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의 세계 그리고 완전성과 데미지 어제 모임에서 대화 중에 나온 이야기를 조금 더 정리하기로 하면.. 세상은 마이너스로 간다는 대전제 그리고 완전성의 데미지에서 동기가 부여되는데 관한 거. 모래시계의 윗부분은 감소하고 아랫부분은 증가한다. 마이너스와 플러스는 동시에 일어난다. 마이너스가 원인측이고 플러스는 결과측이다. 세상이 마이너스로 간다는 말은 플러스측을 무시하고 마이너스측을 주목하라는 말이다. 결과측은 포기하고 원인측을 살펴보라는 말이다. 플러스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쪽은 답이 아니라는 이야기. 왜? 플러스측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위치를 달아서 조작을 한다면 반드시 상부구조를 조작해야 한다. 한국이 오늘날 이모양 이꼴이 된 것은 무능한 정부탓인가 아니면 멍청한 대중들 탓인가? 물론 정부잘못도 있고 국민 잘못도 있다? 그 정부는 결국 그 국민이 선출한 정부니까. 근데 이 경우 무조건 상부구조인 정부를 탓하는게 맞다. 대중들의 잘못은 논외다. 일부 무뇌좌파들이 대중들을 씹는 것은 멍청한 거. 거기엔 조작할 스위치가 없다. 애초에 그건 안 되는 수작이다. 답이 없다. 막다른 길이다. 그 쪽은 포기하라. 길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라. 고수는 이겨놓고 싸운다. 싸우면서 봐가며 기회를 잡으려 하면 이미 늦다. 상부구조인 원인측의 마이너스 부분에 대책을 세우고 공략해야 한다. 수도관이 터졌는데 물이 들어오는 입력부를 수리해야지 물이 나가는 부분은 수리가 안 된다. 이미 강한 수압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살을 빼려면 적게 먹어야 할까 아니면 많이 싸야 할까? 침을 계속 뱉으면 체중이 줄어든다. 권투선수들은 이 방법으로 체중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계체량을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쓰는 방법이고 살을 빼려면 기본적으로 먹는걸 줄여야 한다. 먹는건 그대로인데 배설을 늘린다? 이건 아닌 거다. 하부구조의 플러스 부분은 무작정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큰 틀에서의 방향성을 그렇게 정하라는 말이다. 플러스 부분의 공략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의하여와 위하여에서 의하여측을 공략해야 한다. 인간은 애초에 완전하게 태어났고 뭔가 강력한 데미지에 의하여 거기서부터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린이는 이미 완전하기 때문에 플러스측은 원인이 될 수 없다. 데미지를 입는 마이너스 측면만 원인이 될 수 있다. 드라마는 대개 복수극이다. 뭔가 피해를 입고, 상처를 입고, 원수를 갚고 복수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거 없이 그냥 유혹도 있을 수 있다. 뭔가 플러스 하기 위하여 동기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약하다. 미녀와 황금이 유혹해도 인간은 거기에 잘 안 넘어간다. 대부분 동기유발은 줬다가 뺐는 형태로 된다.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냥 가난하게 산다. 미녀를 봐도 무덤덤하고, 황금을 봐도 시큰둥 한게 인간이다. 그러나 줬다가 빼앗을 때는 그 데미지에 의하여 강력한 동기를 획득하는 것이다. 미녀가 그 자체로 유혹인 것이 아니라 실은 미녀와 공존했을 때 느끼게 되는 어색함, 실패, 좌절이 동기부여가 된다. 미녀가 문제가 아니고 미녀와 자신은 격이 맞지 않다는게 문제로 된다. 이게 진짜. 황금이 그냥 유혹인 것이 아니라 황금과 자신은 격이 맞지 않다는게 문제로 된다. 북한 사람들은 가난해도 불만없이 그냥 산다. 그러한 좌절, 어색함, 실패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격을 맞춰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금은 무시할 수 없지만 격이 떨어지는건 절대로 못 참는게 인간이다. 상처입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언가 욕망하는 대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격을 맞추려 하는 것이며 격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그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격을 맞출 수 있다면 그 대상은 없어도 된다. 세상과 나와의 관계에서 삐꺾거림이 애초의 문제다. 그거 불편한 것이며 평생 고뇌를 안겨준다. 처음 만원짜리 물건 하나만 있으면 만족이었는데 정작 만원짜리를 얻으면 더 큰 곤란에 빠진다. 그 물건은 10만원짜리 그릇에 담아야 제격이라는 거다. 이런 식으로 계속 어색해 지는 거다. 최초의 어떤 데미지는 금전에 의해서 메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 많은 금전이 필요해진다. 이런 점은 미학에서도 중요하다. 뭔가 장식을 추가하여 플러스 하려는 디자인은 실패한다. 전통적인 서구식 디자인은 대개 뭔가 잔뜩 추가하는 것이다. 정신 사나운 거다. 계속 제거하여 더 이상 제거할 수 없는 상태가 완전한 상태이며 거기서 뭔가 사단이 났을 때 커다란 데미지를 입고 그것을 복원하는 형태로 사건은 전개한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처음 완전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뭔가 악당의 침입에 의해 데미지를 입고 복원을 시도하는 형태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 세상은 마이너스로 간다. - 원인측, 의하여를 주목하라. ● 완전성 상태에서의 데미지에 의한 동기부여 – 애초의 단순한 원형이 뭔가 마이너스되어 손상되었을 때 그것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결이 바깥으로 노출되는 것이 예술이다.
자기 내부의 것을 엎질러서 한바탕 쏟아내는 것이 예술이다. 뭔가 이것저것 주워모으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텅 빈 캔버스에 산과 강과 건물과 사람을 주워모으는 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 가득 들어찬 에너지를 울컥 토해내는 식으로 뿌려내는 것이 예술이다. 그래야 방향성이 정해지고 통일성, 일관성, 완결성이 담보된다. 그냥 주워모으면 배가 산으로 가서 오리무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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