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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075 vote 0 2005.11.26 (17:38:14)

황교수 일과 관련하여 알만한 사람들이 오판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장 경험의 부족이 하나의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강단에 앉아서 편하게 살았다. 시장바닥에서 장사도 안해봤을테고, 업무를 위하여 무슨 팀을 꾸려보지도 않았을 테고, 논밭에서 채소를 가꾸어보지도 않았을 테고, 자신이 살 집을 손수 지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도무지 ‘일머리’ 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초기조건의 민감성’이라 할 수 있다. 일의 경중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중요한 거다. 애초에 윤리운운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건의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00년 전 영국에서는 4키로 법이 제정되었는데 자동차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시내에서 시속 4키로 이상을 달리면 불법이란다. 그 결과로 자동차산업은 그러한 제한이 없었던 후진국 독일과 미국에서 발전되었다.

영국사람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자동차는 위험한 물건이 맞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년에 1만여명이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교통사고 사상자를 모두 합치면 그 숫자는 얼마나 될까?

문제는 자동차가 위험하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자동차산업이 계속 발전해 왔다는 거다. 영국사람들의 오류는 그들이 지금 새로운 문명의 초기 단계라는 민감한 끝단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데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판단이 그 시점에서는 분명 옳았는데도 세월이 흐르자 결과적으로 틀린 것으로 되어버렸다는데 있다. ‘옳은데 틀린다?’ 바로 이것이다.

영국에서 자동차가 ‘위험하다, 그렇지 않다’를 논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로 된다. 자동차산업이 계속 발전하므로 해서 그러한 논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단계에서 윤리문제의 제기는 핀트를 벗어난 즉 엉뚱한 주장으로 된다. 왜냐하면 생명공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정답은 과학만이 알고 있다.

과학사를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알 것이다. 19세기 발명의 시대에 어떤 새로운 발명이 등장할 때 마다 이런 식의 논쟁들이 무수히 있어왔고, 세월이 지나면 초기 단계의 우스운 해프닝으로 기억되곤 했다는 사실을.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해프닝.. 이건 과학이라는 것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빚어진 코미디다. 훗날 과학사는 그렇게 기록할 것이다. 그때 그시절 그 무지하던 시절에 MBC라는 이름의 어떤 바보가 황당한 트집을 다 잡았다고.

최무선이 초석을 구워 화약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넘아! 너 미쳤냐? 이런 위험한걸 왜 만들려고 하니?” 하고 딴지를 붙는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화약은 위험한 거다. 그거 만들다가 수백,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화약이 전쟁에 쓰여지면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화약은 위험하다’는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판단은 틀린 것으로 되었다. 그 상황이 초기였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난다.

18세기 이래 프랑스인들은 과학과 문명이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다. 아시아풍의 느긋한 전원생활이 유행이었다. 마리 앙뜨와네뜨가 자연주의를 주장하며 임금님의 궁궐 옆에 수천억의 돈을 들여 생뚱맞게도 시골 초가집을 지은 것은 그러한 유행의 결과였다.(고귀하신 왕비님께서 초가집도 짓고 채소밭도 만들고 연못도 파고 별별짓을 다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것이 꽤나 사치스런 유행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독일에게 깨진 것이다. 그들은 보불전쟁에 지고, 일차대전에서 얻어맞고, 이차대전에서 얻어터졌다. 싸움 때 마다 졌다.

언제나 그렇다. 역사에 있어서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추월하는 것은, 로마가 그리스를 추월하고, 영국이 스페인을 추월하고, 독일이 프랑스를 추월하고, 미국이 영국을 추월하는 것은 선진국의 경우 ‘위험한’ 과학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후진국으로 도망을 가고, 그 때문에 역사는 반전되곤 한다. 그것이 문명의 흐름이다. 지금 기독교 문화권이 생명윤리 어쩌고 하며 삽질할 때가 우리에게 주어진 찬스다. 역사는 늘 그런식이었다. 지난 수 천년간 무수히 반복되어온 패턴이다.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발명하는 바람에 많은 과학자와 실험자들이 벼락맞아 죽었지만 아무도 프랭클린을 비난하지 않는다.(전기를 몰랐던 프랭클린이 몇 번 전기사고로 죽을뻔 했지만 살아남은 것은 무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이 성공했다는 소문을 듣고 개념없이 따라하던 과학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벼락맞아 죽었다. 이와 비슷한 과학사의 ‘위험한’ 장면들은 차고 넘친다. 제발 책 좀 읽어라. 지식인들아.)

과학은 본래 위험하다. 위험 그 자체와의 정면승부다. 문제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승부라는데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피하는 방법은? 원래 없다. 최무선이 화약을 만들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화약을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처음 에베레스트를 올랐기 때문에, 뒤따라 에베레스트에 오르다가 수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처음 남극과 북극을 밟았고 누군가는 아프리카를 탐험했다. 파나마 운하를 만들다가 무려 3만명의 프랑스 노동자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기도 했다. 그것이 인류의 도전이다.

필자는 MBC사태의 이러한 전개가 윤리나 혹은 애국의 문제, 또는 국익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것의 속성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본다. 줄기세포는 누군가가 앞장서서 오르지 않으면 안 되는 에베레스트인 것이다.

황우석이 먼저 첫 발을 디뎠고 앞으로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그 봉우리를 오를 것이며 누구는 죽고 누구는 다칠 것이다. 필연적으로 그 길을 가게 되어 있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원래 없기 때문이다.

19세기는 발명의 세기, 모험의 세기, 탐험의 세기였다. 인류는 신대륙으로 오지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다. 20세기에 인류는 달에 첫 발을 디뎠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줄기세포에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여기에 윤리 어쩌고 하는 얼빠진 소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이건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겠는가?)

지금 가장 힘이 센 권력자는, 결정권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고 황우석 박사도 아니고 과학 그 자체의 물리적 속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황우석이 줄기세포를 얻은 것이 아니라 과학이 황우석을 그리로 불러낸 것이다.

황우석 입장에서는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프랭클린이 비오는 날에 연을 날려 번개를 끌어들이고도 벼락맞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였다.(실험을 따라하다가 많이 죽었다.) 그 실험을 하면 죽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프랭클린은 전기 전문가도 아니었다. 혹시 어쩌면 번개가 전기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으니까 문득 아이디어를 떠올려 간도 크게 실험해 본 것이다. 잘못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남극을 밟았던 스코트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황우석 박사에게도 애초에 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과학이다.

초기조건의 민감성이다. 처음 전기가 발견되었을 때 “전기! 저거 위험한데 되게 할 일 없는 넘이 한가하다 보니 저 따위 미친 짓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그 당시 알만한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전기가 세상을 바꾸어 놓을줄 몰랐던 것이다. 전기 뿐만이 아니다. 자동차도, 인터넷도, 신대륙의 발견도 마찬가지다. 댓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과학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백배, 천배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그 희생을 달게 감수하고 일어서서 문명을 주도해 볼것이냐다.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독일이 공업을 일으키려 할 때.. “멍청한 넘들. 선진국 프랑스에서는 지금 룻소가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판인데 전근대적인 공업타령이냐” 하고 훈수 두는 인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국익의 문제도, 애국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닌 과학의 문제다. 번짓수를 잘못 짚은 자들은 정신차려야 할 것이다. 노무현 리트머스 시험지에 이은 황우석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 얄팍한 인간의 수준이 드러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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