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과 인식론 아카데미 동영상강의 해설인데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썼습니다. ### 음.. 이건 간단한 건데.. 단박에 알아먹지 못한다면 저도 어쩔 도리가 없네요. 이는 관점의 문제니까. 여기서 잘못되면 다 잘못되는 겁니다. 눈에 딱 보이는 소실점이 안보인다고 하면 저도 어쩔 수가 없지요. 보면 보이는 소실점을 동양의 그 누구도 수천년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쉽게 이해될 성질의 것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래서 깨달음이 필요한 거고. 소실점은 하나의 점에 모이는 것입니다. 존재론의 탐구 역시 하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구조론은 언제라도 하나를 찾아간다는 점을 항상 의식하세요. 또 먼저 ‘관점’이라는 부분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점이란 무엇인가? 보여지는 대상과 보는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메커니즘의 존재 말입니다. 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가 불통이재요. 나와 대상 사이에, 눈과 피사체 사이에 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 남자와 여자가 사귀더라도 ‘A가 이렇게 하면 B는 이렇게 한다’는 방정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조론은 어떤 둘 사이의 관계 곧 숨은 메커니즘을 탐구합니다. 눈과 피사체 사이에 방정식이 있어요. 내가 어느 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말입니다. 점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점만 보이고, 선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선만 보이고, 각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각만 보이고, 입체로 보는 사람에게는 입체만 보입니다. 밀도로 보아야 전모가 보입니다. 관점의 이동이 필요한 거지요. 이건 존재론, 저건 인식론으로 되는게 아니고 세상의 그 어떤 것이든 반드시 한 쌍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게 중요합니다. 모래시계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한 쌍이지 않습니까. 근데 윗부분에는 모래가 떨어지고 아랫부분에는 모래가 쌓이지요.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각각 나누어서 본다면 두 개의 사건입니다. 1) 모래가 떨어진다. 2) 모래가 쌓인다. 모든 혼선이 여기서 빚어집니다. 모래가 떨어지고 또 모래가 쌓인다 이렇게 둘로 보거나 아니면, 아니면 모래가 쌓이는 부분만을 본다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구조론에서는 항상 1을 추적합니다. 사건은 하나에요. 이건 절대적인 규칙입니다. 반드시 사건은 하나다에 밑줄 쫙. 절대 기억하셔야 합니다. 관찰해서 하나가 아니면 하나가 될 때 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에 도달하면 깨달음. 모래가 떨어지는 것은 지구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고, 원인이 하나이므로 결과도 하나여야 합니다. 즉 그곳에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요. 에너지가 한 곳에서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랫부분에 모래가 쌓이는건 저절로 되는 겁니다. 에너지가 없어도 됩니다. 그냥 됩니다. 이거 이상하잖아요.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데 공짜로 되니까요. 여기서 착각이 일어나는 거지요. ‘나는 때렸고’ ‘너는 맞았다’면 내가 때린 사건과 네가 맞은 사건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린게 맞은 거죠. 인간의 보는 시선이 다를 뿐. 둘은 하나다 이 점을 이해하는게 중요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혼선은 하나의 사건을 둘로 나누어 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빛은 빛대로 있고 어둠은 어둠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은 하나입니다. 존재론이란 이걸 깨닫는 것입니다. 인식론이란 이걸 나누어서 별개로 생각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에는 빛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로 세상을 보지만 그것은 이미 그림자입니다. 그림자가 항상 검은 것은 아니에요. 검은 그림자는 흑백그림자이고 빨주노초파남보는 칼라그림자이지요. 인간의 눈에는 모래시계 아랫부분만 보이므로 추상해서 그 윗부분을 찾아야 하는데 이건 생각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깨달음입니다. 이를 태양에 비유하는 것은 태양이 사방에 두루 비치는 성질을 말하려는 것이며 하나의 원본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말함이며 그러므로 마음이든 자연이든 돌이든 흙이든 풀이든 빛이든 태양이든 달이든 그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존재론이고 그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인식론이지요.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일단 인식론입니다. 일단 님은 한번도 태양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님이 보았다고 믿는 태양은 자연에 존재하는 태양이 아니라 님의 뇌 속에 만들어진 상에 불과합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의 존재를 압니다. 바람을 본 것이 아니라 나뭇잎을 본 거지요. 그런데 인간은 바람을 보았다고 착각합니다. 거의 모든 것이 이런 식입니다. 그러므로 메커니즘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둘을 하나로 통합시켜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곱까지 빛깔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빛을 프리즘이 일곱까지 그림자로 연출해낸 것입니다. 산은 푸르지만 실제로는 붉습니다. 붉은 산을 우리가 푸른 산으로 착각하는 것은 산이 푸른색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산에는 나무가 있고 나무는 붉은 색을 취하고 푸른색을 버립니다. 그러므로 산은 붉지요. 그런데 우리는 산이 푸르다고 믿습니다. 산이 버린 것을 산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초목이 푸른 것은 초목이 푸른빛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존재론의 의미는 완전성입니다. 완전한 것은 항상 에너지의 입출력이 있습니다. 인식론의 세계에는 에너지의 작동이 없습니다. 제가 글에서 존재론이나 인식론이라고 구분하여 쓰는 것은 그 순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입자≫힘≫운동≫량은 존재론이고 순서를 뒤집어서 양≫운동≫힘≫입자≫질이면 인식론이지요. 존재론과 인식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인데 순서를 구분하기 위해서 따로 이름을 붙인 겁니다. 왜 이 구분이 문제가 되느냐 하면 양≫운동≫힘≫입자≫질이라고 해놨지만 실제로는 양이 모여서 운동이 안됩니다. 왜냐하면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그런데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양이 모여서 운동이 됩니다. 예컨대 점을 모아서 선을 만들 수 있지요. 이는 에너지가 없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가짜니까요. 인간이 종이 위에 그린 것은 기호에 불과하지요. 그건 진짜 자연의 점이나 선이 아니라 인간의 약속입니다. 인식론은 자연에서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약속에서는 되기 때문에 편의로 쓰는 것입니다. 영화스크린 속에서는 불가능이 없지요. 그곳에서는 슈퍼맨도 되고 배트맨도 되는데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컴퓨터의 작동이라든가 정보의 전파 등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듯한, 무에서 유가 창출되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한 명의 꼬마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면 자연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인간에게는 가능합니다. 인식론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인식론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돈이 돈을 버는 현상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예컨대 평화롭던 마을에 전쟁이 일어나면 갑자기 금이 가치를 얻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돈이 휴지가 되므로 믿을건 금 밖에 없지요. 돈을 금으로 바꾸어 피난을 가야하므로 갑자기 가치창출이 됩니다. 이것이 명목상의 가치창출이 아니라 실질적인 가치창출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자본은 수치화된 신용이고 신용은 위험에 비례하므로 위험이 있어야 사회에 신용이 형성됩니다. 위험이 전혀 없으면 자본이 형성되지 않아 시장이 붕괴됩니다. 자본은 어떤 외부의 힘에 대응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권(權)인데 권은 요소들이 어떤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고 질서를 이룬 것입니다. 이는 에너지 투입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그 하나의 방향은 위험이 존재하는 반대방향입니다. 위험의 포지션이 특정되지 않으면 자본이 하나의 방향으로 질서를 갖추지 못하므로 자본이 붕괴됩니다. 권력이 탄생되지 않고 이에 의사결정 실패로 의미있는 일을 추구할 수 없게 됩니다. 자본의 의미는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를 건설하는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위험의 존재가 명백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롭던 마을에 도둑이 나타나면 갑자기 권력이 발생하고 국가가 성립하고 자본도 발생하지요.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예상되는 미래의 외부에서의 작용에 대응하여 신용을 축적하는 형태로 자본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추운나라에서 경제가 발전하지요. 그러므로 인식론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인식론은 에너지가 없으므로 시작과 끝이 불명해서 뒤죽박죽으로 됩니다. 존재론은 반드시 에너지가 투입되므로 에너지가 소멸되면 사건이 끝납니다. 사건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요. 완전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존재론은 완전성을 나타내므로 하나의 그림을 머리 속에 세팅해 두면 반복적으로 써먹을 수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 앞과 뒤, 입력과 출력으로 세팅되면 존재론입니다. 인식론은 불완전해서 써먹기 어렵지요. 구조론은 이걸 조금 더 구체화시켜 원인≫작용≫판정≫반작용≫결과로 세분화 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것으로 존재의 1사이클이 완성되는 것이며 어떤 하나의 존재, 사건, 개별자, 1자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 |
빛이 생길때 그림자가 생기는건 시간이 걸리지 않음. 미시론적으로(거시론도 마찬가지) 관측은 충돌이고 충돌은 작용반작용의 동시성. 존재와 인식이 충돌하지 않았지만, 충돌한셈 치고 인식의 복제본을 만들어 낸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