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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230 vote 0 2005.12.23 (14:44:26)

우상파괴자의 죽음

이번 사건의 충격은.. 저들과 우리 사이에 가치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 버렸다는데 있다. 그렇다.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로 된다.

그렇다면? 끝까지 손잡고 함께 길을 갈 수 없다. 그러나 수구세력이라는 공동의 적을 퇴치하는 단계까지는 일정부분 공존과 제휴가 가능할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지향하는 바가 달랐다. 그들은 그들대로 옳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 옳다. 굳이 의견을 통일시키려 할 필요가 없다. 각자의 길을 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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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서프 내에서 어떤 대표성을 가지는 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칼럼’이라는 말의 어원은 가로쓰기 체제에서 세로로 칸(기둥)을 구획한다는 건데 이건 신문사의 공식입장이 아닌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영역이란 뜻이다.

이건 나의 의견이다. 당신의 가치관에서는 당신이 옳을 수 있다. 어쨌든 나의 가치관으로 보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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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건 ‘신뢰’다. 신뢰라고 해서 다 같은 신뢰는 아니다. 당신이라면 지식이 많은 사람을 믿겠는가 아니면 당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손을 내밀어 도와줄 사람을 믿겠는가?

이번 사건으로 기술적인 신뢰를 잃겠지만 대신 인간적인 신뢰를 얻을 터이다. 끝까지 함께 가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신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원래부터 그랬다. 잃을 것은 명성 밖에 없었고 얻을 것은 친구 밖에 없었다.


우상 파괴자의 죽음

과학이라는 이름의 우상이 붕괴한 날이다. 그들은 황우석이라는 도마뱀의 꼬리를 잘라서 몸통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믿겠지만, 나의 견해로 말하면 꼬리를 자르는 즉 몸통도 죽는다.

황우석으로 하여 드러난 것은 과학이라는 것이, 그리고 학문이라는 것이 그 시스템에 있어서 참으로 너절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는 거다.

‘미국은 괜찮다. 한국만 그렇다. 의대는 괜찮다. 수의대만 그렇다. 다른 사람은 괜찮다. 황박만 그렇다’고 그들은 말하고 싶겠지만 나는 그런거 인정 안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성역이 깨졌다. 서울대라는 이름의 성역도, 방송국이라는 이름의 우상도 깨져 버렸다. 그들의 위기관리 능력부족, 무책임성 그리고 비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버렸다.  


비틀즈가 우상이었다고?

음악 평론가들은 비틀즈가 우상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천만에! 나는 비틀즈가 우상을 깨부셨다고 생각한다.

이차대전은 인류의 큰 위기였다. 그 위기의 수습은 일단의 노인들에게 맡겨졌다. 무엇인가? 처칠 노인, 드골 노인, 스탈린 노인, 아이젠하워 노인에 심지어는 이승만 노인까지.. 한 동안 세계적으로 노인들의 전성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그 노인 위주의 권위주의라는 우상을 비틀즈가 깬 것이다. 비틀즈는 음악 이전에 하나의 세대였고, 문화였고, 기운이었다. 극소수의 지배 엘리트가 우매한 대중을 지도하는 시대에서, 엘리트가 뒤로 물러서고 대중이 활개치는 시대로 세상의 모습이 전면적으로 바뀐 것이다.

본질은 역사다. 비틀즈는 그 변화된 역사를 다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동원된 아이콘에 불과하다.

비틀즈가 우상이라고? 도대체 누가 비틀즈를 숭배했지. 아무도 비틀즈를 숭배하지 않았다. 숭배하는 척 했을 뿐이다. 대중은 ‘몰아주기’의 방법으로 비틀즈를 이용하여 기득권의 장벽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비틀즈 이전에는 학생들이 교수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고 비틀즈 이후에는 학생들이 교수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본질이다. 그러한 본질은 비틀즈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실은 역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차대전 후 대량생산 대량소비시대가 열리면서 대중이 문화의 주체로 전면에 등장하면서 낡은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역사는 비틀즈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틀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이비붐 세대, 68학생혁명, 그리고 낫세르의 민족주의를 필두로 세계 수십여 곳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 군사쿠데타의 흐름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근본 동력원이 되는 힘의 중심축이 지배 엘리트에서 대중으로, 그리고 식민지를 경영하던 서방에서 제 3 세계로 급속히 이동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식민지가 소멸하고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서태지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인들은 서태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서태지라는 평범한 우리 또래의 아이가 음악이라는 우상을 박살내 버렸기 때문이다. 서태지 이후 아무도 음악인들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 음악인들은 우상의 위치에서 끌어내려져 대중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일단의 음악인들은 그러한 변화를 못마땅해 했다. 그들은 음악이 고상하고 세련된 신화와 환상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름부터 그러하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문화시장의 주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건 전면적인 세력교체다. 음악이란 동네 꼬마들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서태지들이 전파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로 심지어는 문희준도 하는 것이 음악으로 되었다. 서태지가 우상화 된 것이 아니라 역으로 서태지가 음악이라는 우상을 파괴한 것이다. 문희준이 아티스트를 자처할 때 아티스트라는 우상이 해체된 것이다.

노무현 역시 마찬가지다. 노무현은 우상이 아니라 우상 파괴자이다. 아무도 노무현을 숭배하지 않는다. 거꾸로 노무현에 의해 엘리트 기득권이라는 우상이 파괴된 것이다.

이회창은 훈련된 특별한(?) 사람이지만 노무현은 훈련되지 않은 보통사람이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사람은 우리와는 뭔가 다른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깨진 것이다.

기득권들이 노무현을 혐오하는 이유가 그러하다. 그들이 조성해놓은 신비와 성역의 장막을 노무현이 걷어치워 버렸다.

정리하자. 비틀즈는 우상 파괴자다. 서태지는 우상 파괴자다. 노무현은 우상 파괴자다. 그래서 그 시대의 어른들은 비틀즈를 싫어했다. 음악인들은 서태지를 싫어했다. 정치인들은 노무현을 싫어했다.

서태지는 80년대의 의식과잉, 엄숙주의, 권위주의 문화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우리들 머리 꼭대기 위에 군림하던 그들은 서태지 때문에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이쯤 되면 기득권의 그들이 왜 한사코 노무현을 죽이려 드는지, 왜 음악인들이 서태지를 증오하는지, 왜 영화인들이 김기덕을 혐오하는지, 왜 과학인들이 황우석을 죽여야만 하는지 알만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 비틀즈는 마약과 섹스에나 탐닉하던 뒷골목의 망나니였다. 음악인은 세련되고 훌륭한.. 우리와는 종자가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환상이 깨져버렸다. 서태지는 십대 꼬맹이였다. 노무현은 상고출신이었다. 황우석은 거짓말쟁이였다.

지금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누가 성역을 만들고 누가 우상을 만드는가?

모차르트는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그는 엘리트라면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교양이라는 이름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살리에르는 ‘완전한(?)’ 인간이었다. 그는 엘리트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그리하여 이 땅의 무수한 살리에르들은 망나니 모차르트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다. 음악인들만의 비밀 -음악이란 것이 재주만 있으면 교양없는 망나니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탄로날까 두려워서.

엘리트의 그들은 어리석은 군중이 우상을 숭배한다고 말하지만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누구도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영웅을 만드는 방법으로, 영웅에게 힘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기득권의 벽을 깨고 성역을 깨부순다. 그리고 위대한 대중의 시대를 열어젖힌다.

황우석은 죽었다. 과학이라는, 그리고 상아탑이라는 우상은 깨졌다. 이제는 아무도 의사들을, 서울대를, 과학자를 존경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와 똑 같은 별볼일 없는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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