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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의 성공을 어떻게 볼까?


한중일 사이에는 지금 세 가지 전선이 가로놓여 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전선이 그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날선 대립을 연출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상생할 것이다. 문화적으로는 한국이 승리할 것이다.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필자는 아세아의 문화적 주도권 문제가 가장 비중이 크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한류의 미래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한류의 정확한 원인부터 알아야 한다.


배용준의 뛰어난(?) 연기력이 한류를 낳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이지 배용준의 연기력은 그렇게 뛰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일본 방송계의 상업주의가 별것도 아닌 배용준을 고의로 띄웠고 그러므로 조만간 배용준 연기의 한계가 들통나서 한류는 끝장날 것이라고 오판한다. 천만에!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 배용준이 인기 있는 이유는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얼굴에서 표정을 잘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배용준과 같은 넉넉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잘 없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배용준이나 류시원의 얼굴에서 느끼한 표정을 잘도 찾아내지만 일본인들은 전혀 그 표정을 찾아내지 못한다.


케빈 코스트너의 형편없는 연기는 한국인들에게 잘 포착되지 않는다. 장국영이나 주윤발이 연기를 잘 못하고 대사가 엉망이라 해도 한국인은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그런 얼굴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표정을 읽지 못한다.


배용준이 인기있는 이유는 특유의 인자한 미소 때문이다. 그 미소는 한국의 유교주의사상이 낳은 미소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백자 항아리의 매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본인에게는 신선하다.


물론 일본에도 유교주의가 있고 남존여비가 있지만 일본의 그것은 사무라이의 질서다. 한국의 유교주의는 선비의 질서이다. 명백히 차이가 있다. 선비의 포용력이 사무라이의 잔재주를 이긴 것이 우리의 문화적 포용력이고 이것이 한류의 본질이다.


한류의 핵심은 한국문화는 일본문화를 포용할 수 있지만(나쁘게 말하면 모방하거나 표절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잘 모방하고 있다) 일본문화는 한국문화를 포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한국은 일본을 모방할수록 이익이지만 일본은 한국을 모방하기가 어렵게 구조화 되어 있기 때문에 통째로 수입해 가서 그냥 소비하는 수 밖에 없다.


본말(本末)이 있다. 본(本)을 차지한 자가 말(末)을 모방하기는 쉽지만 말을 차지한 자가 본을 모방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합리주의를 우선으로 하는 한국의 유교문화는 주류적인 가치이고, 허풍이 심한 중국의 도교문화나 극단적인 미학을 내세우는 일본의 선종불교문화는 비주류적인 가치다.


주류의 보편성이 비주류의 특수성(잔재주)을 포용할 수는 있으나 비주류의 특색이 주류의 보편을 아우르기는 물리적으로 불능이다. 그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절대적인 우주의 질서다.


비유하자면 한국의 맨밥에 일본의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출 수는 있어도 일본의 간장국에 한국의 밥을 말아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 그 순서는 하느님도 어길 수 없다.


점잖은 사람이 노래방에 가서는 노래도 화끈하게 잘 부른다든가 혹은 춤도 잘 춘다든가 할 수는 있어도, 노래를 제법 부른다는 뒷골목 양아치가 점잖은 선비를 흉내내기는 불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팔 걷어부치고 나서면 김흥국처럼 응원단장도 해낼 수 있지만, 김흥국이 넥타이 매고 폼잡는다 해서 대통령은 안 된다. 이건 본말이라서 전도가 불능이다. 얼핏 쉬울 거 같아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서구와 동양의 차이도 그러하다. 서구의 합리주의와 수학, 논리학은 주류적인 가치다. 반면 동양의 한의학이나 중국의 사대발명 따위는 비주류적인 가치다. 그러므로 동양의 앞선 기술이 서구에 받아들여져 서구의 근대과학을 꽃피우는데 기여한 바는 있지만, 동양이 서구의 합리주의를 배우지는 못했던 것이다.(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철학으로 볼 때 동양의 유교, 도교, 불교 철학이 서구의 기독교사상을 확실히 앞서고 있는 점도 있다.)


결국 중심을 먹은 자가 변을 아우를 수는 있어도, 변을 차지한 자가 중심을 공략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문제인 것이다. 중원의 관중을 장악한 유방이 남쪽의 초를 치기는 쉽지만 변방의 초를 차지한 항우가 중원으로 진출하여 관중을 공략하기는 원래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한류는 계속가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 한류의 승리가 중요하다. 경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때 유럽의 열등생이었던 아일랜드의 경우에서 보듯이 경제는 문만 열어제치면 동반성장한다. 한국이 일본을 향해 문을 걸어잠그면 당연히 안되겠지만 일단 문을 열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일본이 성장할수록 한국에 이익이다. 경제분야에서 한중일 3국은 동반성장할 것이다.


고이즈미의 승리는 명백히 일본의 지식계급을 위축시킬 것이다. 그 결과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중일은 민족문제로 마찰하면서도 경제와 문화를 교류할 것이며 일본은 본래 실용주의를 장기로 하므로 치고빠지기로 갈 것이다.


그러므로 실용적인 일본이 한류를 배척하지는 못한다. 일본은 한류도 실용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본래 원리주의자들이므로 일본의 문화를 표피적인 기술로만 한정하여 받아들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절대 본질을 내놓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절대로 혼을 내놓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되 장식으로 삼아 주변에 배치할 것이다. 일본은 한국문화를 받아들이되 중심에 놓고 숭배할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10년 후, 20년 후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가게 되어 있다.


일본의 큰 병통은 지식계급의 위축이다. 이는 유교 합리주의의 정수를 배우지 못한 일본식 실용주의 탓이다. 실용주의의 결과 그들은 자본주의를 하면서도 분배에 전념하는 기특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50여년간 자민당의 정책이 그러하다. 그들은 기특하게도 농촌문제 해결과 서민생활의 보장에 전념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지식인들은 명분 보다 실리를 선택한 끝에 자본가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반면 일본의 자본가들은 영리하게도 돈보다 체면을 선택한 끝에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길을 선택하고 대신 문화적으로는 실패하는 길을 선택했다. 일본은 일본문화로 아세아를 아우를 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아세아는 일본의 앞선 기술만 받아들이고 그 정신은 배우지 않는다. 기술은 일본에서 배워도 정신은 차라리 한국에서 배우게 된다.


일본인들은 유럽에서 대접받을 생각은 있으나 아세아에서는 대접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길게 볼 때 그들의 탈아입구 사상은 터무니없는 실패다. 먼데서 친구를 사귀려다 가까운 데서 적을 만든 우를 범한 것이다.


한중일은 당분간 민족주의로 대결하겠지만 제한전쟁으로 간다. 정치전쟁(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관건은 경제전쟁과 문화전쟁인데, 경제전쟁은 같이 사는 거고 문화전쟁은 한국이 승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한국은 문화의 머리를 잡았고 일본은 문화의 꼬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일본의 지식인들이 문득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그런데 고이즈미의 승리는 실용주의로 하여 잠들어 버린 일본의 지식인들이 계속 잠들어 있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무에 두려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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