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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387 vote 0 2005.12.03 (13:52:04)

프레시안에 물을 한 컵 타면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된다. 거기다가 양념을 조금 쳐주면 오마이뉴스가 된다.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어떤 신문이든 그러하다. 바탕에는 커다란 에너지가 고여 있는 법이다. 그 에너지가 없으면 죽는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간절히 염원하게 하였는가이다.

지금 데일리 서프라이즈에는 그러한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도할 뿐이다.

‘조중동에 있고 연합뉴스에도 있는 것은 데일리 서프라이즈에도 반드시 있다.’ <- 이걸 내세우려는 것 같다.

간혹 조중동에 없고 연합뉴스에도 없는 것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만 있을 때도 있다. <- 이걸 유일한 경쟁력으로 삼는듯 하다.

약하다. 그 정도로 안 된다. 세상을 향해 각을 세운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뾰족한 날이 보이지 않고 선명한 색깔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데일리 서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거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그 ‘이거’가 없다.

엠비씨의 추태는 데일리가 존재이유를 밝힐 결정적인 찬스였다. 이 좋은 찬스를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래서야 오마이뉴스를 제치고 개혁의 견인차가 될 수 있겠는가?

딴지일보라면 그렇다. 딴지가 초반에 반짝 뜬 것은 김어준의 관점이 먹혔기 때문이다. 대중이 갈구하던 지점을 정확하게 긁어준 것이다. 그러나 딴지일보가 필진을 보강할수록 점차로 먹물이 되어갔다.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대개 저쪽 식구들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나 할 사람들이 끼어들면 맛이 가는 것이다. 지금은 딴지일보도 사안별로 찬반양론이 공존하고 있어서 어정쩡하게 되어버렸다. 이거 망하는 공식이다.

오마이뉴스의 위기에 대해서는 필자가 진작부터 지적한 바 있다. 지리멸렬주의, 지엽말단주의, 신변잡기주의의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다. 대와 소를 구분하지 않고 경과 중을 분별하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펴들고 차 한잔 할 때의 청량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일요일 오후 1시만 되면 나타나는, 송해 아저씨의 전국노래자랑을 연상하게 하는 나른하고 졸리운 신문으로 변질되고 있다.

기관차와 객차의 구분이 사라졌다. 지하철 역 가판대에서 파는 ‘좋은 생각’ 따위 작은 책들에나 나올 이야기들이 대문을 장식하게 되었다.

"도와주겠다던 대대장은 전화도 안받아..." <-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이 안오는 제목을 뽑아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법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얄팍한 짓거리는 성인비디오의 카피를 연상하게 한다.

‘박하사랑’ <- 이게 도무지 무슨 말인지 헛갈려서 빼어들게 된다는 성인비디오의 얄팍한 상술이 오마이뉴스 대문을 장식하게 된지도 오래인 것이다.

딴지일보도 맛이 가고, 프레시안도 맛이 가고, 오마이뉴스도 싱거워졌지만 그들은 원래 맛이 약간은 있다가 간 것이고, 데일리 서프는 처음부터 맛이 없었다. 지금도 맛이 없는데 앞으로도 맛이 없다면 곤란하다.

딴지일보를 초반에 뜨게 한 에너지와 서프라이즈를 뜨게 한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열정’이다. 2002년 월드컵 신화를 만든 열정, 2002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열정, 2003년 탄핵세력을 박살낸 열정, 2000년 이후 벤처 열기를 만들어낸 열정들 말이다.

이 사건들이 전부 우연으로 보이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1987년 6월 종로 5가에서 최루탄에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로 종로 2가까지 마구 내달리며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 열정들이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보존한 채로 2000년대의 신화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때 그 시절, 그 광장에는 지도부도 없었고, 전대협도 없었고, 강령도 없고 대오도 없이 오직 민중의 함성만이 메아리쳤을 뿐이다. 그 광장에서 일시적으로 이심전심의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며 그 흥분과 그 격정이 거대한 맥놀이를 일으켜 우리 함께 손잡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곤란하다. 우리가 온 길을 모르니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 거대한 흐름을, 그 거대한 격정을, 그 거대한 에너지를 분출하지 못하게 금제하고 차단하고 막아내는 일체의 행동은 우리의 적이다.

윤리.. 개코나.. MBC들이 말하는 윤리는 과거 독재정권이 만화가 탄압할 때 주장하던 윤리처럼 느껴진다. 이현세를 구속하고, 마광수를 잡아넣고, 김인규를 처벌하는 논리가 '윤리'였다는 사실을 상기할만 하다. 그게 말이나 되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에너지는 분출하려 하며 그들은 차단하고 억누르고 금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독재정권과 똑 같은 논리로. 그 자체로 틀려먹은 것이다.

윤리? 누가 더 윤리적인가? 화장실에 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은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대중들 앞에 끌어내어서 “이 영감이 오줌을 누고도 물을 내리지 않았다‘고 외치면 그것이 윤리인가?

그건 윤리가 아니라 패륜이다. MBC의 망동은 내 기준으로 볼 때 패륜이다. 설사 황우석 교수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일처리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지나가는 청년의 장발을 가위로 잘라서 망신을 주는, 독재정권의 못된 방식이다.

그들은 우려한다. 걱정한다. 근심한다. 애국을 걱정하고, 민족주의를 근심하며, 생명과학을 우려한다. 대중의 광기를 걱정하고 네티즌의 폭주를 우려한다. 그러나 생각하라!

그 근심의, 그 걱정들의, 그 우려들의 원래 소유주는 빌어먹을 조갑제가 아닌가? 조갑제의 나라걱정, 조갑제의 경제몰락론, 조갑제의 남침우려, 박근혜의 먹고사니즘 우려, 조중동의 적화우려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유다. 생기다. 열정이다. 명랑함이다. 약동함이다. 누가 우리의 상큼발랄하고 깜찍요염한 즐거운 행진을 차단하고 금제하려 든다는 말인가?

당신네들은 가위를 든 유신독재인가? 장발단속하러 나왔나? 네티즌 단속하러 나왔나? 검열 나왔나? 니들이 뭔데 우리의 자유를 억압해? 그 가위, 그 폭압, 조갑제 한테 얼마 주고 전세냈나?

MBC의 국민 억압은, 김인규 교사에게 행한, 마광수 교수에게 행한, 장정일 작가에게 행한, 이현세 화백에게 행한, 김종서 가수에게 행한, 송두율 교수에게 행한, 강정구 교수에게 행한 권력의 그 못된 짓, 검찰의 그 못된 짓과 똑 같은 것이다.    

MBC들이 언제부터 우리들 머리 꼭지 위에 군림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었나?

왜 피아구분을 하지 못하는가? 부디 이르노니 민중에게 자유를 허하라! 그들의 상큼발랄하고 깜찍요염함을 허하라.

왜 우리가 황교수에 대한 억압에 분노하는가? 그 억압의 칼날이 곧 우리 민중을 향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데일리 서프라이즈는 송해 아저씨의 나른하고 졸리운 일요일 오후 1시의 전국노래자랑이 되어가고 있다. 정신 차리고, 이른 아침의 차 한잔과 같은 설레임과 긴장감이 있는, 깜찍요염하고 상큼발랄한 신문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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