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4671 vote 0 2005.09.21 (21:52:48)

언제나 그렇듯이 정치는 자살골 넣기 시합이다.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정치판 만큼 역설의 원리가 분명하게 작동하는 곳은 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훌륭한 정치인들은 이겨야 할 때 이겨주고 져주어야 할 때 져주는 방법을 선택해왔다. 지금 져주는 방법으로 힘을 비축해 두는 것이, 나중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단번에 힘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노무현식 진정성의 정치다.

‘더 중요한 정치인 되고 싶지 않다’는 건 유시민의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정치는 공론의 장이고 공론은 공공성이 결정한다.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되고 싶든 혹은 그렇지 않든 자기 심리에 불과한 그것을 자기 논리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그건 배반이다.

진실로 이겨야지 말로 이기는 것은 소용없다는 말이다. 즉 유시민은 정혜신의 발언을 반박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정혜신의 발언은 안중에도 없었고 다만 정혜신 등의 발언을 고리로 삼아 평소에 하고자 했던 자신의 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정혜신과 논쟁한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한 마디 하기만 하면 그걸 고리로 삼아 자기 속에 비축되어 있는 열 마디를 던지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실로 박근혜와 회담한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진실로 말하면 대통령은 국민과 회담한 것이다.

정혜신의 발언은 깔아준 자리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유시민이 알았어야 했다.

유시민은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단 리더의 방법으로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될것인가 아니면 선구자(스승)의 방법으로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될 것인가이다. 유시민은 군중의 리더가 되기를 포기하고 더 많은 작은 유시민들의 선구자가 되려는 것이다.

어떻게 되든 유시민은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물론 킹이 더 중요한 정치인인지 아니면 킹메이커가 더 중요한 정치인인지는 바라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되기를 포기했다(?)는 유시민은 더 많은 작은 유시민들을 만들 것이다. 우리당 안에 혹은 바깥에 유시민류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이 큰 흐름이 되고 그 흐름이 역사를 바꿀 것이다.

우선순위 판단에 불과하다. 군중의 리더가 되어 군중을 움직여서 군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이념과 스타일을 내세워서 자기류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력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것인가이다.

전자라면 차기 혹은 차차기를 준비한다는 말이고 후자라면 그 이후에 대비한다는 말이다. 어느 쪽이든 달라지는 것은 일의 우선순위에 불과하다. 말로 이기는 것은 지는 것이요 진정성으로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혜신은 유시민에게 마이크를 넘겼는데 유시민은 누구에게도 마이크를 넘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16897
1537 이회창이 버벅대는 이유 김동렬 2002-12-11 14209
1536 우리는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믿었다. 김동렬 2003-10-19 14209
1535 드림팀이 뜰려나 선화 2002-10-19 14216
1534 진짜배기 나머지 5 김동렬 2009-12-24 14216
1533 견공의 드라이브 image 김동렬 2003-06-17 14222
1532 손자병법과 로마교범 image 4 김동렬 2011-02-08 14222
1531 자유란 무엇인가? 2 김동렬 2010-02-22 14224
1530 교훈을 얻을 줄 아는 자가 승리자다. 김동렬 2005-05-01 14225
1529 Re.. 노무현 빠이 엄따. 김동렬 2002-12-08 14228
1528 정동영은 쇼하지 말라 김동렬 2004-02-12 14228
1527 또 구조론적 사고란? image 4 김동렬 2012-04-25 14228
1526 인간은 평등한가? 김동렬 2007-06-28 14230
1525 노무현의 대포용정책 시동 image 김동렬 2003-12-24 14231
1524 개그콘서트가 성공한 진짜 이유 김동렬 2003-03-10 14234
1523 추미애 미치지 않았다 김동렬 2004-01-07 14236
1522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김동렬 2006-01-21 14236
1521 인간의 얼굴을 한 좌파가 그립다 김동렬 2002-11-08 14238
1520 김대중의 변명 - 통치권 차원의 결단인가? 김동렬 2003-01-30 14238
1519 계미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 image 김동렬 2003-12-30 14242
1518 노무현의 총선유세 좋지 않다. image 김동렬 2004-01-05 14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