 수레를 가진다. 이때 군대는 중갑병을 위주로 하여 사각형의 방진을 치고 평원에서 전투를 했다.

누가 승리하는가? 병졸을 잘 통제하는 쪽이 승리하곤 했다. 장교들은 검을 가졌고 사병들은 창을 가졌다. 장교의 역할은 창을 가진 병졸이 달아나려 할때 그 목을 베는 것이었다. 창은 적을 공격할 수 있을 뿐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검을 든 장교가 창을 든 병졸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사병을 통제하는 중간 계급인 장교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로마군단의 백인대장과 같이 우수한 장교를 양성해 놓은 군대가 늘 승리하곤 했다. 이런 계급적 피라미드 시스템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병이 등장하자 전쟁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누가 폭주하는 기마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기마병은 언제든 달아날 수 있다. 아무도 기마병을 통제할 수 없다.

무엇인가? 오직 욕망이라는 미끼만이 기마병을 통제할 수 있었다. 징기스칸의 최후의 방법은 기마병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것이었다. 다른 군대가 침략한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전쟁하는데 비해 징기스칸의 병사들은 오로지 적의 재물을 약탈하기 위해서 싸운다는 점에서 본질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처음 군대의 기병들은 귀족이나 외국 용병으로만 편성하고 있었다. 평민이 기병이 되면 그대로 말을 타고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다. 징기스칸은 귀족도 아니고 용병도 아닌 평민기병으로 군대를 창설했다. 언제든지 달아날 수 있지만 아무도 달아나지 않는 군대를 편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다. 기병들은 언제든지 달아날 수 있기 때문에 이기는 싸움만을 고집했다. 그때 기병들은 소규모의 약탈을 하거나 아니면, 보병부대의 양날개로 붙어 중갑보병을 보조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순수하게 기병만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군단을 지휘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한가?  

그 기술을 획득하기 전까지 대중은 계속 간다. 대중의 권력욕은 자극받았고 인터넷이라는 물적 기반을 획득한데다 황박 건을 계기로 탄력을 받아버렸다.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계속 간다. 대중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기 까지 그리고 역사의 페이지에 굵은 방점 하나를 찍는 일대사건으로 비화하기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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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이라고 한다. 애국이란 것이 무엇인가?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칠 자세가 되어 있으니 이걸 담보로 치고 무담보 신용대출 좀 해주라. 이런 거다. 이건 욕망이다. 참여하겠다는 욕망이다. 이건 발언권을 얻겠다는 거고 개입하여 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거고 자신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거다.

그렇다. 애국심은 대중의 권력욕구의 표출이다. 이걸 나쁜 것이라고 당신들은 말하고 싶겠지.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이비한 종교집단의 승려가 ‘돈은 나쁜 것이야. 돈은 더러운 거라구. 그러니 네가 가진 그 더러운 돈은 다 하느님께 바쳐.’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돈을 하느님께 바치면? 그 더럽다는 돈은 100프로 그 승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돈은 더러운 것이니 승려에게 바치라구?
권력은 더러운 것이니 지식인 집단에 바치라구?

그들 지식인들은 말하고 이렇게 싶어 하는 것이다. ‘대중의 권력욕은 나쁜 거야. 그건 광기라구. 파시즘의 온상이쥐. 그러니 너희는 권력을 내게 바쳐야 해. 내가 권력을 행사할테다. 내가 이제부터 너희를 지도하고 계몽할 거다. 내게 순종하라!’ 이런 거다. 이게 본질이다.

결국 잠 자는 사자의 콧털은 뽑혀졌다. 성난 사자를 누가 통제할 수 있겠는가? 사자만이 사자를 통제할 수 있다. 대중은 자기 스스로를 제어하는 사자를 만들 때 까지 성난 질주를 계속할 뿐이다.  

욕해도 소용없고 비아냥대도 소용없다.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성난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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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끝이 났으면 좋겠는데.. 오늘 내일 하면서도 좀처럼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제는 거진 숨이 넘어갔는가 했는데.. 오늘은 다시 맥이 살아나서 팔팔한 기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람들 이거..
이미 희망에 중독된 것 아닌가.
1프로의 희망이라도 희망은 희망.
희망의 전파는 자유지만 절망의 전파는 불법.

국민 80프로와 코드를 맞춰 봤던 경험.. 이건 짜릿한 거다. 반전에 반전, 역전에 재역전을 해봤던 경험.. 이것도 짜릿한 거다. 그렇다면 중독된 거다.

강단에 붙어 사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전투에 져도 신병이 끊임없이 보충되는 당나라 군대와 같다. 그들은 고구려와의 전투마다 패전하지만.. 그래도 신학기가 되면 강의실이 그득하니 신병이 보충되고 있으니 도무지 걱정이 없다.

할아버지가 실패하면 아들이, 아들이 실패하면 손자가 대를 이어가며 고구려를 침공한다. 당면한 전투에 패전해도 조금씩 타격을 가해서 언젠가는 승리할 수 있다는 거다. 그것이 학계가 작동하는 원리다. 그래서 그들은 곧 죽어도 원칙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희망에 중독된.. 이 사람들은 다르다. 한 번 전투에 지면 그걸로 끝이기 쉽다. 전투가 끝나도 강의실은 남아있다지만.. 이들은 이들 세대의 퇴장과 함께 완전히 끝이 나버린다. 이들은 자기들 세대에서 뭔가 성과를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더라도.. 어떻든 1 사이클의 모델을 완성시키고 싶어 한다. 비유하자면 그들은 모세를 따라 출애굽한 한 떼의 유태인 무리와도 같다. 이미 홍해의 물은 다시 차올라 버렸고 돌아갈 퇴로는 끊어지고 없다.

그 광야에서 어떻게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죽거나 아니면 완성하거나다. 시나이산 아래 과연 젖과 꿀이 흘렀는지 알 수는 없으나 거짓말 조금 보태더라도 그들은 어떻게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신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면 어떻게 해야할까? 역시 희망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을 터이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숙명이자 한계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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